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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대관, 후배 트로트여가수 매니저에게 폭언들어 우울증 치료

     

    우리나라 트로트계의 대부이자 전설로 불리우는 송대관이 후배가수의 매니저로부터 심한 욕설을 듣고, 충격 때문에 병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유행가’ ‘차표한장’ ‘네박자등 구수하고 정감있는 트로트를 많이 불러서,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트로트 원로가수 송대관에게 심한 폭언과 모욕을 준 매니저는 누구일까?

    송대관은 424가요무대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던 중에, 한 트로트 후배여가수의 매니저와 지나쳤다고 한다.

     

    그 후배여가수 매니저가 목례인사를 하자, 송대관도 목례를 하고 지나가던 찰나, 그 후배여가수 매니저가 왜 내 인사를 똑바로 안 받느냐, 내가 누군줄 알고, XXX XX, 확 패버리고 며칠 살다가 나와!’라고 심한 폭언을 했다는 것이다.

     

    송대관의 말에 따르면그 후배여가수의 매니저는 주변사람들이 말리는 데도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다고 한다.

    송대관은 심한 모욕감과 충격을 받고서병원에 입원까지 했다고 하며급성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있다고 한다.

     


    당시 목격자인 송대관의 매니저의 말에 따르면, 해당 매니저가 심한 폭언과 함께 욕설까지 했다고 한다.

     

    해당매니저의 소속사측에서의 해명에 따르면, 현재 그 매니저는 해외출장을 떠났다고 하며, 1,2분 정도 말다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폭언이나 신체적 위협은 전혀 없었고, 해당매니저는 바로 사과를 했다고 한다.

     

    또한 해당 매니저는 송대관의 이같은 주장은 과장된 것이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라서, 대응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송대관은 분명히 그 매니저로부터 폭언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송대관은 그 매니저가 자신에게 직접 사과한 것이 아니라, 소속사대표를 통해서 사과의 말을 전달했다고 한다.

     

    해당 매니저 소속사측의 주장에 대해, 송대관은 1분이 아니라, 적어도 10분 정도 옥신각신했다고 하며, 주변사람들이 말릴 정도로 심한 행동을 했다고 한다.

      

    송대관은 후배여가수 매니저의 폭언에 큰 충격을 받고, 지금 심각한 멘탈붕괴에 빠진 상태라고 한다송대관은 50년 가수생활 만에 이같은 봉변은 처음 당한다고, 치를 떨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송대관은 지금 심장이 너무 떨리고, 잠을 자다가도 심한 악몽을 꾼다고 하며,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송대관은 후배여가수 매니저로부터 심한 수모와 모욕을 당했다고 하며, 스케줄 때문에 링거를 맞아가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한다.

     

    송대관에게 폭언을 했다고 하는 그 인물은 유명 트로트여가수 k양의 매니저 홍씨라고 한다.

     


    도대체 송대관에게 폭언을 했다는 그 트로트여가수 매니저 홍씨가 누군지, 궁금증이 생긴다.

    송대관은 우리나라 트로트가요계의 대부 같은 존재감으로, ‘국민트로트가수라고 불리울 정도로 엄청난 관록과 인지도를 지닌 유명한 가수다.

     

    더욱이 송대관의 나이는 올해 만 70세로 원로급에 해당하는 가요계의 대선배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도대체 어떤 트로트여가수의 매니저가 대선배인 송대관에게 그까짓 인사때문에, 심한 폭언을 해댔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 네티즌수사대는 송대관에게 폭언을 했다는 그 매니저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사건이 일어난 무대는 424일날 출연했던 가요무대이며, 가요무대에 출연한 트로트여가수의 매니저라고 한다.

     

    424일날 출연했고 58일날 방송되는 가요무대에 출연한 여가수는 문희옥, 우연이, 이정희, 신미래, 이미배, 이자연 등 6명이라고 한다. 이중에 한 트로트여가수의 매니저가 그 주인공이라고 한다.

     

    송대관은 1967년도에 데뷔해서, ‘해뜰날로 스타덤에 오른 후, ‘정 때문에’ ‘차표한장’ ‘네박자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오랫동안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우리 트로트계에 나름대로 큰 기여를 해왔던 원로가수이다.

     

    이렇게 우리가요계에 원로급에 해당하는 송대관에게 심한 폭언을 한 그 매니저는 나이가 몇이나 되는지 정말 궁금하다.

     

    선배가 인사를 하지않은 후배에게 충고를 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거꾸로 후배가 대선배에게 인사를 받지않는다는 이유로 충고나 폭언을 했다고 하니, 이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본다.


     

    그 매니저가 얼마나 간댕이가 부었는지, 아니면 무슨 조폭출신인지, 어떻게 후배여가수의 매니저가 우리 가요계의 대선배이자, 원로가수에게 인사문제로 폭언과 시비를 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송대관의 폭언주장은 뭔가 석연치않은 점도 분명히 있다고 본다. 송대관의 주장을 100% 믿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병원치료까지 받고있는 송대관의 주장을 안 믿을 수도 없고, 정말 이건 희대의 아이러니컬한 해프닝이 아닐 수가 없다.

     

    현재 가장 혼란에 빠진 것은 네티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송대관과 그 매니저측의 주장이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폭언사태는 송대관과 그 매니저 사이에 다른 좋지못한 구원(舊怨)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데에 많은 네티즌들의 생각이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이번 폭언사태는 단순한 인사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에 서로간에 안좋은 감정이나 문제가 계속해서 쌓여왔던 것이며, 이번 상황에 그간에 쌓여왔던 앙금이 폭발한 것이라고 본다.

     

    후배여가수의 매니저가 대선배격인 원로가수에게 인사 때문에, 먼저 시비를 건다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그 사람이 조폭관게자이거나, 사이코패스라면 모르지만 말이다.


     

    그 매니저나 그 매니저가 관리하는 후배가수들이 과거부터 최근까지 송대관에게 뭔가 큰 앙금이나 불만이 쌓여왔을 것이고, 그것 때문에 그 매니저가 송대관에게 뭔가 본때를 보여준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아뭏튼 송대관에게 인사 때문에 폭언을 했다는 그 매니저와 그 매니저가 관리하는 후배여가수가 누군지, 정말 궁금하기만 하다조만간 네티즌수사대가 그 인물들을 찾아낼 것이라고 본다.

     

    세상 참 희한한 일이 다 있다. 선배도 아니고 후배가 대선배에게 인사를 안받는다고 시비를 걸다니, 이건 세상이 아주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인사가 그렇게 중요한가, 우리 연예계에는 인사 때문에, 과거부터 시비거리가 종종 많이 발생해왔다. 주로 선배가 후배연예인에게 인사를 안한다는 이유로, 후배연예인을 불러서 충고하거나, 수모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완전 거꾸로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머리를 구부려서 인사하지 말고, 그냥 ‘헬라는 말한다디로 바꾸었으면 좋겠다목과 허리 아프게 머리를 구부리면서 인사하는 관행을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 피곤하기만 하다.

     

    방송국에 방송하기 위해서 가는 건지, 아니면 인사를 받기위해서 가는 건지, 방송국에 가는 그 목적이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방송의 주체는 연기자나 가수들이지, 매니저는 아니라고 본다. 일반시청자들은 매니저들에게는 단 1%의 관심도 없다.

     

    따라서 방송국에는 연기자나 가수들만 들어가도록 허용하는 것이 좋으며, 매니저들은 방송국 밖이나 차안에서 대기시키는 것이 좋다고 본다. 매니저들이 왜 방송국까지 들어가서, 난동을 부리고 말썽을 부리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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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 최고미녀 정윤희의 영화와 노래, 최근모습

       

      정윤희 나이 195464일생 64, 160cm

       

      70, 80년대 신트로이카 여배우들을 기억하시나요?

      70, 80년대에 남자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던 미녀여배우들이 유독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초절정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은막의 여주인공으로 군림했던 여배우가 있는데요.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전반까지 은막의 요정으로 불리우며, 남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정윤희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정윤희는 70년대 트로이카 여배우로 유명한데, 당시 미모와 연기력을 갖춘 연기여배우 3명이 있었으니, 바로 유지인과 장미희, 그리고 정윤희랍니다.

       

      70년대 중반에 데뷔해서 드라마와 영화를 오고가면서 활발한 연기를 펼쳤던 세명의 신트로이카 여배우들은 뛰어난 미모로 70년대를 대표하는 미녀여배우로 큰 인기를 누렸지요.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지적인 미인으로 불리웠던 유지인과 은은한 동양적인 미모를 지닌 장미희, 그리고 우아함과 청순함을 모두 갖춘 조각같은 미인 정윤희가 그 주인공들이지요.


       

      이 세명의 여배우들은 각각 자기만의 굳건한 팬층을 확보해가면서, 큰 인기를 누렸고, 때론 경쟁하면서 때론 협력하면서 70, 8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미녀여배우들이랍니다.

       

      이 세명의 트로이카 중에 가장 예쁜 여배우는 누구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갖고있는 부분인데요.

      70년대의 신트로이카 중에서 특히 정윤희와 유지인의 미모가 눈에 띄게 뛰어났답니다.

      세련미에 있어서는 유지인을 꼽는 분들이 많았지만, 큐티함과 우아함을 짙게 풍기는 정윤희를 최고의 미인으로 꼽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볼 수 있답니다.

       

      정윤희는 75년도에 영화 욕망으로 데뷔했는데, 데뷔 당시에도 눈에 띄는 예쁜 얼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큰주목을 받았답니다.


       

      데뷔 초기인 76년도에 영화 청춘극장의 여주인공으로 스카웃됐고, 동양방송의 쇼쇼쇼프로그램의 MC에 발탁되었던 것도 정윤희의 아기자기하게 예쁜 얼굴 때문이었지요.

       

      1977년도 정윤희가 출연한 드라마 청실홍실이 큰 인기를 끌면서, 정윤희는 이때부터 스타덤에 올라 최고미녀배우로 이름을 떨치면서, 각종 드라마와 영화, CF를 오가면서 활발한 연예활동을 펼쳐나갑니다.

      TBC드라마 청실홍실은 정윤희와 장미희가 함께 출연해서, 연적관계를 형성하며 열띤 연기력을 뽐냈는데, 70%라는 역대 최고의 시청율을 기록했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답니다.

       

       

      또한 정윤희는 당시 유행했던 호스티스영화에도 출연했는데, 특히 78년도에 ‘77번아가씨에 출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서 영화는 흥행에 크게 성공하였고, 정윤희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각인되면서, 대중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끌게 된답니다.

       

      정윤희는 그동안 연기력이 부족한 얼굴만 예쁜 여배우로쯤으로 여겨졌었는데, 두편의 영화 꽃순이를 아시나요’ ‘나는 77번 아가씨를 통해서, 연기력을 인정받고 톱스타로 올라서게 된답니다.


       

      그리고 정윤희는 1980년도 영화 뻐꾸기는 밤에도 우는가에 출연 절정의 매력을 과시하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기여배우로 자리메김하게 되었는데, 이영화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게 된답니다.

      그리고 정윤희는 81년 영화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로 또다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요.

       

      드디어 정윤희는 얼굴만 예쁜 여배우가 아니라, 미모와 연기력을 동시에 갖춘 최고의 여배우로 공인받게 되었지요.


       

      정윤희는 80년 전반까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큰 인기를 누렸는데요.

      정윤희의 미모는 일본에까지 알려졌는데, 일본의 각종 매스컴에서는 정윤희를 동양최고의 미녀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합니다.

      정윤희는 70년 후반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국여배우로 선정되어, 일본 항공달력의 모델로 선정되었답니다.

       

      그리고 매우 이례적으로 일본의 도쿄가요제에 시상자로 선정되어, 시상식에 서게된답니다. 여기서 영화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 과 함께 시상자무대에 올랐답니다. 일본에서는 정윤희를 허리우드여배우와 동격으로 대우했던 것이지요.

       

       정윤희(좌), 유지인(중앙), 장미희(우)


      70, 80년대 트로이카 여배우 유지인, 장미희, 정윤희 세명의 여배우 모두 미모가 뛰어났고, 각기 자기만의 고유한 개성미가 강했는데요.

      그런데 일본매스컴에서 정윤희를 아시아 최고의 미녀라고 극찬하면서, 정윤희는 명실상부한 당대 최고미녀 여배우로 우뚝 솟아오르게 된답니다.

       

      그래서 7080세대들 상당수는 70,80년대의 최고미인 여배우로 정윤희를 꼽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홍콩최고의 스타 성룡이 정윤희의 미모에 홀딱 반했다고 하며, 정윤희를 짝사랑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영화와 드라마, CF의 퀸으로써,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정윤희가 84년도에 돌연 간통사건에 휘말리게 된답니다.

       

      은막의 최고의 스타로서 절정의 시기에 정윤희는 엄청난 스캔들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요정윤희가 당시 유부남이었던 조규영회장과 간통스캔들이 터졌던 겁니다.

       

      당시 매스컴에서는 인기절정의 미녀여배우와 중견 건설회사 회장의 부적절한 만남이라고 크게 보도하기도 했던 사건이랍니다.

       

      당시 한국 톱스타인 정윤희가 뭐가 아쉬워서 8살 많은 유부남인 조규영회장(당시 중앙산업개발 전무이사)과 연애를 한다니, 대중들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요. 그렇지만 남녀간의 관계는 제3자의 눈으로 예단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당시의 언론에서는 톱여배우와 중년의 유부남 재력가의 불륜이라고 두사람의 관계를 비판하는 시각이 강했는데요.

      그당시 조규영회장은 대기업 건설회사인 중앙산업의 회장으로서, 꽤 잘나가는 경영자였지요. 그리고 조규영회장은 자녀들이 있었지만, 당시 부인과 불화를 겪고 별거한 상태에서, 정윤희를 만나 새로운 교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조규영회장 전부인의 간통죄고소 등으로 두사람은 유치장에 구금되는 등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정윤희와 조규영회장은 모든 시련을 극복하고, 1984년 전격 결혼에 성공합니다.


       

      당시 세간에서는 톱스타 정윤희가 남의 가정을 파괴했다는 비난을 퍼붓기도 했지만, 정윤희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톱스타의 지위와 인기를 모두 다 내던지고 비록 5일간이지만 유치장에 들어가는 수모를 감수해가면서 결국 자신의 사랑을 쟁취해냈답니다.

       

      당시 최고의 인기여배우로서, 남부러울 것이 없었던 정윤희가 도대체 왜 유부남과 사랑에 빠졌을까요? 그것은 정윤희가 진실로 조규영회장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답니다.

      그리고 스캔들이 터진 후에 정윤희는 방송국에서 출연금지처분을 받게되었고, 정윤희의 전성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된답니다. 

       

      처음에는 불륜이라는 맹렬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정윤희는 조규영회장과 84년도에 결혼에 성공해서 연예계에서 완전 은퇴했으며, 정윤희는 조규영의 11녀의 자녀들을 키우면서, 30년 넘게 금슬좋은 부부로 잘살고 있답니다.


       

      트로이카 세명의 여배우 중 유지인은 2004년도에 이혼했고, 장미희는 지금까지 미혼으로 지내고 있지만, 오직 정윤희만이 30년 넘게 금슬좋은 부부관계를 이어오고 있다니,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네요.

       

      처음에는 비난받는 스캔들로 시작된 사랑이었지만, 가장 오랫동안 금슬좋고 모범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정윤희는 정말 대단한 여성으로 느껴진답니다.

       

      결혼후에 정윤희는 잠깐 연예계에 컴백한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는데, 시댁식구의 완강한 반대의견 때문에, 정윤희의 컴백은 무산되고 맙니다.

       

      정윤희는 조규영와 전처사이의 자식 11녀를 키웠는데, 정윤희가 직접 낳은 아들이 하나 있었지요.

       

      정윤희가 조규영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미국으로 유학생활을 하던 도중, 201111월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했답니다.

      그당시 정윤희의 아들은 23세로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도중에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켰고, 병원으로 이송된 후에 곧바로 사망했다고 하네요.

       

      나중에 가족들의 요청으로 아들에 대한 정밀부검이 이뤄졌고, 정윤희아들은 자살이나 타살이 아닌, 약물중독에 의한 사망으로 밝혀졌답니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미녀여배우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정윤희가 유부남출신의 남편과 결혼했다는 것도 파격적이지만, 그녀의 유일한 아들이 사망했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입니다.

       

      젊었을 때에는 트로이카 중 가장 잘나갔던 정윤희가 30년 넘는 결혼생활이 결코 평탄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녀의 유일한 피붙이자식이 죽었고, 또한 남편 조규영이 운영하는 회사가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남편 조규영이 운영하는 중앙산업은 호남지방에서 건설사업을 벌였던 중견 건설회사랍니다.

      중앙산업은 중앙하이트빌라라는 트랜디한 아이템개발사업으로 80~90년대에 번창해나갔으며, 건설사업을 전국으로 크게 확장해나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크게 뻗어가던 중앙산업은 미분양이 크게 늘어나서 경영부진에 빠지게 되었고, 엄청난 영업손실이 쌓여가게 된답니다.

       

      중앙산업은 영업손실과 부채가 크게 늘어나고 감당하기 힘들게 되자, 결국 2014년 법원에 회생절차를 밟고 법원의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답니다.

       

      회사의 경제상태가 얼마나 안좋았던지, 조회장과 정윤희가 살고있는 압구정동의 60평대의 현대아파트가 경매에 나왔다고 합니다.

      또한 회사가 소유하고 있던 480억에 달하는 일산의 토지도 경매처분이 내려졌다고 하네요.

       

       


      70,80년대에 신트로이카의 선두주자로서, 대중들의 큰사랑과 인기를 끌었던 정윤희가 결혼 30년에 접어든 중년의 나이에 여러가지로 불행이 닥쳐오게 되니, 안타깝기만 하답니다.

      그렇지만 정윤희는 이런 시련들을 묵묵히 이겨내고 가정을 지키면서, 모범적인 주부생활을 영위해나가고 있답니다.


      정윤희의 최근모습 사진

       

      한때 동양최고의 미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정윤희는 지금 이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정윤희의 최근근황을 '미스코리아 제조기'로 알려진 이훈숙 원장이 전해주었는데, 정윤희는 살림을 알뜰하게 잘한다고 하며, 시어머니의 수발을 매일 해주면서 열심히 예쁘게 잘 살고 있다고 전해주고 있답니다.

       

      정윤희는 인기절정의 시기였던 77년도와 79년도에 두장의 음반을 발표한 적이 있답니다.

      77년도 당시 영화와 드라마, CF에서 큰 인기를 끌며 활동했던 정윤희의 인기에 편승해서 힛트레코드사에 제작 발표했던 음반인데요.

       

      이 음반에는 정윤희가 직접 부른 노래가 왜 내가 슬퍼지나요목마른 소녀’ ‘그대는 모르리3곡이 수록되어 있답니다.

      당시에 최고의 인기여배우가 음반을 발표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던 음반이랍니다.

       

      청아하고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정윤희의 전혀 새로운 매력을 느낄 수가 있답니다.

      이 앨범에는 정윤희 외에도 한영애, 정미조 등 다른 기성가수들의 노래도 함께 들어있는데, 12곡이 들어있다고 하네요.

       

      정윤희는 노래를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당대 최고의 미녀배우가 풋풋하고 섹시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남자들의 가슴을 파고들면서,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다고 해요.

      정윤희노래 중 목마른 소녀가 가장 인기가 좋았다고 합니다. 정윤희노래는 최인호가 작사했고, 이정화가 작곡했다고 합니다.


       

      또한 1979년도에는 정윤희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자, 5곡을 수록한 정윤희의 음반이 한 개 더 발표되었습니다.

       

      2014년도에 정윤희의 환갑을 기념해서, 정윤희의 노래들을 모아서, 한정판 LP로 만들어서 재발매했답니다.

       


      정윤희의 노래 '목마른 소녀'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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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서 온 미녀여배우 김아라의 미모, , 북한생활 이야기

         

        오늘은 탈북미녀 김아라에 대해서 소개해볼까 합니다. 우리가 tv방송 이제 만나러 갑시다에서 종종 보게되는 한 탈북미녀가 있지요.

         

        이만갑에서 가장 앞쪽에 앉아서 굉장한 미모를 뽐내면서 토크도 하고, 리엑션도 하는 여성 한분이 있는데요.

        언제 보아도 가장 예쁜 미모 때문에, 시청자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고 있는 분이랍니다.

         

        우리나라의 최고 미녀여배우 김태희 못지않게 아름다운 미모를 간직하고 있는 이 여성은 바로 북한에서 탈북한 탈북미녀 김아라입니다.

         

        이만갑방송에서 제일 예쁜 탈북미녀이자, 방송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감이자, 큰 주목을 받는 존재감으로 우뚝 솟아오른 탈북미녀 김아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게 해주는 행복비타민 같은 존재감이랍니다.


         

        탈북미녀 김아라는 북한에서 탈북해 한국에 정착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탈북출신 여배우랍니다.

         

        김아라는 현재 방송 이만갑에도 고정게스트로 출연하고 있고, 그외의 방송 잘살아보세와 드라마에도 출연하면서, 왕성한 연기방송 활동을 펼치고 있는중입니다.

        비록 북한에서 탈출해온 탈북녀 출신이지만, 이제는 한국생활에 완전히 적응해서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김아라는 2015년 웹드라마 아는 사람에서 탈북출신 김연희역을 맡아,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답니다.


          

        특히 김아라는 북한출신 여성 중에서, 가장 빼어난 아름다운 미모를 보유하고 있어서, 앞으로 전도유망한 여배우로서 큰 기대감을 갖게해주고 있답니다.


        김아라는 방송에서 항상 눈부신 미모 때문에, 시청자들의 눈길을 한몸에 사로잡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의 김태희를 닮았다는 소리도 들리고, 중국의 최고미인 여배우 판빙빙을 닮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는데요.

         

        북한 출신 여성으로서 이렇게까지 미모로 뜬 인물은 김아라 외에는 없다고 할 수 있는데, 김아라는 현재 한국에서 그 세련된 미모로 한몫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김아라는 이제 중국과 일본에도 많이 알려져서, 작년에는 중국과 일본 방송에도 출연하면서, 국제적인 엔터테이너로 급부상 중에 있다고 하네요.

        김아라는 작년도에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에서 한류부문 MCN상까지 수상했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답니다.

         

        북한출신으로서 한국 연예계에 데뷔해서 큰 상을 받았는데, 탈북인으로서는 최초의 일이 아닐까 해요. 정말 감아라에게는 대단히 값진 성과라고 할 만 합니다.


         

        북한에서 목숨 걸고 중국으로 탈출했고, 또 중국에서 한국으로 목숨 걸고 탈출해서, 한국에서 모진 고생 끝에 한국여배우로 드라마에까지 진출하는 데에 성공했을 뿐만아니라, 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답니다그야말로 김아라는 인간승리의 주인공 같은 느낌이 든답니다.

         

        그럼 많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김아라의 북한에서의 생활과 탈북과정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지금은 한국여배우로서 한국정착에 성공해서 스포트라이터를 받고 있는 김아라이지만, 그녀의 북한에서의 삶과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으며, 수없이 삶과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저렇게 세련된 미녀가 어떻게 이렇게 고달프고 힘든 북한생활을 이어왔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로, 김아라의 북한에서의 생활은 처참했었답니다.

         

         

        김아라의 북한에서의 생활과 탈북과정

         

        김아라는 북한 함경북도 회령출신으로 어렸을 적에 어머니와 아버지, 여동생과 함께 남부럽지않게 살았답니다.


         

        김아라는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탄광에서 일했던 관계로 30평짜리 아늑한 집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김아라의 가정에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답니다. 북한의 고난의 행군시절부터 경제가 안좋아졌고,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두면서, 집안의 경제사정이 나빠졌다고 하는데요.

         

        집안의 돈이 바닥이 나고 식량이 떨어지자, 김아라의 아버지는 할 수 없이 집을 내다팔 수밖에 없었답니다.

        아버지가 실직하고 수입이 없어지고 쌀까지 떨어지자, 아버지는 집을 팔았다고 하는데, 30평짜리 집을 고작 옥수수 10kg에 팔았다고 하네요.

         

        그리고 김아라 가족은 아주 형편없는 집으로 이사를 갔는데요. 거의 허물어져가는 폐가 같은 집으로 이사를 가서 살았는데, 각종 벌레가 들끓고 쥐까지 나오는 형편없는 집에서 살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가정환경은 나빠지고 경제사정이 계속 악화되자, 김아라의 어머니와 아버지간에 싸움이 벌어졌고, 부모님들 간에도 사이가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어머니는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가출했다고 하는데, 어머니는 김아라에게 일주일 정도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한번 가출한 어머니는 일주일이 아니라 몇 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가출한 뒤에, 김아라는 아버지와 여동생 세명이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집안의 살림을 맡아서 하게 되었다고 해요.

        이 당시 김아라의 나이가 고작 10살 정도였는데, 10살인 김아라는 집에서 어머니를 대신해서 동생을 돌보아주고,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당시에는 국가에서 몇고랑의 밭을 주민들에게 나눠줘서, 경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해요.

        비록 어머니는 없었지만, 김아라는 아버지와 함께 밭에 나가서 텃밭을 함께 일구면서, 배추나 감자 등 먹을거리를 수확하는 보람을 느끼면서 그럭저럭 먹고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부터 일어났다고 하는데요.

        홀애비인 아버지가 재혼을 해서 의붓어머니가 들어온 것인데, 자신들의 자식 3남매를 데리고 들어온 새어머니가 나이 어린 김아라와 여동생에게 온갖 구박을 다 퍼부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 김아라의 여동생은 가까스레 외할머니댁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새로 들어온 새어머니는 자신의 자식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몰래 주고, 김아라를 홀대하고 온갖 구박을 다했다고 하네요그리고 새어머니가 구박한 사실들이 아버지에게 들통이 나고, 아버지와 새어머니간의 큰싸움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새어머니의 친정식구들까지 가세해서 큰 싸움이 벌어져서, 감아라의 아버지가 몰매를 얻어맞기까지 했답니다.

         

        그 후 아버지는 어찌된 일인지, 집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가출한 것인지, 아니면 사고가 난 것인지, 그 당시 10살밖에 안된 김아라는 그 이유를 알아낼 만한 나이가 아니었답니다.

         

        김아라의 어머니는 오래전에 중국으로 떠나버렸고, 아버지마저 실종되어버리자, 김아라와 여동생은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신세가 되어버린 셈이지요.

        아버지가 사라지자, 본색이 드러난 새어머니는 김아라에게 집에서 나갈 것을 종용했다고 합니다.


         

        고아나 다름없었던 김아라는 집에서 끝까지 버티려고 했지만, 새어머니의 구박과 횡포 때문에, 더이상 집에서 버텨내지 못하고 길거리로 쫒겨나고 말았지요. 

        집에서 쫒겨난 김아라는 아버지와 함께 일구던 밭으로 가서, 그부근의 산언덕위에 조그만 오두막집을 짓고서, 오두막집에서 혼자서 살았다고 하네요.

         

        10살짜리 어린아이가 나무 몇 개로 기둥을 만들고, 그 사이사이를 잔나뭇가지를 얹고서, 그 사이를 진흙을 퍼와서 붙여서, 한평짜리 오두막집을 지어서 살았다고 하는데요.

         

        10살베기 어린아이가 혼자서 오둑막집을 지었다고 하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 현실이랍니다.

         

        혼자서 오두막집에서 밤에 새우잠을 잤던 10살의 김아라는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김아라는 밤마다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서, 두려움에 가슴을 졸이면서 억지로 잠을 청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예쁘고 청초한 김아라가 어렸을 적에, 북한에서 이렇게까지 고달픈 삶을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전혀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김아라는 홀로 산속 오두막집을 짓고 살았는데, 너무도 힘들고 무서워서 텃밭에 나와서 종종 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김아라가 밭에서 울고있을 때에 아버지친구가 이를 목격하고, 그 아버지 친구집으로 입양을 가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아버지친구 집에서 또다시 아버지친구의 누나집으로 재입양을 가서, 한동안 살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간신히 입양이 되어 살아가던 김아름에게 뜻밖의 어머니로부터 희소식이 들려왔다고 합니다집을 가출한 후 중국에 정착했던 어머니가 사람을 시켜서, 김아라에게 소식을 보내온 것인데요.

         

        그후 어머니가 보내온 안내원을 따라서 김아름은 북한을 탈출할 수 있었고, 무사히 중국에 있는 어머니품으로 갈 수 있었다고 하네요. 

        김아라은 13살 때에 중국으로 가서 어머니를 만났다고 하며, 중국에서 잠깐 학교도 다녔다고 합니다.

         


        그리고 6년의 시간이 더 흐르고 19세 때인 2009년도에 어머니를 따라서 한국으로 입국했다고 합니다.

        북한과 중국에서 천신만고 끝에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어머니와 함께 한국으로 망명한 김아라의 애절하면서도 감동적인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답니다.

         

        김아라가 이렇게까지 북한에서 힘들고 고달픈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에 정말 놀라지않을 수가 없답니다.


        김아라는 8살의 어린나이 때부터 집에서 밭을 짓는 일을 했다고 하며, 여동생을 어머니처럼 돌보왔다고 합니다그당시 북한에서 김아라는 하루 한끼 제대로 굶지않고 먹는 것이 최대의 소망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김아라는 어렸을 적부터 북한에서 힘들고 궁핍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지금 이만갑에서 최고의 탈북미녀로 불리우면서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사로잡고 있는 김아라가 북한에서 이렇게까지 고달픈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정말 믿겨지지 않는답니다.

         

        김아라은 스스로 자신은 북한에서 어렸을 적에 제대로 먹지못해서, 발육상태가 좋지않아서 키도 남들보다 작고 피부도 안좋다고 하는데, 지금 방송에서 보면 김아름이 탈북여성 중에서 가장 키도 크고, 가장 세련되고 가장 예쁘게만 보인답니다.

         

        김아라은 이처럼 북한에서 생과사를 넘나드는 힘든 상황을 겪었지만, 그 어려움을 모두 다 이겨내고, 지금 한국에 잘 정착해서, 한국의 연기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답니다.


         

        북한에서 제대로된 교육을 못받았던 김아라는 한국으로 와서 2년만에 검정고시를 모두 합격했고, 명지전문대에 들어가 뷰티아트과를 이수함으로써, 놀라운 학구열을 보여주었답니다.

         

        또한 김아라는 채널A이만갑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이만갑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감이 되어, 이만갑의 인기를 유지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답니다.

        김아라은 웹드라마 아는 사람에 출연해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서, 한류유망주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영화 원더풀라이프에도 출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김아라은 예쁘고 청순한 미모와 절정의 연기력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데, 일본과 중국으로부터도 러브콜을 받고있다고 하는데요.

        김아라은 최근 중국의 영화오디션에 합격해서, 중국영화에도 진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얼굴도 예쁘고 말도 잘하고, 머리도 좋은 김아라가 한국과 중국, 일본을 오가면서 활발한 연기활동을 펼쳐서, 새로운 한류아이콘으로 성장해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렸을 적에 북한에서 생과사를 넘나드는 혹독한 시련을 모두 다 이겨내고, 한국으로 귀화해서, 인기여배우로 성장하고 있는 김아라가 그렇게 대견해보일 수가 없답니다.


         

        앞으로도 이만갑에서 예쁜 모습 계속 보여주시고, 한국의 정상급 여배우로서, 우뚝 솟아오르기를 큰 기대감을 갖고 지켜볼 작정입니다.

         

        참고로 김아라는 1991년생으로 현재 나이가 27세이며, 키는 162cm라고 합니다. 김아라는 현재 연기활동과 방송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니, 직업은 당연히 여배우라고 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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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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