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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르단의 바위절벽도시 페트라와 눈부신 고대건축물들, 7대 불가사의

     

    요르단에는 바위산을 깎아서 만든 고대 절벽도시인 페트라가 존재한다.

     

    페트라는 고대시기에 요르단 남부의 척박한 땅 사막위에 지어진 고대도시의 유적지이다. ‘페트라가 유명해진 이유는 해발 1km의 산악지대에 바위를 깎아서 수많은 건축물을 짓고는 거대한 고대도시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요르단의 남쪽에 있는 사막지대에 바위산을 정교하게 깎아서 만든 절벽도시 페트라가 존재하는데, 이곳에는 바위절벽을 깎아서 신전이나 회당, 고분 등 무려 800여개가 넘는 건축물들을 만들어놓았는데,

    정말 보기에 너무도 멋지고 거대해서 보는 사람들에게 신비로움과 항홀경을 안겨다주고 있다.

       

    고대 절벽도시 페트라의 입구는 폭 3m의 좁은 헙로로 되어있고, 이 좁은 협로가 1,2km이상 계속 이어져있는데, 그 안에는 고대도시 페트라의 수백개가 넘은 고대 건축물들이 산재해 있다.

    런데 이 페트라의 모든 건축물들을 바위를 깎고 조각해서 만든 건축물들이라고 해서 놀라움을 주고있다.

     

    이 입구에 있는 좁은 협로를 따라서 1km 정도 계속 들어가면, 페트라의 대표적 건축물인 알카즈네가 있다.

     

     

    알카즈네는 바위절벽 위에 조각해서 만든 건축물로 마치 그리이스의 파르테논 신전처럼 멋지고 웅장한 자태를 하고 있는데,

    어 알카즈네도 바위절벽을 정교하게 조각해서 만들었다고 하며, 그 웅장하고 정교한 모습이 신비롭기 그지없으며, 마치 신이 빚어놓은 건축물처럼 아름답다.

       

    페트라의 일카즈네는 폭 30m에 높이가 43m인데, 바위산의 정면을 통째로 깎아서 만들었다고 하며, ‘알카즈네의 모습이 그리이스의 신전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페트라의 건축물들은 그리스로마의 문화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원전의 시대에 이렇게 높은 곳에 어떻게 올라가서 저렇게 정교하게 조각해서 만들 수가 있었는지가 정말 놀랍고 감탄스럽기만 하다.

     

     

    패트라는 사막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주변에 나무도 없고 철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43m나 되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이같은 신전모양을 조각할 수가 있었을까가 수수께끼이다.

     

    알카즈네건축물에는 석공이 버티고 서서 일할 수 있는 비데(버팀목)가 설치된 흔적도 전혀 없는데, 43m의 높은 곳에 올라가서 조각할 수 있었던 것은 페트라에 살았던 나바테아인들의 뛰어난 건축기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페트라의 거주민이었던 나바테아인들은 알카즈네를 조각할 때에, 맨 꼭대기위에서부터 깎아내려오는 조각공법을 이용했다고 한다.

     

    바위산 꼭대기에 올라가 일정한 길이로 깎아서, 그 깎아서 꺾인 바닥을 사람이 서있을 버팀목처럼 이용해서, 또 그 밑으로 깎아서 더 밑에 있는 절벽 버팀바닥을 만들면서 계속 아래로 깎아내려왔다고 한다.

     

      바위를 깎아 만든 알카즈네

     

    기원전 1세기경에 나바테아인들을 다른 나라사람들이 갖지못한 매우 뛰어난 선진건축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서, ‘알카즈네같은 우수한 고대건축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페트라의 알카즈네보물창고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과거에 주변의 원주민들이 이 알카즈네의 위쪽의 항아리 조각상 뒤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믿어서 이같은 이름이 붙여졌고,

    변의 백위인들이 보물을 찾기위해 이곳에서 도굴꾼들끼리 실제 치열한 전투를 벌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알카즈네 내부 모습으로 별다른 장식이나 조각이 없고 썰렁한 공간이다

     

    알카즈네의 겉모습은 멋지고 정교하지만, 알카즈네의 속으로 들어가면 별다른 장식없이 어두운 커다란 홀이 나오며, 그 홀과 연결된 커다란 방과 작은방 4개가 들어있다고 한다.

     

    그리이스 신전의 모습을 빼닮은 이 알카즈네는 나바테족의 왕의 무덤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나중에는 신전처럼 활용되었다고 한다.

     

    페트라에는 알카즈네말고도 또다른 유명한 알데이르건축물이 바위절벽을 깎아서 축조되어 있다.

    알데이르건축물도 바위절벽을 조각해서 만들었고, 그 웅장하고 정교한 모습이 로마나 그리이스의 고대건축물 못지않게 아름답다.

     

     

    높이 48m에 넓이 47m알데이르는 원래 나바테인들이 무덤의 용도로 사용했었는데, 후대에 기독교인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비잔틴시대부터는 수도원의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알데이르가 원래 수도원이라는 뜻이다.

     

    알데이르수도원은 페트라의 건축물들 중에 가장 크고 거대한 건축물이라고 하며, 높이 43m의 알카즈네보다도 더욱 규모가 크며, 페트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 외에도 페트라에는 수많은 건축물들이 남아있는데, 무덤과 사원, 물탱크와 수로, 목욕탕은 물론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도 페트라 안에 남아있다고 하는데, 무려 800개가 넘는 수많은 건축물들이 정교한 조각품처럼 조각되어 남아있다고 한다.

     

     

    페트라가 기원전의 시대에 얼마나 문화적으로 융성했던 도시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요르단의 사막 한복판에서 바위산들을 깎아 800개가 넘는 건축물들을 만들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인 기원전 1세기였다고 한다.

     

    지금처럼 과학적 기술적 발전의 혜택을 전혀 받지못했던 기원전 1세기에 이처럼 멋지고 웅장한 사원이나 각종 건축물들을 만들었다고 하니, 정말 페트라의 조각건축물들을 만든 제작자들의 높은 기술력에 감탄사로 절로 나오며, 놀랍기만 하다.

     

     

    이곳 페트라의 조각건축물들의 양식이 그리이스로마의 양식을 닮아있어서, 페트라를 만든 주인공이 로마인이나 그리스인들로 착각할 수 있지만, 이 페트라도시를 건설한 주인공은 나바테아인이라고 한다.

     

    나바테아인은 아랍 유목민들로서 기원전 6세기경부터 이 페트라지역에 정착해서 살았는데, 기원전 3세기경에 페트라를 중심지로 하는 고대왕국을 건국하였다.

     

    기원전 시대에 나바테아인들이 페트라에서 건설한 고대건축물들이 800개가 넘게 발견되었으며, 지금도 계속 발굴되고 있고, 계속해서 추가 건축물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계속 발굴해나가면 2천개가 넘는 유적지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나바테아인들이 이곳 페트라에 건설한 바위절벽을 깎아서 만든 정교하고 웅장한 절벽도시는 유네스토에 등재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 세계 7대불가사의로 선정하기도 했다.

    페트라는 인구 25,000명의 나바테아인들로 구성된 도시였으며, 상업과 무역으로 큰 부를 축적해나갔던 고대 도시국가였다.

     

    특히 페트라는 이집트와 아라비아, 페니키아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어서, 중개무역을 통해서 막대한 부를 쌓았고 한때 큰 번영을 누렸던 도시였다.

     

    페트라의 나바테아인들은 동양과 서양, 아랍을 잇는 중계무역으로 큰 번영을 누리게 됐는데, 중국과 인도의 비단과 향료를 아랍과 서양에 공급해주고, 서양과 아랍의 특산물을 중국과 인도로 공급해주는 중계무역을 통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래서 기원전 1세기경에 한 로마의 철학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민족은 바로 나바테아인들이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무역을 통해서 엄청난 부를 획득한 나바테아인들은 그 벌어들인 돈으로 페트라 계곡에다 천여개가 넘는 멋지고 웅장한 건축물들을 만들었고, 그래서 페트라 절벽도시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기원전 1세기에 절벽도시 페트라는 이미 극장과 목욕탕, 원형경기장, 그리고 상수도 시설까지 갖추고 있는 그 시대의 최첨단 도시였고, 주변도시들보다 문화적으로 훨씬 앞서나갔던 도시였다.

     

    페트라가 있던 바위산지 주변에는 나무도 전혀 없고, 물도 전혀 없는데, 이같은 불모지에 어떻게 2.5000명이 거주하는 최첨단 도시를 만들 수 있었는지가 의문거리가 아닐 수 없다.

     

    페트라는 나무나 식물이 거의 자라지 못하는 사막 한가운데의 불모지이기 때문에, 이런 불모지에서 사람이 집단으로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페트라주변에는 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데, 사람이 거주하려면 반드시 물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페트라의 나바테아인들은 어떻게 물을 조달할 수 있었을까?

    이 페트라지역으로부터 8km 떨어진 먼 곳에는 모세의 샘이라고 불리우는 샘물이 있다.

     

    그런데 8km는 너무도 멀어서 페트라의 나바테아인들이 식수나 용수로 이용하기가 곤란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절벽도시 페트라에 물을 끌어올 수 있는 기다란 수로가 발견되었고, 수로안에는 쇠파이트까지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기원전의 시기에 이미 나바테아인들은 모세의 샘물에서 8km나 되는 긴 수로를 연결해서 페트라지역까지 물을 끌어올 수 있었고, 이 물로서 나바테아인들의 식수로 이용할 수 있었다.

     

    미개한 시대였던 기원전 1세기에 수로와 쇠파이프를 연결해서 8km나 되는 먼곳으로부터 물을 끌어와서, 공급하였다고 하니, 페트라 주민들의 하이테크 기술력은 정말 현대의 기술에 뒤지지않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본다.

     

    성경의 구약성서의 출애굽기편에는 모세가 이 페트라를 통과해서 가나안땅으로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이곳 페트라는 매우 오래된 유서깊은 도시였다.

     

    기원전 3~1세기경에 크게 번영을 구가했던 페트라가 지금처럼 폐허로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페트라는 원래 고대 아랍인들이 살던 기원전 1400년경부터 도시로 형성되었고, 기원전 6세기부터는 나바테아들이 들어와서, 아시아, 아랍지역과 아프리카를 이어주는 중계무역으로 큰 부를 쌓으면서 번영을 누렸는데,

    기원전 106년경에 로마제국에 의해 침략을 당한 후에 로마에 복속되면서 페트라는 서서히 쇠락해갔다.

     

    그리고 기원후 6세기경에 이르러, 페트라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서 도시 전체가 지금처럼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요르단의 사막 위에 지어진 페트라 유적지는 협곡 속 고대 나바테아인이 건축한 거대한 고대도시 유적과 함께 로마가 건설한 건축유적 등 다양한 문화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고대도시 페트라는 마치 사막속에서 새로운 로마도시를 보는 것처럼, 규모가 엄청나게 크고 웅장한 고대도시로서, 바위절벽 위에 조각된 건축물의 웅장함과 정교한 건축기법이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지금은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할 도시로 이 절벽도시 페트라를 꼽고 있다.

      

    페트라는 로마시대를 거친 후에 아랍인, 십자군들이 한때 정복했었고, 현재는 베드인들이 페트라의 주변에 거주하고 있다.

     

    고대도시 페트라는 사막속에 핀 보석같은 도시라고 할 수 있고, 오늘날 수많은방문객들이 방문하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페트라가 유명해진 것은, 1989년도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최후의 성전의 마지막 촬영지로 활용되었기 때문인데, 존스부자가 협곡사이를 빠져나가면서 페트라의 알 카즈네성전이 배경으로 나오는데, 정말 멋지고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된 세계적인 명물은 요르단의 페트라 이외에도 중국의 만리장성, 페루의 맞추픽추, 이탈리아 콜로세움, 멕시코 치첸이트사, 브라질 거대 예수상, 인도 타지마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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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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