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일 폐암으로 사망, 애인 김영애와 열애스캔들

 

한시대를 풍미했던 한국 최고의 배우 신성일이 안타깝게도 사망했습니다.

 

평소에 매우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건강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썼던 신성일이 갑작스럽게 죽음으로서, 많은 올드팬들의 가슴에 안타까움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신성일은 114일 오전 225분경 전남의 한 요양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았는데,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사망하고 말았답니다.

신성일의 사망원인은 바로 폐암때문이며, 그는 82세의 나이로 세상과 하직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신성일은 20176월경 폐암3기 진단을 받아, 전남의 요양병원에서 계속 항암치료를 받아왔답니다.

신성일은 작년 6월경 갑자기 심한 기침이 나고, 기침을 하면서 핏덩어리가 입에서 쏟아져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성일은 곧바로 병원을 찾아 진찰을 받은 결과, 놀랍게도 폐암 3의 진단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작년 폐암 3의 진단을 받고, 신성일과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성일은 젊었을 때부터 최근까지 건강관리를 매우 잘해왔기 때문에, 건강에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신성일은 헬스클럽을 다니며 헬스트레이닝을 해왔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매일같이 달리기를 하면서, 건강관리에 많이 신경을 써왔다고 합니다.

그렇게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었던 신성일이 갑작스럽게 폐암에 걸리고, 갑작기 세상을 떠났으니, 그의 가족들 뿐만아니라 일반대중들도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성일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폐암인데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신성일은 1983년도에 이미 담배를 끊었으며, 그때부터 35년간이나 담배를 피우지않았답니다.

 

그래서 신성일이 갑작스럽게 폐암3에 걸린 이유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건강했고 활기찼던 신성일이 갑자기 폐암에 걸리고, 페암진단을 받은지 15개월만에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말았으니, 대중들이 느끼는 허망함이 큰 것 같습니다.

 

신성일은 작년 폐암 판정받은 후에, 5번의 항암치료와 25번의 방사선치료를 받는 등 항암치료에 몰두해왔고,

금년초에 생존률 20%에 불과한 폐암3기를 이겨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결국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젊었을 때부터 35년 동안 담배를 끊고 살아왔던 신성일이 페암에 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신성일의 부친이 신성일이 태어나던 해에 사망했는데, 사망원인이 폐암이었다고 합니다.

 

신성일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폐암으로 사망했던 것으로 보아, 신성일이 폐암에 걸린 것은 유전적인 요인이 큰 것으로 생각됩니다.

모든 질병의 가장 큰 원인은 가족력 바로 유전적인 요인 때문이랍니다.

 

아무리 건강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해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인 요인이 그사람의 건강과 수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다른 요인을 살펴볼 때에, 신성일이 폐암진단을 받고 방송에서 직접 밝힌 내용인데요. 그는 어머니를 여의고 8년 동안 자신의 집에서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향을 피웠다고 합니다.

 

불교신자였던 그는 어머니에 대한 효심 때문에,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서 8년 넘게 계속 향불을 피워왔는데, 그 향 때문에 그의 페건강이 나빠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아뭏튼 신성일은 유전적인 요인에다가 이런 생활적인 요인이 원인이 되어서, 폐암에 걸리게 되었고,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신성일은 부인 엄앵란과의 슬하에 큰딸 강경아, 강석현, 작은딸 강수화 등 21녀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큰딸 강경아(1965년생)는 미국에서 살고있고, 아들 강석현(1967년생)은 한때 배우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드라마 제작활동에 전념하고 있으며, 막내딸 강수화(1970년생)는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신성일은 60~70년대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남배우로서, ‘한국판 알랑 드롱이라고 불리우며 커다란 인기를 끌면서, 우리영화계를 이끌어갔던 톱스타였습니다.

 

신성일은 맨발의 청춘같은 청춘영화에 출연해, 잘생긴 외모와 반항적인 이미지를 발산하면서, 대중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당대의 명배우랍니다.

 

신성일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가 507편이나 된다고 하는데, 이 기록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최고의 신기록에 해당한답니다.

그만큼 신성일은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최고의 미남배우로 군림했던 전설적인 톱스타였습니다.

 

신성일은 과거 부인 엄앵란 몰래 다른 여자와 불륜을 벌인 사실이 알려져서 큰 화재를 뿌리기도 했답니다.

 

신성일, 젊은시절 애인 김영애와 열애스캔들

 

신성일이 젊은 시절에 부인 몰래 바람을 피웠던 그의 숨겨진 애인 김영애와의 밀애에 대해서 잠깐 소개해보도록 하겠어요!

 

 

신성일은 1970년도에 한 볼링장에서 미모의 여인을 만나게 된답니다. 그여성은 당시 한 방송사의 미모의 여자아나운서 김영애였답니다.

 

미모가 출중했던 김영애는 당시 동아방송국의 아나운서였는데, 잠시 휴직계를 내고 미국에 유학을 간 상태였습니다.

김영애는 한번 결혼을 했었는데, 3개월만에 남편이 병으로 사망하고, 그 당시는 홀로 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김영애는 아나운서활동을 하던 중, 미국에 석사학위코스를 밟기위해서 유학중이었고, 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에 왔던 겁니다.

그녀는 이화여대에 다닐 때에, 메이퀸으로 뽑힐 만큼,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랍니다.

 

그런데 그녀는 명동의 한 골프장에 골프를 치러왔다가 신성일과 눈이 마주친 것입니다.

동료연기자들과 그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고있던 신성일은 골프장에 들어온 김영애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고, 골프장을 떠나기전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합니다.

 

신성일은 그다음날 영화촬영을 하기위해 부산에 가기로 되어있었는데, 김영애에게 자신이 투숙하는 호텔로 찾아올 것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김영애는 신성일이 투숙하고 있던 그 호텔로 진짜로 찾아왔으며, 두사람은 그 때부터 연인관계가 되어 뜨거운 열애를 하게 되었답니다.

 

이 당시 신성일의 나이는 35세이고, 김영애는 8살 연하인 27살이었으니, 두사람 모두 풋풋한 시절이었답니다.

 

그 당시는 1970년도로 신성일은 부인 엄앵란이 있던 시절이었지만, 김영애에게 콩깍지가 단단히 씌운 그는 김영애와의 열애를 수년동안 계속 이어갔다고 합니다.

 

 

김영애는 당시 미국에 유학중에 있었기에, 신성일은 종종 미국에 들려서 김영애와의 열애를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신성일은 부인 엄앵란 몰래 김영애와 2년 동안 계속 만남을 이어갔고, 유학을 끝내고 돌아온 김영애와 더욱 자주 만났습니다.

그러다가 1972년도의 어느날 김영애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그녀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신성일에게 얘기해줬다고 합니다.

 

신성일이 너무 놀라워하며 아무런 반응이 없자, 김영애는 신성일에게 자신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그 후 신성일은 김영애와의 만남을 끊어버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성일이 김영애와 만남을 끊고 1년이 지난 후에, 다시 그녀를 만났다고 하는데요. 1년 만에 다시 만난 김영애는 외모가 많이 변해있었다고 합니다.

 

머리를 모두 삭발했고, 얼굴이 무척 야위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신성일과 이별하고 난 후,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1년 만에 다시 만난 두사람은 프랑스 파리에서 마지막 밤을 함께 보냈다고 합니다. , 신성일과 김영애는 프랑스 파리로 마지막 이별여행을 떠났던 겁니다.

 

 

그리고 그 후 신성일은 일체 김영애를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1985년도의 어느날, 신성일은 한 지인으로부터 김영애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고 합니다.

 

미국으로 이민가서 살고있던 김영애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사망소식을 들었던 신성일은 자신이 그녀에게 잘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무척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일반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요. 사실 신성일과 엄앵란은 1978년도부터 별거생활을 해왔답니다.

신성일이 종종 다른여자와 외도하는 것 때문에, 신성일과 부인 엄앵란의 갈등이 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사람은 7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40년 넘게 별거생활을 해왔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잉꼬부부라고 알려지면서 금슬 좋다고 소문이 났지만, 두사람은 법적으로만 부부였고 따로 각자의 삶을 살아왔던 것이지요.

 

신성일이 엄연히 자기부인을 놔두고 외간여자와 바람을 피운 것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신성일은 과거에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미남배우로서, 많은 여성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답니다.

 

한국의 최고인기배우로서 많은 여성들의 로망의 대상이었던 신성일이었기에, 자신의 높은 인기와 여성들의 열띤 성화에 편승해서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닐까요?

 

 

아뭏튼 곁으로는 그렇게 금슬좋은 잉꼬부부로 알려져왔던 신성일과 엄앵란이 실제로는 40년간 별거생활을 해왔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신성일의 잦은 외도 때문에, 엄앵란의 마음고생이 무척 심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젊은시절의 신성일과 애인 김영애의 열애스캔들을 소개해드렸습니다.

  15개월 동안 폐암투병을 해왔던 신성일이 안타까운 사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답니다.

 

한때 우리나라 최고의 미남스타였던 신성일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보면서, 청춘의 무상함,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프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