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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4.18 시라소니 이성순의 싸움실력, 신마적 대결 (한국최고의 싸움꾼)

목차

    우리나라 최고싸움꾼 시라소니의 싸움신화, 카네미야 박두성과의 대결

     

     역대 우리나라 최고의 싸움꾼은 누구일까? 조선시대의 임꺽정, 장길산, 그리고 일제시대의 구마적, 신마적, 김두한 등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내로라하는 주먹들이 꽤 있다.

     

    그런데 이들을 능가하는 진짜 싸움꾼이 한사람 있는데, 바로 시라소니 이성순이다.

    본명은 이성순이며 신의주 태생인데, 그는 시라소니라는 별명으로 더욱 유명한 사나이다.

     

    시라소니 이성순은 일제시대에 태어나 해방이후까지 활동했던 우리나라 최고의 싸움꾼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시라소니는 젊었을 시절에 난다긴다하는 주먹들을 모조리 꺾고, 조선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했던 인물이다.

     

    시라소니 이성순은 신의주태생으로 신의주일대에서 활동하다가, 북한지방에서 기라성 같은 주먹들을 모두 제압하고, 만주와 중국으로 건너가서 약 8년 동안 만주와 중국대륙을 누비면서, 일본야쿠자를 비롯한 수많은 국제주먹들을 쓰러뜨리고, 해방이후 남한으로 건너와서 서울에 정착했던 인물이다.


      

    키는 175cm에 젊은시절의 몸무게는 70kg 정도 나갔으며, 이처럼 신체는 보통 체구이지만 치타처럼 엄청나게 빨랐으며, 싸움기술이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탁월했다고 한다.

     

    시라소니는 싸움기술이 워낙 뛰어나서 사람들은 그를 싸움천재’ ‘싸움귀재’ ‘싸움기계라고 불렀다. 그는 혼자만의 기상천외한 싸움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10m 거리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달려가는 가속도를 이용해서, 공중으로 붕 뜬 상태에서 상대방이마를 들이받는데, 상대방을 들이받을 때에는 이마를 살짝 뒤로 제꼈다가 받아버리는 박치기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바로 공중걸이 박치기이다.


     

    시라소니의 공중걸이 박치기기술에 정통으로 걸리면, 대단한 주먹들도 이 박치기 한방에 혼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라소니가 공중걸이 박치기기술만 쓴 것은 아니며, 그의 육체 모든 곳이 바로 살인병기다.

    발차기도 수준급이고, 무릎찍기, 팔꿈치찍기 등 육체의 모든 단단한 부분들을 무기로 사용했으며, 전성기 시절에는 왠만한 상대는 주먹 한방으로 쓰러뜨릴 정도로 힘과 완력도 대단히 셌다고 한다.

     

    든든한 배짱, 엄청빠른 스피드, 강력한 힘, 다양한 싸움기술 등 이런 모든 요소들이 혼합되어 그를 싸움의 천재로 만들었다고 본다.

     

    간단히 소개하면. 시라소니 이성순은 일대일 싸움에서는, 단한차례도 진 적이 없다고 한다.

    시라소니가 얼마나 배짱이 좋았는가 하면, 그의 담력과 배짱을 알아볼 수 있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전설로 남아있는 시라소니의 1대 40의 싸움

     

    일제시대 때에 시라소니가 중국 천진에서 야쿠자패거리들과 싸움을 벌였는데, 놀랍게도 140의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대단한 싸움꾼이라고 해도, 140의 싸움은 결코 불가능한 싸움인 것이다.

     

    시라소니 이후의 시대에 싸움을 제일 잘했다고 하는 조창조씨는 인터뷰에서 15까지는 싸워서 이길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사람들과는 싸워서 결코 이길 수가 없다고 솔직하게 토로한 적이 있다.

    참고로 조창조씨는 시라소니 이후의, 한국에서 최고의 싸움꾼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배짱이 두둑하고 탁월한 싸움기술을 지녔던 시라소니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버린 것이다‘140의 싸움으로 유명한 그사건은 시라소니와 카네미야일당의 싸움이었다.

     

    중국 천진에서 주먹조직을 보유하고 있던 카네미야가 시라소니의 친구를 납치해서, 그들의 아지트에 감금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카네미야는 일본식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일제애 아부하는 조선인이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시라소니는 카네미야의 아지트로 혼자서 직접 쳐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천진의 산동네에 있던 카네미야의 아지트에는 카네미야의 부하 40명이 포진하고 있었다.

     

    아무리 담력이 좋은 싸움꾼이라고 하더라도, 40명의 상대들과 대치했다면, 곧바로 도망쳤을 것이다. 이것은 비겁한 것이 아니라 상식이다. 왜냐하면 결코 불가능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무도서는 ‘36도 하나의 무술의 방법이다.

    , 세가 불리할 때에는 도망을 잘 치는 것도 하나의 싸움기술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배짱이 두둑한 시라소니는 달랐다. 시라소니는 40명의 카네미야부하들을 저택 뒤에 있는 야산으로 유인했고, 산의 지형지물을 십분 이용해서 치고 피하면서 40명과 싸워나

    갔고

    두 개의 커다란 고목나무 틈으로 유인해서, 좁은 협로의 잇점을 활용해서, 저들을 공격하고 피하는 방식으로 카네미야부하들 20명을 혼자서 쓰러뜨렸다.

     

    카네미야 부하들 40명 중 절반을 쓰러뜨린 시라소니는 잠시 휴전을 하고 냇가로 가서 물을 마시면서 20분 정도 쉬었다가, 또다시 카네미야저택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카네미야저택의 마당에는 카네미야부하들이 아직 20명이 더 남아있었는데, 그들은 시라소니의 엄청난 배짱과 신출귀몰한 싸움실력에 완전 기가 질린 나머지, 싸움을 포기하고 길을 비켜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하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아지트의 깊숙한 사무실에 숨어있던 카네미야가 문밖으로 뛰어나오더니, 시라소니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을 선언하고 사과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부하 40여명을 굴복시킨 시라소니와 도저히 싸울 수 없다고 판단한 두목 카네미야가 싸우지도 않고 항복한 것이다. 물론 시라소니의 감금된 친구를 풀어주었다고 하며, 치료비와 위자료까지 지급했음은 물론이다.


     

    시라소니는 140의 절대절명의 순간에서도, 죽을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혈혈단신 혼자의 몸으로 적의 아지트로 쳐들어가서, 40명의 대군을 굴복시키고 친구를 구출해낸 것이다.

     

    시라소니가 140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비단 시라소니의 배짱과 싸움실력만을 논할 것이 아니라, 그가 약자를 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포악한 강자를 무찔렀다는 점을 더욱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죽을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서 혼자서 대군과 맞섰던 그의 의협심이 결국 승리를 쟁취했다는 교훈을 얻을 수가 있다.

     , 시라소니는 무턱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개념을 갖고 명분 있는 싸움을 싸웠던 것이다.

     

    지금의 조직폭력배들이나 깡패들은 강자에게는 약하면서, 약자들만 괴롭히는 비굴한 자들이 대부분이다. 시라소니 같은 협객이 그리워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뭏튼 시라소니가 혼자서 40명의 카네미야일당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앞으로 깨지지않을 한국 최고의 싸움신기록으로 영원히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라소니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싸움이 있는데, 바로 박두성과의 싸움이다. 그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무명이었던 시라소니 이성순을 북한의 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시킨 싸움이 바로 시라소니 대 박두성의 싸움이다.

     

    1930년대 중후반 안주의 박두성은 그당시 최고의 씨름꾼으로 유명한 인물이며, 힘과 기술이 엄청 쎄고, 전력이 뛰어나고 평안도지역에서 최고의 싸움꾼으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1930년대 후반 북한지역에서는 이화룡이 평양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고, 박두성이 안주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싸움경력으로 보나, 명성으로 보나 박두성이 이화룡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받던 시절이었고, 사람들은 박두성을 북한 최고의 싸움꾼으로 여기고 있었다고 한다.


     

    1936년경 이제막 신의주에서 큰주먹으로 성장한 21세의 시라소니는, 그 당시 최고의 싸움꾼으로 명성이 자자한 박두성을 직접 찾아가서, 당돌하게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때도 시라소니는 혈혈단신으로 열차를 타고 안주의 아지트로 찾아가서, 안주의 오야붕 박두성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안주역 부근의 뒷골목등지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한 박두성은 안주역 공터에서 시라소니와 마주하게 되었다.

     

    육척장신에다 기골이 장대한 박두성은 삐쩍 마르고 못생긴 시라소니의 몰골을 보고서, 그냥 돌아서려고 호탕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시라소니는 젊은시절에 67kg 정도의 아주 마른 체구였다고 한다.

     

    웃으면서 돌아서려는 박두성을 향해 시라소니는 당돌하게도 다음과 같은 말을 내밷었다.

    내레 박두성 당신이 하도 쎄다고 하길래, 한번 붙어보려고 왔시다

    한번 붙어봐야 누가 더 쎈디를 알 것 아니겠소?’

     

    자신보다 한참 어리고 덩치도 작은 시라소니의 당돌함에 기가 막힌 박두성은 그냥 시라소니를 확 밀어버렸고, 그것으로 시비를 끝내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박두성의 엄청난 오판이었다. 박두성은 장차 조선 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하게 될 시라소니를 너무나도 몰라본 것이다.

     

    그당시 최고의 싸움꾼이란 명성을 갖고 있던 박두성은 난생 처음 보는 말라깽이 시라소니를 너무 얕잡아본 나머지, 너무 방심했고 나중에 큰 화를 초래하고 만다.

     

    밀려났던 시라소니가 일어서면서 자세를 바로 잡고서는 지금부터 한판 붙어보자구 라고 말했다계속된 시라소니의 당돌함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온 박두성이는 곧바로 시라소니에게 선제타격을 가했다.

     

    박두성이의 솥뚜껑 같은 주먹이 시라소니의 턱을 강타했고, 연이어 박두성은 뒤로 밀려난 시라소니의 가슴을 커다란 발로 걷어차 버렸다. 


     

    엄청난 완력을 지닌 박두성의 선방을 두 번이나 얻어맞은 시라소니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박두성의 세 번째 공격이 그다음에 이어졌다. 박두성은 쓰러진 시라소니의 복부에 오른발킥으로 강타했다.

     

    시라소니는 박두성에게 선방을 빼앗기고, 두 번의 타격을 받았고, 쓰러진 상태에서 치명적인 복부공격까지 받았다. 두사람의 싸움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제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시라소니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이 그다음에 벌어졌다. 쓰러져서 신음을 하던 시라소니가 잠시 심호흡을 한 후에, 갑자기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시라소니는 박두성의 세 번의 타격을 받았지만,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땅을 박차고 튀어오르면서, 그대로 박두성을 들이받아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씨름과 싸움으로 몸을 단련시켜왔던 박두성의 반사신경은 빨랐다. 순간적으로 튀어오른 시라소니의 박치기공격을 박두성은 간발의 차이로 피해버렸다.

     

    박두성이가 박치기공격을 피하자, 시라소니는 또다시 두 번째 박치기공격을 가해왔고, 또다시 피한 박두성에게 시라소니는 세 번째 박치기공격을 가해왔다.

     

    시라소니의 난데없는 박치기공격으로 박두성은 잠시 주춤하게 되었고, 계속된 박치기공격으로 박두성은 수세에 몰리게 되었으며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타고난 순발력을 이용해서 시라소니의 세 번째 박치기공격까지 피한 박두성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자신의 박치기공격이 실패한 시라소니 또한 다음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박두성이 또다시 시라소니에게 선방을 날렸다. 박두성은 단지 힘만 쎈 싸움꾼이 아니라, 스피드도 뛰어났고 싸움기술도 탁월했다.



    함경도를 돌아다니면서 씨름판에서 열마리의 황소를 타냈을 정도로 힘도 장사였지만, 평안도의 수많은 싸움꾼들을 쓰러뜨리고 확보한 평안도 최고의 싸움꾼이라는 명성에 못지않은 탄탄한 싸움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박두성은 곧바로 시라소니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시라소니를 공중으로 집어던졌다. 거구의 박두성의 완력에 의해서, 공중으로 내동댕이쳐진 시라소니는 중심을 잃고 또다시 쓰러졌고, 그틈을 놓치지 않고 박두성의 또다른 킥공격이 시라소니의 가슴에 터졌다.

     

    이제 박두성이의 두번째 치명적인 공격으로 시라소니는 더이상 가망이 없어보였다.

    그런데 쓰러졌던 시라소니는 쓰러지면서 박두성과의 거리를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그리고 쓰러지는 탄력을 이용해서, 시라소니는 다시 용수철처럼 튀어올랐으며, 그대로 박두성의 이마를 들이받아 버렸다.

     

    이번의 시라소니의 박치기공격은 전과 달리 박두성의 이마에 그대로 꽂혔으며, 박두성은 충격을 받고 뒤로 밀려나 버렸다.

     

    그리고 시라소니는 오른발킥으로 날려서 박두성의 턱을 걷어찼고, 두 번의 타격을 받은 박두성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시라소니의 두 번의 공격을 받고 다소 충격을 받은 박두성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려고 하고 있었다.

     

    이때 시라소니는 박두성에게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10m 이상으로 거리가 벌어졌고, 시라소니가 공중걸이 박치기를 하기에 아주 적당한 거리였다.

     

    박두성이가 다시 일어서려는 순간, 시라소니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그대로 달려오면서 공중으로 도약했고,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걸이 박치기로 일어선 박두성의 이마를 들이받아 버렸다. 

    시라소니의 박치기공격은 정확하게 박두성의 이마에 적중되었고, 달려오는 가속도가 더해지고, 몸전체의 힘이 실려 엄청난 충격을 박두성에게 안겨주었다.


     

    시라소니의 공중걸이 박치기공격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박두성은 그대로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북한지역의 싸움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대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신의주변방의 신출내기 싸움꾼 시라소니가 북한에서 최고의 주먹으로 군림해온 박두성을 쓰러뜨리는 대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한판승부를 기점으로 해서, 시라소니 이성순은 북한 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하게 되며, 계속해서 수많은 싸움의 역사를 만들어가게 된다.

     

    평안도 최고의 주먹 박두성을 쓰러뜨린 이당시의 시라소니는 21살에 불과했다. 이때가 1936년도인데 이시기에 남한에서도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종로의 우미관에서 신출내기 김두한이 구마적을 쓰러뜨리고, 우미관의 실력자로 급부상하게 됐다.

    같은 시기에 남한에서는 김두한이 종로의 오야붕 구마적을 꺾고, 우미관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일이 발생했고, 북한에서는 시라소니가 평안도 최고의 주먹 박두성을 쓰러뜨린 것이다.

     

    남과 북을 대표하는 최고의 주먹들이 같은 시기에 남한과 북한에서 최고의 오야붕들을 쓰러뜨린 것이다.

      

    평안도지역 싸움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대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평안도지역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최고의 주먹 박두성을 신의주의 신출내기 싸움꾼 시라소니가 박치기로 쓰러뜨린 것이다.

     

    시라소니는 그후 북한에서 평양의 이화룡에게도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고, 신의주의 칼잡이 김장손을 맨손으로 상대해 쓰러뜨리면서, 자신의 명성을 더욱 드높이면서, 명실상부한 북한 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하게 된다.

     

    1930년대 후반 중국으로 진출한 시라소니는 만주 봉천, 상해, 북경, 천진등을 오가면서, 기라성 같은 수많은 국제주먹들을 쓰러뜨리고, 동양최고의 주먹으로 성장하게 된다.

     

    시라소니는 중국에서도 많은 야쿠자와 주먹들을 만나, 수많은 싸움신화를 이어나갔는데, 북경의 야쿠자오야붕 구로야마를 비롯해서 상해의 칼잡이 하야시, 중국 쿵푸의 달인 마오 등을 당당히 쓰러뜨리면서, 중국과 만주에서도 혁혁한 싸움신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만주 봉천에서는 만주일대의 최대의 주먹조직의 오야붕인 이상대의 중간보스 백창기를 맞대결로 쓰러뜨리면서, 실력을 인정받아서 한동안 이상대조직에서 식객노릇을 하기도 했다.

     

    시라소니와 신마적, 해학기의 대결

     

    또한 시라소니는 만주 봉천 유조구지역에서, 그 일대에 새로운 주먹조직을 구축했던 신마적 엄동욱과도 대결을 펼칠 뻔했던 유명한 일화도 있다.

    이 당시 시라소니는 신마적과는 직접 대결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신마적의 오른팔이었던 권투선수출신 해학기와 대결을 펼쳐서, 그를 완벽하게 KO시켜 버렸다.


     

    왕년에 권투선수출신으로 핵펀치를 휘둘렀던 해학기가 시라소니와의 싸움에서 주먹 한방 내뻗지 못하고, 눈깜짝할 사이에 시라소니의 공중걸이 박치기와 무릎찍기의 이중공격을 당해서,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1939년경 봉천의 유조구지역에서 새로운 주먹조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큰 위세를 떨치고 있던 신마적 주먹조직의 부두목격인 해학기를 간단하게 혼절시켰던 시라소니는 신마적의 큰 노여움을 사게되고, 신마적의 80명의 부하들에게 포위당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해학기를 비롯한 자신의 부하들 8명이 시라소니 한사람에게 모두 KO로 쓰러지자, 자존심과 권위에 엄청난 상처를 입었던 신마적이 시라소니와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비겁하게도 무장한 80명의 조직원들을 이끌고, 시라소니에게 쳐들어갔던 것이다.

     

    신마적의 80명의 부하들에게 포위당했던 시라소니는 신마적에게 일대일 대결을 제안했지만, 신마적은 총을 겨누면서 이를 피했는데, 그지역의 최고오야붕인 이상대의 화해주선으로 결국 서로 화해하게 된다.

     

    자신의 부하들이 시라소니에게 물씬 얻어맞은 것이 억울해 복수를 위해서, 80명이나 되는 부하들을 끌고, 시라소니에게 쳐들어간 신마적은 매우 비겁한 행동을 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비록 두사람이 직접 대결을 펼치지는 않았지만, 시라소니가 신마적과의 대결에서 사실상 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비겁한 신마적의 행동 때문에, 두사람간의 세기적인 대결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아있다.

     

    그렇지만 시라소니와 신마적이 실제로 싸움을 벌였다고 하더라도, 시라소니가 이겼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가 있다.

     

    항상 패거리를 만들지도 않고 조직을 동원하지도 않고, 오로지 혼자서 적진으로 들어가서, 난다긴다 하는 주먹들과 싸워 당당하게 승리를 거뒀던 시라소니는 진정한 싸움의 천재이며, 한국최고의 싸움꾼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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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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