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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타닉호 침몰사고의 최후, 침몰날짜와 생존자

     

    사상최대의 선박사고로 기록되어 있는 사건은 바로 타이타닉호 침몰사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도에 세월호침몰사건이 발생해서, 전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세월호침몰사고로 인해서 무려 30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답니다.

     

    그런데 1912년도에 발생했던 타이타닉호 침몰사고때는 훨씬 더 많은 1,514명의 승객들이 사망했답니다.

     

    세월호 침몰사건도 규모가 컸지만, 지금으로부터 95년전에 발생한 타이타닉호 침몰사건은 세월호사건보다 5배 더 많은 희생자들을 양산시킨 사상최대의 해난참사랍니다. 

    세월호 침몰사건 3주년을 기념해서, 95년 전에 발생했던 타이타닉 침몰사건을 재조명해볼까 합니다.

     

    타이타닉호는 세월호보다도 8배나 더 큰 46,328톤급의 거대한 초호화유람선이랍니다. 타이타닉호는 화이트 스타 라인사가 만든 그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유람선이었다고 하네요.



    타이타닉호는 길이나 톤수 모두 세월호는 상대가 안될 정도로 엄청나게 크며, 11층으로 되어있고, 공연장, 수영장, 파티장과 휘황찬란한 연회장과 스위트룸을 갖춘 바다 위를 떠다니는 5성급 호텔이라고 할 만하답니다.

     

    타이타닉호는 유럽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초호화유람선으로 수천개의 객실을 갖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유람선입니다.

     

    이렇게 멋있고 완벽한 타이타닉호가 어쩌다가 대서양의 한가운데에서 침몰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며, 아직도 타이타닉호의 침몰사건은 금세기 최고의 해양참사로 남아있는 사건이랍니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사고의 표면적인 원인은 빙하와의 충돌로 알려져 있는데, 이에 대한 반론도 많이 있답니다.


     

    1912410일 영국의 사우샘프턴에서 승객을 2,223명을 태운 타이타닉호는 미국 뉴욕을 향해 장거리 항해를 시작했는데요

    타이타닉호가 운항을 시작한 지 4일이 되던 414일 오후 1140분경에 갑자기 쿵하는 소리와 함께 대서양의 한복판에서 커다란 충돌사고가 발생하게 됩니다.

     

    대서양의 한복판에서 타이타닉호는 20m 크기의 거대한 빙산과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으며, 그 충격으로 인해 배의 하단부분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났고, 그 균열을 통해서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선박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게 되었지요.

     

    구멍을 통해서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는 바닷물로 인해, 거대한 타이타닉호는 서서히 바다속으로 가라앉게 되었으며, 충돌 발생 후 2시간 30분만에 대서양의 차가운 바다속으로 완전 침몰하고 맙니다.


     


    이 당시 타이타닉호에 타고있던 승객 2,223명 중에서, 1,51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바닷물에 빠져서 사망하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승객중 709명은 구명보트등을 타고서 탈출해서,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배의 크기면에서나 사고의 규모, 사상자의 규모면에서 볼 때, 금세기 최대의 해양사고로 기록되었던 해난사건입니다.

    타이타닉호 침몰사건의 사망자수 1,514명은 세월호 사망자수보다 5배나 더 많은 엄청난 규모랍니다.

     


    거대한 빙하와 충돌한 타이타닉호는 바닷물의 급속한 유입으로 점점 가라앉는 상황이 되자, E·J·스미스 선장은 객실에 있던 모든 승객들에게 갑판으로 올라가서 탈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세월호 침몰사건 당시 승객들을 저버리고, 제일 먼저 탈출했던 이준석선장과 비교가 많이 되는 부분이라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답니다.

    세월호의 이준석선장은 자신은 승무원들과 제일 먼저 탈출하면서, 승객들에게는 제자리에 남아있으라는 안내를 하게했던 악질적인 선장이었지요.

     

    아뭏튼 타이타닉호 선장은 배의 갑판위에 비상시를 대비해 비치해놓았던 20개의 구명정보트를 내려서, 승객들을 태워서 내보내도록 조치를 취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명정의 정원수보다 타이타닉호의 승객들 수가 훨씬 더 많다는 점이었지요.

    턱없이 부족한 구명정으로 인해서, 서로 먼저 살겠다고 구명정에 오르는 아비규환의 상황이 벌어졌답니다.

     

    힘쎈 사내들이 나약한 부녀자들과 어린이들을 밀치고 먼저 살겠다고 구명정에 오르는 혼란스런 사태가 발생하자, 선장은 부녀자와 아이들을 먼저 승선할 수 있도록 승선규칙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여기서 매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고 해요. 부유한 사람들이 머물던 1등실 승객들은 예외적으로 8호구명정에 먼저 승선할 수 있는 우선권이 부여되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 뉴욕에서 대규모 백화점을 운영하던 거부 스트라우스부부가 함께 타이타닉호에 타고있었다고 합니다.

    69세의 이시도르 스트라우스와 63세의 부인 아이다 스트라우스는 하녀 헬렌과 함께 8호구명정에 먼저 승선할 수 있는 행운이 부여되었답니다.


     

    그런데 남편 이시도르는 승선했던 구명정에서 갑자기 내렸다고 하며, 구명정에 오르지못한 어린아이를 자기 대신 태워줄 것을 요구했다고 하네요.

     

    생사를 넘나드는 절대절명의 위기의 순간에서, 이시도르는 자신을 희생하고 가없은 어린아이를 대신 구명정에 태우게 했던 것입니다.

    정말 우리나라의 이준석선장과 또다시 비교가 되는 인도주의정신이 위대한 분입니다.

     

    1등실 승객들에게는 8호구명정에 우선적으로 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며, 1등실에 머무르고 있던 이시도르는 부인 아이다와 하녀 엘렌과 함께 8호구명정에 오를 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답니다.

    이시도르는 자신은 살만큼 많이 살았으니, 아직 살날이 창창한 어린아이를 구조해주는 것이 도리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스스로 부여된 우선승선권을 포기하고 침몰해가는 배에 남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는 부인도 곧바로 자신의 승선권을 포기하고 대신 그아이의 엄마를 자기대신 구명정에 태우게 했다고 하네요.

    이시도르의 부인 아이다 스트라우스는 자신은 끝까지 남편과 함께 하겠다고 말하면서, 남편과 함께 배에 남았다고 합니다.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가 없네요! 배가 침몰해가는 절대절명의 순간에서 노부부가 남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함께 자신들의 생존을 포기하고 말았네요. 결국 스트라우스부부의 하녀 헬렌과 어린아이와 그 모친이 구명정에 태워져서 탈출할 수 있었답니다.

     

    충분히 살 수도 있었는데,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타이타닉호에 남았던 남편

    이시도르의 부인 아이다는 객실의 침대에서 서로 손을 꼭 잡은 채로 타이타닉호와 함께 바다속으로 가라앉고 말았지요.


     

    정말 감격적인 한편의 영화와도 같은 실화가 아닐 수가 없답니다. 우리가 진실로 본받아야할 위대한 부부랍니다. 이 때에 살아남았던 생존자 하녀 헬렌이 미국으로 돌아가서 스트라우스부부의 애절한 사연을 소개했다고 하며,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값진 희생을 알게 되었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당시 타이타닉호의 구명정의 정원은 1.045명이었는데, 구조되지 못한 채 바다속에 빠져죽은 사람들의 수는 1,514명이라고 합니다.

     

    당시 구명정에 서로먼저 타기위해서, 서로 밀치고싸우다가 바닷물속에 빠져죽은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또한 구명정이 부족해지자, 스스로 바닷물속에 뛰어들어서 사망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당시 구명정에 태워져서 간신히 목숨을 구한 승객수는 709명이었는데, 구명정정원수보다 적은 이유는 서로 먼저 타려고 밀치다가 바닷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과 저체온증에 걸려 죽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지요.


     

    가까스레 20척의 구명정보트에 태워진 709명은 바다위에서 표류하다가, 몇시간 후에 출동한 RMS 카르파티아호에 의해서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타이타닉호의 침몰원인

     

    타이타닉호는 20m의 거대한 빙산에 충돌해서 침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타이타닉호는 사전에 승무원들이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충분히 침몰되는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타이타닉호의 전신통신을 담당했던 통신원들의 부주의로 인해서, 침몰사고를 당했다는 지적이 일고있는 부분입니다.

     

    타이타닉호 출항한 날로부터 사고가 난 날까지 다른 선박들로부터 대서양의 해로상에, 위험한 빙산들이 떠돌아다닌다는 통신을 여러차례나 받았다고 합니다.

    사고가 난 당일에만 무려 6차례나 빙산위험의 경고통신을 타이타닉호의 통신사들이 접수했다고 하네요.

     

    사고당일 저녁늦은 오후 1030분에 마지막으로 켈리포니안호의 통신원 에반스가 빙하조각의 존재를 통신해주었다고 하는데, 타이타닉호의 통신원 필립스는 바쁘다는 핑계로 빙산위험 통신을 제대로 접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통신이 수신된지 1시간 10분 후에 타이타닉호는 거대한 빙산과 충돌하게 됩니다.


     

    이당시 타이타닉호의 승무원들은 부근바다에 빙하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최고시속에 가까운 시속 24노트(44km/h)의 빠른 속도로 항해를 해가다 빙하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운명의 시간인 1912414일 밤 1140, 한 승무원에 의해서, 400m 전방에 20m 크기의 빙산을 발견했다고 하며, 급격하게 배를 우측으로 회전시켰지만, 타이타닉호가 원체 빨리 운항하고 있던 바람에, 배의 우측하단부분이 그만 빙산과 충돌하게 됩니다.

     

    충돌 직후 타이타닉호의 운항은 멈췄고, 균열부분으로 바닷물이 쏟아져들어왔던 것이지요.

     

    타이타닉호가 너무 늦게 빙산을 발견했던 것도 원인중 하나이며, 특히 타이타닉호가 너무 빠르게 운항했던 것도 충돌사고를 크게 키운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이타닉호가 위험한 빙산지대를 너무 빠르게 운항하고 있었기 때문에, 빙산을 발견하고 옆으로 돌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던 것이지요.

    타이타닉호가 충돌직전에 우측으로 배를 돌렸지만, 너무 빠르게 달려왔던 가속도 때문에, 배가 빙산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답니다.


     

    결국 커다란 빙산과 충돌한 타이타닉호는 균열이 생겨 침수가 발생한 배의 앞부분부터 바다속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충돌한 지 2시간 30분만에 완전 바다속으로 침몰하게 된답니다.

     

    1205분경 타이타닉호는 다른 배들에게 조난신호를 보내서 구조를 요청했고, 타이타닉호로부터 90km 떨어진 곳에 있던 여객선 RMS 카르파티아호가 구조를 위해서 항해해 왔답니다.

    그렇지만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지 1시간 30분이 지난 후라,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구명정에 타고있던 승객들만 구조하는 데에 그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구명정에 타고있던 709명의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타이타닉호의 침몰의 원인

     

    타이타닉호의 침몰의 원인은 대략 세가지로 파악할 수 있답니다.

     

    첫째 다른 선박에서 여러차례 보내왔던 빙산 존재의 통신내용들을 타이타닉호의 통신원이 주의깊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았다는 점.

     

    둘째 빙산위험의 경고통신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위험한 지대를 최고속도에 가까운 빠른 속도로 운항했다는 점.

     

    셋째 타이타닉호의 당직승무원이 빙산을 너무 늦게 발견했다는 점.

     

    넷째 타이타닉호의 구명정이 배의 정원수보다 적게 배치되었다는 점.

     

    이처럼 타이타닉호의 침몰은 여러가지 원인들이 함께 작용해서, 1,514명이 사망하는 대형참사가 되었답니다.

    타이타닉호 침몰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승무원들의 안전불감증과 안이한 대응조치라고 할 수 있답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당일에만도 무려 6번이나 주변선박들로부터 빙산위험의 통신을 수신했다고 하는데, 배의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이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충분히 1,514명이 죽는 대형참사는 예방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빙산이 있는 지대를 벗어나 다른 항로로 항해를 했어야 합니다.

     

    결국 타이타닉호도 그렇고, 세월호도 그렇고, 대형 해양참사는 사람이 그 원인이 되는 인재라고 할 수 있답니다.

     

    이와같은 타이타닉호 침몰사건을 쓰는 이유는 다시는 이와 같은 해양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서, 해난사고의 경각심을 주기위해서 쓰는 것입니다우리나라에서도 세월호 침몰사고 같은 대형참사가 발생히지 않았습니까?

     

    세월호 침몰사건도 그렇지만, 타이타닉 침몰사건을 다시 돌아보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안타깝고 불행한 대형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고있어야 할 것입니다.



    타이타닉 침몰사건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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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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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뱃살빼는 최고의 음식 방법, 갓 핑거루트의 효능과 파는곳

       

      비만, 많은 중년분들의 공통된 고민이 아닐 수 없는데요?

      사람이 나이가 40대 이상 중년으로 넘어가게 되면, 일반적으로 몸에 비만현상이 찾아오게 된답니다. 그 이유는 중년의 나이가 되면, 체내의 기초대사량이 20~30대에 비해서 줄어들기 때문인데요.

       

      섭취하는 양은 많은데 비해, 몸에서 사용하는 대사량은 감소하기 때문에, 소비되지 못하고 남은 것들이 몸의 비만이나 군살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40~50대가 되면, 몸의 기초대사량이 줄어들어서, 몸의 군살(나이살)이 찌개되는 것이랍니다.

       

      그렇지만 우리몸의 비만이 가속화되고, 특히 복부에 뱃살이 찌개 되면, 당뇨병이나 고지혈증, 심혈관질환, 암 등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크게 높아지게 된답니다.

      , 우리몸의 비만, 특히 복부비만은 각종 성인병을 일으키는 근본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비만이 오는 것을 나이탓으로 돌리지 말고, 효과적인 식이요법과 지속적인 운동으로 비만에서 탈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답니다.



       

      그런데 비만과 고질적인 복부비만은 매운맛을 통해서 잡을 수 있다고 하네요.

      한의학에서는 매운맛을 내는 음식이 우리몸의 비만해결에 좋은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한의학에서는 매운맛이 발산을 잘하는 효능이 있다고 하는데, 몸의 기운을 뚫어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매운맛이 체지방 감소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 매운맛이 몸에 쌓여있는 체지방을 몸밖으로 발산 또는 배출하는 데 효능이 좋다는 것이지요.

       

      또한 매운맛은 대장의 장운동을 촉진시키는 기능이 있어서, 비만의 또다른 원인인 변비해소를 도와주어서, 결국 비만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비만, 특히 복부비만에 시달리는 분들은 매운맛이 나는 음식을 먹는 것이 비만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지요.


         

      2015년 미국 와이오밍 약학대학 연구진에서 쥐실험을 실시했는데요.

       

      쥐에게 캡사이신 0.01%가 섞인 고지방음식을 먹인 결과, 대사활동이 크게 증가하고 에너지연소는 크게 증가한 반면, 체중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이 지방세포에 있는 에너지촉발수용체를 자극해서, 비만해소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지요.

       

      , 실험에서 매운맛=캡사이신이 비만해소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지요.


       

       

      비만해소에 좋은 음식 - 갓과 핑거루트

       

      그럼 비만을 해소해줄 수 있는 매운맛을 내는 음식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바로 갓과 핑거루트가 있습니다.

      갓과 핑거루트는 비만을 해소하고 각종 성인병을 예방해주는 효능을 지닌 음식이랍니다.

       

      갓은 비만해소 뿐만 아니라, 우리몸에 쌓여있는 각종 노폐물들을 몸밖으로 배출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는 음식이랍니다.

      우리가 갓김치를 먹으면, 매콤싸콤한 느낌이 드는데, 이것은 갓이 지닌 메운맛때문이지요.

       

      갓은 혈액이 탁해지며 정체되는 어혈형비만에도 효과가 매우 좋다고 하네요. , 갓은 비만해소 뿐만 아니라, 동맥경화 등 심혈관질환의 예방에도 좋은 효능을 지니고 있답니다.

       


      고혈압이나 심혈관질환이 있고, 비만이 있는 분들은 갓김치를 많이 드시는 것이 좋답니다. 살도 빼고 심혈관질환도 예방하고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지요.


      결혼하고 아기를 출산한 후에, 71kg에 허리둘레 33인치까지 살이 찌고 뱃살이 늘어난 이수정씨는 고도비만 때문에 큰 고민을 했답니다.

      이제 나이 30세밖에 안된 이수정씨는 비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1년 넘도록 비만해소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고 하네요.


       

      그결과 이수정씨는 몸무게를 15kg 감량하고, 허리둘레를 7인치나 감소시키는 데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수정씨가 비만해소에 성공을 가져다준 요소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운동과 식이요법이라고 합니다.


       

      이수정씨의 비만해소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음식이 바로 핑거루트라고 합니다.

       

      이수정씨는 식단관리가 비만해소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특히 이수정씨는 '핑거루트'섭취가 비만해소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 핑거루트의 효능 -

       

      핑거루트는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서 자라는 생강과식물이랍니다.

      핑거루트는 그 모습이 마치 손가락처럼 생겼다고 해서, 핑거루트라고 부른답니다. ‘핑거루트손가락처럼 생긴 뿌리과식물이라는 뜻이지요.


       

      핑거루트는 동남아에서 우리나라의 생강처럼, 음식에 조미료처럼 넣어서 맛을 내는 요리재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핑거루트는 몸의 냉증을 없애주어서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몸이 따뜻해지면 신진대사가 활발해져서 체내의 지방연소가 활성화되어, 결국 비만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몸에 있는 AMPK효소가 있는데, AMPK효소는 우리가 운동하는 동안에 몸에 있는 지방을 분해해주고, 새로운 지방의 생성은 억제해주는 역할을 하는데요.


       

      핑거루트에 들어있는 판두라틴성분이 AMPK효소를 활성화시켜 준다고 합니다.

      , 핑거루트를 섭취하면, ‘판두라틴의 작용으로 인해서, 우리몸의 지방이 태워지고 비만을 해소할 수 있게 된답니다.

       

      핑거루트를 그냥 먹는 것보다, 규칙적인 운동과 병행했을 때에 더욱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고 하네요. 

       

      실제로 2012년도에 인제대학교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핑거루트섭취 효과 실험을 실시했답니다.

       

      한국인 150명을 상대로 두집단으로 나눠서, A집단에는 3개월 동안 핑거루트를 매일 먹도록하고 동시에 규칙적인 운동을 하도록 하고 관찰했다고 합니다. B집단에는 핑거루트를 먹지않고 규칙적인 운동만 하도록 했답니다.



         그결과, 3개월 후에 A집단에 상당한 체중감소 효과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체중감소 뿐만아니라, 복부내장지방 감소, 복부피하지방 감소, 허리둘레 감소, 엉덩이둘레 감소 효과까지 나타났다고 하네요. 그냥 운동만 한 집단은 변화가 거의 없었다고 하네요.

       

      핑거루트의 이같은 효과가 인정되어서, 식약처에는 핑거루트를 기능성원료로 인정했다고 합니다.

       

      또한 핑거루트는 섭취시, 지방세포만 감소시키고. 근육량은 오히려 증가시켜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핑거루트의 판두라틴효소는 체내의 콜라겐 합성효소를 증가시켜서, 피부탄력이나 윤기를 더욱 좋아지게 하고, 피부주름은 감소시켜 준다고 하네요.

       

      따라서 핑거루트를 섭취하면서 다이어트를 할 경우에는 체중은 감소하지만, 피부탄력이 더욱 좋아져서, 피부건강이나 젊은피부는 유지해준다고 합니다. 기미,주근깨,검버섯의 생성도 억제해주는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핑거루트를 섭취하면서 규칙적인 운동을 해준다면, 비만을 해소하고, 동시에 젊고 탄력있는 피부를 되찾을 수 있답니다. 당연히 복부비만도 해소된답니다.


         

      또한 핑거루트가 체내에 들어가면, 염증 유발인자의 활동을 저해함으로써, 염증성질환도 예방해준다고 하네요.

      실제로 실험을 통해서, 핑거루트가 채내의 염증유발 효소의 활동을 억제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합니다.

      핑거루트는 암세포의 생성과 증식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답니다. 따라서 핑거루트는 위궤양과 대장암 예방에 좋다고 합니다.

       

      핑거루트는 당뇨병, 심근경색 같은 심혈관질환 등의 성인병이나 암을 예방해준답니다.

       

      핑거루트 먹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시중에 핑거루트를 말려서 판매하는 것도 있고, 분말가루로 된 것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말린 핑거루트는 끓는 물에 넣어서, 차처럼 마셔도 좋고요. 우유 한컵에 핑거루트 한스푼 넣어서 먹어도 좋답니다.

        분말로 된 핑거루트를 채소볶음, 샐러드, 나물무침 등에 조금씩 뿌려서 섞어먹는 것도 좋답니다.

       

      이 경우 핑거루트를 티수푼으로 2스푼 정도 넣어서, 먹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핑거루트의 하루섭취 권장량과 부작용, 판매처

         

      핑거루트 하루 섭취량은 말린 핑거루트의 경우, 종이컵으로 1/3컵 정도 먹는 것이 좋답니다.

      핑거루트 분말은 하루 1~2 티스푼을 섭취하는 것이 좋답니다.


       

      핑거루트는 생강과에 속하는 식물이기 때문에, 따뜻한 성질이 강해서 열이 많은 사람이나 장이 안좋은 사람은, 너무 많이 먹으면, 심한 복통이나 설사가 일어날 수 있으며, 과다 섭취하면 피부두드러기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적게 섭취해야 합니다. 티스푼으로 하루 1~2이내의 양을 섭취하는 것이 좋답니다.

       

      핑거루트 판매처는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핑거루트를 구입할 수 있답니다.

      핑거루트는 다음쇼핑하우’ ‘네이버쇼핑’ ‘11번가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지요. 핑거루트는 분말형태나 말린 형태나 환의 형태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핑거루트 분말가루 1kg15,000원 정도의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핑거루트차의 형태로도 나오고 있는데, 이경우에는 좀 더 비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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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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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우리나라 최고싸움꾼 시라소니의 싸움신화, 카네미야 박두성과의 대결

         

         역대 우리나라 최고의 싸움꾼은 누구일까? 조선시대의 임꺽정, 장길산, 그리고 일제시대의 구마적, 신마적, 김두한 등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내로라하는 주먹들이 꽤 있다.

         

        그런데 이들을 능가하는 진짜 싸움꾼이 한사람 있는데, 바로 시라소니 이성순이다.

        본명은 이성순이며 신의주 태생인데, 그는 시라소니라는 별명으로 더욱 유명한 사나이다.

         

        시라소니 이성순은 일제시대에 태어나 해방이후까지 활동했던 우리나라 최고의 싸움꾼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시라소니는 젊었을 시절에 난다긴다하는 주먹들을 모조리 꺾고, 조선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했던 인물이다.

         

        시라소니 이성순은 신의주태생으로 신의주일대에서 활동하다가, 북한지방에서 기라성 같은 주먹들을 모두 제압하고, 만주와 중국으로 건너가서 약 8년 동안 만주와 중국대륙을 누비면서, 일본야쿠자를 비롯한 수많은 국제주먹들을 쓰러뜨리고, 해방이후 남한으로 건너와서 서울에 정착했던 인물이다.


          

        키는 175cm에 젊은시절의 몸무게는 70kg 정도 나갔으며, 이처럼 신체는 보통 체구이지만 치타처럼 엄청나게 빨랐으며, 싸움기술이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탁월했다고 한다.

         

        시라소니는 싸움기술이 워낙 뛰어나서 사람들은 그를 싸움천재’ ‘싸움귀재’ ‘싸움기계라고 불렀다. 그는 혼자만의 기상천외한 싸움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10m 거리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달려가는 가속도를 이용해서, 공중으로 붕 뜬 상태에서 상대방이마를 들이받는데, 상대방을 들이받을 때에는 이마를 살짝 뒤로 제꼈다가 받아버리는 박치기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바로 공중걸이 박치기이다.


         

        시라소니의 공중걸이 박치기기술에 정통으로 걸리면, 대단한 주먹들도 이 박치기 한방에 혼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시라소니가 공중걸이 박치기기술만 쓴 것은 아니며, 그의 육체 모든 곳이 바로 살인병기다.

        발차기도 수준급이고, 무릎찍기, 팔꿈치찍기 등 육체의 모든 단단한 부분들을 무기로 사용했으며, 전성기 시절에는 왠만한 상대는 주먹 한방으로 쓰러뜨릴 정도로 힘과 완력도 대단히 셌다고 한다.

         

        든든한 배짱, 엄청빠른 스피드, 강력한 힘, 다양한 싸움기술 등 이런 모든 요소들이 혼합되어 그를 싸움의 천재로 만들었다고 본다.

         

        간단히 소개하면. 시라소니 이성순은 일대일 싸움에서는, 단한차례도 진 적이 없다고 한다.

        시라소니가 얼마나 배짱이 좋았는가 하면, 그의 담력과 배짱을 알아볼 수 있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전설로 남아있는 시라소니의 1대 40의 싸움

         

        일제시대 때에 시라소니가 중국 천진에서 야쿠자패거리들과 싸움을 벌였는데, 놀랍게도 140의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대단한 싸움꾼이라고 해도, 140의 싸움은 결코 불가능한 싸움인 것이다.

         

        시라소니 이후의 시대에 싸움을 제일 잘했다고 하는 조창조씨는 인터뷰에서 15까지는 싸워서 이길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사람들과는 싸워서 결코 이길 수가 없다고 솔직하게 토로한 적이 있다.

        참고로 조창조씨는 시라소니 이후의, 한국에서 최고의 싸움꾼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배짱이 두둑하고 탁월한 싸움기술을 지녔던 시라소니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버린 것이다‘140의 싸움으로 유명한 그사건은 시라소니와 카네미야일당의 싸움이었다.

         

        중국 천진에서 주먹조직을 보유하고 있던 카네미야가 시라소니의 친구를 납치해서, 그들의 아지트에 감금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카네미야는 일본식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일제애 아부하는 조선인이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시라소니는 카네미야의 아지트로 혼자서 직접 쳐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천진의 산동네에 있던 카네미야의 아지트에는 카네미야의 부하 40명이 포진하고 있었다.

         

        아무리 담력이 좋은 싸움꾼이라고 하더라도, 40명의 상대들과 대치했다면, 곧바로 도망쳤을 것이다. 이것은 비겁한 것이 아니라 상식이다. 왜냐하면 결코 불가능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무도서는 ‘36도 하나의 무술의 방법이다.

        , 세가 불리할 때에는 도망을 잘 치는 것도 하나의 싸움기술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배짱이 두둑한 시라소니는 달랐다. 시라소니는 40명의 카네미야부하들을 저택 뒤에 있는 야산으로 유인했고, 산의 지형지물을 십분 이용해서 치고 피하면서 40명과 싸워나

        갔고

        두 개의 커다란 고목나무 틈으로 유인해서, 좁은 협로의 잇점을 활용해서, 저들을 공격하고 피하는 방식으로 카네미야부하들 20명을 혼자서 쓰러뜨렸다.

         

        카네미야 부하들 40명 중 절반을 쓰러뜨린 시라소니는 잠시 휴전을 하고 냇가로 가서 물을 마시면서 20분 정도 쉬었다가, 또다시 카네미야저택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카네미야저택의 마당에는 카네미야부하들이 아직 20명이 더 남아있었는데, 그들은 시라소니의 엄청난 배짱과 신출귀몰한 싸움실력에 완전 기가 질린 나머지, 싸움을 포기하고 길을 비켜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부하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아지트의 깊숙한 사무실에 숨어있던 카네미야가 문밖으로 뛰어나오더니, 시라소니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을 선언하고 사과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부하 40여명을 굴복시킨 시라소니와 도저히 싸울 수 없다고 판단한 두목 카네미야가 싸우지도 않고 항복한 것이다. 물론 시라소니의 감금된 친구를 풀어주었다고 하며, 치료비와 위자료까지 지급했음은 물론이다.


         

        시라소니는 140의 절대절명의 순간에서도, 죽을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혈혈단신 혼자의 몸으로 적의 아지트로 쳐들어가서, 40명의 대군을 굴복시키고 친구를 구출해낸 것이다.

         

        시라소니가 140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비단 시라소니의 배짱과 싸움실력만을 논할 것이 아니라, 그가 약자를 구하기 위해서, 그리고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포악한 강자를 무찔렀다는 점을 더욱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죽을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서 혼자서 대군과 맞섰던 그의 의협심이 결국 승리를 쟁취했다는 교훈을 얻을 수가 있다.

         , 시라소니는 무턱대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개념을 갖고 명분 있는 싸움을 싸웠던 것이다.

         

        지금의 조직폭력배들이나 깡패들은 강자에게는 약하면서, 약자들만 괴롭히는 비굴한 자들이 대부분이다. 시라소니 같은 협객이 그리워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뭏튼 시라소니가 혼자서 40명의 카네미야일당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앞으로 깨지지않을 한국 최고의 싸움신기록으로 영원히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라소니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싸움이 있는데, 바로 박두성과의 싸움이다. 그당시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무명이었던 시라소니 이성순을 북한의 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시킨 싸움이 바로 시라소니 대 박두성의 싸움이다.

         

        1930년대 중후반 안주의 박두성은 그당시 최고의 씨름꾼으로 유명한 인물이며, 힘과 기술이 엄청 쎄고, 전력이 뛰어나고 평안도지역에서 최고의 싸움꾼으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다.

        1930년대 후반 북한지역에서는 이화룡이 평양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고, 박두성이 안주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싸움경력으로 보나, 명성으로 보나 박두성이 이화룡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받던 시절이었고, 사람들은 박두성을 북한 최고의 싸움꾼으로 여기고 있었다고 한다.


         

        1936년경 이제막 신의주에서 큰주먹으로 성장한 21세의 시라소니는, 그 당시 최고의 싸움꾼으로 명성이 자자한 박두성을 직접 찾아가서, 당돌하게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때도 시라소니는 혈혈단신으로 열차를 타고 안주의 아지트로 찾아가서, 안주의 오야붕 박두성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안주역 부근의 뒷골목등지를 돌아다니면서, 자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한 박두성은 안주역 공터에서 시라소니와 마주하게 되었다.

         

        육척장신에다 기골이 장대한 박두성은 삐쩍 마르고 못생긴 시라소니의 몰골을 보고서, 그냥 돌아서려고 호탕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시라소니는 젊은시절에 67kg 정도의 아주 마른 체구였다고 한다.

         

        웃으면서 돌아서려는 박두성을 향해 시라소니는 당돌하게도 다음과 같은 말을 내밷었다.

        내레 박두성 당신이 하도 쎄다고 하길래, 한번 붙어보려고 왔시다

        한번 붙어봐야 누가 더 쎈디를 알 것 아니겠소?’

         

        자신보다 한참 어리고 덩치도 작은 시라소니의 당돌함에 기가 막힌 박두성은 그냥 시라소니를 확 밀어버렸고, 그것으로 시비를 끝내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박두성의 엄청난 오판이었다. 박두성은 장차 조선 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하게 될 시라소니를 너무나도 몰라본 것이다.

         

        그당시 최고의 싸움꾼이란 명성을 갖고 있던 박두성은 난생 처음 보는 말라깽이 시라소니를 너무 얕잡아본 나머지, 너무 방심했고 나중에 큰 화를 초래하고 만다.

         

        밀려났던 시라소니가 일어서면서 자세를 바로 잡고서는 지금부터 한판 붙어보자구 라고 말했다계속된 시라소니의 당돌함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온 박두성이는 곧바로 시라소니에게 선제타격을 가했다.

         

        박두성이의 솥뚜껑 같은 주먹이 시라소니의 턱을 강타했고, 연이어 박두성은 뒤로 밀려난 시라소니의 가슴을 커다란 발로 걷어차 버렸다. 


         

        엄청난 완력을 지닌 박두성의 선방을 두 번이나 얻어맞은 시라소니는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박두성의 세 번째 공격이 그다음에 이어졌다. 박두성은 쓰러진 시라소니의 복부에 오른발킥으로 강타했다.

         

        시라소니는 박두성에게 선방을 빼앗기고, 두 번의 타격을 받았고, 쓰러진 상태에서 치명적인 복부공격까지 받았다. 두사람의 싸움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제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했고, 시라소니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이 그다음에 벌어졌다. 쓰러져서 신음을 하던 시라소니가 잠시 심호흡을 한 후에, 갑자기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시라소니는 박두성의 세 번의 타격을 받았지만,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땅을 박차고 튀어오르면서, 그대로 박두성을 들이받아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씨름과 싸움으로 몸을 단련시켜왔던 박두성의 반사신경은 빨랐다. 순간적으로 튀어오른 시라소니의 박치기공격을 박두성은 간발의 차이로 피해버렸다.

         

        박두성이가 박치기공격을 피하자, 시라소니는 또다시 두 번째 박치기공격을 가해왔고, 또다시 피한 박두성에게 시라소니는 세 번째 박치기공격을 가해왔다.

         

        시라소니의 난데없는 박치기공격으로 박두성은 잠시 주춤하게 되었고, 계속된 박치기공격으로 박두성은 수세에 몰리게 되었으며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타고난 순발력을 이용해서 시라소니의 세 번째 박치기공격까지 피한 박두성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자신의 박치기공격이 실패한 시라소니 또한 다음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박두성이 또다시 시라소니에게 선방을 날렸다. 박두성은 단지 힘만 쎈 싸움꾼이 아니라, 스피드도 뛰어났고 싸움기술도 탁월했다.



        함경도를 돌아다니면서 씨름판에서 열마리의 황소를 타냈을 정도로 힘도 장사였지만, 평안도의 수많은 싸움꾼들을 쓰러뜨리고 확보한 평안도 최고의 싸움꾼이라는 명성에 못지않은 탄탄한 싸움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박두성은 곧바로 시라소니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시라소니를 공중으로 집어던졌다. 거구의 박두성의 완력에 의해서, 공중으로 내동댕이쳐진 시라소니는 중심을 잃고 또다시 쓰러졌고, 그틈을 놓치지 않고 박두성의 또다른 킥공격이 시라소니의 가슴에 터졌다.

         

        이제 박두성이의 두번째 치명적인 공격으로 시라소니는 더이상 가망이 없어보였다.

        그런데 쓰러졌던 시라소니는 쓰러지면서 박두성과의 거리를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그리고 쓰러지는 탄력을 이용해서, 시라소니는 다시 용수철처럼 튀어올랐으며, 그대로 박두성의 이마를 들이받아 버렸다.

         

        이번의 시라소니의 박치기공격은 전과 달리 박두성의 이마에 그대로 꽂혔으며, 박두성은 충격을 받고 뒤로 밀려나 버렸다.

         

        그리고 시라소니는 오른발킥으로 날려서 박두성의 턱을 걷어찼고, 두 번의 타격을 받은 박두성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시라소니의 두 번의 공격을 받고 다소 충격을 받은 박두성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려고 하고 있었다.

         

        이때 시라소니는 박두성에게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10m 이상으로 거리가 벌어졌고, 시라소니가 공중걸이 박치기를 하기에 아주 적당한 거리였다.

         

        박두성이가 다시 일어서려는 순간, 시라소니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그대로 달려오면서 공중으로 도약했고,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걸이 박치기로 일어선 박두성의 이마를 들이받아 버렸다. 

        시라소니의 박치기공격은 정확하게 박두성의 이마에 적중되었고, 달려오는 가속도가 더해지고, 몸전체의 힘이 실려 엄청난 충격을 박두성에게 안겨주었다.


         

        시라소니의 공중걸이 박치기공격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박두성은 그대로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북한지역의 싸움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대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신의주변방의 신출내기 싸움꾼 시라소니가 북한에서 최고의 주먹으로 군림해온 박두성을 쓰러뜨리는 대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한판승부를 기점으로 해서, 시라소니 이성순은 북한 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하게 되며, 계속해서 수많은 싸움의 역사를 만들어가게 된다.

         

        평안도 최고의 주먹 박두성을 쓰러뜨린 이당시의 시라소니는 21살에 불과했다. 이때가 1936년도인데 이시기에 남한에서도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종로의 우미관에서 신출내기 김두한이 구마적을 쓰러뜨리고, 우미관의 실력자로 급부상하게 됐다.

        같은 시기에 남한에서는 김두한이 종로의 오야붕 구마적을 꺾고, 우미관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일이 발생했고, 북한에서는 시라소니가 평안도 최고의 주먹 박두성을 쓰러뜨린 것이다.

         

        남과 북을 대표하는 최고의 주먹들이 같은 시기에 남한과 북한에서 최고의 오야붕들을 쓰러뜨린 것이다.

          

        평안도지역 싸움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대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평안도지역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최고의 주먹 박두성을 신의주의 신출내기 싸움꾼 시라소니가 박치기로 쓰러뜨린 것이다.

         

        시라소니는 그후 북한에서 평양의 이화룡에게도 혁혁한 전과를 거두었고, 신의주의 칼잡이 김장손을 맨손으로 상대해 쓰러뜨리면서, 자신의 명성을 더욱 드높이면서, 명실상부한 북한 최고의 싸움꾼으로 등극하게 된다.

         

        1930년대 후반 중국으로 진출한 시라소니는 만주 봉천, 상해, 북경, 천진등을 오가면서, 기라성 같은 수많은 국제주먹들을 쓰러뜨리고, 동양최고의 주먹으로 성장하게 된다.

         

        시라소니는 중국에서도 많은 야쿠자와 주먹들을 만나, 수많은 싸움신화를 이어나갔는데, 북경의 야쿠자오야붕 구로야마를 비롯해서 상해의 칼잡이 하야시, 중국 쿵푸의 달인 마오 등을 당당히 쓰러뜨리면서, 중국과 만주에서도 혁혁한 싸움신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만주 봉천에서는 만주일대의 최대의 주먹조직의 오야붕인 이상대의 중간보스 백창기를 맞대결로 쓰러뜨리면서, 실력을 인정받아서 한동안 이상대조직에서 식객노릇을 하기도 했다.

         

        시라소니와 신마적, 해학기의 대결

         

        또한 시라소니는 만주 봉천 유조구지역에서, 그 일대에 새로운 주먹조직을 구축했던 신마적 엄동욱과도 대결을 펼칠 뻔했던 유명한 일화도 있다.

        이 당시 시라소니는 신마적과는 직접 대결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신마적의 오른팔이었던 권투선수출신 해학기와 대결을 펼쳐서, 그를 완벽하게 KO시켜 버렸다.


         

        왕년에 권투선수출신으로 핵펀치를 휘둘렀던 해학기가 시라소니와의 싸움에서 주먹 한방 내뻗지 못하고, 눈깜짝할 사이에 시라소니의 공중걸이 박치기와 무릎찍기의 이중공격을 당해서,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1939년경 봉천의 유조구지역에서 새로운 주먹조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큰 위세를 떨치고 있던 신마적 주먹조직의 부두목격인 해학기를 간단하게 혼절시켰던 시라소니는 신마적의 큰 노여움을 사게되고, 신마적의 80명의 부하들에게 포위당하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해학기를 비롯한 자신의 부하들 8명이 시라소니 한사람에게 모두 KO로 쓰러지자, 자존심과 권위에 엄청난 상처를 입었던 신마적이 시라소니와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비겁하게도 무장한 80명의 조직원들을 이끌고, 시라소니에게 쳐들어갔던 것이다.

         

        신마적의 80명의 부하들에게 포위당했던 시라소니는 신마적에게 일대일 대결을 제안했지만, 신마적은 총을 겨누면서 이를 피했는데, 그지역의 최고오야붕인 이상대의 화해주선으로 결국 서로 화해하게 된다.

         

        자신의 부하들이 시라소니에게 물씬 얻어맞은 것이 억울해 복수를 위해서, 80명이나 되는 부하들을 끌고, 시라소니에게 쳐들어간 신마적은 매우 비겁한 행동을 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비록 두사람이 직접 대결을 펼치지는 않았지만, 시라소니가 신마적과의 대결에서 사실상 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비겁한 신마적의 행동 때문에, 두사람간의 세기적인 대결이 벌어지지 않은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아있다.

         

        그렇지만 시라소니와 신마적이 실제로 싸움을 벌였다고 하더라도, 시라소니가 이겼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가 있다.

         

        항상 패거리를 만들지도 않고 조직을 동원하지도 않고, 오로지 혼자서 적진으로 들어가서, 난다긴다 하는 주먹들과 싸워 당당하게 승리를 거뒀던 시라소니는 진정한 싸움의 천재이며, 한국최고의 싸움꾼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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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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