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시라소니와 이정재부하들의 싸움대결, 동대문사단의 집단린치사건의 전모, 이석재

     

    우리나라에는 역대 유명한 싸움꾼들이 많이 있는데, 구마적과 신마적, 김기환, 이화룡, 김두한 등 이름만 들어도 기세등등한 내노라하는 주먹들이 있다.

    이들 주먹들은 한시대에 자신만의 나와바리를 구축하고는, 주먹조직의 오야붕으로 군림하면서 한시대를 주먹으로 풍미했던 싸움꾼들이다.

     

    그런데 조선을 대표하는 이들 주먹들 중에 누가 가장 강한 싸움꾼인지를 논할 때마다 항상 빠지지 않는 유명한 싸움꾼이 있다.

     

    바로 신의주 출신의 박치기제왕 시라소니 이성순이다. 신마적과 구마적, 김기환, 이화룡, 김두환 등 역대 뛰어난 주먹들이 많이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가장 강한 최고의 싸움꾼은 사라소니라는 것이 정설이다.

     

    다른 주먹들과 다르게 시라소니는 주먹조직을 갖지않고 혼자서 싸워나갔던 독불장군 싸움꾼이었다.

    시라소니는 21세 때에 중국과 만주로 진출해서 수많은 국제주먹들을 쓰러뜨리고, 중국대륙을 주름잡았던 철권의 사나이였다.

     

    시라소니는 항상 혼자서 적진으로 뛰어들어가 기라성같은 당대의 주먹들을 거침없이 쓰러뜨렸고, 전설과도 같은 싸움신화를 만들었던 최강의 싸움꾼이었다.

     

     

    시라소니는 40 1의 싸움에서도 승리하는 놀라운 전과를 거두면서 그의 이름을 만천하에 과시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싸움천재’ ‘싸움귀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1936년도에 21살의 나이로 중국으로 진출했던 시라소니는 중국대륙 곳곳을 누비면서 숱한 싸움신화를 이어나갔는데,

    북경의 오야붕 구로야마, 상해의 검도유단자 하야시, 쿵푸의 달인 마오, 일본야쿠자 이즈마, 천진의 오야붕 카네미야 등 난다 긴다하는 국제주먹들을 모두 쓰러뜨렸고, 아시아 최고의 주먹이라는 닉네임까지 얻게 된다.

     

    항상 혼자서 혈혈단신 적의 아지트로 뛰어들어가, 숱한 주먹들을 쓰러뜨리면서 명성을 쌓았던 시라소니는 당대 유명한 싸움꾼이었던 신마적, 이화룡, 김두환 등 보다 싸움실력이나 싸움기술에서 한수 위라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제강점기 때에, 북한지역과 중국대륙에서 숱한 싸움신화를 이워나갔던 최강의 조선싸움꾼 시라소니도 어쩔 수 없는 흑역사를 하나 갖고 있다.

    평생 일대일 맞대결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다는 싸움천재 시라소니이지만, 그런 시라소니도 동대문사단의 이정재 집단에게 아주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

     

    바로 시라소니 집단린치사건이 그것이다. 시라소니 역사상 가장 참혹하고 처참했던 이정재사단의 시라소니 집단린치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보기로 하겠다.

     

    ◆ 동양최고의 주먹 시라소니의 서울 입성

     

     1950년대 시라소니(중앙)와 동생들이 서울 명동거리를 걷고 있는 사진이다. 이당시 시라소니가 동생들보다 키가 훨씬 더 커 보이는데, 시라소니의 키는 175cm이며, 40~50년대에 그는 평균보다 더 큰 키에 속했다. 참고로 김두한의 키는 176cm로 시라소니와 비슷한 신장이다.

     

    일제강점기 때에, 중국과 만주대륙에서 활약을 펼쳤던 시라소니는 해방과 동시에 자신의 고향 신의주로 돌아왔고, 신의주를 비롯한 북한지역이 공산주의자들이 활개치는 세상이 되자,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낀 시라소니는 1946년도에 휴전선을 넘어서 남한으로 넘어왔고, 경성(서울)에 정착하게 된다.

     

    그당시 중국과 북한에서 최고의 싸움꾼으로 명성을 드높였던 시라소니는 보무도 당당히 경성에 입성해서, 그만의 제2의 싸움신화의 역사를 이어나가게 된다.

     

    경성 도착과 함께 명동의 막무가내 싸움꾼 무억의 일당과의 한판 싸움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던 시라소니는 아무 거리낌 없이 명동과 종로를 수시로 드나들었고, 급기야는 김두한의 아성인 종로 우미관에도 발을 들여놓게 된다.

     

    북한과 중국대륙에서 숱한 강자들을 쓰러뜨린 시라소니의 행보는 경성에서도 전혀 거침이 없었고, 김두한의 나와바리였던 종로와 우미관지역에도 종종 나타났는데, 이러한 시라소니의 행보는 우미관의 오야붕 김두한에게도 보고되었다.

     

    그리고 19462월 시라소니는 우미관의 종로회관에서 김두한과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되었는데, 김두한의 부하 십여명에 둘러쌓인 상태에서도 시라소니는 전혀 위축되지 않고 대담한 배짱과 담력을 보여주었는데,

    이런 시라소니의 담력과 기개에 놀란 김두한은 시라소니를 전격적으로 형님으로 대우해주게 된다.

     

    사실상 남한지역의 최고의 오야붕 위치에 있었던 김두한마저도 전설적인 싸움꾼 시라소니를 선배이자 형님으로서 대접해주고, 인정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6.25전쟁이 끝난 1953년도에 접어들자, 서울지역의 주먹의 판도가 많이 바꿔게 되었는데, 경성의 오야붕이었던 김두한이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주먹세계에서 손을 씻게 된다.

     

    그리고 최고의 오야붕이 사라진 경성(서울)지역에는, 군소 주먹조직이 할거하는 무주공산이 되어버렸고, 이러한 힘의 공백상태를 이용해서 이정재의 동대문 주먹조직이 최강의 주먹조직으로 서서히 발돋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시라소니가 느닷없이 동대문에 출현하게 된 것이다. 원래 시라소니는 명동파에 속한 주먹이었고, 정팔이 이끄는 중앙극장파에서 식객노릇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라소니는 이화룡의 명동파와 정팔의 중앙극장파를 모두 아우르는 조정자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그런 시라소니가 이정재가 이끄는 동대문의 상인연합회 사무실에 나타난 것이다. 일각에서는 시라소니가 이정재의 동대문 상인연합회에 나타난 것은 용돈을 뜯어가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물론 시라소니가 동대문에 와서 이정재로부터 여러차례에 걸쳐서 용돈을 타갔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시라소니가 과거 부산에서 부산 깡패들에게 큰 봉변을 당하던 이정재를 구출해주었던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시라소니가 이정재의 동대문 상인연합회를 찾아온 것은 용돈 때문이 아니라, 북한에서 월남해온 실향민들에게 점포자리를 몇개 분배해달라는 요구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정재는 서울에서 가장 큰 동대문시장을 총괄하는 상인연합회 회장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시라소니는 자신과 인연이 있는 이정재에게 자신의 고향사람들을 위해 동대문시장에 점포 몇 개를 제공해달라는 부탁을 하러왔던 것이다.

     

      이정재

     

    사실 이정재는 부산 피난시절에 국제시장 뒷골목에서, 부산토박이 패거리인 용가리파 10여명에게 집단 몰매를 맞을 뻔한 적이 있었고, 이 당시 이곳을 지나가던 시라소니가 그를 구해줌으로써 극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당시 국제시장 근처에서 점포를 운영했던 이정재와 용가리파 패거리간의 이권문제로 시비가 붙었고, 이정재와 용가리파 10여명간의 싸움이 벌어졌다.

     

    이정재는 경기도 이천출신으로 전국씨름대회에 나가서 3연패를 했고 황소도 여러마리 타냈을 정도로 대단한 씨름꾼이었고, 힘과 완력이 뛰어난 천하장사였고 싸움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부산 용가리파와의 싸움에서 처음에는 이정재가 우세를 보였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이정재가 몰리게 되었고, 용가리패거리에게 집단 구타를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때 길을 지나가던 시라소니가 이 싸움에 끼여들었고, 용가리파 깡패들을 두들겨패고 이정재를 구해줬다.

     

    , 시라소니는 이정재의 생명의 은인이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두사람간에는 좋은 인간괸계가 형성되어 형님과 동생 사이로 가까워지면서, 그러한 관계는 서울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참고로 시라소니는 1916년생이고 이정재는 1918년생으로 시라소니가 2살 더 많은 형님뻘이다.

     

    그런데 1953년 부산피난을 끝내고, 서울로 올라온 이정재는 동대문의 주먹세계를 장악했고, 동대문시장 상인연합회 회장으로 우뚝 솟아올랐다.

     

     

    동대문시장을 총괄하는 상인연합회 회장이 된 이정재는 엄청난 이권을 얻게됐고, 상인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여서 돈도 많이 벌게 됐다.

     

    또한 이정재는 기라성 같은 주먹들을 끌어모아서, 동대문을 중심으로 한 자신만의 거대한 주먹나와바리를 구축했다 

    , 이정재는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서 동대문지역의 부와 주먹을 동시에 확보하고는, 최고의 오야붕으로 급부상했다.

     

    정치계쪽으로 발길을 돌린 김두한을 대신해서, 동대문과 종로쪽의 주먹의 헤게모니를 이정재가 확보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동대문의 오야붕이된 이정재에게 과거에 도와준 인연이 있는 시라소니가 종종 찾아와서 용돈을 타갔던 것이고, 이정재는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대접해주면서 올 때마다 용돈을 수북히 안겨주곤 했다.

     

    그런데 시라소니는 동대문에 와서 계속해서 용돈을 뜯어갔고, 이정재의 부하들 앞에서 이정재를 하대하는 등 그를 얕잡아보는 듯한 행동을 해서, 이정재의 심기를 건드렸다.

     

    여기서 시라소니와 이정재가 충돌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시라소니 린치사건이 단순히 시라소니의 돈 요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시라소니 집단린치사건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그 당시 시라소니로 하여금 동대문 상인연합회 건물로 오도록 요구했던 것은 이정재측이었다.

    그리고 시라소니는 용돈을 요구하러 동대문에 간 것이 아니라,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을 위해 점포 몇 개를 요구하기 위해 간 것이다.

     

     

    시라소니 집단린치사건은 단순히 돈 문제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싸움천재 시라소니 대 이정재 주먹사단간의 기싸움 즉 세력싸움 때문에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다.

    그리고 시라소니가 이정재에게서 받아간 용돈의 대부분도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이나 과거 자기의 HID 부대출신 부하들을 위해서 썼다고 한다.

     

    1953년 당시 김두한 주먹조직이 와해되고 난 후, 이정재는 포스트 김두한을 노리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정재는 서울에서 가장 거대한 주먹조직을 만들고, 자신이 최고의 오야붕 자리에 오르길 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당대 최고의 주먹조직의 오야붕을 원했던 이정재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시라소니였던 것이다.

     

    시라소니도 나름대로 자신만의 계략을 갖고 있었는데, 일찍이 중국과 만주에서 기라성같은 최강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최고의 싸움꾼 소리를 들던 그는 서울에서도 최고의 주먹으로서 자리매김하길 원하고 있었고, 주먹세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시라소니는 김두한 이후의 가장 큰 주먹조직으로 우뚝 서게된 이정재의 동대문사단에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최고의 주먹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서울에서 가장 거대한 주먹사단을 만들었던 이정재는 더이상 시라소니의 이같은 행동을 그대로 묵과할 수만은 없는 형편이었고, 독불장군 시라소니가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이정재의 동대문사단은 엄청나게 커져있었다.

     

    시라소니가 돈 요구에 이어서, 이제는 동대문의 점포자리까지 요구해오자, 이정재는 자존심이 확 상했으며, 이참에 시라소니를 바짝 태워버리기도 결정한다.

     

     

    그런데 이정재가 시라소니와 대결을 펼치기로 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시라소니와 이정재 조직간의 대결은 어차피 주먹들끼리의 세력싸움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라소니 한사람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이정재가 너무도 잔인하고도 비열한 방법을 썼다는 데에 있었다.

     

    시라소니는 싸움을 할 때에나, 어디를 갈 때에도 혼자서 갔고, 항상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는 독불장군 스타일이다.

     

    그러한 시라소니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이정재는 사람을 보내어, 돈을 주겠다는 사탕발림으로 동대문 상인연합회 사무실로 시라소니가 오도록 유인했다.

    그리고 그 동대문상인연합회 사무실안에 시라소니 한사람을 잡기위해서 수십명의 행동대원들을 숨겨놓았고 무기까지 감춰두었다.

     

    이정재집단의 시라소니 린치사건은 우리나라 주먹 역사상 가장 추악하고 처참했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정재는 시라소니 한사람을 잡기위해서, 동대문사단의 주먹들을 거의 30명이나 동원했고, 쇠파이프와 손도끼, 삽자루 같은 치명적인 무기들까지 동원했다.

     

    세상에! 시라소니 한사람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자기 부하조직원 30명을 동원한 것도 모자라, 손도끼나 쇠파이프까지 동원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세계의 주먹역사상 아마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정재 동대문사단의 시라소니 집단린치사건

     

    우리나라 최대의 주먹조직으로 우뚝 서길 원했던 이정재의 동대문주먹조직은 아니꼬운 행동을 계속하는 시라소니를 더이상 가만 놔둘 수만은 없는 입장이었고, 뭔가 시라소니에게 본 때를 톡톡히 보여주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시라소니가 워낙 뛰어난 싸움실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정재의 동대문사단은 30명이나 되는 최정예 행동대원들을 선발해서, 동대문 상인연합회 건물 안과 밖에 배치시켰다.

     

     

    그리고 이정재는 시라소니를 상인연합회 사무실로 유인하기 위해서, 명동으로 사람을 보내서 시라소니가 동대문으로 오게 만들었다.

     

    또한 이정재는 동대문사단에서 싸움을 잘하는 최정예 행동대원 20명을 선발했는데, 이들은 모두 중간보스급 이상의 주먹들로서, 동대문지역에서 난다긴다하는 뛰어난 주먹들이었다.

     

    그 당시 시라소니와 싸우기 위해서 동대문 상인연합회 사무실에 모였던 대원들은 다음과 같다.

     

    김사범, 임화수, 조열승, 오영환, 이석재, 고일심, 김양수, 박남수, 이기만, 이명국, 차석준, 김태호, 이천일, 김동진과 부하 두명, 그리고 그외의 중간 행동대장급 5명 등 총 20명의 대원들이 사무실 안에 있었다,

     

    동대문파의 최고 원로인 김사범이 총지휘를 맡고, 그리고 동대문파의 2인자이자 연예계의 대통령이라고 불리우던 임화수와 부두목급인 조열승이 지휘보조를 맡았다.

     

    그리고 그 밑에 중간보스급 주먹인 쐐기 박남수, 씨름선수 출신 이기만, 철권 김양수, 차력사 고일심, 돌대가리 이석재, 돌주먹 오영환,  유도 4단의 차석준, 그리고 싸움독종으로 불렸던 김동진 등 동대문에서 내노라하는 주먹들 20여명이 총 망라되어 사무실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무실 밖에도 학생주먹 7명이 포진하고 있었는데, 신모씨를 중심으로 한 학생깡패 7명이 동대문 사무실 밖의 전당포 앞에서, 시라소니와 먼저 전투를 치르는 1차 저지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정재는 상인연합회 사무실 안에는 없었고, 뒤에 있는 또다른 건물의 사무실에 숨어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정재의 동대문주먹사단은 시라소니 한사람을 잡기위해서, 동대문 상인연합회 사무실 안에 20명이, 사무실 밖에 8명 등 총 30여명의 행동대원들이 포진하고 있었고, 또한 사무실의 책상 밑에는 손도끼와 쇠파이프, 삽자루 등 무기들까지도 구비해놓고 있었다.

     

     

    라소니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만일 맨주먹으로 시라소니를 쓰러뜨리지 못했을 경우에는, 마지막수단으로 손도끼와 쇠파이프 같은 무기를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다.

     

    시라소니 린치사건의 이 이야기는 그당시 실제로 이 시라소니 린치사건에 가담했던 동대문파의 중진급 주먹인사들이 증언한 이야기를 토대로 한 내용이다.

     

    이정재측에서 시라소니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서, 돈을 주겠다는 말로 그를 동대문 상인연합회 사무실로 유인해오게 된다.

     

    이정재와 그 일당은 정말 대단히 악랄하고 비열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 이전까지의 주먹세계에서는 상대방과 대결을 펼칠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먼저 선전포고를 하고, 싸움의 장소와 시간, 싸움을 벌이는 인원을 미리 전달해준 후에 정정당당히 만나서 맞짱을 뜨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것이 낭만파 주먹의 싸움관행이었다.

     

    그런데 이정재와 그 일당은 시라소니를 철저하게 속였고, 아무것도 모르는 시라소니를 30명의 행동대원들이 노리고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유인해서, 기습적으로 집단린치를 가했던 것이다.

     

    이것은 주먹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매우 비겁하고 비열한 짓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만큼 이정재와 그 부하들은 시라소니 한사람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시라소니가 약속된 시간에 이정재의 동대문 상인연합회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고, 시라소니가 동대문 사무실 근처로 다가오자,

    사무실 옆의 전당포앞에서 1차 저지선을 형성했던 학생깡패 7명이 시라소니의 앞을 가로막고 시비를 걸면서 시라소니와 학생깡패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사무실 밖에서 1차 저지선을 형성했던 이들 학생깡패들은 애시당초 시라소니의 상대가 되지 못했는데, 7명의 학생깡패들이 순차적으로 시라소니에게 돌진해서 싸움을 벌였지만, 시라소니의 탁월한 싸움실력에 모두 다 엄청 두들겨 맞고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시라소니는 동대문 상인연합회 사무실 밖에서, 자신에게 싸움을 거는 7명의 학생깡패들과 전혀 이유도 모르는 채 무작정 싸울 수밖에 없었고, 그들과 싸운 결과, 10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이들을 모두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고는 쓰러뜨려 버렸다.

     

    애시당초 풋내기 학생깡패들이었던 이들은 시라소니의 적수가 전혀 되지 못했고, 시라소니는 이들을 모두 쓰러뜨리고 난 후, 다시 동대문 상인연합회 건물안으로 들어갔다.

     

    이때에 시라소니가 학생깡패들이 자신을 공격했던 이유가 이정재의 지시로 이뤄진 일이라는 것을 눈치를 챘더라면, 나중에 당할 큰 수모를 피할 수도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시라소니는 학생깡패들이 시비를 건 이유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라소니는 너무도 단순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과거에 자신이 부산지역에서 10명의 깡패들에게 둘러쌓여 거의 초주검이 될 뻔했던 이정재를 구해주었던 은인이었기에, 이정재가 자신을 공격하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라소니는 이정재가 자신이 요구하는 데로 당연히 들어줄 것으로 믿고 있었다.

     

    시라소니는 드디어 이정재의 동대문 상인연합회 건물로 들어갔다.

    상인연합회 건물 2층으로 올라가면, 먼저 커다란 사무실이 나타나고, 이 사무실의 가장자리에 별도의 사무실이 있는데 그 곳이 바로 이정재의 사무실이다.

     

    이정재의 사무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커다란 사무실을 먼저 지나쳐야 하는데, 이 사무실에는 항상 이정재의 부하들 십수명이 포진해 있으면서 이정재의 호위를 담당하고 있었다.

     

    시라소니가 들어간 동대문 상인연합회 2층에 있는 20평 크기의 사무실안에는 무려 20여명이나 이정재측 행동대원들이 포진해 있었다.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사무실을 가로지른 시라소니는 그곳 행동대원에게 어이, 덩대 안에 있네라고 말을 걸었다.

     

     

    그러자 그 안의 이정재사무실 문 앞을 이정재사단의 서열 3위인 조열승이 가로막고 있었다.

    조열승은 시라소니에게 형님, 그만큼 돈을 많이 가져갔으면 됐지, 이젠 고만 좀 하시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라소니가 조열승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이정재 사무실 앞으로 걸어가자, 이정재사무실 문이 활짝 열리고, 그 안에 있던 김사범과 임화수가 밖으로 나오면서 시라소니를 가로막았다.

     

    김사범은 시라소니에게 형님, 우리는 더이상 형님에게 드릴 돈이 없어요. 더 이상 돈타령하지 마시고 그냥 돌아가세요! 만약 그냥 돌아가지 않는다면 커다란 낭패를 겪게 될 겁니다라고 말을 하면서 그를 제지했다.

     

    그렇지만 시라소니는 김사범의 말도 무시하면서 계속 이정재를 찾았다. 시라소니가 태도를 바꾸지 않자, 맏형인 김사범은 시라소니를 태워버려!라고 소리쳤고, 이 말과 동시에 사무실의 책상 밑과 다른 사무실에 숨어있던 모든 행동대원들이 튀쳐나오면서 시라소니를 둘러쌓다.

     

    제일 먼저 시라소니에게 돌진했던 장본인은 바로 김동진과 그의 부하였다. 김동진과 그의 부하는 시라소니 앞으로 돌진해가면서 동시에 주먹을 날렸다. 그렇지만 시라소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숱한 싸움경력을 가졌던 싸움의 달인이다.

     

    중국 만주를 누비면서, 수많은 강자들을 때려눕혔던 싸움천재 시라소니가 아니던가! 이정도의 공격에 맞아떨어졌다면, 싸움천재 시라소니가 아닌 것이다.

     

    시라소니는 조열승과 김사범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을 때부터,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감지했다.

     

    수많은 싸움경력을 갖고있는 시라소니는 동물적인 본능과 감각으로 위험한 분위기를 이미 간파했고, 마음속으로 전투를 준비했다.

     

     

    김동진과 그의 부하의 선제적 주먹공격들을 옆으로 쏜살같이 피하면서, 그대로 김동진의 이마를 들이받아 버렸고, 연이어 김동진 부하의 턱에 오른발킥을 날려서 동시에 두사람을 쓰러뜨려 버렸다.

     

    예상과 달리 시라소니가 김동진 등 두사람을 모두 쓰러뜨리자, 동대문사단의 행동대장인 오영환과 이명국이 시라소니 앞으로 돌진했다.

     

    시라소니는 잽싸게 이들의 공격을 파히면서, 오영환의 이마를 들이받았고, 또한 오른주먹으로 이명국의 명치를 가격해서, 또다시 두명의 행동대원들을 쓰러뜨렸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정재 사무실 안에서의 싸움으로 크게 당황했을 법한 시라소니였지만, 숱한 싸움경력을 갖고 있었던 시라소니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침착함과 대범함을 잃지않

    았고,

    침착하면서도 기민하게 싸움에 임해나갔으며, 싸움이 시작된 지 채 5분도 되지않은 시점에서, 벌써 동대문파 조직원 4명을 쓰러뜨린 것이다.

     

    동대문 사무실 안에서의 싸움 초반에는 시라소니가 원체 빠르게 움직이는 바람에, 동대문파 행동대원들의 공격들은 허공을 가르기만 했고, 시라소니를 좀처럼 잡을 수 없었다.

     

    이렇게 동대문파 행동대원들이 시라소니를 잡지못하자, 이번에는 이 행동대원들이 전부 시라소니를 뺑 둘러싸며 포위하기 시작했고, 포위한 상태에서 동시에 시라소니를 공격했다.

     

    아무리 싸움기술이 뛰어난 시라소니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십수명이 동시에 동서남북에서 공격해오면, 큰 낭패를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이정재 부하들이 포위한 채로 동시에 공격해오자, 시라소니는 또다른 기발한 싸움전략을 발휘한다.

    시라소니는 정면에 있는 고일심을 발로 차서 쓰러뜨려 길을 만들고는, 앞에 있는 책상들을 타고 넘으면서 행동대원들의 공격을 피해다녔다.

     

    시라소니는 이 책상을 뛰어넘으면서 상대를 머리로 들어밪았고, 또다시 저 책상을 뛰어넘으면서 또다른 상대방을 들이받았다.

     

    시라소니는 동대문 사무실 안에서 20명이 넘는 이정재 부하들과 싸움을 벌였지만 전혀 위축되지도 않았고, 이 책상 저 책상을 뛰어넘으면서 신출귀몰한 싸움실력을 발휘하면서, 행동대원들을 교란시켜 나갔다.

     

    동대문파의 2인자 임화수

     

    그러자 조열승이 시라소니 앞으로 돌진해서 주먹을 날렸는데, 하고 쓰러진 것은 시라소니가 아니라 조열승이었다.

    시라소니가 조열승의 주먹을 피하면서 그대로 조열승의 이마를 들이 받아버렸다.

     

    동대문사단의 3인자이자, 부두목격인 조열승이 시라소니의 박치기 한방으로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15분이 넘도록 동대문파 20여명이 시라소니 한사람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자 성질이 급한 이석재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어서 시라소니를 겨누었는데, 옆에 있던 김사범이 이석재의 권총을 빼앗아버렸다.

     

    사무실의 책상과 집기를 이용해서 이곳저곳으로 계속 피해다니던 시라소니가 드디어 벽쪽으로 몰리게 되었고, 동대문파 전 대원들이 우루루 시라소니 앞으로 몰려들었다.

     

    또다시 행동대원들의 포위망에 갇힌 시라소니, 그렇지만 이번에도 시라소니는 발차기로 한명을 쓰러뜨리면서 그 뒤에 있는 책상 위로 잽싸게 뛰어올랐다.

    시라소니는 20여명이 동시에 자신을 공격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책상위로 뛰어올라서 그들의 포위망을 무산시켰다.

     

    이번에는 시라소니의 두 번째 전술이 펄쳐졌는데, 책상위에 올라서서 행동대원들보다 높은 곳에 서서 공방을 주고 받는 전법이었다.

    이러한 탁월한 시라소니의 전법은 큰 효과를 발휘하였는데, 상대방보다 높은 위치인 책상위에서의 포지션은 상대방이 동시에 공격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동대문파 행동대원들이 시라소니를 제대로 공격하기 위해서는 책상위로 뛰어올라가야 했는데, 책상위에서 시라소니가 발로 계속 공격했기 때문에, 행동대원들은 책상 위로 쉽게 올라갈 수 없었다.

     

    동대문파에서 독종싸움꾼이었던 김양수가 간신히 책상위로 뛰어올랐지만, 오르기가 무섭게 시라소니의 오른발킥 공격을 받고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연이어 돌대가리 이석재가 또다시 책상위로 뛰어올랐지만, 시라소니의 박치기공격을 받고 공중제비를 돌면서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쓰러졌다 깨어난 김동진이 책상 위로 뛰어오르는 데 성공했고, 김동진과 시라소니가 책상위에서 서로 발차기공격을 주고받으면서 공방을 벌였다.

    그리고 이기만과 박남수가 책상위로 뛰어오르면서, 시라소니는 책상위에서 세명의 공격을 동시에 받게되면서, 수세에 몰리게 됐다.

     

    결국 시라소니는 책상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또다시 20여명의 행동대원들에게 포위당하는 불리한 상황에 몰리게 됐다.

     

     

    시라소니는 정면에 있던 박남수의 이마를 들이받았고, 동시에 이 책상 저 책상을 또다시 뛰어넘으면서, 이정재 부하들의 소나기 공격을 피해다녔다.

     

    싸움이 시작된 지 30분이 지나도록 20여명의 이정재 부하들이 한명의 시라소니를 잡지못하는 기막힌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시라소니가 얼마나 날쌔고 빨랐던지, 이정재 부하들의 주먹과 발길질은 허공만을 가르고 있었고, 시라소니는 신출귀몰하게 자신의 포지션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시라소니의 신출귀몰한 싸움기술에 더이상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이석재가 드디어 책상밑에 숨겨놨던 마대를 풀었고, 그속에 있던 쇠파이프를 꺼내들었다.

     

    원래 동대문사단의 전투계획은 가능한 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주먹으로 시라소니를 쓰러드리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나중에라도 동대문사단의 체면을 세울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동대문 행동대원들의 모든 공격들이 무위로 끝나고 시라소니를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만 무기를 사용한다는 계획이었다.

     

    30분 동안 행동대원 20명이 시라소니를 상대로 치열하게 공격했지만, 시라소니를 결코 쓰러뜨리지 못하게 되자, 조바심이 났던 행동대원 이석재가 무기를 꺼내들었던 것이다.

     

    이석재가 쇠파이프를 꺼내들자, 다른 대원들도 하나둘씩 모두 쇠파이프와 손도끼, 삽자루를 꺼내들었다.

     

    이제 싸움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해버렸다. 혈혈단신으로 동대문 사무실에 들어왔던 시라소니는 쇠파이프와 손도끼 같은 무기를 든 20여명의 행동대원들과 매우 불리한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20명이나 되는 이정재파 조직원들이 시라소니 한사람을 잡지못해, 무기까지 꺼내들다니, 정말 비열하고 기가 막힌 상황이 전개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말도 안되는 싸움이 존재할 수가 있는가! 맨손의 한사람을 잡기 위해서, 20명의 대원들이 모두 무기를 꺼내들고 공격하는 이 황당한 상황을!

     

    이제 동대문파 행동대원들이 쇠파이프와 손도끼를 휘두르면서 공격해오자, 그동안 우세를 보였던 시라소니는 단번에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김양수의 쇠파이프와 이석재의 손도끼와 박남수의 삽자루가 공중에서 춤을 추면서 시라소니를 공격해왔다.

     

    무기를 든 상대방의 공격으로 인해서, 수세에 몰린 시라소니는 이리저리 피해다니기에 바빴다.

     

    결국 박남수가 휘두른 쇠파이프가 시라소니의 머리를 강타했고, 잠시 시라소니가 주춤한 사이, 연이어 이기만이 휘두른 삽자루에 시라소니는 오른쪽 정강이가 찍혔는데,

    시라소니는 놀랍게도 그 삽자루에 얻어맞으면서 그대로 이기만을 들이 받아버렸다.

     

    이 시라소니의 박치기공격으로 이기만은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이렇게 두 번의 공격을 받은 시라소니는 데미지를 입고 잠시 주춤거렸는데, 또다시 김양수가 휘두른 쇠파이프를 머리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시라소니는 그로키상태에 몰리게 되었고, 연이어서 이석재가 내리친 손도끼에 다리를 찍힌 시라소니는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이 마지막 두 번의 공격이 시라소니에겐 치명타가 되고야 말았고, 시라소니는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그리고 쓰러진 시라소니를 향해 동대문 행동대원들의 집단 구타가 이여졌는데, 한번 피맛을 본 행동대원들은 마치 이리때처럼 쓰러진 시라소니에게 달려들어 몰매를 가하고 있었다.

    쓰러진 시라소니에게 조열승이 삽자루로 내리쳤고, 이어 박남수가 손도끼로 시라소니의 팔을 내리쳤고, 결국 시라소니는 기절하고 만다.

     

    그리고 돌대가리 이석재는 밖으로 나가 커다란 돌을 들고와서, 시라소니의 얼굴을 내리찍으려 하자, 김사범이 이를 말려서 무위로 끝났다.

     

    동양최고의 주먹 시라소니는 이렇게 동대문 사무실에서, 이정재의 부하들로부터 집단린치를 당하고 침몰하고야 말았다.

     

    이렇게 시라소니가 처참하게 쓰러지고 난 뒤에, 박병철이 사무실로 뛰어들어왔다.

     

    레슬링선수 출신인 박병철은 시라소니와 동대문 사무실 앞에서 만나기로 되어있었는데, 시라소니가 나타나지 않자 그대로 사무실로 걸어 올라왔다.

     

    뒤이어 나타난 박병철도 이정재 부하들에게 엄청나게 얻어맞고, 팔이 부러진 채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이정재는 부하를 시켜서 명동파에 시라소니가 쓰러진 사실을 알렸고, 명동파 조직원들은 쓰러진 시라소니를 즉시 병원으로 이송하였는데, 처음에는 반도병원으로 옮겼다가 다시 백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으로 이송되어온 시라소니를 보고, 의사는 웬 송장을 가져왔느냐!고 짜증을 냈다고 한다.

    이정재 부하들에게 집단린치를 당한 시라소니는 왼쪽 다리만 빼놓고 온몸의 모든 곳이 부러져버렸고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이것이 우리 주먹역사에서 가장 잔인하고 참혹했던 시라소니 집단린치사건의 전말이다.

    시라소니는 중국과 만주, 그리고 한반도에서 최고의 주먹으로 군림하다가, 비열한 이정재일당의 마수에 걸려들어 집단린치를 당한 후에, 주먹으로서 서서히 쇠퇴해 갔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했던 시라소니에게 며칠 후에 동대문파의 이석재가 병문안을 왔는데, 그는 시라소니의 다치지 않은 왼쪽다리를 쇠절구공으로 내리쳐서 부러뜨리려고 시도했다.

     

    시라소니 이성순 사진

     

    그런데 이석재가 쇠절구공으로 내리쳤을 때에 시라소니는 왼손으로 그 쇠절구공을 그대로 받아서 방어했으며, 그 후 소리를 질러서 복도에 있던 명동파주먹들이 입원실로 들어왔고, 이석재는 그대로 달아나버렸다고 한다.

     

    동대문의 돌대가리라는 별명을 갖고있는 이석재는 시라소니가 나중에 보복할까봐 두려워서, 아예 시라소니의 다치지 않은 왼쪽다리마저 부러뜨려서 시라소니를 완전 불구자로 만들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시라소니는 날쎈 운동신경으로 누워있는 상태에서도 이석재의 공격을 방어해냈다.

     

    시라소니는 병원에서 6개월간 입원해 있다가, 퇴원할 수 있었다. 완전 온몸이 부서지고 만신창이가 됐던 시라소니였지만, 불굴의 정신력으로 6개월만에 부상에서 회복되어 완치되었고, 병원에서 퇴원한 그는 이정재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고 한다.

     

    퇴원한 후에 시라소니는 팔당댐 인근의 야산으로 가서, 재활훈련에 돌입했고 칼던지기와 정권치기, 발차기 등 자신의 신체능력을 최대한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특별훈련을 수개월동안 지속했다.

     

    시라소니는 이정재일당에게 처참하게 당한 후에도, 주먹을 내려놓지는 않았고, 후에 인천을 왔다갔다 하면서 주먹생활을 당분간 계속 이어갔다.

     

    그리고 신익희와 장면의 대통령선거 경호원으로도 활동하는 등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벌여나갔다.

     

    그런데 시라소니의 이정재복수는 여러차례에 걸쳐 시도하려고 했지만, 석연치않은 이유로 인해서 실행되지 못했다.

    시라소니는 한동안 몸속에 권총을 넣고 다니면서 이정재의 주변을 따라다니면서 복수할 기회를 노렸지만, 그 때마다 이상하게 지인을 만나는 등 그의 복수를 실행하는 데에 계속 제동이 걸리곤 했다.

     

    1989년 드라마 '무풍지대'에서의 시라소니역의 박건식

     

    그리고 시라소니를 쓰러뜨린 이후, 이정재의 주먹조직은 엄청나게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해가고 있었고, 또한 이정재는 자유당의 이기붕의장과 손을 잡고서 자신의 동대문조직의 정치세력화를 꾀하였다.

     

    자유당의 2인자인 이기붕의 비호를 받게된 이정재의 동대문사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거대하고 막강한 주먹조직으로 발전해 버렸고, 아마도 시라소니는 최고 정치권력의 비호를 받게된 이정재를 더이상 복수를 할 수 없게 됐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끝내 시라소니는 이정재에 대한 복수를 하지 못했고, 결국 60년대에 접어들자 시라소니는 주먹에서 완전 손을 씻고, 기독교에 귀의해서 영락교회의 집사가 되어 독실한 신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정치권력과 결탁해서 자신의 주먹조직을 최대한도로 키워놓았던 이정재는 자유당말기에 각종 정치테러를 일삼고 다니는 등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4.19의거를 거치고 5.16혁명을 거치면서, 군사혁명정부가 들어선 후에, 정치테러를 일삼은 혐의로 혁명재판에 넘겨진 이정재는 619월에 결국 사형을 당하고 만다.

     

    시라소니에게 잔인한 집단린치를 가했던 이정재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시라소니는 주먹세계와 완전 손을 씻고 기독교에 귀의해서,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시라소니는 1983125일날 68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정말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반응형
    Posted by 프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