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원더우먼의 히어로여배우 린다 카터의 미모 남편, 최근근황, 겔 가돗

     

    금년 6월달에 갤 가돗의 영화 원더우먼이 상영되어서, 큰 인기를 끌면서 원더우먼 신드롬이 불고 있답니다. 

    겔 가돗은 이스라엘의 미인대회 우승자출신으로 늘씬한 키와 매력적인 몸매를 갖춘 미녀스타죠.

     

    겔 가돗의 매력적인 몸매와 멋진 액션이 돗보이는 원더우먼, 2017’이 우리나라에서도 우수한 흥행성적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11월말 현재까지 원더우먼, 2017’의 우리나라 누적관객수는 216만명이라고 합니다.

     

    겔 가돗이 주연한 원더우먼, 2017’은 금년도 세계 흥행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네요.

    겔 가돗의 멋진 연기력과 영화 원더우먼의 탄탄한 구성과 흥미로운 스토리전개가 세계인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답니다.

     

    갤 가돗은 올해 나이가 33세로 178cm의 훤칠한 키에 날씬한 몸매를 갖춘 균형잡힌 완벽한 몸매를 갖고 있는데요. 갤 가돗은 남편과 아이가 있는 유부녀랍니다.

     

    갤 가돗이 키도 상당히 크고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원래 원더우먼의 원조는 따로 있답니다.

    영화 ‘2017 원더우먼이 나오기 42여년 전인 1975년도에 TV시리즈로 방영되었던 원더우먼드라마의 여주인공 린다 카터가 그 주인공이랍니다.

     

     

    사실 원더우먼70년대부터 지금까지 여러차례에 걸쳐서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답니다.

    원더우먼이 워낙 대중적 인기가 좋아서, 여러번씩이나 리메이크되어서 상영됐고, 그 덕분에 원더우먼의 여주인공도 여러차례나 바뀌었답니다.

     

    그렇게 여러번에 걸쳐서 많이 만들어졌던 원더우먼의 여주인공들 중에서, 미모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는 75년도의 린다 카터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1975년도의 TV드라마 원더우먼의 여주인공인 린타 카터를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원더우먼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원더우먼, 2017’의 여주인공 겔 가돗보다도 린다 카터가 미모면에서 더 예쁘다고 할 수 있으며, 몸매 또한 린다 카터가 한 수위라고 평가된답니다.

    만일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두 여배우의 사진을 비교해보신다면, 실감하실 수 있답니다.

     

     

    겔 가돗 178cm의 훤칠한 키에 쪽 뻗은 에스라인몸매로 정말 나무랄 데가 없는 몸매를 갖추고 있지요.

    그런데 겔 가돗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가슴부분, 큰 키와 날씬한 몸매를 갖고있는 겔 가돗이지만, 그녀는 여성의 가장 큰 상징인 가슴이 빈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답니다.

     

    원더우먼은 그 복장에서 알 수 있듯이, 매력적이고 섹시한 팔등신몸매가 생명이랍니다.

    복장자체가 여성스라운 볼륨몸매를 최대한 드러내줄 수 있는 합팬티와 노출의상을 입고 있기 때문에, 볼륨성이 떨어지는 몸매를 갖고있는 여배우는 자격상실감이지요.

     

    갤 가돗이 가슴이 작다는 것은 이미 기자들 사이에 가십거리로 잘 알려진 사실이랍니다.

    그에 반해 1975년도 원더우먼인 린다 카터는 키 177cm에 빼어난 미모를 갖춘 팔등신몸매를 갖고 있답니다.

     

    70년대 중반 당시 원더우먼이 미국과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에 방영되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원더우먼의 인기의 비결은 원더우먼의 흥미로운 내용과 신선한 주제도 한몫 했지만,

    여주인공인 린다 카터의 눈부실정도로 아름다운 미모와 팔등신 몸매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1975년도에 드라마 원더우먼이 방영되면서, 전세계의 수많은 남성들이 린다 카터의 눈부신 미모와 숨막힐 정도로 볼류감 높은 몸매에 엄청난 가슴앓이를 했을 정도랍니다.

     

    70년대 중반 여성스럽고 섹시한 미모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으로 전세계의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린다 카터는 그당시 전세계 남성들의 최고의 우상이자 최고의 로망이었답니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소머즈의 여주인공 린제이 와그너보다 미모면에서 한수 위로 평가받았을 정도랍니다.

     

    린다 카터는 23살인 72년도에 미스월드 출전자격이 부여되는 미스월드 USA’대회에 나가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녀의 미모는 이미 공증된 바 있습니다.

     

    물론 겔 가돗도 2004년도의 미스이스라엘 미인대회에 출전해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대회와는 차원이 다르답니다.

     

    갤 가돗(좌측)과 린다 카터(우측)

     

    인구수 800만명의 이스라엘 미인대회와 인구수 32천만명의 미국의 미인대회는 차원이 다르며, 깸이 안된답니다.

     

    아뭏튼 미국의 미스월드 USA’ 미인대회에서 우승해서 주변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을 만큼 린다 카터는 뛰어난 미모와 몸매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뉴욕 연기학교에서 연기수업을 공부한 후, 74년도에 드라마 나키아로 처음으로 연기자로 진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1년 뒤인 1975년도에 그녀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할 정도의 대단히 박진감 넘치는 드라마 원더우먼의 타이틀롤을 맡았고, 탁월한 미모와 팔등신 몸매를 자랑하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펼쳐서, 세계적인 톱스타로 우뚝 솟아오르게 된답니다.

     

     

    린다 카터가 주연한 원더우먼75년도에 처음 만들어진 이후, 76년도와 77년도에 다시 제작해 상영될 정도로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인기와 사랑을 듬뿍 받았답니다.

     

    린다 카터의 원더우먼1975년와 1976년도, 1977년도의 세시즌까지 방영된 후에 종결되는데, 역대 원더우먼드라마 중에서 작품성에 있어서도 가장 완벽하고 우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랍니다.

     

    원더우먼 드라마가 종영된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린다 카터야말로 진정한 원더우먼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그녀가 원더우먼의 인기와 명성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답니다.

     

    역대 원더우먼 변천사

     

    그럼 역대 원더우먼의 변천사를 살펴볼까요?

     

    원더우먼은 원래 DC 코믹스회사의 고문이었던 윌리엄 마스턴이 1941년도에 만화영화로 만들었던 캐릭터라고 합니다.

     

    월리엄 마스턴이 자기회사의 만화영화의 캐릭터로 만든 원더우먼이 1967년도에 드라마 원더우먼으로 탄생하게 되었고, 이 최초의 원더우먼의 여주인공은 고전배우 린다 해리슨이랍니다.

     

     

    최초의 원더우먼 여주인공인 린다 헤리슨이 분한 원더우먼은 지금보면 매우 촌스럽고 고루한 복장과 연기로 별 주목을 받지못했답니다.

     

    두 번째로 만들어진 원더우먼은 1974년도에 TV시리즈로 만들어졌답니다. 74년도 드라마 원더우먼의 여주인공은 캐시 리 크로스비라는 여배우였는데, 역시 내용이 진부해서 별 인기를 끌지는 못했답니다.

     

    두 번째 원더우먼 캐시 리크로스비의 복장은 스포츠용 츄리닝을 연상시킬 정도로 세련미가 매우 떨어진답니다.

    캐시 리크로스비의 미모도 뒤떨어지고, 액션연기가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박진감이 떨어져서 이 원더우먼도 별 주목받지 못하고 종영되었구요.

     

    그리고 1975년도에 세번째 원더우먼이 야심차게 리메이크되는데, 탄탄한 구성과 박진감 넘치는 활극액션을 강조한 75년도의 원더우먼은 팔등신미인 린다 카터가 주연을 맡아서,

    탁월한 미모와 카리스마있는 연기를 펼쳐서 드라마 원더우먼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76년도와 77년도까지 세차례나 리메이크된답니다.

     

     

    린다 카터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원더우먼은 원작자 윌리엄 마스턴이 처음 만들었던 만화영화의 캐릭터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와 복장을 착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답니다. 무엇보다도 린다 카터는 원더우먼 여주인공들 중에서 가장 예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답니다.

     

    여주인공 원더우먼을 원래 설정대로 더욱 섹시하고 요염한 여전사로 만들고, 복장도 오리지널 원더우먼의 이미지를 그대로 구현하고, 내용도 더욱 풍성해지고,

    액션에도 박진감과 스릴감을 살러서 리메이크한 린다 카터의 원더우먼은 수많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답니다.

     

    그렇지만 드라마 원더우먼의 가장 큰 인기의 비결은 여성스러우면서도 빼어난 미모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펼친 린다 카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인 2011년도에 또다시 원더우먼이 리메이크되는데, 2011년도 원더우먼의 주인공은 애이드리언 팰리키라는 여배우로 몸매도 좋고 글래머스한 매력을 지녔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는데,

    그녀가 출연한 원더우먼은 석연치않은 이유로 방송이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섯번째 원더우먼은 바로 원더우먼 2017’의 주인공 갤 가돗이랍니다.

     

    갤 가돗

     

    갤 가돗은 린다 카터보다는 미모가 좀 떨어지지만 나름대로 중성적인 매력과 세련된 현대적인 이미지를 갖추고 있어서 린다 카터에 필적할 만한 높은 인기를 끌었답니다. 그리고 겔 가돗의 원더우먼 2017’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이룩해내었답니다.

     

    금년 6월에 개봉되어 11월하순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821,763,408의 어마어마한 흥행성적을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답니다. 우리나라돈으로 무려 9,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하네요.

     

    흥행성적으로는 갤 가돗의 원더우먼 2017’이 최고이지만, 그래도 원더우먼하면은 70년대의 미인 린다 카터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답니다.

     

    평소에는 한없이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지닌 천사이지만, 악당들의 불의를 보면 강인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여전사로 변해서, 악당의 무리들을 멋진 활극액션으로 제압해버리는 멋진 연기력을 보여주었던 린다 카터가 진정한 원더우먼이랄 수 있답니다.

     

     

    만약 70년대 중반 린다 카터가 원더우먼의 인기를 정상에 올려놓지 못했다면, ‘원더우먼은 단명되어서 사라져버렸을 것입니다.

     

    린다 카터의 원더우먼3년에 걸쳐서 계속 리메이크되어 재방송되고, 그 후에도 원더우먼이 드라마와 영화로 계속해서 리메이크될 수 있었던 것은, ‘원더우먼의 캐릭터를 최정상급에 올려놓은 일등공신 린다 카터가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린다 카터가 원더우먼의 인기를 높여놓지 않았다면, 갤 가돗의 원더우먼 2017’도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70년대에 탁월한 미모와 팔등신 볼륨몸매를 전세계의 수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린다 카터를 영원한 원더우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린다 카터는 원더우먼출연 이후에도, 꾸준히 여러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계속 출연하면서 연기활동을 계속 해나갔답니다.

     

     

      린다 카터는 스몰빌’ ‘스카이하이’ ‘슈퍼걸등의 영화와 드라마에 계속 출연해나갔는데, 워낙 원더우먼의 꼬리표가 강하게 달라붙어서 원더우먼만큼 성공한 작품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린다 카터는 총 두 번의 결혼을 했는데요. 린다 카터는 원더우먼촬영 당시인 1977년도에 매니저 론 사무엘즈와 첫번째 결혼을 했지만 5년 후에 헤어졌고,

    1984년도에 변호사 로버트 올트먼과 두번째 결혼을 해서 딸과 아들을 각각 하나씩 낳고 지금까지 금슬좋게 잘 살고 있답니다.

     

      남편, 린다 카터, 아들

     

    그리고 린다 카터는 두 번째남편인 로버트 올트먼과 공동으로 제니맥스 미디어를 설립하고 최고경영자로 활동하게 되었답니다.

     

    또한 린다 카터는 자신의 미디어사에서 제작한 여러편의 스튜디어게임들에 여러 가지 캐릭터의 성우역할을 담당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활용한 연기를 계속해왔고, 최근에는 드라마에 출연해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답니다.

     

      린다 카터의 최근 모습

     

    린다 카터는 51년생으로 올해 나이가 67세인데, 놀랄정도의 동안미모를 자랑하고 있어서 또한 화제가 되고 있답니다.

    나이를 먹었어도 계속 아름다운 자태를 잃지않고 있는 린다 카터의 젊음과 미모 유지비결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할 따름인데요.

     

    또한 린다 카터는 갤 가돗의 원더우먼 2017’ 시사회에 참석해서, 원더우먼의 42년 후배인 갤 가돗과 만나 반갑게 포옹을 나누기도 했답니다.

     

    현재 원더우먼 2017’이 흥행에 크게 성공하자, 제작사측에서는 원더우먼후속작품의 제작에 나설 계획을 세웠답니다.

     

    원더우먼2’에 왕년의 원더우먼인 린다 카터를 출연시킬 계획이 세워졌다고 하는데, 린다 카터는 최근의 인터뷰에서 패티 젠킨슨감독과 함께 원더우먼2’ 출연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더우먼2’에 린다 카터의 출연이 거의 확정단계에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원더우먼2’에서는 두명의 원더우먼을 함께 관람할 수 있게 되는 셈이군요.

     

    젊은 원더우먼 갤 가돗과 원조 원더우먼 린다 카터가 한 스크린상에서 함께 멋진 연기를 펼치는 모습이라니, 정말 멋지고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답니다.

     

    린다 카터는 올해 개봉된 원더우먼 2017’에도 출연재의를 받았다고 하며, 그녀가 방송출연 등 바쁜 이유로 출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린다 카터는 금년도에 TV시리즈 수퍼걸에 출연해서 대통령 올리비아 마스딘역을 연기했답니다.

     

    참고로 워너브러더스사에서 제작하는 원더우먼2’2019111일 개봉될 예정입니다.

     

     

    린다 카터의 원더우먼 동영상

     

     

     

     

     

     

     

     

     

     

     

     

     

     

     

     

     

     

     

     

     

     

     

     

     

     

     

     

     

     

     

     

     

     

     

     

    반응형
    Posted by 프린스.
    ,

    목차

      미모의 홍콩여배우 양리칭의 영화 예스마담3 (자웅대도) 동영상, 사진

       

      80년대는 홍콩무술액션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시대였고, 특히 홍콩의 여자액션배우들이 많은 액션영화에 출연해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답니다.

       

      80년대에는 수없이 많은 무술액션영화들이 만들어져 상영되었고, 특히 홍콩의 마담영화 시리즈는 90년대까지 지속적인 인기와 붐을 이어나가게 된답니다.

       

      80년대 미모의 여성파이터를 앞세운 마담영화들이 봇물처럼 쏟아져나오면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었는데, 마담영화 시리즈의 첫테이프를 끊었던 양자경이 그 당시 대표적인 인기스타였죠.

       

      홍콩여배우 양자경이 85년부터 예스마담1 (황가사저)과 예스마담2를 찍고, 예스마담 영화의 인기에 불을 붙여놓았는데, 돌연 양자경은 두 영화를 찍은 후 결혼과 함께 일시적으로 은퇴를 해버리게 됩니다.

       

      제작사 덕보전영에서는 예스마담 시리즈의 높은 흥행성을 이어나가기 위해, 양자경의 대타를 물색하게 되었고, 오히려 양자경보다 더욱 예쁘고 멋진 제2의 예스마담을 발굴하게 되는데, 바로 양리칭이랍니다.

       

       

      양리칭은 양자경에 이어 예스마담의 여전사를 이어받아 예스마담 영화시리즈를 계속 이어나가게 된답니다.

      80,90년대에 보기드믈게 뚜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미모의 양리칭은 뛰어난 운동실력을 지니고 있어서, 예스마담의 여전사로서 아주 안성맞춤의 여배우였답니다.

       

      양리칭은 뛰어난 미모와 탁월한 무술액션을 선보여서, 단번에 예스마담 시리즈의 히어로로 급부상하였고, 그녀는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예스마담3부터 예스마담7까지 5편의 예스마담 영화에 출연하면서 롱런가도를 달렸답니다.

       

      예스마담 영화의 3인방을 꼽자면, 양자경과 양리칭, 그리고 호혜중을 꼽을 수가 있는데, 이들 3인의 여배우들이 80~90년대 예스마담 부류의 영화들을 이끌어나갔는데,

      이중 미모와 무술실력으로 따지면 단연 양리칭이 최고라고 할 수 있답니다.

       

       

      양리칭은 원래 홍콩사람은 아니라, 대만출신이랍니다. 양리칭은 대만에서 TV광고모델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무용을 전공해서 몸이 유연하고 운동능력이 좋고 미모가 출중했기 때문에,

      홍콩의 덕보영화사에서 그녀를 제2의 예스마담으로 전격 캐스팅해서, 예스마담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지요.

       

      홍콩영화계에 전격 캐스팅된 양리칭은 1988년도 21세의 나이로 예스마담3 (자웅대도)에 출연했고, 그 이듬해인 1989년도엔 예스마담4 (직격증인)에 출연해서 큰 인기를 끌면서 아시아의 톱스타로 우뚝 솟게 된답니다.

       

      양리칭은 영화 예스마담에서 세련된 이미지와 풋풋한 아름다움을 발산하여, 남성팬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고단도의 눈부신 무술액션을 대담하게 연기하여 수많은 남성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게 된답니다.

       

       

      80년대 후반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양리칭은 미모와 액션을 겸비한 천사같은 여전사로 각인되면서, 많은 남성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었답니다.

       

      마담영화에 출연했던 여배우들이 다소 중성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음에 비해, 양리칭은 고난도 무술액션을 잘 하면서도 아주 청순하고 여성적인 매력을 풍기고 있어서 특히 남성팬들에게 인기가 높았답니다.

       

      양리칭은 예스마담3와 예스마담4에 이어서, 예스마담5 (중간인), 예스마담6 (신탐격전), 예스마담7(맹룡신탐) 등 총 5편의 예스마담 시리즈에 출연해서 롱런가도를 달렸으며, 그 후 사극인 독고구검, 일도경성 등 많은 영화들에 출연했답니다.

       

       

      그리고 양리칭은 90년대 중반이후에는 고국인 대만으로 건너가서, 사극 TV영화 시리즈에 계속 출연해서 연기활동을 지속해나갔답니다.

       

      예스마담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영화를 고르라고 한다면, 양리칭의 파워풀하고 통쾌한 액션이 빛났던 예스마담3 (자웅대도)를 꼽을 수 있답니다.

       

      예스마담3 (자웅대도)는 양리칭이 처음으로 출연한 영화로서, 나이 21세로 여성으로서의 풋풋함과 청순함이 그대로 드러났던 영화이기 때문이며, 무술액션의 스케일이 가장 핫했던 영화이기 때문이랍니다.

       

       

      양리칭은 68년생으로서, 지금 나이가 50세가 되었는데요, 유투브에서 그녀의 모습을 보니까, 젊은시절 못지않게 여전히 아름답고, 양리칭은 2000년대 이후에도 대만에서 간간히 tv사극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연기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운동을 잘하는 양리칭은 요즘 요가와 휘트니스 강사로서 활발한 강연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합니다.

         

       

      - 예스마담 3 (자웅대도)의 줄거리내용 -

       

      양리칭은 삼촌이 책임자로 있는 홍콩의 한 경찰서에 강력계형사로 임용되어 들어간 신출내기 여형사이다.

       

      삼촌은 양리칭에게 위험한 강력계에서 근무하지 말고, 안전한 내근사무직으로 옮길 것을 권유하지만, 진형사(양리칭)는 사회악을 근절하는 공을 세우고 싶다면서, 강력계에 계속 근무하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범죄조직 동맹군의 보석절도범들이 보석전시회에 난입해서 값비싼 귀금속을 훔쳐서 달아난다.

      여자와 남자로 이뤄진 2인조 보석절도범들은 일본경찰의 추격을 피하기위해, 홍콩으로 도피한다.

       

      한편 보석절도범들과의 총격전에서 친구를 잃은 일본형사 히로시는 동료형사의 복수를 다짐하고 절도범들이 도피한 홍콩으로 절도범들을 잡으러 넘어온다.

       

      그 일본형사 히로시와 홍콩의 신출내기 여자형사 양리칭이 서로 합동작전을 벌이면서, 2인조 절도범들을 추격하는 손에 땀을 흘리게 만드는 맹렬한 추격전이 전개된다.

       

       

      결국 여형사 양리칭은 절도범들이 숨어있는 본거지를 찾아내고,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목숨을 걸고 절도범죄 조직과 혈투를 벌여나간다.

       

      맨 마지막에 여형사 양리칭이 범죄단의 우두머리와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 정말 압권이며, 양리칭이 범죄단을 일망타진하고 그 아지트를 빠져나오면서 엄청난 폭팔이 일어나는데, 이 장면도 멋지고 매우 인상적이다.

       

      양리칭의 예스마담 시리즈 중에서 이 예스마담3가 가장 짜임새있고 액션활극이 잘 구성된 우수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답니다.

       

       

      그럼 양리칭의 예스마담 3의 하이라이트를 모아놓은 영상을 올립니다.

       

       

      얄리칭의 예스마담3 (자웅대도) 하이라이트영상

       

       

       

       

       

       

       

       

       

       

       

       

       

       

       

       

       

       

       

      반응형
      Posted by 프린스.
      ,

      목차

        여배우 김창숙의 영화 여자태권군영회젊은시절 사진, 나이

         

        오늘은 여배우이자 탤런트 김창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김창숙은 70년대에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여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미모의 여배우랍니다.

         

        지금은 장년의 나이가 들어서, 드라마에서 주로 시어머니역할을 맡아 활동하시지만, 70년대만 해도 여배우 김창숙의 미모는 빛이 번쩍번쩍 날 정도로 정말 대단한 미모를 소유한 분이셨답니다.

         

        60이 훨씬 넘으신 지금의 시각으로 여배우 김창숙을 보지말고, 70년대 한창 청순한 미모를 발산했던 70년대의 시각으로 김창숙을 바라볼 필요가 있답니다.

         

        김창숙은 1968TBC 공채 5기로 우리연예계에 데뷔하게 되는데요. 김창숙은 경희대 무용과 1학년에 재학중이던 그당시 우연히 길거리캐스팅되어서, CF광고를 찍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연기자로 데뷔하게 된답니다.

         

        김창숙은 그 후 TBC 소속으로 드라마 서울이여 안녕’ ‘마부’ ‘사모곡’ ‘부부등 인기드라마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특유의 동양적인 미모를 발산하면서 활발한 연기활동을 펼쳐나갑니다.

         

         

        그런데 김창숙은 그 시대에 드물게 드라마 출연과 영화계 양쪽에서 함께 활발한 활동을 벌여나가는데요.

        김창숙의 청순 발랄한 이미지와 동양적인 미모를 높이산 영화계 감독들이 그녀를 발탁해 여러편의 영화에 출연시켰답니다.

         

        김창숙은 1969명동나그네로 영화계에 데뷔한 후, ‘만종’ ‘팔도여군’ ‘여인도’ ‘눈물의 웨딩 드레스’ ‘증언’ ‘청춘극장50편이나 되는 많은 영화에 출연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로서도 명성을 떨치게 된답니다.

         

        70년대만 해도 영화배우들을 주로 영화에만 출연하고, 탤런트들은 주로 드라마에만 출연하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이것은 이미지관리 차원에서 그 당시에는 필요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미모가 출중했던 김창숙은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면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것은 그녀의 미모와 연기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며 가장, 대중성이 높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김창숙이 데뷔한 60년대 후반에는 세명의 유명한 트로이카들이 영화계에서 버티고 있었지요.

        문희, 윤정희, 남정임 등 3인의 트로이카 여배우들을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면서, 우리영화계를 주름잡고 있었는데요.

         

        김창숙은 이들의 후광에 가려서 데뷔 전반기에는 주로 조연급으로 영화에 출연하면서 활동하였는데, 이 트로이카 여배우들이 은퇴한 70년대 전반기부터 김창숙이 크게 부각되어서, 대표적인 미녀여배우로 급부상하게 된답니다.

         

        김창숙의 활동 2기라고 할 수 있는 70년대 전반부터 중반까지의 시기가 김창숙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에도 한혜숙, 김자옥, 김영얘 같은 드라마방송 분야에서의 또다른 트로이카들이 활동하였지만, 영화쪽에서는 김창숙의 활동이 단연 돗보였답니다.

         

         

        이시기에 증언’ ‘여자태권군영회’ ‘청춘극장같은 김창숙의 뛰어난 명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김창숙은 우리나라의 최정상급 미모의 여배우로 큰 명성을 떨치게 된답니다.

         

        특히 김창숙은 1974년 영화 증언에서 매우 인상적인 명품연기를 선보여서, 아시아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대종상의 특별연기상도 수상하게 된답니다.

         

        영화 증언청춘극장은 김창숙의 미모와 주가를 온세상에 널리 알리는 그녀의 가장 뛰어난 대표작품이라고 할만하답니다.

         

        그런데 그녀의 영화작품 중 특히 인상적인 영화가 한편 있답니다. 바로 1974년도에 촬영한 작품으로, 75년도에 단성사에서 개봉된 한홍합작영화인 여자태권군영회라는 영화랍니다.

         

         

        이 영화 여자태권군영회가 특별한 것은 당시 홍콩 최고의 감독 오우삼감독이 연출한 영화였기 때문인데, 김창숙이 매우 이례적으로 홍콩의 골든하베스트사의 무술영화에 출연해서 영화촬영을 했답니다.

         

        오우삼감독은 80년대 당시 영웅본색’ ‘종행사해’ ‘적벽대전등의 명작품을 만들어 히트시킨 홍콩 느와르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명성을 크게 날렸던 분이시죠.

         

        그런 오우삼감독과 김창숙은 74년도에 정창화감독의 소개로 만나 영화를 함께 촬영하게 된답니다.

         

        바로 이 영화는 74년 오우삼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한홍합작영화 여자태권군영회라는 영화로, 우리나라에서는 위험한 영웅이란 제목으로 개봉된 영화지만, 오우삼감독이 홍콩에서 붙였던 원제목은 여자태권군영회랍니다.

         

         

        김창숙이 당시 낯설은 홍콩까지 진출해서, ‘여자태권군영회라는 영화에 출연하게 된 비화가 있다고 합니다.

         

        1974년 김창숙은 동료배우인 우연정과 함께 홍콩에서 활동중이던 정창화감독의 소개로 골든하베스트와 영화계약을 맺기 위해 홍콩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홍콩 골든하베스트에서 활동하던 오우삼감독이 김창숙을 무척 좋아했다고 하며, 자신이 연출중인 영화에 출연할 것을 강력히 원했었다고 하네요.

         

        그렇게 해서 1974년도에 오우삼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여자태권군영회에 김창숙이 여주인공으로 출연하게 되었고, 우연정은 조연으로 출연하게 된 것이랍니다.

        이 영화를 찍기 이전부터 오우삼감독은 김창숙의 영화들을 많이 보고 김창숙의 미모에 반해서 그녀의 팬이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우삼감독은 어떻게든 김창숙을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키기 위해서, 처음에는 난색을 표하는 김창숙을 회유하기 위해서 영화 여자태권군영회의 올로케를 한국에서 진행했다고 합니다.

         

         

        원래 한홍합작영화를 찍을 때에는 홍콩에서 50%의 씬을 찍고, 나머지 50%의 씬은 한국에서 찍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오우삼감독은 자신이 좋아하는 김창숙을 최대한 배려하기 위해서, 영화 전체의 촬영을 그당시 한겨울이라 엄청 추웠던 한국에서 전부 촬영했다고 합니다.

         

        2008년도에 자신이 연출한 영화 적벽대전의 프로모션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오우삼감독은 1974년도 영화 촬영 당시의 김창숙을 회상하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오우삼감독은 김창숙에 대해 무척 좋아했던 여배우였는데 함께 영화작업을 하게되어 무척 기뻤다. 당시 그녀는 너무 예쁘고 매력적이었다라고 입에 마르도록 김창숙의 미모를 칭찬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찍은 이후에도 오우삼감독은 김창숙에게 아예 홍콩으로 진출할 것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오우삼은 김창숙에게 정식으로 스카웃하고 싶다며, 홍콩으로 와서 또다른 영화에 주인공으로 참여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김창숙은 한국에서 연기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오우삼감독의 스카우트제의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당시 김창숙이 얼마나 예뻤으면 오우삼감독이 이렇게까지 김창숙을 스카웃하려고 공을 들였을까요?

         

        김창숙은 지금의 여배우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급 이상의 미모를 갖고 있지요. 지금 우리나라 여자연예인들의 대부분이 성형으로 만들어진 가짜 미모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 잘 나가는 여자 연기자들의 성형전 사진들이 인터넷에 불티나게 올라오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나라의 여배들의 미모는 90%가 성형으로 만들어진 가짜미모랍니다.

        그렇지만 70년대 당시 김창숙의 미모는 단 1%도 손을 안된 자연그대로의 미인이라는 점이지요.

         

        김창숙은 지금의 송혜교보다 한 수 위의 미모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답니다.

        오죽하면 홍콩에 있는 명감독이 김창숙을 보기 위해서, 한국에서 올로케로 영화촬영을 했겠습니까?

         

         

        문희, 남정임, 윤정희 등 트로이카가 모두 은퇴한 1973년도부터는 김창숙이 사실상 우리나라의 최고미인이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니랍니다.

         

        김창숙이 73년도부터 76년도까지 최고미인으로 군림하다가, 76년도 이후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 등의 신트이카 미녀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미인방 4각구도가 형성되지만, 김창숙은 아쉽게도 77년도에 결혼과 함께 은퇴해버립니다.

           

        1975년도에 개봉된 영화 여자태권군영회는 한국의 동아수출공사와 홍콩의 골든하베스트가 합작한 영화로서, 중국무술을 익힌 주인공이 한국에 와서 자신의 무예를 완성시켜 나가기 위해서,

        은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랑과 우정, 배신을 경험하게 되며, 결국 자신의 무술을 완성해서 횡포를 일삼는 일본가라데 고수들을 물리친다는 전형적인 무술액션영화랍니다.

         

        여자태권군영회에는 당시 홍콩에서 인기높은 황가달과 이소룡영화에 출연했던 전준, 양위가 출연했으며, 한국측에서는 명배우 이대엽, 합기도의 고수 지한재 등이 출연했답니다.

         

        '여자태권군영회'의 김창숙과 우연정

         

        그리고 라이벌이자 한창 인기상승중이던 김창숙과 우연정이 함께 출연해서 불꽃튀는 연기경쟁을 펼쳤답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영화 여자태권군영회에서는 김창숙과 우연정이 태권도를 배우고 익히는 장면들이 나오며, 화면속에서도 서로간 미모 뿐만아니라, 주먹대결을 펼치는 장면들도 나왔다는 점이 무척 이채롭고 신선했던 영화랍니다.

         

        홍콩여배우들이 무술을 연기하는 장면은 매우 흔한 장면이지만, 청순미와 여성성을 강조하는 한국 여배우들이 태권도를 익히고 싸우는 장면은 매우 이례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자태권군영회개봉 당시 김창숙을 비롯한 여자연기자들이 태권도를 하는 장면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을 겁니다. 

         

        여자태권군영회의 줄거리

         

        영화 여자태권군영회는 무술영화치고는 내용이 꽤 탄탄하며 짜임새있게 구성되어 있답니다

         

          우연정

         

        중국에서 쿵푸를 익힌 한종걸(황가달)이 자신의 무술을 한국의 태권도와 접목시키기 위해서 한국을 찾아옵니다.

        그가 한국으로 와서 지인의 소개로 태권도 고수의 문하로 들어가서, 태권도를 배우면서 자신의 무술을 완성시켜 나가는데요.

         

        한종걸(황가달)은 수련생활을 하면서, 우연히 또다른 한국 태권도의 명인의 딸 미혜(김창숙)를 알게 되고, 중국인 한종걸과 한국인 미혜 사이에 사랑이 서서히 싹터오르기 시작한답니다.

         

        그런데 그 당시 한국에 진출해있는 가라데의 고수 구로다일파가 전국에 있는 태권도장들을 찾아가서 결투를 신청해서 많은 태권도고수들을 박살내버리면서, 소위 도장깨기만행을 저지르고 다닌답니다.

         

         

        이로써 한국의 태권도장들이 구로다의 가라데일파에게 계속 박살나면서, 거의 말살직전의 상황이 되어버린답니다.

         

        이처럼 한국의 수많은 태권도장들이 구로다일파에게 걸려 몰살당하는 상황에서, 결국 한종걸(황가달)의 스승인 태권도사범도 구로다일당에게 습격을 받고 큰 부상을 입게된답니다. 태권도의 최고의 고수가 가라데의 최고의 고수에게 박살이 난 겁니다.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을 정도로 가라데문파의 횡포가 한계점에 다다르게 되자, 한종걸(황가달)은 한국인 태권도사범 남궁(전준), 미혜(김창숙)등과 협력관계를 형성하고 구로다문파를 타도할 계책을 세운답니다.

         

          황가달

         

        그리고 한종걸(황가달)과 남궁(전준)은 마지막 결의를 다짐하고, 가라데의 최고의 고수 구로다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결투장으로 나가게 되고, 목숨을 건 마지막 한판 승부를 벌인답니다.

        결국 한종걸과 남궁은 구로다일파의 9명의 고수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승리함으로써, 태권도의 명예와 쿵푸의 명예를 지키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홍콩(대만)과 한국의 협심해서 원수같은 일본을 제압한다는 상징적 역사적 의미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 당시의 홍콩은 중국에 편입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홍콩은 대만과 더 가까운 사이였답니다.

           

        여자태권군영회에서는 재미있는 장면과 아찔한 장면도 많이 나온답니다.

           

        김창숙이 여성 태권도단원의 일원으로 나오고, 우연정도 함께 태권단원으로 나오는데, 이 두명의 여성이 테권도사범 남궁(전준)[당산대형, 정무문에서 이소룡의 동료로 나온 배우]을 서로 사랑하는 연적사이로 티격태격하면서 사랑놀이를 하기도 한답니다.

         

         

        좀 어설프지만 김창숙이 테권도 발차기시범을 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무술이라고 하기 보다는 귀여운 무용같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영화 초반부에 여자태권도단과 여자가라데단이 벌판에 나와서, 서로 집단 패싸움을 하는 장면이 시작되는데요. 두여자 집단이 집단패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19금에 해당하는 상의가 모두 볏겨져 가슴이 노출되는 아찔한 장면들도 나와서, 남자들에게 짜릿한 볼거리를 선사하기도 하지요.

         

        무술액션 뿐만아니라, 사랑이 가미되어서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가 있는데요.

         

        연적관계인 김창숙과 우연정과 남궁(전준)21남의 삼각로멘스가 이어지다가, 후반부엔 김창숙 한여인을 사이에 놓고 한종걸(황가달)과 남궁(전준)이 경쟁하는 21녀의 새로운 삼각관계로 발전하게 된답니다.

        이 영화 여자태권군영회에서는 김창숙의 미모가 눈부시게 빛난답니다.

         

        이 영화 여자태권군영회에서 그어떤 여성도 김창숙의 미모에 비견될 만한 사람은 없답니다. 우연정도 마찬가지랍니다.

         

         

        김창숙은 당시 동양의 진주같은 미모를 발산하고 있는데, 이때가 김창숙의 나이가 27세로 한창 젊음을 발산하던 시기이지요.

         

        남자 무도가들의 의리와 다이나믹하고 통쾌한 무술액션에다가, 남녀간의 삼각로맨스가 적절히 가미되어서 남녀들이 함께 즐기기에도 딱 좋은 영화랍니다.

         

        이 영화에서는 합기도의 고수 지한재와 중견 명배우 이대협이 출연해서, 무술h가 영화의 품격을 높여놓았답니다.

         

        70년대 중반의 영화라서 지금의 영화보다는 세련미는 약간 떨어지지만, 훈훈한 인간미가 잔득 녹아나고, 테권도 발차기의 화끈한 무술액션이 시원시원하게 전개되어서 흥미를 제공해주고,

        한 김창숙의 빼어난 미모가 받쳐주어서 남자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눈요기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답니다.

         

         

        여자태권군영회는 김창숙이 그당시 왜 세기적인 미인이라고 불리웠는지를 충분히 실감할 수 있는 영화랍니다.

         

        성형으로 온통 뜯어고친 지금의 여배우들은 70년대의 무성형 원조미인 김창숙을 보고서, 반성을 많이 해야할 것 같습니다.

         

        지금보다 국민소득이 1/30밖에 안되었던 70년대 중반의 여배우들이 진정한 미인들이었고, 국민소득이 훨씬 높아져 선진국에 진입한 지금의 미인들중 9할이 가짜로 만들어진 인공미인들이라는 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지금 대량으로 쏟아져나오는 성형미인들을 보면서, 70년대의 원조미인 김창숙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

         

         

        김창숙은 아쉽게도 1977년 결혼과 함께 연예계에서 은퇴하여 6년간 방송이나 영화출연을 하지않고 있었는데, 1983년도에 다시 방송에 복귀해서 왕성한 방송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답니다.

         

        김창숙의 남편은 강성영씨로 무역업 사업을 하시는 분으로 방송에는 한번도 노출이 안된 분입니다.

        김창숙은 슬하에 두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지금은 두아들이 장성하여 모두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방송에 김창숙의 며느리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승무원출신의 며느리는 연예인 빰칠 정도로 예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답니다.

         

        김창숙 약력

         

        1949115일생, 전라남도 완도생

        경희대학교 무용과(중퇴)

        1968TBC 5기로 탤런트로 데뷔함

         

         

        김창숙주연의 영화 여자테권군영회하이라이트 동영상

         

         

         

         

         

         

         

         

         

         

         

         

         

         

         

         

         

         

         

         

         

         

         

         

         

         

        반응형
        Posted by 프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