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탈북녀 신은하의 결혼과 남편 그리고 탈북이야기

     

     

     

     

    방송 이만갑에서 해맑은 미소로 스튜디오를 환히 비추어주는 탈북미녀가 있지요. 탈북미녀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방송 이만갑에서 미모의 완결자로서. 시청자들의 관심과 눈길을 한몸에 받고있는 탈북미녀들이 있답니다. 바로 김아라와 한송이, 그리고 신은하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 탈북미녀들은 방송 이만갑의 고정게스트로서 오랫동안 가장 많이 출연해왔고, 방송에서 고상한 자태와 예쁜 미소로 방송 이만갑의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고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예쁜 마스코트 같은 존재감이랍니다.

     

     

    그래서 그녀들을 사람들은 탈북미녀 3인방이라고도 부른답니다.

    그런데 김아라, 한송이, 신은하 등 탈북미녀 3인방 중 누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시나요?

     

     

    귀여움을 강조한다면 한송이를 꼽을 수 있고, 요염한 미모를 강조한다면 김아라를 꼽을 수 있으며, 단아한 미모를 강조한다면 신은하를 최고 미인으로 꼽을 수가 있답니다.

     

     

    이들 세명의 미녀들은 각자 개성이 다르고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한명의 최고미녀를 꼽기는 어렵습니다.

     

     

     

    세명의 탈북미녀들은 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미모와 개성으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있답니다.

    그런데, 한송이는 조선족에 대한 막말논란을 일으켜서, 지금은 이만갑방송에서 퇴출되어서, 방송에 나오지 않고 있지요!

     

     

    이들 탈북미녀 중에서 가장 고상하고, 여성스럽고 단아한 미모를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신은하인데, 오늘은 청순미인 신은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탈북미녀 중에서 가장 곧고 찾한 이미지를 풍기고 있고, 가장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어서, 정말 이만갑을 가장 밝게 빛나게 해주는 탈북미녀가 신은하랍니다.

     

     

    일반 탈북녀와는 달리 곧고 반듯한 이미지를 갖고있는 신은하는 가장 여성스럽고 단아한 미모를 갖고 있어서, 가장 많은 남성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걸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그런데 신은하를 좋아하는 남성팬들에게 꽤 놀랄만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그렇게 단아하고 고운 신은하가 이미 결혼해서 남편이 있다고 합니다.

     

    신은하의 결혼과 남편 이야기

     

    그러면 먼저 신은하에 대한 간단한 프로필을 알려드리는 게 순서일 거 같아요!

     

    신은하 나이 - 1987년생으로 현재 나이 34

    학력 - 중앙대학교 간호학과 졸업

    한때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음.

    고향 - 함경북도 무산. 2003년도에 가족 전체가 북한을 탈출해 중국을 거쳐서 한국으로 입국함.

     

    얼마전 이만갑방송에 출연한 신은하는 자신이 몇 년전에 이미 결혼했으며, 현재 자신은 남편이 있는 유부녀라고 밝히고 있어서, 큰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답니다.

     

     

     

    항상 방송에서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반듯하고 단아한 미모를 뽐내던 대표적인 탈북미녀 신은하가 이미 결혼해서 유부녀가 되었다고 하니, 많은 남성들이 상당히 허탈해하고 있는 실정인데요.

     

    그렇다면 이렇게 예쁘고 반듯한 그녀를 낚아채간 남편은 누구인지 몹시 궁금할 따름입니다!

     

    신은하의 남편은 인물이 반듯하게 생긴 피부과 개업의사라고 합니다.

    신은하는 4년전에 이만갑 방송작가로부터 남편을 소개받아서 몇 년동안 연애를 한 끝에, 2018년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이만갑의 마스코트 신은하가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된 사연을 공개해서, 큰 화제가 되고있고, 그녀의 연애 뒷이야기가 쏠쏠한 재미를 주고있는데요.

     

    4년전 '이만갑'의 여성 방송작가가 피부시술을 받으러다니던 피부과의원이 있었는데요.

    그런데 그 피부과에 근무하는 의사 한분이 그녀에게 자신이 신은하를 무척 좋아하는 팬이라고 말하면서, 신은하를 소개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고 합니다.

     

    신은하와의 소개팅부탁을 받았던 방송작가는 그 피부과의사가 인물도 훈훈하고, 착실한 사람이라고 느껴져서, 결국 신은하와 그 의사와의 만남을 주선했다고 합니다.

     

    그렇게해서 4년 전에 신은하와 그 의사가 처음으로 만남을 가졌는데, 그 당시 신은하는 처음으로 만난 남편에게 그다지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신은하의 눈이 높았기 때문에 그랬던지, 아니면 뺄려고 그랬던지, 처음에 신은하는 처음 만난 남편에게 별 호감을 갖지못하고 거절의 표시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 신은하의 남편은 신은하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끈덕지게 그녀에게 데이트신청을 하면서, 지속적인 구애작전을 펼쳤다고 합니다.

     

     

     

    신은하가 그렇게 차갑게 대했는데도, 남편은 포기하지 않고 한달동안 계속해서 연락을 해왔다고 합니다.

    마치, 끈질긴 스토커처럼 계속해서 데이트신청을 하고 있는 남편 때문에 신은하는 당시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래서 그녀는 남편에게 거짓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또다시 남편이 만나자며 전화연락를 해왔는데, 신은하는 자신은 지금 지방의 모처에 있기 때문에 만날 수가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남편의 데이트신청을 거절하기 위해서 신은하가 거짓말을 한 것이랍니다.

     

    그런데 신은하가 지방에 갔다는 말은 들은 남편은 그 지방으로 직접 내려갔다고 합니다.

     

    신은하가 남편을 거절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 줄을 모르는 남편은 신은하를 만날 열망으로, 서울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까지 내려가는 열의를 보여준 것이랍니다.

    매몰차게 거절하는 자신에 대해 그렇게 끈질기면서 정열적으로 대쉬해오는 남편을 보고, 결국 신은하는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좋아하는 남편을 거절하기 위해서, 거짓말까지 꾸며댄 자신이 무척 미안했고, 죄책감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달이 훨씬 지난 후에야, 신은하는 남편과 비로소 두 번째의 만남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번째 만남 때에는 남편은 첫번째 만남과는 달리, 정중한 신사복을 차려입고, 아주 말쑥한 모습으로 나왔고, 신은하는 그 때부터 남편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단아하고 말쑥한 모습으로 나온 남편이 처음볼 때와는 달리 아주 멋지게 댄디하게 보였다고 합니다.

    깔꼼하고 정돈된 모습을 좋아하는 신은하이기에, 깨끗하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편에게서 서서히 호감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 신은하는 남편은 만날 때마다 지극정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는 거의 매일같이 남편으로부터 전화연락이 왔고, 두사람은 거의 매일같이 데이트를 했다고 합니다.

     

    신은하는 매일같이 자신에게 연락을 해오는 남편을 보고, 이 남자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줄 사람이라고 확신을 하게 되었고,

    이 남자에게 자신의 장래를 맡겨도 되겠다 라는 판단이 섰고, 결국 두사람은 만난 지 4년 열애끝에 결혼에 골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순탄할 것 같았던 신은하와 남편의 결혼에는 난관도 있었다고 합니다.

      시어머니되는 분이 자신의 아들이 북한여성과 결혼하겠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어머니가 북한출신인 신은하를 아들의 며느리감으로 삼는 것을 싫어했던 겁니다. 또한 남편 어머니는 아들이 신은하를 집으로 데려오는 것조차도 매우 싫어하셨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머니의 반대에 대해 몹시 화가난 남편이 예고도 없이 신은하를 무작정 집을 데려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무작정 집으로 들이닥친 신은하를 보고 어머니는 냉랭한 태도를 보였지만, 남편의 아버지는 정반대로 그녀를 매우 반갑게 맞이해주셨다고 합니다.

     

    역시, 며느리사랑은 시어머니보다 시아버지의 몫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하는 부분입니다.

    남편 아버지가 신은하를 처음 보고서 무척 반색을 하면서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신은하사진

     

    남편 아버지가 신은하를 보고서 반색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남편 아버지는 어젯밤 꿈에서 노란색옷을 입은 낯설은 한 여성을 보았는데, 그 여성이 신은하와 꼭 닮았다고 합니다.

       

    신은하가 그날 마침 노란색빛깔의 원피스를 입고왔는데, 남편아버지가 어젯밤 꿈속에서 보았던 소녀도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있었고, 그 소녀의 모습이 신은하와 꼭 닮았다는 것입니다.

     

    꿈에서, 노란색 원피스를 입은 한 소녀가 개울가에서 혼자 놀고있었는데, 그 소녀는 남편아버지를 보고서, 활짝 웃으면서, 매우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소녀와 아주 흡사한 모습을 한 신은하를 본 남편 아버지는 어젯밤 꾼 꿈이 신은하를 아들의 며느리로 삼는 것을 미리 암시해준 꿈으로 생각했고, 그래서 시아버지는 신은하를 며느리로 흔쾌히 받아들이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결혼 전에 적지않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두사람은 남편아버지의 전폭적인 후원하에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답니다.

      신은하의 남편은 현재 개업해서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피부과의사라고 합니다.

     

    이렇게 한참 신혼의 단꿈을 꾸고 있는 신부가 된 신은하는 201811월에 아들까지 낳아서, 행복한 가정을 꾸려서 잘 살고있답니다.

     

     

    신은하의 탈북이야기

     

    지금 신은하는 한국에 정착해서 결혼까지 하면서 잘 살고 있지만, 그녀는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한 탈북녀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신은하의 탈북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합니다.

     

     

    신은하는 함경북도 무산에서 살고 있었는데, 2003년도에 가족 전체가 함께 북한을 탈북해 한국으로 입국해 들어왔습니다.

    신은하의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 신은희와 함께 신은하 이렇게 네식구가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들어온 겁니다.

     

    그런데 신은하 가족이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을 떠도는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무척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

    정말 신은하 가족은 천신만고 끝에 북한을 탈출해서 중국에 살면서 모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여러번에 걸친 탈북과정에서 신은하는 물론 가족 전체가 죽을 고비를 여러번 겪었고,

    결국 극적으로 살아남았던 신은하와 가족들은 2003년 천신만고 끝에 한국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답니다.

     

    신은하의 북한탈출은 정말 기적같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으며, 기독교신자인 신은하의 말처럼 신의 도움에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은하 가족은 원래 함경북도의 무산에 살고 있었는데, 그 당시 신은하의 어머니는 국경지역에서 몰래 중국과의 무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은하의 어머니의 무역으로 신은하가족은 북한에서 어느정도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날 신은하 어머니의 중국과의 밀무역이 누군가의 고발로 발각되고 말았답니다.

      그 당시 신은하의 어머니는 중국에서 들여온 기독교 홍보 테잎을 북한지역에 판매하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누군가가 신은하 어머니의 종교태입 판매를 당국에 고발한 것이랍니다.

     

    북한지역에서 종교활동이나 종교행사는 법에 의해서 철저히 금지된 일이며, 발각될 경우 엄청난 처벌을 받게 된답니다.

     

    신은하언니 신은희

     

    당장 신은하 가족전체가 끌려가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신은하 부모님은 탈북을 하기로 결정하였고, 곧바로 한밤 중에 가족 전체가 몰래 두만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갔답니다.

     

    이때가 신은하의 나이가 12살 때인데, 북한 보위부에 끌려가게될 위태로운 순간에, 너무 급하게 도망치듯이 중국으로 건너간 신은하 가족은 재산이나 식량을 하나고 갖고 가지 못했답니다.

     

     

    처음에 중국에서 신은하 가족은 밀무역을 하면서 알고 지내던 한 중국지인의 집에 들어가 얹혀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남의 집에서 가족 전체가 얹혀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점점 시간이 갈수록 그 중국주인의 학대와 멸시가 심해지자, 결국 신은하 가족은 그 집을 나왔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신은하 가족은 중국의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중국의 깊은 산속에 들어갔던 이유는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이며만일 중국 공안당국에 걸리기라도 하면 곧바로 북한으로 끌려가게 되며,

    북한으로 끌려가면 북한의 수용소에 끌려가서 짐슴만도 못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산속으로 들어가서 버려진 움막집을 들어가서 살게 된 신은하 가족은 정말 심한 굶주림과 엄청난 빈곤을 겪으면서 무려 3년 동안을 산속에서 버텨냈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언니 신은희와 신은하 이렇게 네식구가 빈손으로 산속으로 들어와 움막집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신은하 가족은 오랫동안 산속에서 나는 나무뿌리나 칡뿌리, 산나물들을 캐어서 먹고살았다고 합니다.

     

    어느날 너무 배가 고픈 가족들은 쥐가 드나드는 쥐의 구멍을 발견했고, 신은하 아버지가 그 쥐구멍을 파내어서 그 구멍속에 있는 쥐가 저장해놓은 쥐의 저장식량인 쌀과 콩들을 훔쳐서 먹었다고 합니다.

     

    신은하 어머니

     

    깊은 산속생활에서 얼마나 먹을 것이 없었으면, 식량대신 칡뿌리를 캐먹고 쥐의 식량창고에서 쥐가 물어다놓은 식량을 훔쳐먹고 살았을까요?

    이렇게 신은하 가족의 중국 산속의 생활을 말 그대로 비참하고 곤궁한 생활 그 자체였답니다.

     

    그렇게 중국 산속에서 3년 정도 숨어살고 있었을 때에, 어느날 갑자기 중국 공안당국이 신은하의 움막집을 들어닥쳤고, 집에 있던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를 체포해서 데려갔습니다.

     

    산속에서 숨어 살고있던 신은하 가족을 누군가가 중국 공안당국에 신고를 한 것이랍니다.

     

    중국 공안당국의 출두로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 자매가 체포되었고, 두 자매는 곧바로 북한으로 강제 입국당했고, 북한의 청진의 도집결 수용소에 수용되어 수용소생활을 하게 되었답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북한으로 끌려와서 수용소생활을 하게 된 이 당시의 신은하의 나이 15살 정도 되었을 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수용소생활에서 두 자매는 매일같이 엄청난 학대를 당했을 뿐만아니라, 강도높은 노동에 동원되었고, 그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바로 굶주림이었다고 합니다.

     

    북한 수용소에서 얼마나 굶주림이 심했는데, 차라리 중국 산속에서 나무껍질과 나무뿌리를 캐먹던 시절이 북한 수용소생활보다 오히려 더 나았다고 합니다.

     

    신은하 자매가 북한수용소에 먹었던 것은 영양가가 전혀 없는 소금을 뿌린 한주먹 크기의 국수죽이었다고 하며 쌀밥은 구경도 해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매일같이 학대와 굶주림, 심한 노동에 시달리는 생활을 신은하 신은희 자매는 기적처럼 그 고통을 견디어 내었답니다.

     

     

     

    이렇게 매일같이 제대로 먹지고 못한 채, 심한 학대와 구타, 심한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몸이 약해지고 면역력이 떨어져서 매일같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5살의 어린 나이의 신은하도 매일같이 무거운 시멘트와 무거운 벽돌을 나르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성인 남자들도 하기 힘든 심한 노동일을 나이 어리고 연약한 신은하와 신은희 자매는 강한 정신력으로 견디어 내었던 겁니다.

     

    이것은 신은하와 언니 신은희가 서로 가까이서 서로를 의지하면서, 서로 정신적으로 결속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만일 두자매가 함께 있지않고 따로 따로 수용되었다면, 두자매들을 굶주림과 심한 노동으로 일찍 죽었을 지도 모릅니다.

     

    노예생활보다도 더 못한 험난한 수용소생활을 견뎌낸 것은 신은하와 신은희 자매가 서로 정신적으로 강하게 결속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살이 된 언니 신은희는 단련대로 끌려가게 될 상황에 처했는데, 동생 신은하는 나이가 어려서 언니와 헤어져서 꽃제비수용소로 끌려가야될 처지였답니다.

     

    두자매가 만일 헤어지게 되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언니 신은희는 수용소 소장에게 무릎 꿇고 바지가락을 붙잡으면서 눈물로 통사정을 해서

    간신히 두자매는 헤어지지 않고 함께 꽃제비수용소로 갈 수 있게 되었답니다.

     

     

    북한에서 꽃제비수용소는 일종의 '거지수용소'인데, 이곳은 강제수용소처럼 감시와 통제가 심한 곳은 아니랍니다.

     

    그렇지만 잘 알다시피 북한 간부들의 부정부패가 워낙 심해서, 꽃제비수용소에 있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식량을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이곳의 아이들은 굶주림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곳이랍니다.

     

    그렇지만 차라리 꽃제비수용소에 온 것은 신은하 신은희자매에게는 잘된 일이며, 북한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곳이랍니다.

     

    꽃제비수용소에서 밥을 제대로 안주기 때문에 배고픔에 시달릴 수는 있지만, 이곳의 감시망이나 통제가 거의 없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곳을 탈출할 수가 있답니다.

     

    꽃제비수용소에 함께 있던 신은하와 신은희는 수용소를 탈출해서 천신만고 끝에 중국에 있는 부모님과 연락을 닿을 수 있었답니다.

     

    중국에 있던 어머니가 여러번에 걸쳐서 브로커를 북한으로 보내서 딸들을 찾았고, 결국 신은하 자매는 어머니가 보내온 브로커와 극적으로 만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신은하 신은희자매는 그 브로커의 안내에 따라서 다시 두만강을 건너서 중국으로 가서, 어머니와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된답니다.

     

    그러니까 신은하 신은희자매는 두번씩이나 두만강을 건넜던 겁니다. 그렇게 신은하 자매는 천신만고 끝에 중국에서 다시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신은하 아버지는 얼마 전에 중국공안당국에 끌려가서 북한으로 강제압송되었다고 합니다.

    신은하와 신은희는 아침새벽마다 교회에가서 아버지를 돌려보내달라고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를 드렸답니다.

     

    그렇게 6개월동안 신은하 신은희자매가 눈물로 기도를 드린 다음, 북한에 끌려갔던 아버지가 기적처럼 돌아왔답니다. 

    이처럼 신은하 신은희자매에게는 여러번에 걸쳐서 기적이 일어났던 겁니다.

     

    아마도 신은하 어머니가 가독교를 홍보하는 테잎을 팔다가 적달되어 이런 불행을 겪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들 가족을 무척 긍휼히 여겨서 이렇게 기적같은 역사를 베풀어주신 것이 아닌가 사료된답니다.

     

    이렇게 네가족이 다시 극적으로 만나게 된 신은하가족은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남한으로의 입국을 추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 신은하, 신은희, 어머니와 아버지 네가족은 기적과도 같이 한국으로 입국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올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 신은하와 신은희 자매는 현재 독실한 기독교신자가 되었답니다.

     

    정말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기면서 천신만고 끝에 북한을 탈출해서 한국입국에 성공한 신은하와 신은희 자매의 사연은 기적이라고 밖에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그녀들의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 그리고 자유를 향한 그녀들의 열망에 경의감을 갖게된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남한입국에 성공한 신은하와 신은희는 모두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남한사회에 잘 적응해나갔으며, 지금은 두자매 모두 결혼까지 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답니다.

     

     

     

     

     

     

     

     

     

    반응형
    Posted by 프린스.
    ,

    목차

      신성일 폐암으로 사망, 애인 김영애와 열애스캔들

       

      한시대를 풍미했던 한국 최고의 배우 신성일이 안타깝게도 사망했습니다.

       

      평소에 매우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건강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썼던 신성일이 갑작스럽게 죽음으로서, 많은 올드팬들의 가슴에 안타까움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신성일은 114일 오전 225분경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사망하고 말았답니다.

      신성일의 사망원인은 바로 폐암때문이며, 그는 82세의 나이로 세상과 하직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신성일은 20176월경 폐암3기 진단을 받아, 전남의 요양병원에서 계속 항암치료를 받아왔답니다.

      신성일은 작년 6월경 갑자기 심한 기침이 나고, 기침을 하면서 핏덩어리가 입에서 쏟아져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성일은 곧바로 병원을 찾아 진찰을 받은 결과, 놀랍게도 폐암 3의 진단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작년 폐암 3의 진단을 받고, 신성일과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성일은 젊었을 때부터 최근까지 건강관리를 매우 잘해왔기 때문에, 건강에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신성일은 헬스클럽을 다니며 헬스트레이닝을 해왔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매일같이 달리기를 하면서, 건강관리에 많이 신경을 써왔다고 합니다.

      그렇게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었던 신성일이 갑작스럽게 폐암에 걸리고, 갑작기 세상을 떠났으니, 그의 가족들 뿐만아니라 일반대중들도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성일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폐암인데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신성일은 1983년도에 이미 담배를 끊었으며, 그때부터 35년간이나 담배를 피우지않았답니다.

       

      그래서 신성일이 갑작스럽게 폐암3에 걸린 이유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건강했고 활기찼던 신성일이 갑자기 폐암에 걸리고, 페암진단을 받은지 15개월만에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말았으니, 대중들이 느끼는 허망함이 큰 것 같습니다.

       

      신성일은 작년 폐암 판정받은 후에, 5번의 항암치료와 25번의 방사선치료를 받는 등 항암치료에 몰두해왔고,

      금년초에 생존률 20%에 불과한 폐암3기를 이겨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결국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젊었을 때부터 35년 동안 담배를 끊고 살아왔던 신성일이 페암에 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신성일의 부친이 신성일이 태어나던 해에 사망했는데, 사망원인이 폐암이었다고 합니다.

       

      신성일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폐암으로 사망했던 것으로 보아, 신성일이 폐암에 걸린 것은 유전적인 요인이 큰 것으로 생각됩니다.

      모든 질병의 가장 큰 원인은 가족력 바로 유전적인 요인 때문이랍니다.

       

      아무리 건강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해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인 요인이 그사람의 건강과 수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다른 요인을 살펴볼 때에, 신성일이 폐암진단을 받고 방송에서 직접 밝힌 내용인데요. 그는 어머니를 여의고 8년 동안 자신의 집에서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향을 피웠다고 합니다.

       

      불교신자였던 그는 어머니에 대한 효심 때문에,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서 8년 넘게 계속 향불을 피워왔는데, 그 향 때문에 그의 페건강이 나빠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아뭏튼 신성일은 유전적인 요인에다가 이런 생활적인 요인이 원인이 되어서, 폐암에 걸리게 되었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신성일은 부인 엄앵란과의 슬하에 큰딸 강경아, 강석현, 작은딸 강수화 등 21녀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큰딸 강경아(1965년생)는 미국에서 살고있고, 아들 강석현(1967년생)은 한때 배우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드라마 제작활동에 전념하고 있으며, 막내딸 강수화(1970년생)는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신성일은 60~70년대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남배우로서, ‘한국판 알랑 드롱이라고 불리우며 커다란 인기를 끌면서, 우리영화계를 이끌어갔던 톱스타였습니다.

       

      신성일은 맨발의 청춘같은 청춘영화에 출연해, 잘생긴 외모와 반항적인 이미지를 발산하면서, 대중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당대의 명배우랍니다.

       

      신성일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가 507편이나 된다고 하는데, 이 기록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최고의 신기록에 해당한답니다.

      그만큼 신성일은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최고의 미남배우로 군림했던 전설적인 톱스타였습니다.

       

      신성일은 과거 부인 엄앵란 몰래 다른 여자와 불륜을 벌인 사실이 알려져서 큰 화재를 뿌리기도 했답니다.

       

      신성일, 젊은시절 애인 김영애와 열애스캔들

       

      신성일이 젊은 시절에 부인 몰래 바람을 피웠던 그의 숨겨진 애인 김영애와의 밀애에 대해서 잠깐 소개해보도록 하겠어요!

       

       

      신성일은 1970년도에 한 볼링장에서 미모의 여인을 만나게 된답니다. 그여성은 당시 한 방송사의 미모의 여자아나운서 김영애였답니다.

       

      미모가 출중했던 김영애는 당시 동아방송국의 아나운서였는데, 잠시 휴직계를 내고 미국에 유학을 간 상태였습니다.

      김영애는 한번 결혼을 했었는데, 3개월만에 남편이 병으로 사망하고, 그 당시는 홀로 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김영애는 아나운서활동을 하던 중, 미국에 석사학위코스를 밟기위해서 유학중이었고, 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에 왔던 겁니다.

      그녀는 이화여대에 다닐 때에, 메이퀸으로 뽑힐 만큼,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랍니다.

       

      그런데 그녀는 명동의 한 골프장에 골프를 치러왔다가 신성일과 눈이 마주친 것입니다.

      동료연기자들과 그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있던 신성일은 골프장에 들어온 김영애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고, 골프장을 떠나기전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합니다.

       

      신성일은 그다음날 영화촬영을 하기위해 부산에 가기로 되어있었는데, 김영애에게 자신이 투숙하는 호텔로 찾아올 것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김영애는 신성일이 투숙하고 있던 그 호텔로 진짜로 찾아왔으며, 두사람은 그 때부터 연인관계가 되어 뜨거운 열애를 하게 되었답니다.

       

      이 당시 신성일의 나이는 35세이고, 김영애는 8살 연하인 27살이었으니, 두사람 모두 풋풋한 시절이었답니다.

       

      그 당시는 1970년도로 신성일은 부인 엄앵란이 있던 시절이었지만, 김영애에게 콩깍지가 단단히 씌운 그는 김영애와의 열애를 수년동안 계속 이어갔다고 합니다.

       

       

      김영애는 당시 미국에 유학중에 있었기에, 신성일은 종종 미국에 들려서 김영애와의 열애를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신성일은 부인 엄앵란 몰래 김영애와 2년 동안 계속 만남을 이어갔고, 유학을 끝내고 돌아온 김영애와 더욱 자주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1972년도의 어느날 김영애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그녀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신성일에게 얘기해줬다고 합니다.

       

      신성일이 너무 놀라워하며 아무런 반응이 없자, 김영애는 신성일에게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그 후 신성일은 김영애와의 만남을 끊어버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성일이 김영애와 만남을 끊고 1년이 지난 후에, 다시 그녀를 만났다고 하는데요. 1년 만에 다시 만난 김영애는 외모가 많이 변해있었다고 합니다.

       

      머리를 모두 삭발했고, 얼굴이 무척 야위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신성일과 이별하고 난 후,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1년 만에 다시 만난 두사람은 프랑스 파리에서 마지막 밤을 함께 보냈다고 합니다. , 신성일과 김영애는 프랑스 파리로 마지막 이별여행을 떠났던 겁니다.

       

       

      그리고 그 후 신성일은 일체 김영애를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1985년도의 어느날, 신성일은 한 지인으로부터 김영애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고 합니다.

       

      미국으로 이민가서 살고있던 김영애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사망소식을 들었던 신성일은 자신이 그녀에게 잘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무척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일반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요. 사실 신성일과 엄앵란은 1978년도부터 별거생활을 해왔답니다.

      신성일이 종종 다른여자와 외도하는 것 때문에, 신성일과 부인 엄앵란의 갈등이 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사람은 7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40년 넘게 별거생활을 해왔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잉꼬부부라고 알려지면서 금슬 좋다고 소문이 났지만, 두사람은 법적으로만 부부였고 따로 각자의 삶을 살아왔던 것이지요.

       

      신성일이 엄연히 자기부인을 놔두고 외간여자와 바람을 피운 것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신성일은 과거에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미남배우로서, 많은 여성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답니다.

       

      한국의 최고인기배우로서 많은 여성들의 로망의 대상이었던 신성일이었기에, 자신의 높은 인기와 여성들의 열띤 성화에 편승해서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닐까요?

       

       

      아뭏튼 곁으로는 그렇게 금슬좋은 잉꼬부부로 알려져왔던 신성일과 엄앵란이 실제로는 40년간 별거생활을 해왔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신성일의 잦은 외도 때문에, 엄앵란의 마음고생이 무척 심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젊은시절의 신성일과 애인 김영애의 열애스캔들을 소개해드렸습니다.

        15개월 동안 폐암투병을 해왔던 신성일이 안타까운 사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답니다.

       

      한때 우리나라 최고의 미남스타였던 신성일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보면서, 청춘의 무상함,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반응형
      Posted by 프린스.
      ,

      목차

        장자연 성상납 자살사건, 유서내용 전문, 검찰 재수사

         

        2009년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장자연 성상납 및 자살사건이 앞으로 검찰의 본격적인 재수사를 받게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2009년 갑자기 자살한 장자연, 그리고 그녀가 죽은 지 4일 후에 발표된 장자연의 문건과 유서로 인해, 그녀가 소속사로부터 여러명의 권세가들에게 술접대와 성상납을 강요받았다는 문건이 공개되어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2009년도에 이른바 장자연 성상납 및 자살사건이 발생하여, 대한민국 전체를 큰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답니다.

         

        200939일날 꽃보다 남자에 악녀 삼인방 중 써니역으로 출연해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신인연기자 장자연이 스스로 자살하고야 말았답니다.

         

        한 신인여배우가 자살로서 생을 마감했고, 그녀가 전소속사로부터 성상납과 폭행, 술접대를 받았다는 유서와 문건이 공개되었지만, 그후에 이뤄진 9명의 가해자들에 대한 기소에서 모두 무혐의처분이 내려지면서, 이 사건은 흐지부지되어 버렸답니다.

         

         

        당시 장자연 성상납사건과 관련해 의혹을 받았던 가해자들의 리스트까지 공개되었지만, 이름이 거론되었던 유력인사들은 단 한사람도 처벌받지 않았답니다.

         

        당시 장자연문건의 리스트에 올랐던 사람은 7명이고 유족들이 고소한 사람은 7, 이 중 2명이 중복되는 사람으로 총 12명의 남성들이 성상납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답니다.

         

        장자연사건 당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가해자들 전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고, 폭행혐의로 소속사 전대표 김씨와 모욕죄 혐의로 전 매니저 유씨만 각각 징역 4월과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들도 집행유예를 받아 수감되는 것을 면했답니다.

         

        한명의 신인 유망주 연기자가 목숨을 잃었고 성상납 리스트명단까지 공개되었지만, 단 한사람도 처벌을 받지않고 그대로 덮어버렸던 사건으로 많은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던 사건이랍니다.

         

         

        그런데 최근 검찰은 과거사위원회를 발족하고, 민생에 해를 끼쳤던 과거 의혹이 불거졌던 사건들을 찾아내어 제수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검찰의 과거사위원회가 과거 흐지부지 되어버린 장자연 성상납 및 자살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답니다.

         

        대검찰청은 과거사위원회에게 의혹이 풀리지 않은 장자연사건의 재수사를 재안했으며, ‘과거사위원회장자연사건에 대한 재수사여부를 곧 결정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검찰의 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사건의 재수사를 결정된다면, 그동안 국민들의 의혹만 크게 사고 흐지부지되어버린 장자연사건에 대해 다시 본격젹인 수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국민들은 30세의 젊은 나이에 유망한 연기자로 커나갈 수 있었던 장자연의 죽음에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장자연사건에 대해 다시 본격적인 수사가 이뤄지길 바라는 여론이 높습니다.

         

         

        그리고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도 장자연사건을 재수사해달라는 청원들이 봇물처럼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장자연사건은 우리연예계의 고질적인 부조리인 연예인 술접대 및 성상납사건이랍니다. 그동안 우리연예계의 수면 아래에서 종종 일어났던 성집대사건이 장자연사건으로 수면위로 부상하게 되었답니다.

         

        장자연 문건에 나왔던 장자연이 성상납했다는 유력인사들은 무려 12명이나 된답니다. 물론 12명보다 훨씬 더 많다는 이야기도 존재합니다.

        장자연의 또다른 문건에는 가해남성들이 31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답니다.

         

        장자연문건에 따르면, 장자연 전소속사 사장이 장자연에게 소속사의 스폰역할을 해주는 유력인사들에 대한 술접대나 골프장접대, 그리고 성접대까지 강요했다고 합니다.

         

         

        장자연은 죽기 전에 작성한 문건과 유서에 자신이 술접대나 성접대했던 유력인사들의 명단리스트을 적어놓았다고 하는데요.

        그 유력인사들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우리사회의 언론계와 대기업의 대표들, 그리고 방송관계자들이라고 합니다.

         

        장자연문건에 나오는 유력인사들은 언론사 대표와 중역이 3명이며, 방송사 감독이 4명이나 되고, 놀랍게도 대기업총수도 포함되어 있고 금융사 임원도 있다고 합니다.

         

        장자연은 그당시 늦깎이 신인연기자로서 27세의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해서, ‘꽃보다 남자’ ‘내 사랑 못난이등의 드라마에 출연해서, 인지도를 한창 높여나가고 있던 시기였답니다.

         

         

         

         

        그런데 장자연의 소속사사장이 장자연에게 이들 유력인사들에 대한 술접대와 성접대를 강요했다고 합니다.

        이 당시 장자연은 소속사대표로부터 독방에 갇혀서 모진 욕설과 폭행을 당했다고 합니다.

         

        장자연문건에는 모 방송국감독과 골프장에 가서 술접대와 골프접대를 요구받았던 일, 또한 룸살롱에서 술접대를 했던 일, 심지어는 유력인사들과 성접대까지 강요받았던 일, 그리고 소속사 사무실의 독방에 갇혀서 구타를 당했고, 온갖 협박과 폭행을 당했던 일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답니다.

         

        결국 장자연은 전소속사의 강요와 협박에 못이겨서, 언론사대표와 방송국감독 등 유력인사 10명에게 술접대와 성접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장자연은 전소속사로부터 폭행과 욕설에 시달려왔고, 끊임없이 술자리접대를 강요받아서 정신과치료를 받았다고 폭로했답니다.

         

         

        장자연은 문건에서 새로운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새로운 악마를 만나야만 한다’ ‘저는 힘없고 나약한 신인배우입니다. 하루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고 표현했는데, 그녀는 자신이 당했던 술접대와 성접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길 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자연의 소속사는 더컨텐츠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의 사무실은 서울 삼성동에 있었는데, 소속사인 삼성동의 건물은 3층으로 되어있는데, 건물 1층은 술집바로 되어 있고, 2층은 기획사 사무실로 되어있으며, 3층에는 밀실이 갖춰져 있있고 밀실에는 침대와 욕실이 함께 갖춰져 있었다고 합니다.

        장자연의 문건에 의하면, 소속사 대표의 강요로 장자연은 이 건물 3층의 밀실에서도 종종 유력인사들에게 술접대나 성접대를 했다고 합니다.

         

        장자연은 이렇게 자신이 억울하게 당했던 술접대 및 성접대 사실과 그녀가 상대한 남성들의 명단을 적은 소위 장자연문건을 전 매니저였던 유씨에게 전달해주었고, 전 매니저 유씨는 이 장자연문건을 언론에 공개버렸답니다.

         

        장자연문건에 대해서 진짜다 가짜다의 진실공방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이문건에는 장자연자신의 주민등록번호와 지장까지 찍어서 진실을 보증했다고 합니다.

        2013년도에 법원은 이 장자연문건은 필적이나 지장을 보면 장자연의 것이 맞다고 판시했답니다.

         

         

        장자연은 자신이 학대당했던 소속사를 벗어나서, 전 매니저 유씨가가 운영하는 연예기획사로 이전하길 원했지만, 전속계약 문제로 뜻대로 되지 않았구요.

         

        결국 장자연은 자신의 문건이 외부에 노출된 후에 곧바로 성남시 분당구의 자택에서 자살하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장자연의 전 매니저 유씨는 장자연의 문건을 모두 언론에 공개해서, 장자연사건은 전국민에 알려지게 되었고, 큰 충격속에 빠지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검찰과 경찰은 장자연사건을 등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수사하게 되었답니다.

         

        그렇지만 이 장자연사건은 문건이라는 자료증거가 있었지만, 상대남성들이 모두 극렬히 부인하였고, 소속사 사장 또한 이 사건은 유씨가 조작한 사건이며, 사실이 아니다 라고 부인했기 때문에, 수사에 애로가 있었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증언인데, 피해자인 장자연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피해자의 증언을 놓치게 됐고, 결국 수사는 흐지부지 되어버리고, 명단에 있는 가해남성들은 증거불충분으로 모두 무혐의처분을 받게 됩니다.

         

        문건이 누출됨으로써 수치심과 억울함을 크게 느낀 장자연은 모든 의혹들을 뒤로 한 채 30세의 나이로 죽음을 선택하고야 말았답니다.

         

           

        장자연사건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갑질의 횡포 사건이라고 명명할 수 있답니다.

         

        많은 사람들은 당시에 가해남성들이 권세높은 유력인사들이라서, 검찰과 경찰이 제대로된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당시 장자연으로부터 술접대와 성접대를 받았던 명단리스트를 모두 경찰당국이 공개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번에 검찰에서 장자연사건을 재수사할 것을 검토하고 있는데, 실제로 재수사를 하게 될 경우, 10여명의 유력인사들이 장자연으로부터 성상납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가 없답니다.

         

        왜냐하면 상대남성들이 모두 극구 부인하고 있고, 피해자인 장자연이 이미 사망했으므로 피해자의 구체적인 증언이나 진술이 없기 때문에, 재수사를 벌여도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답니다.

         

        그렇지만, 국민적인 의혹이 큰 사건인만큼, 뒤늦게나마 검찰에서 장자연사건의 재수사를 다시 검토해본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검찰에서 장자연사건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서, 반드시 그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 30세의 나이에 아깝게 사망한 장자연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이 될 것입니다.

         

        8년전에 흐지부지 수사를 하여, 국민적 의혹만 크게 샀던 경찰과 검찰이 이번에는 큰 사명감을 갖고 가해남성들을 철저히 수사를 해서, 국민적 의혹을 해소시키고, 사회정의를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장자연 문건의 전문 내용

           

         

         

         

         

         

         

         

         

        반응형
        Posted by 프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