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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 슬픈 로맨스영화 ‘러브스토리’ OST 동영상과 줄거리, 눈싸움

     

    ‘러브스토리’는 연인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아주 애절하고도 슬픈 로맨스영화입니다.

    1971년도에 상영되어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었던 아름답지만 무척 슬픈 영화랍니다.

     

    70년대 들어서, 남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로맨스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져 상영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70년대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는 내용의 슬픈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져 상영되었는데, 이러한 사랑과 죽음을 주제로한 로맨스영화들은 70년대에는 우리 대중들에게 큰 감동을 주면서, 대부분 크게 히트를 치면서 엄청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70년대에는 ‘사랑’을 주제로 한 슬픈 로맨스 영화들의 레파토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녀간의 사랑이 뜨겁게 불타오를 무렵, 여자주인공이 갑자기 불치병에 걸리게 되고 돌연 사망함으로써,

    두사람의 뜨거운 사랑은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애절하게도 끝이 나는 그런 내용의 슬픔을 미학적으로 표현한 영화들이 많았답니다.

     

    71년도에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리칭주연의 ‘스잔나’란 영화가 그런 유형의 전형이었고, 그 후 상영된 '진추하의 스잔나'와 ‘러브스토리’, ‘라스트콘서트’도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의 영화들입니다.

     

    그런데 특히 ‘러브스토리’가 우리나라에서 크게 히트를 쳤는데, 주인공으로 출연한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우 두사람이 남녀주인공으로 분해, 너무도 티없이 맑고 순수한 사랑을 나누었고,

    여주인공이 너무나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던 것이 관중들의 가슴에 진한 감동의 물결을 남겼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뜨겁게 사랑하던 두사람 중 한사람이 갑자기 병에 걸려 사망하게 됨으로써, 관중들은 주인공이 겪게되는 실연의 슬픔을 마치 자신의 실연과 슬픔과 동일시하는 감정의 이입현상을 겪었으면서, 그래서 관객들이 느끼는 애절함과 슬픔은 더욱 크게 배가되었을 겁니다.

     

    70년대에는 영화 ‘러브스토리’가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를 치면서, ‘러브스토리’를 흉내낸 아류작들도 후에 많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지요.

     

    영화 ‘러브스토리’는 아더 힐러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올리버역에는 라이언 오닐, 제니역에는 알리 맥그로우가 맡아서 뜨거운 열연을 펼침으로서 더욱 실감나고 재미있는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놓았답니다.

     

    그런데 두 남녀주인공인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우가 작품에 너무 깊게 몰입한 나머지, 실제로도 두사람이 서로 사랑에 빠지는 연인관계로 발전했다는 스토리는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입니다.

     

    영화 ‘러브스토리’를 보면서, 남녀간의 조건없는 사랑과 순수한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고 값진 것인지를 가슴 깊이 느낄 수가 있었답니다.

     

    돈과 권력 등 모든 세속적인 것들을 초월한 두 젊은 남녀간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리얼하게 표현한 영화 ‘‘러브스토리’는 70년대를 가장 빛낸 최고의 로맨스영화로 기억되는 작품입니다.

     

    ◆ 러브스토리 줄거리

     

    영화 ‘러브스토리’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올리버는 유서깊은 명문가집안에서 자란 부잣집 도련님인데, 대학에서 우연히 아리따운 여성 제니를 만나 서로 사랑하는 연인사이로 발전한다.

     

    그런데 배경을 매우 중시하는 올리버의 아버지는 가난한 이민자집안 출신인 제니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둘 사이의 관계를 극렬히 반대한다.

     

    올리버 아버지의 완고한 반대로 두사람의 사랑을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서로를 너무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 올리버와 제니는 결국 결혼을 결정하고 함께 살아가게 되며, 올리버는 아버지와 의절하는 길을 택한다.

     

    올리버와 제니는 서로 알콩달콩한 사랑을 나누면서, 결혼의 단꿈을 즐기게 되었는데, 결국 현실적인 문제가 두사람의 앞에 어두운 그림자를 두리우고 만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한 두사람은 올리버의 아버지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전혀 받지못하게 되었고, 두사람은 밑바닥생활을 하는등 온갖 고초를 다 하면서도, 두사람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더욱 깊어만 간다.

     

    그런데 제시가 갑자기 백혈병에 걸리게 되었고, 두사람의 끈끈한 사랑도 제시가 사망함으로써,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고 만다.

     

    ‘러브스토리’의 내용은 신파조의 통속적인 사람이야기가 주를 이루면서, 지금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진부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두남녀의 조건없는 순수한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서울에서 개봉할 당시 24만명이나 되는 엄청난 관객동원으로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었던 영화라고 합니다.

     

    1971년도에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3만명이던 시절이었는데, 그 당시 24만명의 관객동원은 엄청난 히트작이며, 흥행에 대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영화 ‘러브스토리’는 71년 당시 미국에서만 1,170억원의 엄청난 흥행수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지금도 1천억원이 넘는 흥행수익도 달성하기가 어려운데, 지금으로부터 47년전에 1,100억원이 넘는 흥행수익을 벌어들였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러브스토리’에서 주인공 올리버와 제니가 사랑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두사람의 지고지순한 순수한 사랑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에, 이와같은 엄청난 관객동원이 이뤄지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러브스토리’의 흥미를 더욱 배가시켰던 것이 바로 주제가입니다.

    ‘러브스토리’의 주제가도 영화와 함께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그럼 폴모리아악단이 연주한 ‘러브스토리’의 주제가와 삽입곡 ‘눈싸움’을 차례로 감상해보도록 하겠어요!

     

    영화 러브스토리 주제가 폴모리아악단 연주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ZO24xnqg53M 

     

     

    러브스토리 OST '눈싸움(Snow Frolic)‘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19N5UnGfADg&t=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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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 팝송히튼곡, 고전팝송 블론디의 히트곡 ‘Call Me’ ‘하트 오브 글래스노래동영상과 가사, 데보라 해리

       

      과거 뉴웨이브 물결이 넘쳐 흐르던 시절에 크게 유행했던 1980년대의 추억의 팝송 한곡을 손꼽으라면, 블론디의 ‘Call Me’를 꼽을 수가 있습니다.

       

      어묵했던 과거시절에 블론디의 ‘Call Me’는 우리나라에서 엄청 히트했고 우리나라와 아시아, 유럽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8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팝송히트곡이었지요.

       

      ​블론디는 뉴욕출신의 5인조로 구성된 혼성밴드그룹인데, 특히 그룹 '블론디'의 리드싱어인 데보라 해리는 80년대에 섹시하고 육감적인 외모와 개성있는 목소리로 80년대에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금발의 리드싱어랍니다.

       

      특히 금발의 웨이브진 머리결과 호소력 짙고 매력적인 목소리와 아름다운 미모를 모두 갖춘 데보라 해리의 탁월한 노래실력과 섹시한 미모로 세계의 팝송팬들의 영혼을 완전 사로잡으면서 블론디는 80년대에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었답니다.

       

      원래 무명밴드로 출발한 '블론디'가 세계적인 그룹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리드싱어인 블론디의 매력적인 미모와 뛰어난 가창력이 한몫 단단히 했었지요.

       

      그룹 ‘블론디’의 높은 인기를 견인해갔던 매력포인트인 금발미녀 데보라 해리는 마돈나의 인기와 견줄 수 있을만큼 80년대 전반 세계의 수많은 남성팬들의 가슴을 사로잡으면서, 블론디를 80년대 최정상급 그룹으로 올려놓았답니다.

       

      리드싱어 데보라 해리가 매력적인 보이스로 열창하는 ‘Call Me’는 세계적으로 커다란 인기를 끌었고, 1980년도에 영국의 앨범차트와 미국의 빌보드차드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하면서, 세계적인 팝그룹으로 우뚝 올라설 수 있었답니다.

      \또한 블론디의 ‘Call Me’는 그래미상의 '최고의 사운드 트랙상'을 수상하는 위업까지 달성했답니다.

       

      그런데 블론디는 ‘콜미’외에도 엄청나게 인기를 끈 또하나의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1978년도에 블론디가 발표한 ‘Heart of glass’도 엄청나게 히트하면서 영국차트와 미국 빌보드차트에서 동시에 1위를 기록하는 엄청난 쾌거를 이룬 적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 또다시 블론디의 ‘콜미’가 1위를 자치하면서 블론디의 인기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게 되었답니다.

       

      ‘Heart of glass’와 ‘Call Me’라는 두곡이 연이어서 히트하면서 그룹 블론디는 세계적인 그룹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된답니다.

       

      블론디의 노래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도 그룹 블론디의 가장 큰 인기의 비결은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금발미녀 데보라 해리의 미모와 가창력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블론디의 리드싱어 데보라 해리는 빼어난 미모와 아름다운 보이스, 그리고 뛰어난 가창력의 3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어서, 블론디의 높은 인기를 유지해주는 핵심아이콘의 역할을 했었답니다.

      데보라 해리가 없는 블론디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블론디의 히트곡 ‘Call Me’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블론디의 히트곡 ‘Call Me’는 원래 리차드 기어 주연의 영화인 ‘아메리칸 지골로’의 OST였으며,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바람에 블론디의 '콜미'가 동반히트하는 결과를 낳았답니다.

       

      그럼 1980년대 전반에 세계적으로 가장 크게 히트했던 80년대의 최고의 히트곡이자 명곡인, 블론디의 ‘Call Me'와 ‘Heart of glass’ 를 함께 감상해보도록 하겠어요!

       

      블론디의 ‘Call Me’ 뮤직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StKVS0eI85I

       

       

      블론디의 ‘Heart of glass’ 뮤직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WGU_4-5RaxU

       

       

       

       

       

      ‘Call Me’ 가사와 해석

       

      Color me your color, baby

      Color me your car

      Color me your color, darling

      I know who you are

      Come up off your color chart

      I know where you're coming from

       

      Call me (call me) on the line

      Call me call me any any anytime

      Call me(call me) I'll arrive

      You can call me any day or night

      Call me !

       

      당신의 색깔로 칠해줘요, 베이비

      나를 칠해줘요

      당신의 샐깔로 칠해줘요, 달링

      전 그대가 누군지 알아요

      색깔 챠트는 이제 내려놔요

      당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요

      불러줘요 (불러줘요) 전화로

      언제, 언제든지 나를 불러줘요

      불러줘요 (불러줘요) 나의 사랑

      낮이든 밤이든 절 불러줘요, 불러줘요

       

      Cover me with kisses, baby

      Cover me with love

      Roll me in designer sheets

      I'll never get enough

      Emotions come, I don't know why

      Cover up love's alibi

      Call me (call me) I'll arrive

      when you're ready we can share the wine

      Call me

       

      키스로 절 덮어줘요, 베이비

      사랑으로 덮어줘요

      디자이너의 종이처럼 말아줘요

      언제나 충분하지 않아요

      또 감정을 느끼고, 이유는 모르죠

      사랑의 알리바이

      불러줘요 (불러줘요) 오 내 사랑

      당신만 준비되면 와인을 같이 마실 수도 있어요 불러줘요

       

      Ooh, he speaks the languages of love

      Ooh, amore, chiamami (chiamami)

      Ooh, appelle-moi, mon cheri (appelle-moi)

      Anytime, anyplace, anywherre, anyway!

      Anytime, anyplace, anywhere, any day!

       

      우-우-우-우-우, 그는 사랑의 언어를 할 줄 알죠

      우-우-우-우-우, 사랑, 그대, 그대

      우-우-우-우-우, 날 불러줘요 나의 사랑, 날 불러줘요

      언제든, 어디서든, 어디에 있든, 어떻게든

      언제든, 어디서든, 어디에 있든, 언제든

       

      Call me (call me) my love

      Call me call me any anytime

      Call me (call me) for a ride

      Call me call me for some overtime

      Call me (call me) my love

      Call me call me any sweet desire

      Call me call me for your lover's lover's alibi

      Call me (call me) on the line

      Call me call me any anytime

      Call me

      Oh, call me, ooh ooh ah

      Call me

       

      불러줘요 (불러줘요) 내 사랑

      불러줘요, 불러줘요 언제든지

      불러줘요 (불러줘요) 자동차에 태워줘요

      불러줘요, 불러줘요 밤에라도

      불러줘요 (불러줘요) 내 사랑

      불러줘요, 불러줘요 달콤한 모습으로

       

      불러줘요 (불러줘요), 불러줘요 당신의 연인의 알리바이를 위해

      불러줘요 (불러줘요) 전화로

      불러줘요, 불러줘요, 언제 언제든지

      불러줘요 (불러줘요)

       

      오, 불러줘요, 우 후 하

      불러줘요 (불러줘요) 내 사랑

      불러줘요, 불러줘요 언제, 언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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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녀 신은하의 결혼과 남편 그리고 탈북이야기

         

         

         

         

        방송 이만갑에서 해맑은 미소로 스튜디오를 환히 비추어주는 탈북미녀가 있지요. 탈북미녀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방송 이만갑에서 미모의 완결자로서. 시청자들의 관심과 눈길을 한몸에 받고있는 탈북미녀들이 있답니다. 바로 김아라와 한송이, 그리고 신은하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 탈북미녀들은 방송 이만갑의 고정게스트로서 오랫동안 가장 많이 출연해왔고, 방송에서 고상한 자태와 예쁜 미소로 방송 이만갑의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고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예쁜 마스코트 같은 존재감이랍니다.

         

         

        그래서 그녀들을 사람들은 탈북미녀 3인방이라고도 부른답니다.

        그런데 김아라, 한송이, 신은하 등 탈북미녀 3인방 중 누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시나요?

         

         

        귀여움을 강조한다면 한송이를 꼽을 수 있고, 요염한 미모를 강조한다면 김아라를 꼽을 수 있으며, 단아한 미모를 강조한다면 신은하를 최고 미인으로 꼽을 수가 있답니다.

         

         

        이들 세명의 미녀들은 각자 개성이 다르고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한명의 최고미녀를 꼽기는 어렵습니다.

         

         

         

        세명의 탈북미녀들은 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미모와 개성으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있답니다.

        그런데, 한송이는 조선족에 대한 막말논란을 일으켜서, 지금은 이만갑방송에서 퇴출되어서, 방송에 나오지 않고 있지요!

         

         

        이들 탈북미녀 중에서 가장 고상하고, 여성스럽고 단아한 미모를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신은하인데, 오늘은 청순미인 신은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탈북미녀 중에서 가장 곧고 찾한 이미지를 풍기고 있고, 가장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어서, 정말 이만갑을 가장 밝게 빛나게 해주는 탈북미녀가 신은하랍니다.

         

         

        일반 탈북녀와는 달리 곧고 반듯한 이미지를 갖고있는 신은하는 가장 여성스럽고 단아한 미모를 갖고 있어서, 가장 많은 남성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걸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그런데 신은하를 좋아하는 남성팬들에게 꽤 놀랄만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그렇게 단아하고 고운 신은하가 이미 결혼해서 남편이 있다고 합니다.

         

        신은하의 결혼과 남편 이야기

         

        그러면 먼저 신은하에 대한 간단한 프로필을 알려드리는 게 순서일 거 같아요!

         

        신은하 나이 - 1987년생으로 현재 나이 34

        학력 - 중앙대학교 간호학과 졸업

        한때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음.

        고향 - 함경북도 무산. 2003년도에 가족 전체가 북한을 탈출해 중국을 거쳐서 한국으로 입국함.

         

        얼마전 이만갑방송에 출연한 신은하는 자신이 몇 년전에 이미 결혼했으며, 현재 자신은 남편이 있는 유부녀라고 밝히고 있어서, 큰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답니다.

         

         

         

        항상 방송에서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반듯하고 단아한 미모를 뽐내던 대표적인 탈북미녀 신은하가 이미 결혼해서 유부녀가 되었다고 하니, 많은 남성들이 상당히 허탈해하고 있는 실정인데요.

         

        그렇다면 이렇게 예쁘고 반듯한 그녀를 낚아채간 남편은 누구인지 몹시 궁금할 따름입니다!

         

        신은하의 남편은 인물이 반듯하게 생긴 피부과 개업의사라고 합니다.

        신은하는 4년전에 이만갑 방송작가로부터 남편을 소개받아서 몇 년동안 연애를 한 끝에, 2018년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이만갑의 마스코트 신은하가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된 사연을 공개해서, 큰 화제가 되고있고, 그녀의 연애 뒷이야기가 쏠쏠한 재미를 주고있는데요.

         

        4년전 '이만갑'의 여성 방송작가가 피부시술을 받으러다니던 피부과의원이 있었는데요.

        그런데 그 피부과에 근무하는 의사 한분이 그녀에게 자신이 신은하를 무척 좋아하는 팬이라고 말하면서, 신은하를 소개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고 합니다.

         

        신은하와의 소개팅부탁을 받았던 방송작가는 그 피부과의사가 인물도 훈훈하고, 착실한 사람이라고 느껴져서, 결국 신은하와 그 의사와의 만남을 주선했다고 합니다.

         

        그렇게해서 4년 전에 신은하와 그 의사가 처음으로 만남을 가졌는데, 그 당시 신은하는 처음으로 만난 남편에게 그다지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신은하의 눈이 높았기 때문에 그랬던지, 아니면 뺄려고 그랬던지, 처음에 신은하는 처음 만난 남편에게 별 호감을 갖지못하고 거절의 표시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 신은하의 남편은 신은하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끈덕지게 그녀에게 데이트신청을 하면서, 지속적인 구애작전을 펼쳤다고 합니다.

         

         

         

        신은하가 그렇게 차갑게 대했는데도, 남편은 포기하지 않고 한달동안 계속해서 연락을 해왔다고 합니다.

        마치, 끈질긴 스토커처럼 계속해서 데이트신청을 하고 있는 남편 때문에 신은하는 당시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래서 그녀는 남편에게 거짓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또다시 남편이 만나자며 전화연락를 해왔는데, 신은하는 자신은 지금 지방의 모처에 있기 때문에 만날 수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남편의 데이트신청을 거절하기 위해서 신은하가 거짓말을 한 것이랍니다.

         

        그런데 신은하가 지방에 갔다는 말은 들은 남편은 그 지방으로 직접 내려갔다고 합니다.

         

        신은하가 남편을 거절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 줄을 모르는 남편은 신은하를 만날 열망으로, 서울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까지 내려가는 열의를 보여준 것이랍니다.

        매몰차게 거절하는 자신에 대해 그렇게 끈질기면서 정열적으로 대쉬해오는 남편을 보고, 결국 신은하는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좋아하는 남편을 거절하기 위해서, 거짓말까지 꾸며댄 자신이 무척 미안했고, 죄책감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달이 훨씬 지난 후에야, 신은하는 남편과 비로소 두 번째의 만남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번째 만남 때에는 남편은 첫번째 만남과는 달리, 정중한 신사복을 차려입고, 아주 말쑥한 모습으로 나왔고, 신은하는 그 때부터 남편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단아하고 말쑥한 모습으로 나온 남편이 처음볼 때와는 달리 아주 멋지게 댄디하게 보였다고 합니다.

        깔꼼하고 정돈된 모습을 좋아하는 신은하이기에, 깨끗하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편에게서 서서히 호감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 신은하는 남편은 만날 때마다 지극정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는 거의 매일같이 남편으로부터 전화연락이 왔고, 두사람은 거의 매일같이 데이트를 했다고 합니다.

         

        신은하는 매일같이 자신에게 연락을 해오는 남편을 보고, 이 남자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줄 사람이라고 확신을 하게 되었고,

        이 남자에게 자신의 장래를 맡겨도 되겠다 라는 판단이 섰고, 결국 두사람은 만난 지 4년 열애끝에 결혼에 골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순탄할 것 같았던 신은하와 남편의 결혼에는 난관도 있었다고 합니다.

          시어머니되는 분이 자신의 아들이 북한여성과 결혼하겠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어머니가 북한출신인 신은하를 아들의 며느리감으로 삼는 것을 싫어했던 겁니다. 또한 남편 어머니는 아들이 신은하를 집으로 데려오는 것조차도 매우 싫어하셨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의 반대에 대해 몹시 화가난 남편이 예고도 없이 신은하를 무작정 집을 데려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무작정 집으로 들이닥친 신은하를 보고 어머니는 냉랭한 태도를 보였지만, 남편의 아버지는 정반대로 그녀를 매우 반갑게 맞이해주셨다고 합니다.

         

        역시, 며느리사랑은 시어머니보다 시아버지의 몫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하는 부분입니다.

        남편 아버지가 신은하를 처음 보고서 무척 반색을 하면서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신은하사진

         

        남편 아버지가 신은하를 보고서 반색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편 아버지는 어젯밤 꿈에서 노란색옷을 입은 낯설은 한 여성을 보았는데, 그 여성이 신은하와 꼭 닮았다고 합니다.

           

        신은하가 그날 마침 노란색빛깔의 원피스를 입고왔는데, 남편아버지가 어젯밤 꿈속에서 보았던 소녀도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있었고, 그 소녀의 모습이 신은하와 꼭 닮았다는 것입니다.

         

        꿈에서,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한 소녀가 개울가에서 혼자 놀고있었는데, 그 소녀는 남편아버지를 보고서, 활짝 웃으면서, 매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소녀와 아주 흡사한 모습을 한 신은하를 본 남편 아버지는 어젯밤 꾼 꿈이 신은하를 아들의 며느리로 삼는 것을 미리 암시해준 꿈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시아버지는 신은하를 며느리로 흔쾌히 받아들이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결혼 전에 적지않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두사람은 남편아버지의 전폭적인 후원하에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답니다.

          신은하의 남편은 현재 개업해서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피부과의사라고 합니다.

         

        이렇게 한참 신혼의 단꿈을 꾸고 있는 신부가 된 신은하는 201811월에 아들까지 낳아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서 잘 살고있답니다.

         

         

        신은하의 탈북이야기

         

        지금 신은하는 한국에 정착해서 결혼까지 하면서 잘 살고 있지만, 그녀는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탈북녀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신은하의 탈북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합니다.

         

         

        신은하는 함경북도 무산에서 살고 있었는데, 2003년도에 가족 전체가 함께 북한을 탈북해 한국으로 입국해 들어왔습니다.

        신은하의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 신은희와 함께 신은하 이렇게 네식구가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들어온 겁니다.

         

        그런데 신은하 가족이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을 떠도는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무척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

        정말 신은하 가족은 천신만고 끝에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에 살면서 모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여러번에 걸친 탈북과정에서 신은하는 물론 가족 전체가 죽을 고비를 여러번 겪었고,

        결국 극적으로 살아남았던 신은하와 가족들은 2003년 천신만고 끝에 한국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답니다.

         

        신은하의 북한탈출은 정말 기적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으며, 기독교신자인 신은하의 말처럼 신의 도움에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은하 가족은 원래 함경북도의 무산에 살고 있었는데, 그 당시 신은하의 어머니는 국경지역에서 몰래 중국과의 무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은하의 어머니의 무역으로 신은하가족은 북한에서 어느정도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날 신은하 어머니의 중국과의 밀무역이 누군가의 고발로 발각되고 말았답니다.

          그 당시 신은하의 어머니는 중국에서 들여온 기독교 홍보 테잎을 북한지역에 판매하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누군가가 신은하 어머니의 종교태입 판매를 당국에 고발한 것이랍니다.

         

        북한지역에서 종교활동이나 종교행사는 법에 의해서 철저히 금지된 일이며, 발각될 경우 엄청난 처벌을 받게 된답니다.

         

        신은하언니 신은희

         

        당장 신은하 가족전체가 끌려가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신은하 부모님은 탈북을 하기로 결정하였고, 곧바로 한밤 중에 가족 전체가 몰래 두만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갔답니다.

         

        이때가 신은하의 나이가 12살 때인데, 북한 보위부에 끌려가게될 위태로운 순간에, 너무 급하게 도망치듯이 중국으로 건너간 신은하 가족은 재산이나 식량을 하나고 갖고 가지 못했답니다.

         

         

        처음에 중국에서 신은하 가족은 밀무역을 하면서 알고 지내던 한 중국지인의 집에 들어가 얹혀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남의 집에서 가족 전체가 얹혀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그 중국주인의 학대와 멸시가 심해지자, 결국 신은하 가족은 그 집을 나왔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신은하 가족은 중국의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중국의 깊은 산속에 들어갔던 이유는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이며만일 중국 공안당국에 걸리기라도 하면 곧바로 북한으로 끌려가게 되며,

        북한으로 끌려가면 북한의 수용소에 끌려가서 짐슴만도 못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산속으로 들어가서 버려진 움막집을 들어가서 살게 된 신은하 가족은 정말 심한 굶주림과 엄청난 빈곤을 겪으면서 무려 3년 동안을 산속에서 버텨냈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 신은희와 신은하 이렇게 네식구가 빈손으로 산속으로 들어와 움막집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신은하 가족은 오랫동안 산속에서 나는 나무뿌리나 칡뿌리, 산나물들을 캐어서 먹고살았다고 합니다.

         

        어느날 너무 배가 고픈 가족들은 쥐가 드나드는 쥐의 구멍을 발견했고, 신은하 아버지가 그 쥐구멍을 파내어서 그 구멍속에 있는 쥐가 저장해놓은 쥐의 저장식량인 쌀과 콩들을 훔쳐서 먹었다고 합니다.

         

        신은하 어머니

         

        깊은 산속생활에서 얼마나 먹을 것이 없었으면, 식량대신 칡뿌리를 캐먹고 쥐의 식량창고에서 쥐가 물어다놓은 식량을 훔쳐먹고 살았을까요?

        이렇게 신은하 가족의 중국 산속의 생활을 말 그대로 비참하고 곤궁한 생활 그 자체였답니다.

         

        그렇게 중국 산속에서 3년 정도 숨어살고 있었을 때에, 어느날 갑자기 중국 공안당국이 신은하의 움막집을 들어닥쳤고, 집에 있던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를 체포해서 데려갔습니다.

         

        산속에서 숨어 살고있던 신은하 가족을 누군가가 중국 공안당국에 신고를 한 것이랍니다.

         

        중국 공안당국의 출두로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 자매가 체포되었고, 두 자매는 곧바로 북한으로 강제 입국당했고, 북한의 청진의 도집결 수용소에 수용되어 수용소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북한으로 끌려와서 수용소생활을 하게 된 이 당시의 신은하의 나이 15살 정도 되었을 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수용소생활에서 두 자매는 매일같이 엄청난 학대를 당했을 뿐만아니라, 강도높은 노동에 동원되었고,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바로 굶주림이었다고 합니다.

         

        북한 수용소에서 얼마나 굶주림이 심했는데, 차라리 중국 산속에서 나무껍질과 나무뿌리를 캐먹던 시절이 북한 수용소생활보다 오히려 더 나았다고 합니다.

         

        신은하 자매가 북한수용소에 먹었던 것은 영양가가 전혀 없는 소금을 뿌린 한주먹 크기의 국수죽이었다고 하며 쌀밥은 구경도 해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매일같이 학대와 굶주림, 심한 노동에 시달리는 생활을 신은하 신은희 자매는 기적처럼 그 고통을 견디어 내었답니다.

         

         

         

        이렇게 매일같이 제대로 먹지고 못한 채, 심한 학대와 구타, 심한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몸이 약해지고 면역력이 떨어져서 매일같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5살의 어린 나이의 신은하도 매일같이 무거운 시멘트와 무거운 벽돌을 나르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성인 남자들도 하기 힘든 심한 노동일을 나이 어리고 연약한 신은하와 신은희 자매는 강한 정신력으로 견디어 내었던 겁니다.

         

        이것은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가 서로 가까이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서로 정신적으로 결속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만일 두자매가 함께 있지않고 따로 따로 수용되었다면, 두자매들을 굶주림과 심한 노동으로 일찍 죽었을 지도 모릅니다.

         

        노예생활보다도 더 못한 험난한 수용소생활을 견뎌낸 것은 신은하와 신은희 자매가 서로 정신적으로 강하게 결속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살이 된 언니 신은희는 단련대로 끌려가게 될 상황에 처했는데, 동생 신은하는 나이가 어려서 언니와 헤어져서 꽃제비수용소로 끌려가야될 처지였답니다.

         

        두자매가 만일 헤어지게 되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언니 신은희는 수용소 소장에게 무릎 꿇고 바지가락을 붙잡으면서 눈물로 통사정을 해서

        간신히 두자매는 헤어지지 않고 함께 꽃제비수용소로 갈 수 있게 되었답니다.

         

         

        북한에서 꽃제비수용소는 일종의 '거지수용소'인데, 이곳은 강제수용소처럼 감시와 통제가 심한 곳은 아니랍니다.

         

        그렇지만 잘 알다시피 북한 간부들의 부정부패가 워낙 심해서, 꽃제비수용소에 있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식량을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이곳의 아이들은 굶주림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곳이랍니다.

         

        그렇지만 차라리 꽃제비수용소에 온 것은 신은하 신은희자매에게는 잘된 일이며, 북한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곳이랍니다.

         

        꽃제비수용소에서 밥을 제대로 안주기 때문에 배고픔에 시달릴 수는 있지만, 이곳의 감시망이나 통제가 거의 없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곳을 탈출할 수가 있답니다.

         

        꽃제비수용소에 함께 있던 신은하와 신은희는 수용소를 탈출해서 천신만고 끝에 중국에 있는 부모님과 연락을 닿을 수 있었답니다.

         

        중국에 있던 어머니가 여러번에 걸쳐서 브로커를 북한으로 보내서 딸들을 찾았고, 결국 신은하 자매는 어머니가 보내온 브로커와 극적으로 만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신은하 신은희자매는 그 브로커의 안내에 따라서 다시 두만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가서, 어머니와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된답니다.

         

        그러니까 신은하 신은희자매는 두번씩이나 두만강을 건넜던 겁니다. 그렇게 신은하 자매는 천신만고 끝에 중국에서 다시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신은하 아버지는 얼마 전에 중국공안당국에 끌려가서 북한으로 강제압송되었다고 합니다.

        신은하와 신은희는 아침새벽마다 교회에가서 아버지를 돌려보내달라고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를 드렸답니다.

         

        그렇게 6개월동안 신은하 신은희자매가 눈물로 기도를 드린 다음, 북한에 끌려갔던 아버지가 기적처럼 돌아왔답니다. 

        이처럼 신은하 신은희자매에게는 여러번에 걸쳐서 기적이 일어났던 겁니다.

         

        아마도 신은하 어머니가 가독교를 홍보하는 테잎을 팔다가 적달되어 이런 불행을 겪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들 가족을 무척 긍휼히 여겨서 이렇게 기적같은 역사를 베풀어주신 것이 아닌가 사료된답니다.

         

        이렇게 네가족이 다시 극적으로 만나게 된 신은하가족은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남한으로의 입국을 추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 신은하, 신은희, 어머니와 아버지 네가족은 기적과도 같이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올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 신은하와 신은희 자매는 현재 독실한 기독교신자가 되었답니다.

         

        정말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면서 천신만고 끝에 북한을 탈출해서 한국입국에 성공한 신은하와 신은희 자매의 사연은 기적이라고 밖에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그녀들의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 그리고 자유를 향한 그녀들의 열망에 경의감을 갖게된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한입국에 성공한 신은하와 신은희는 모두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남한사회에 잘 적응해나갔으며, 지금은 두자매 모두 결혼까지 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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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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