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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 청순가련형의 미녀여배우 유지인의 영화와 남편, 키 

     

    유지인 나이 - 1956127(62)

     

    오늘은 70년대를 주름잡았던 미모의 여배우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70년대에 미모의 여배우들이 많이 등장했던 시기인데요. 특히 70년대 신트로이카로 불리우던 세명의 유명한 미녀애배우들이 있습니다.

     

    바로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가 그 주인공들이지요. 이 세명의 미녀여배우들은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한국의 간판여배우들이라고 할 만큼 왕성한 배우활동을 했던 인물들이고 인기도 매우 높았던 여배우들이지요.

     

    이 세명의 여배우들을 60년대 트로이카에 빗대어서 70년대의 신트로이카라고 불렀답니다. 이 세명의 여배우들이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주연자리를 독식하면서, 대표적인 미인여배우로 군림했었답니다.

     

    그런데 이 세명의 여배우 중에서 누가 가장 미모가 뛰어난지에 대해서, 대중들의 열띤 논쟁도 있었을 정도였지요.

     

     

    정윤희는 일본에서 아시아의 최고미녀라고 극찬할 만큼 그당시 대표적인 미인으로 인정받은 바 있구요. 장미희는 동양적인 은은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요.

     

    그런데 보는 사람에 따라서, 바라보는 미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세련미를 강조하는 분들은 유지인을 최고의 미녀로 꼽기도 했답니다.

     

    70년대 트로이카 세명의 여배우들은 서로 각자 개성이 다르고, 풍기는 멋과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누가 최고미인이라고 판단하기 곤란하답니다.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저는 유지인을 최고의 미인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유지인은 다른 여배우들과 다른 점이 있답니다.

    유지인은 다른 여배우들이 갖지못한 독보적인 매력이 있는데요. 유지인은 도회적인 매력을 진하게 풍기는 여배우로서, 세련된 미모가 가장 돗보이는 여배우였답니다.

     

    정윤희나 장미희가 귀엽고 우아한 미모라고 한다면, 유지인은 도시적인 현대여성의 세련미와 지성미를 물씬 풍기는 여배우로 유명했답니다.

     

    70년대만 해도 많은 여배우들이 좀 촌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경우가 많은데, 유지인은 처음부터 아주 세련된 미모을 한껏 풍기는 등 세련미에 있어서는 압도적이었다고 느껴진답니다.

     

    젊은 리즈시절의 유지인의 청순함이 묻어나오는 미모

     

    서구적인 느낌을 주는 커다란 눈망울, 아기자기한 느낌의 오똑한 콧날, 앵두같은 잎술 등 흠잡을 데 없는 미모와 날씬한 몸매는 3명의 트로이카 중에서 가장 으뜸이었지요.

     

    유지인의 장점은 세명의 트로이카 중에서 키가 가장 컷기 때문에, 몸매면에서 가장 빛이 났는데, 유지인의 키는 163cm로 70년대에 활동했던 여성으로서는 상당히 큰 키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의 키로 환산하면 169cm 정도라고 할 수 있답니다 

    또한 유지인은 도회적이고 세련된 미모 때문에, 현대물에서 유난히 빛이 번쩍번쩍 났다고 할 수 있지요.

     

    유지인은 뚜렷한 이목구비와 청순가련형의 이미지 때문에, 70년대 중반경부터 수많은 남성들로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불러일으켰던 여배우랍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여배우 금보라는 유지인을 인형같이 예쁜 배우라고 극찬을 했을 정도랍니다. 또한 금보라는 유지인을 자신이 닮고싶은 워너비같은 배우라고 칭송했지요.

     

    유지인은 자연미인으로서 지금의 성형미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미녀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의 여자연예인들은 90%가 성형미인들이라서, 얼굴에 손 하나 안댄 자연미인 유지인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70년대의 유지인의 미모는 지금의 김태희나 송혜교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답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사진을 보시면 공감할 수 있답니다.

    70, 8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미인대열에 항상 유지인과 정윤희가 거론된답니다.

     

    81년도 영화 '도시로 간 처녀'에서의 26세의 유지인 사진인데, 지금의 김태희나 송혜교보다도 더 예쁘다고 느껴진다. 성형을 전혀 안하고, 화장도 안 한 유지인의 미모가 성형으로 도배한 지금의 여배우들보다 한 차원 위라고 느껴진다. 지금의 여배우중에서 화장 안하고 이정도로 에쁜 여배우는 없다고 본다.

     

    유지인은 1974년도부터 은퇴한 1986년도까지 거의 12년 동안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여배우였답니다.

    정윤희 장미희와는 때론 경쟁하면서, 때론 서로 협력하면서 좋은 라이벌관계를 형성했던 유지인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타이틀롤을 맡으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해나갔답니다.

     

    유지인은 1973년도에 TBC 방송국에 공채텔런트 14기로 입사하면서, 연예계에 데뷔하게 됩니다. 1974년도에 영화 그대의 찬손으로 첫데뷔를 하게 됩니다.

    유지인은 74년도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었는데, 우연히 찍은 대학생잡지의 표지사진이 너무도 예뻤다고 해요.

     

    그래서 유지인은 당시 새로 제작하는 영화 그대의 찬손의 주연배우 후보로 추천을 받았다고 하며, 주연여배우 모집에서 무려 2300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여주인공자리를 획득해냅니다.

     

     

    유지인은 첫영화 출연 때부터 예쁜 얼굴 때문에, 수천대의 일의 경쟁률에서 당당히 1등으로 스카웃된 것이지요.

     

    그리고 여자연예인들이 가장 선망하는 것이 바로 화장품 CF모델이라고 하는데, 유지인은 데뷔초기인 75년도에 이미 쥬단학화장품의 전속모델로 발탁되면서, 공식미인으로 공인된 셈이고, 일년에 3편의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왕성한 연기생활에 돌입했답니다.

     

    유지인의 미모를 공인해준 것이 영화 그대의 찬손과 쥬단학화장품 전속모델이었다면, 유지인의 연기력을 공인해준 작품은 바로 서울야곡마지막 겨울이라는 작품을 들 수 있답니다.

     

     

    1977년도에 TBC에서 방송된 드라마 서울야곡에서 청순가련한 여주인공 연기를 잘 소화해서, 드라마가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유지인은 스타덤에 오르게 된답니다.

    그리고 1978년도에 이영하와 함께 출연한 영화 마지막 겨울이 크게 히트하면서, 유지인은 70년대 후반 최고의 스타로 우뚝 솟아오르게 되었지요.

     

    이 두작품 이전에는 그저 얼굴만 예쁜 영혼 없는 여배우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서울야곡마지막 겨울에서 영혼을 불사르는 눈물연기와 청순연기를 선보임으로써 관람객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선사하면서,

    미모와 연기력을 모두 갖춘 완벽한 여배우라는 찬사를 받게 된답니다.

     

    이후 유지인은 톱스타로서 수많은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흥행가도를 달려가게 되는데요.

    1978년도에 유지인이 출연한 영화 내가 버린 남자는 최다관객 동원이라는 금자탑을

    웠고,

    그 후 청춘의 덫’ ‘가시를 삼킨 장미’ ‘바람 불어 좋은날’ ‘피막’ ‘심봤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등 많은 흥행작품들에 출연하면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해나갑니다.

     

     

    당시 유지인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는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편수와 그녀의 수상내역을 보면 알 수가 있답니다.

     

    유지인은 인기절정이었던 1980년도 한해에만 무려 13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다고 합니다. 그해 최다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라는 기록을 세웠는데, 그만큼 유지인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았다고 할 수 있지요.

     

    77년도와 78년도에 TBC 연기대상에서 인기상을 두번 연속해서 수상했고, 79년도에는 TBC 최우수여자연기자상을 수상했으며, 79년도와 80년도에는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의 여우주연상 등 권위있는 상들을 많이 수상함으로써,

    유지인이 단지 얼굴만 예쁜 마네킹배우가 아니라, 진정 연기력을 갖춘 뛰어난 여배우라는 것을 입증해내었지요.

     

      유지인의 첫영화 '그대의 찬손'에서 가수 양파의 이수영과

     

    유지인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예술성이 높은 명작품들에 많이 출연했던 보기 드문 여배우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그당시 다른 여배우들은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자극적인 호스티스영화들에 출연해서, 손쉽게 돈을 버는 것이 유행했는데요.

     

    유지인 만큼은 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에 출연해서, 진정한 연기력으로 승부를 걸었던 당대에 희소가치가 높은 여배우라고 평가할 만 하답니다.

     

    유지인이 출연한 마지막 겨울’ ‘청춘의 덫’ ‘바람 불어 좋은날’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등의 영화들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아주 작품성이 뛰어난 전설적인 명작품으로 유명하답니다.

     

      유지인(좌측)과 장미희(우측)

     

    우리나라 여배우중 두 번째의 석사학위를 받은 인텔리여배우로도 유명하며, 미모와 연기력을 동시에 갖춘 빼어난 여배우가 바로 유지인이랍니다.

     

    당시 함께 인기경쟁을 벌였던 정윤희와 장미희도 나름대로 인기가 좋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유지인이 이들보다 미모와 연기면에서 한 수 위라고 평가할 수 있답니다. 적어도 세련미와 청순미에 있어서는 유지인이 톱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또한 유지인은 단 한건의 스캔들이 없었던 아주 모범적인 여배우였지요. 당시 함께 활동하던 정윤희나 장미희는 스캔들을 일으켜서 큰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바가 있지만, 자기관리를 잘 했던 야무진 유지인은 전혀 스캔들을 만들지 않았답니다.

       

    유지인은 74년도에 데뷔해서 약 12년 동안 톱스타로서 화려한 연기생활을 펼친 후에, 1986년도 10월 내과의사인 조태봉과 결혼하면서, 연예계에서 잠정 은퇴하게 됩니다.

    유지인의 남편 조태봉은 대전에서 내과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대전에서 가문 좋은 집안의 아들이라고 하며, 부친도 의사라고 합니다.

     

     

    유지인과 전남편 조태봉은 84년도에 용평스키장에 만나 사랑을 꽃피워나갔으며, 3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유지인은 혼인하면서, 당연히 연기자생활은 그만 두게 되고, 가사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그리고 남편과 사이에 두명의 딸을 낳게 되었지요.

     

    연예계도 완전히 은퇴하고 남편 뒷바라지와 자녀 양육에만 전념하는 유지인은 대중들에게 아주 모범적인 결혼생활을 하는 연예인으로 칭송을 받았는데요,

    그런데 놀랍게도 전혀 이혼할 것 같지 않았던 유지인이 2002년도에 결혼생활 17년만에 이혼을 발표했답니다.

     

      지금의 유지인 사진

     

    가장 모범적인 결혼생활을 해왔다고 평가받았던 유지인이 무려 결혼생활 17만에 이혼함으로써, 대중들에 놀라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지요.

     

    성격도 반듯했고, 행동거지도 모범적이었던 유지인이기에 그녀의 이혼은 매우 충격적이었답니다. 영원히 이혼할 것 같지 않았던 모범생 유지인은 결국 남편과 이혼을 하고, 연예계에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결혼생활 동안 거의 방송과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던 유지인은 이혼 후에 전성기 못지않게 다시 왕성한 연기활동을 벌여나갑니다.

     

     

    결혼생활 17년 동안 거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고, 가정에만 전념했던 그녀가 이혼함으로써 방송에 다시 복귀해서, 팬들은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이혼에 대해 애석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답니다.

     

    유지인의 이혼사유는 구체적인 내막은 잘 알 순 없지만, 전남편과의 성격차이라고 알려지고 있답니다.

     

    유지인은 방송에 출연해서 이혼에 대해 불필요없는 것들 다 떼어내서, 마음이 아주 편안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반듯하게 커줘서 마음이 흐뭇하고 행복하다고 심정을 밝혔답니다.

     

    유지인과 두 딸(왼쪽이 큰딸 조희수)

     

    유지인의 이같은 심경을 통해 판단해보면, 아마도 유지인은 결혼생활에 심한 속박감을 느꼈던 것 같고, 전남편과도 마음의 갈등이 심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부분입니다.

     

    유지인의 두딸은 모두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큰딸 조희수는 미국에서 인턴으로 취직을 해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지인의 두 딸들도 엄마 유지인을 많이 닮아서 미모가 대단하답니다.

     

    유지인은 이혼 후 계속해서 독신으로 살아오고 있으며, 앞으로 재혼애 대한 관심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유지인은 드라마에 출연해서, 연기하는 일에 더욱 집중하고 있고, 또한 유지인은 연극영화과 대학교수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유지인은 아직도 옛날의 그 미모를 어느정도 간직하고 있어 보기에 좋답니다. 유지인의 나이 62세가 되었지만, 예쁘고 곱게 나이 먹어가는 그녀가 멋진 여성으로 느껴진답니다.

     

    유지인의 진가를 보시려면, 유지인이 70, 80년대에 출연한 영화를 보시면, 그녀가 왜 70, 80년대의 최고의 미인인지를 실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언제 시간 되시면, 유지인이 전성기시절에 찍었던 영화 마지막 겨울이나 청춘의 덫’ ‘바람 불어 좋은날을 한번 감상해보세요! 유투브에서 그녀의 영화를 어렵지않게 감상하실 수 있답니다.

     

    유지인의 진정한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오늘은 70년대 신트로이카의 대표적인 미녀여배우 유지인을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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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램덩크2’ 댄서 김화영의 미모와 경력, 사진

       

      지금 인터넷에서 언니쓰의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화영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데요. 미모의 안무가 김화영에 대한 소개를 해보도록 하죠!

         

      현재 언니들의 슬램덩크2’에서 언니쓰2의 데뷔곡 맞지의 안무를 지도하고 있는 분은 전문안무가 김화영이라고 해요.

       

      볼륨감있는 날씬한 몸매와 빼어난 춤실력, 그리고 수준급이상의 눈에 띄는 미모로 언니들의 슬램덩크2’에 출연하자마자, 엄청난 스포트라이터를 받고 있는 인물이지요.

       

      미모로 따지면, 언니쓰 멤버들보다도 오히려 더 빼어난 미모를 갖고 있는 김화영은 슬램덩크에 출연하자마자, 빼어난 미모와 멋진 춤실력으로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있는 중이랍니다.


      주객이 전도되었다고나 할까요? ‘언니들의 슬램덩크’ 중심인물인 언니쓰 멤버들 못지않게 높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김화영은 오랫동안 JYP에서 안무코치를 맡아왔던 안무가라고 합니다.

       


      무려 JYP에서만 11년 동안이나 안무코치로 활동해왔다고 하며, 원더걸스나 미스에이 같은 잘 나가는 걸그룹들의 안무를 모두 도맡아서 개발하고 지도해왔다고 해요.

       

      안무가 김화영은 JYP의 수석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는 전문댄서랍니다.

       

      안무가 김화영은 이효리와 아이비, 원더걸스의 안무를 담당하기도 했던 톱안무가로 알려져 있고요,

      그리고 김화영은 비의 안무도 담당했는데, 박진영 사단 소속으로 유명한 가수들의 안무를 많이 담당했던 실력파안무가라고 합니다.

       

       

      원더걸스의 아이러니춤과 메타콘춤도 김화영이 만든 춤이라고 해요.

      유명한 가수들의 춤을 많이 개발했던 김화영은 박진영의 JYP에서는 가장 실력있는 안무가로 알려져 있답니다.

       

      김화영은 한때 가수 아이비가 노래 아하로 활동할 당시에 백댄서로도 참여한 적도 있구요. 비가 한창 전성기일 시절에 비의 안무를 담당하면서, 비와 스캔들이 터져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던 인물이지요.

       

      그당시 김화영이 비의 안무지도를 하면서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하지요. 두 사람의 스캔들이 사실인지, 아니면 단순한 루머인지는 두사람만이 알고있겠죠?

       

       

      김화영은 jyp소속으로 있으면서, 비와 아이비, 원더걸스, 미쓰에이 등 굵직굵직한 아이돌스타들의 안무를 개발하고 키워냈던 실력파 안무가라고 해요.

       

      특히 왕년의 인기걸그룹 원더걸스의 스타일과 춤은 김화영이 모두 만들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닐 정도로, 김화영은 원더걸스의 퍼포먼스를 완성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지요.

       

      원더걸스가 한창 인기를 끌었던 2007~2008년도에 불후의 명곡 탤미노바디의 댄스열풍을 일으킨 것도 김화영이구요. 

      2010년도에는 글든디스크의 올해의 안무가상을 수상할 정도로 실력파안무가로 명성이 높은 분이시죠.

       

       

      그렇게 실력과 미모가 뛰어난 김화영이 김규상과 합작으로 이번에 언니쓰2멤버들의 데뷔곡 맞지의 멋진 안무를 만들어 선보였답니다.

       

      맞지의 감미로운 멜로디와 환상적인 매칭이 이뤄지는 멋지고 상큼한 안무에, 언니쓰 멤버들은 기립박수를 보내면서 감탄을 하고 말았지요.

        김화영과 김규상이 함께 만든 맞지의 안무는 마치 실제 걸그룹 안무처럼, 발랄하고 상큼하고 귀여운 안무였답니다 

       

       

      김화영은 비록 아이돌가수는 아니지만, 연예인 빰칠 정도로 뛰어난 미모와환상적인 춤실력을 갖고 있는데, 김화영이 왜 아이돌가수가 되지 않았는지 정말 안타까울 뿐이랍니다.

         

      그럼 김화영이 만든 멋지고 상큼발랄한 맞지의 안무를 한번 감상해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언니쓰가 맞지안무를 연습하는 재미있는 동영상도 함께 감상해보도록 해요!

       

       

      언니쓰의 노래 맞지’ 1절 안무 동영상

       

       

       

       

       

      언니쓰의 맞지안무 연습 동영상

        

       

       

       

       

       

       

       

       

      아이비의 백댄서로 활동했던 김화영(맨좌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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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프라이즈천재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사망원인, 히트곡 'Rehab' 노래듣기

         

         

         

        서프라이즈’ 695회에서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팝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미스테리한 사망에 관한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영국의 팝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Rehab', 'Back To Black', 'Love Is A Losing Game'같은 명곡들을 발표하면서 2008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5관왕에 오르며,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로 불렸던 유명한 팝가수다.

         

        영국의 천재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가수로서의 인기 절정에 올랐던 27세의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했다. 서프라이즈에서는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한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미스테리한 죽음에 대한 사연이 소개되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팝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008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5관왕을 달성하면서,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로 이름을 날렸던 여팝가수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첫 번째 데뷔앨범인 ‘Frank’를 발표할 때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Rehab', 'Back To Black', 'Love Is A Losing Game'같은 주옥같은 명곡들을 계속 발표하면서, 영국과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단번에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008년도에만 그래미 올해의 노래상과 올해의 신인상, 그리고 그래미 여자 최우수공연상, 최우수 팝보컬상, 올해의 레코드상 등 다섯 개의 그래미상을 석권했는데, 그녀는 명실상부한 2008년도 최고의 팝여가수로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높은 인기를 끌었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011년도 723일날에 영국 런던의 캠던 자택에서 돌연 숨을 거두어서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그것도 인기절정의 시기에 갑작스럽게 사망함으로써,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의 가슴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60년대에 유행했던 소울을 2000년대에 부활시키고 다시 유행시킨 소울의 대표주자이자 싱어송라이터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던 팝가수다.

        그녀는 머리를 높이 말아올린 특이한 헤어스타일과 두터운 눈화장, 문신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바디패션으로도 큰 주목을 끌었던 개성만점의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런데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생전에 자신도 ‘27세 클럽의 저주를 받아서 곧 죽게될 것이라는 공포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특히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008년도부터 27세가 되는 해에 죽게 된다는 ‘27세 클럽의 저주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됐다고 한다.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노이로제가 되다시피했던 ‘27세 클럽의 저주란 무엇인가?

        ‘27세 클럽의 저주란 천재적인 뮤지션들은 27세를 넘기지 못하고, 27세가 되던 해에 악마의 저주를 받아서 모두 사망하게 된다고 하는 설이다.

         

         

        실제로 작곡능력이나 연주능력, 가창력이 뛰어났던 천재급 뮤지션들이 27세가 되던 해에 갑자기 사망했다는 것이다.

         

        천재연주가인 지미 헨드릭스, 천재음악가였던 로버트 존슨, 도어스의 리더 짐 모리슨, 롤링스톤즈의 리더 브라이언 존스,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 등 당대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자닌 이들 천재음악가들이 모두 27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한다.

         

        이것을 세간의 사람들은 ‘27세 클럽의 저주라고 부르고 있는데, 유명한 뮤지션들이 27세의 나이에 악마의 저주를 받아서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고 한다.

         


        이처럼 일찍 요절한 천재음악가들은 전부 27세의 나이에 죽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뚜렷한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죽음에 이를만한 뚜렷한 사망원인이 없이 갑자기 돌연사한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사람들 사이에는 이들이 ‘27세 클럽의 저주또는 악마의 저주때문에 죽었다는 루머가 퍼지게 된 것이다.

         

        천재음악가였던 로버트 존슨은 193827세의 나이에 갑자기 사망했는데, 그가 죽기 직전에 어떤 질병도 없이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에, 로버트 존슨과 악마와의 계약기간이 27세였기 때문에 그가 사망하게 된 것이라는 루머가 퍼져나가기도 했다.

         

        지미 헨드릭스

         

        천재적인 기타리스트로 유명한 지미 헨드릭스도 1970년도 런던의 한 호텔에서 사망했다고 하며, 죽었을 때의 그의 나이는 27세라고 한다.

        그리고 롤링스톤즈의 리더였던 라이언 존스도 똑같은 27세의 나이에 자신의 저택앞에 있는 수영장에 빠져서 익사했다고 한다.

         

        이처럼 당대의 천재급 뮤지션들 상당수가 모두 27세의 나이에 뚜렷한 이유도 없이 숨을 거두었던 것인데, 바로 이러한 현상이 ‘27세 클럽의 저주라는 것이다.

         

        영국 최고의 팝뮤지션으로 혜성처럼 떠올랐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2008년도에, 자신도 ‘27세 클럽의 저주를 받아서 곧 죽게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두려움에 휩싸여있었다고 한다.

         

         

        에이미 와인하우스 자신도 ‘27세 클럽의 저주때문에 사망했다는 천재뮤지션들과 여러가지 공통점을 갖고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노래를 스스로 작곡하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점.

        젊은 20대의 나이에 갑자기 큰 음악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

        매스컴과 대중으로부터 천재뮤지션이라는 별명을 듣고 있다는 점.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자신과 27세에 사망한 다른 뮤지션들이 이같은 공통점이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있었기에, 자신 또한 ‘27세클럽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여기고 있었으며, 그녀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포심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당시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술과 마약을 많이 복용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녀가 술과 마약에 중독된 것도 ‘27세클럽의 저주의 공포심을 잊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27세클럽의 저주는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구이자 낭설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호주 퀸즐랜드연구팀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팝스타들 1,000명 중에서, 27세의 나이에 사망한 사람은 불과 7%밖에 안된다고 한다.

         

        확률상 7%밖에 안되는 것을 갖고서,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27세클럽의 저주라는 허황된 루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27세에 사망했던 뮤지션들은 대부분 사망하기 전에 심한 마약중독이나 알콜중독에 빠진 상태였다고 한다.

         

        롤링스톤즈의 리더 브라이언 존스와 그룹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 등 대부분의 27세 사망자들은 아주 심각하게 마약이나 알콜에 중독되어 있었다고 하며, 이들은 잘못된 생활습관이 스스로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27세클럽의 저주의 노이로제에 걸려있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실은 마약과 알콜중독 증세가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녀는 2008년도에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술집에서 두명의 남자에게 주먹을 휘둘렀다가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으며, 또한 같은 해에 그녀는 심한 마약복용으로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후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마약중독과 알콜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더욱 깊게 빠져들어갔으며, 자신의 예상대로 27세가 되던 2011년도에, 런던의 자신의 집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고 한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사망원인은 심한 마약중독 및 약물중독이었다고 하며, 그녀의 예상대로 ‘27세 클럽의 저주때문에 죽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27세 클럽의 저주때문에 죽음에 대한 극심한 공포감과 두려움을 갖고 살았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약물중독을 끊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꼴이 되고야 말았다.

         

        2000년대 혜성처럼 나타나서 'Rehab', 'Back To Black', 'Love Is A Losing Game' 같은 당대의 명곡들을 유산처럼 남기고, 다시 바람처럼 사라져간 천재 싱어송라이터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27세의 나이에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계의 수많은 팬들에게 큰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남겨놓고 말았다.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던 천재뮤지션 에이미 와인하우스!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당대의 명곡 'Rehab''Back To Black'을 오랜만에 한번 감상해보도록 하자!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Rehab' 뮤비 동영상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Back To Black' 라이브공연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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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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