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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세자 이선 사망이유, 여동생 화완옹주와의 관계, 아들 정조

     

    사도세자 이선 1735213~ 1762712

     

    사도세자 이선은 우리 조선왕조에서 가장 불행한 왕실역사의 주인공이다.

    사도세자는 한창 혈기왕성한 28세의 나이에 왕이 되어보지도 못한 채, 뒤주에 갇혀 죽음으로써 한많은 세상과 하직한 불행한 세자였기 때문이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해서 여러가지 가설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그가 자신의 왕위를 계승해보지도 못한 채

    너무도 젊은 나이에 자신의 친아버지로부터 죽음을 당한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고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조선역사상 현명한 군주라고 찬사를 받고있는 영조가 자신의 친아들인 사도세자를 그렇게 처참하게 죽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도세자는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대신들의 누명을 쓰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일까? 아니면 사도세자가 여러가지 악행을 저질렀고 그에 대한 처벌로서 죽음을 당하고만 것일까?

     

    2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도세자 죽음의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한번 파헤쳐보도록 하겠다.

     

    일각의 주장에 따르면, 사도세자가 원래 총명한 세자였는데, 아버지 영조의 지나친 훈육과 노론대신들의 모함과 음모에 의해서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말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사도세자는 죽을만한 큰 잘못이 없는데, 정적들의 모함에 의해서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주장인데, 과연 이러한 주장이 사실일까? 정말로 사도세자 자신에게는 그만한 잘못이 없었을까?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살펴보면, 사도세자가 죽음을 당한 것은 사도세자 자신의 악행이 큰 이유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당시 정권실세였던 노론들의 모함에 의해서 죽었다는 것은 사실과 좀 거리가 있는 듯하다.

     

    영조는 노론의 도움을 받아서, 제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데, 아들인 사도세자가 노론을 무시하고 소론과 손을 잡았으며, 이에 정치적 위기의식을 느꼈던 노론세력이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를 이간질하고

    사도세자의 비행을 부각시켜서, 사도세자가 영조의 미움을 받아 죽음에 이르게 됐다고 하는 것이 음모론이다.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되어 노론과 소론의 당파싸움과 노론의 음모가 주된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사도세자가 노론의 미움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사도세자 자신의 광기에 의한 많은 악행이 없었다면, 사도세자가 그렇게 처참한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무려 11년 동안이나 왕의 업무를 대리청정시킨 것을 보더라도, 영조는 사도세자로 하여금 다음 보위를 있게하고자 하는 뜻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영조가 사도세자를 어려서부터 엄격한 조기교육과 지나친 훈육을 시켰기 때문에, 이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사도세자가 삐뚤어진 성격이 형성되었고, 잘못된 길로 가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조 자신이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아들 만큼은 완벽하게 키우고자 하는 완벽증 때문에, 사도세자를 너무 엄격하게 훈육한 것이 사도세자의 반발을 불러왔고, 사도세자와 영조의 사이를 벌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 영조가 사도세자를 어렸을 때부터 세자로 책봉하고, 어린 사도세자에게 다소 엄격하게 세자교육과 훈육을 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모든 세자들이 어렸을 때부터 엄격한 조기교육과 훈육을 받았었기 때문에, 이것은 사도세자만의 문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세자가 아주 어린 나이에 영조의 엄격한 교육과 훈육 때문에, 성격이 삐뚤어졌다는 주장은 너무 침소봉대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논리라면, 어린 시절 엄격한 세자훈육을 받았던 조선시대의 모든 국왕들이 사도세자처럼 성격이 삐뚤어지고, 광기를 부려야 하는 것이 옳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궁궐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파렴치한 기행을 한 사람은 사도세자와 연산군 두사람 밖에 없다.

     

    사도세자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바로 사도세자 자신의 악행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세자는 세자로 있는 동안 수많은 궁녀들과 궁인들을 죽였다고 한다. 사도세자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무고한 궁안의 사람들을 살육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이러한 사도세자의 광기어린 살육행위 때문에, 부인인 혜경궁 홍씨와 여동생 화완옹주, 모친인 영빈 이씨마저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한다.

     

    사도세자의 살육행위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을 만한 한계점에 이르자, 아버지인 영조는 왕실의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연쇄살인범인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게된 것이다.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나중에 영의정을 지낸 홍봉한의 딸 혜경궁 홍씨(헌경왕후)가 썼던 책이 있는데, 바로 한중록이라는 책이다.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쓴 책 한중록에서는, 사도세자가 생전에 행한 많은 비행과 악행들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사도세자가 세자 시절에 궁궐에서 수많은 내시들와 궁녀들을 죽였다고 한다.

     

    사도세자가 죽인 궁인과 내시들의 숫자는 무려 100명에 이른다고 하며, 심지어 사도세자는 자신의 후궁까지 죽였다고 하며, 마음에 안드는 궁녀를 불에 달궤서 벌을 주는 악행까지 범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쓴 책 한중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도세자는 청소년시절부터 광기에 의한 광증이 나타났으며, 나이를 먹으면서 이러한 광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고 한다.

    사도세자는 심한 정신불안증세, 충동조절장애, 정신분열증세까지 겪고 있었다고 하며, 특별한 이유도 없이 홧기가 치솟아 오르면서, 그것이 심한 폭력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증세를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서 광증(狂症)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광증이 심해져서 주위에 있는 궁녀들이나 내시들을 이유없이 구타하고 죽였다고 한다.

     

    17611월 사도세자는 자신의 총애하는 후궁인 경빈 박씨에게 폭력을 휘둘러서 죽였다고 한다.

     

    또한 사도세자는 자신과 경빈 박씨 사이에 태어난 아들인 1살배기 은전군을 칼로 찌른 후 연못에 던져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버지가 첩실과 친아들을 특별한 이유도 없이 죽였다는 이 기가 막힌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가!

     

    이러한 포악하고 잔인한 사도세자의 악행은 혜경궁 홍씨가 지적한대로 그의 광증가학증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사도세자가 겪고있는 광증은 자신의 분노나 광기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고, ‘가학증은 아무 이유도 없이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행위이다.

     

    사도세자의 광증이 얼마나 심했는가 하면, 시강원에서 세자교육을 담당하는 자신의 스승에게 찾아가서 스승에게 공격까지 했으며, 자신의 부인이자 세자빈이었던 혜경궁 홍씨까지도 공격하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사도세자는 자신의 친여동생인 화완옹주도 죽이려고 시도했으나, 나인들의 만류로 실패한 일도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도세자의 악행과 비행들은 그가 세자라는 이유로, 주위사람들이 쉬쉬하면서, 오랫동안 영조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비밀로 유지되었다고 한다.

    사도세자의 장인 홍봉한도 사도세자의 이런 비행들을 영조에게 알려지지 않게끔 한동안 비밀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같은 사도세자의 악행과 비행이 계속되자, 17626월 대신 나경언이 영조에게 상소를 올리면서, 영조의 귀에도 들어가게 된다.

      

    여태까지 저질렀던 사도세자의 비행들이 모두 영조에게 전달되었는데, 사도세자의 악행에 대한 상소를 올린 나경언은 영조의 분노를 사서 처형되었지만

    이로써 그동안 사도세자가 저질러왔던 수많은 악행들을 영조가 모두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사도세자의 운명이 뒤바뀔만한 결정적인 한방이 터지게 된다.

    같은 해인 1762년 사도세자의 친어머니인 영빈 이씨가 너무도 광폭하게 변한 사도세자를 처분할 것을 영조에게 고변했다고 한다.

     

    사도세자의 친어머니가 자신의 친아들을 죽이라고 남편인 왕에게 고변하는 경천동지할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친어머니인 영빈 이씨는 사도세자가 너무도 광폭해져서 수많은 궁인들을 살육해왔는데, 혹시라고 세손이나 세자빈이 다칠까봐 염려되고, 심지어 부왕인 영조를 암살하려고 한다며, 영조에게 자신의 아들을 처분(사사)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그당시 영조가 사도세자를 처분할 때 내렸던 반포문의 교지에는 영빈 이씨가 고변한 내용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물에서, 영빈 이씨의 주장에 의하면, 사도세자가 무고한 궁녀, 내시, 나인들 100명을 죽였으며, 이유도 없이 궁인들에게 불로 지지는 징벌을 수도 없이 범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사도세자는 자신에게 아첨하는 내수사관원들에게는 재물을 나눠주어서 자신에게 충성하게 만들었고, 몰래 밖으로 월담해서 밤낮으로 많은 기생들이나 비구니들과 음란한 행동을 벌였다고 한다.

     

    더욱이 궁궐후원에다 이상한 무덤을 만들고 기이한 의식도 치렀다고 하며, 불측한 짓과 흉측한 짓거리를 많이 행했다고 한다.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가 영조에게 올린 상소문 내용으로 '폐세자 반교문'에 기록된 내용

     

    또한 사도세자는 어머니인 영빈 이씨도 죽이려고 했을 뿐만아니라 심지어 아버지인 영조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사태가 이렇게까지 심각해지자, 생모인 영빈 이씨는 더 이상의 살상을 막기 위해서, 영조에게 사도세자의 처분을 요청했던 것이다.

     

    사도세제의 친모인 영빈 이씨는 그동안 사도세자가 저질러온 수많은 비행과 악행을 알고있었지만, 모자지간의 정 때문에 비밀로 유지해왔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도세자의 악행이 날로 더해지고, 심지어 국왕(영조)까지 죽이려고 시도를 하자, 영조의 안위를 위해서 사도세자의 처분을 고변했던 것이다.

     

    오죽하면 친어머니가 자신의 친아들을 처분해줄 것을 왕에게 부탁했겠는가?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사도세자가 아버지인 영조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는, '사도세자가 칼을 들고 영조가 있던 궁궐로 향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폐위할 때 발표한 '폐세자반교문'에는, 영조가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로부터 사도세자의 역모 가능성을 전해듣고, 사도세자를 폐위시키고 뒤주에 가뒀다는 내용이 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한 결정적인 이유는 항간에 나도는 것처럼 노론파의 음모 때문이 아니라, 바로 세자가 추구한 역모 때문인 것이다.

     

    친모인 영빈 이씨는 자신의 상소문에서 아들 사도세자가 죽인 사람들의 수가 100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친모가 자신의 친아들의 비행들을 거짓말로 꾸밀 수는 결코 없다고 본다.

     

    그동안 사도세자의 비행을 부분적으로 전해듣고 있던 영조는 긴가민가 하는 상태였지만, 사도세자의 모후인 영빈 이씨의 고변을 전해듣고는 사도세자의 모든 비행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않아도 사도세자를 못마땅하게 여겨왔던 영조는 영빈 이씨의 고변으로 아들 사도세자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176274, 영조는 사도세자를 친국장에 세우고, 그의 세자직위를 박탈했으며, 그를 쌀을 보관하는 뒤주에 가두게 했다.

     

    원래 처음에는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칼을 줘서 자결을 명했는데, 사도세자가 실패하자 밧줄을 줘서 자결토록 했지만, 사도세자가 계속 자결하지 않자, 커다란 뒤주를 갖고오게 했고, 그 뒤주 속에 세자를 집어넣고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못을 박았다고 한다.


     

    이렇게 사도세자가 뒤주속에 갇혀있었는데, 누군가가 와서 사도세자에게 몰래 물과 죽을 줘서, 사도세자는 사흘이 지나도록 죽지 않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안 영조는 뒤주의 틈이나 구멍을 유약을 발라서 모두 막아버리게 했고, 결국 8일이 지난 후에, 사도세자는 아사하고 만다.

     

    사도세자의 아버지인 영조는 그동안 수많은 살육을 저지르고 역모까지 추진한 사도세자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을 것이고, 자신과 왕실사람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도세자를 죽인 것이다.

     

    혹자는 영조를 비정한 아버지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궁궐에서 수많은 살육을 저지르고 자신에게도 칼을 겨누고있는 사도세자를 제거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영조의 사도세자 제거는 정당방위라고 할 수 있으며, 사도세자를 당쟁의 희생물이라고 보는 것은 침소봉대한 측면이 있다.

      

    영조는 비록 사도세자가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대를 이을 세손을 낳은 세자였고, 자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아들에 대한 응징으로서 처참한 처형을 택하지 않고, 뒤주 속에 가둬서 죽였던 것이다.


     

    사도세자가 수많은 궁인들과 후궁을 죽인 사실은 영조가 반포한 반포문과 영빈 이씨의 상소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그리고 영조의 언행을 기록한 실록 등에 명백히 기록으로 나와 있다.

     이러한 기록물들에 나와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사도세자가 행한 수많은 악행들을 사실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사도세자는 자신의 친모인 영빈 이씨와 부인인 혜경궁 홍씨도 죽이려고 했고, 아버지인 영조마저도 죽이려고 했는데, 그의 광폭한 악행은 더이상 묵과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다고 봐야 한다.

     

    아버지인 영조로서도 자신의 목숨과 나라의 존립까지도 위험에 빠뜨릴 아들 사도세자의 이같은 악행을 더이상 두고만 볼 수 없었을 것이며, 아버지 영조의 사도세자 죽임은 불기피했던 일이었다고 본다. 비록 불행한 일인 것은 사실이지만 ~

     

    그리고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 가문이 사도세자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다는 주장은 너무도 황당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세자의 악행과 비행이 점점 도를 넘어버리고,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곁에서 이같은 사도세자의 비행을 모두 알고있던 혜경궁 홍씨와 장인 홍봉한은 더이상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 사도세자의 악행을 묵인만 수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이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던 것이지, 적극적으로 사도세자를 죽이려고 고변하거나 모의한 것은 아니다.


     

    사도세자의 친어머니의 고변처럼 사도세자가 100명의 궁인들을 죽였는데고 불구하고, 그것을 묵과한 채, 사도세자가 다음 왕으로 올라서게 된다면, 이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세자일 때도 백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그가 절대적 권력을 가진 왕이 되면, 그보다 더 많은 살육을 벌일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흉측한 기행과 잔인한 살육을 즐기는 사도세자가 왕이 된다면, 연산군이나 네로황제보다 더 흉악한 폭군이 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가 있다.

    그러한 폭군이 나온다면,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비극이고, 백성들의 안위에 불행한 일이 닥치게 된다.

     

    사도세자가 더이상 용인될 수 없을 정도로 광폭한 살육을 저질렀기 때문에, 부인인 혜경궁 홍씨와 장인 홍봉한, 홍인한도 사도세자를 포기한 것이지, 적극적으로 그를 죽이려고 사주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혜경궁 홍씨와 장인 홍봉한등이 사도세자를 죽이는 데에 관여했다는 주장은 잘못된 판단이며, 사실과는 괴리가 있는 주장이다. 


     


    화완옹주와 사도세자의 관계

     

    사도세자의 일대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다른 사람이 바로 화완옹주이다. 화완옹주는 영조와 영빈 이씨 사이에 태어난 막내딸이며, 영조로부터 큰 총애를 받았던 공주다. 따라서 화완옹주는 사도세자의 친여동생이며, 정조의 고모이기도 하다.

     

    화완옹주는 12세 때에 영의정의 아들인 정치달에게 시집을 갔지만, 20세 때에 남편과 딸과 모두 사별하고, 청상과부가 된 인물이다.

    화완옹주를 끔찍이도 총애했던 아버지 영조는 홀몸이 된 화완옹주를 궁궐에서 살게 했다.


      

    그런데 궁궐로 돌아온 화완옹주는 오빠 사도세자와 사이가 안좋았으며, 정치적으로 대립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화완옹주는 오빠 사도세자의 나쁜 악행과 비행들을 아버지인 영조에게 고해바쳤다고 하며, 이로 인해 화완옹주와 사도세자의 사이는 벌어졌다고 한다.

     

    한 예로 인원왕후의 상이 났을 때에, 사도세자는 인원왕후전의 궁녀인 빙애를 범하는 비행을 저질렀고, 그녀를 자신의 후궁으로 취했다고 한다.

    그런데 상중에 여인을 취하는 행동은 왕실의 법도를 위반한 금기사항이었고, 더욱이 상전에서 일하는 나인을 취하는 것도 있어서는 안될 금기사항이었다.

     

    사도세자의 이런 비행이 영조에게도 알려져서, 영조로부터 엄한 추궁을 당했는데, 사도세자는 자신이 취했던 빙애를 화완옹주의 처소에 몰래 숨겨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화완옹주가 이같은 사실을 아버지인 영조에게 고해바쳤고, 사도세자는 영조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게 된다.



    이것은 화완옹주와 사도세자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화완옹주가 사도세자의 정적으로서, 사도세자의 죽음에 깊이 관여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화완옹주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이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 그녀가 아버지인 영조에게 사도세자의 비행을 고변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사도세자의 온갖 악행을 어머니인 영빈 이씨나 부인인 혜경궁 홍씨가 영조에게 직언하기가 곤란했던 측면이 있고, 화완옹주가 영조에게 친오빠의 비행을 알리는 역할을 대신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화완옹주는 막내라서 그런지 애교도 많고, 아버지에게 예쁜 짓을 많이 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한다.

    화완옹주가 궁궐에서 아버지인 영조의 총애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영조에게 고변을 쉽게 할 수 있는 위치였다고 보여진다.

     

    화완옹주가 사도세자의 비행을 영조에게 고변했던 것은, 화완옹주가 사도세자를 모함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사도세자의 비행을 고변할만한 위치나 권력이 그녀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화완옹주가 사도세자와 대립관계에 있던 노론과 한통속이 되어서,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같은 주장은 역사기록에 근거가 없는 과장된 추측에 불과하다.


      

    사도세자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사도세자가 스스로 만들어냈던 자신의 악행 때문이다.

     

    화완옹주는 20살의 젊은나이에 남편 정치달과 하나뿐인 딸이 일찍 죽어서 외로운 청상과부가 되어버리자, 딸을 극진히 사랑하였던 아버지 영조는 화완옹주를 궁궐로 불러들였으며, 화완옹주는 영조의 극진한 총애를 받으면서 궁궐에서 살게 된다.

     

    그런데 궁궐에서 살게된 화완옹주가 아버지인 영조의 사랑을 독차지 해버리고, 사도세자는 영조로부터 심한 홀대를 받게 되자, 사도사제는 화완옹주에 대해 적개심을 갖게 되었고, 화완옹주 또한 못된 비행들을 일삼는 오빠 사도세자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사도세자가 죽임을 당한 후에는, 사도세자의 아들인 세손(정조)과 화완옹주와의 사이에도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세손으로 있던 시절에, 영조가 세손에게 대리청정을 하라는 교지를 내렸는데, 화완옹주의 양아들인 정후겸이 홍인한과 함께 세손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또한 화완옹주도 영조에게 아버지는 아직도 정정하신데, 세손에게 내린 대리청청을 거두어주십시오라고 고변을 했다.


     

    이것을 두고서 일부사람들은 마치 화완옹주와 정후겸 모자가 세손(정조)의 왕위계승을 반대하고, 방해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런데 화완옹주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인 영조가 계속 정사를 돌보시길 권하는 것은 어쩌면 자식으로서의 도리라고 할 수도 있다.

    딸의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계속 정정하게 정사를 돌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것은 부녀지간의 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세손(정조)으로서는 화완옹주의 이러한 태도가 자신의 왕위등극을 반대하는 공작으로 의심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 당시는 세손의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노론대신들의 견제가 상당히 심했으며, 홍인한 같은 대신들은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결국 영조의 총애를 크게 받았던 세손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22대 조선왕(정조)으로 등극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과거 화완옹주와 양아들 정후겸이 세손(정조)의 대리청정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화완옹주와 그녀의 양아들 정후겸은 정조로부터 탄핵을 받는 처지로 전락한다.

     

    왕으로 등극한 정조는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실시했는데, 자신의 왕위등극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홍인한을 사사했고, 점후겸 또한 사사했으며, 화완옹주도 자신의 왕위등극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옹주지위를 박탈하고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다.

     

    영조의 큰 총애를 받아서 궁궐에서 큰 세도가로 권세를 누렸던 화완옹주는 영조의 죽음으로 권세를 모두 잃고, 강화도에서 귀양살이하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다.

    화완옹주가 세손(정조)의 대리청정을 반대했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정치적인 숙청을 당하고만 것이다. 

     

    그런데 1799년 어쩐일인지 정조는 즉위 23년이 되던 해에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화완옹주의 죄를 사면해주었다.

     

    정조로부터 처벌을 받고 강화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화완옹주는, 23년이 지난 후 62세의 나이에 사면이 되었고, 다시 궁궐로 들어와서 살 수 있게 됐다.

    정조가 자신과 정적이나 다름없었던 화완옹주를 뒤늦게나마 사면해준 것은, 아마도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는 등 가족간의 골육상쟁을 더이상 지속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화완옹주가 자신의 아버지와는 대립관계에 있었고, 비록 자신과도 정적관계에 있었지만, 그래도 화완옹주는 어렸을 적에 자신을 귀여워해주고, 돌보아줬던 따뜻한 친고모였다

    남편과 자식이 없었던 화완옹주는 궁궐로 들어온 후, 세손(정조)이 어렸을 때부터 그를 극진히 아껴주고, 친자식처럼 돌보아주었다고 한다.


    오히려 화완옹주는 세손(정조)에게 너무도 심하게 집착하는 모습까지도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화완옹주가 세손(정조)이 어렸을 때에는 끔찍하게 위해주었지만,

    아버지인 영조의 대리청정 문제로 인해, 두사람 사이에는 차가운 냉기류가 흐르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화완옹주가 세손(정조)의 대리청정은 반대했지만, 그의 왕위계승을 방해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화완옹주가 정조의 대리청정을 반대하기는 했지만, 정조의 왕위계승을 방해했다는 명확한 증거도 없다.

    아뭏튼 정조는 화완옹주와 정치적으로는 다른 입장에 있었지만, 친고모를 처벌했다는 후대의 나쁜 평가를 받고싶지 않았던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에, 화완옹주를 사면해준 것으로 보여진다.

     

    1808517일 순조실록에는 화완옹주가 죽어서 더이상 죄를 묻지않는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화완옹주는 사면된 후 9년이 지난 71세에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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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모도드래곤 대 킹코브라의 싸움, 코모도도마뱀의 이빨과 크기

       

       코모도도마뱀과 코브라가 싸운다면, 누가 이길 것인가? 매우 흥미진진한 대결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코모도()도마뱀과 코브라뱀은 모두 각각 치명적인 독을 지니고 있다. 코모도()도마뱀과 코브라뱀이 야생의 상태에서 서로 만난다면, 서로가 서로를 먹이로 인지하기 때문에,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코모도도마뱀과 코브라 둘 중하나가 다른 하나를 잡아먹으려고 할 것이다.

       

      지구상의 도마뱀 종류 중에서 가장 큰 몸집을 자랑하는 도마뱀이 바로 코모도왕동마뱀이다.

      코모도왕도마뱀이 성체가 되었을 때는 길이 3m까지 자라나며, 몸무게는 작은암컷은 50kg나가지만, 수컷은 평균 100kg정도 나가며, 큰 코모도왕도마뱀은 166kg 정도 나가는 것도 발견된 적이 있다.


      코모도왕도마뱀은 인도네시아의 코모도섬과 인근의 4개섬에서만 서식하는 왕도마뱀이다.

       

       

      코모도왕도마뱀은 도마뱀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용처럼 보인다. 실제로 유럽인들이 인도네시아의 섬에서 코모도왕도마뱀을 처음 보았을 때에, 공룡을 발견한 줄로 착각했다고 한다.

      거대한 덩치와 무시무시하게 생긴 외모를 코모도왕도마뱀은 살벌하게 생긴 외모만큼이나 난폭하고 매우 사나운 사냥꾼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코모도왕도마뱀은 멧돼지나 사슴, 염소 등을 주로 잡아먹는데, 놀랍게도 그들의 먹이사슬에는 커다란 인도물소도 포함되어 있다.

      자신보다 덩치가 6배 이상 더 나가는 거대한 물소를 코모도왕도마뱀이 종종 잡아먹는 장면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거대한 물소를 코모도왕도마뱀이 잡아먹을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코모도왕도마뱀의 입속에 지니고 있는 독 때문이다.

      코모도왕도마뱀은 잽싸게 달려들어 날카로운 이빨로 동물을 물어서 상처를 내고, 그 상처속으로 입속에 있는 박테리아나 독을 주입시켜서, 먹이감을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한다.

       

      아무리 빠르고 거대한 동물도 코모도왕도마뱀에게 한번이라도 물린다면, 코모도왕도마뱀의 치명적인 독 때문에, 멀리 도망간다고 해도 얼마 있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코모도왕도마뱀은 후각으로 그 죽은 동물의 시체를 찾아내어, 게걸스럽고 만찬을 즐기게 된다. 코모도왕도마뱀은 9km 떨어진 곳에 있는 먹이감을 탐지낼 수 있는 뛰어난 후각을 지니고 있다.

       


      700kg급의 거대한 물소가 코모도왕도마뱀의 독에 중독되어서 잡아먹히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사자나 호랑이도 혼자서는 쉽게 잡아먹지 못하는 거대한 물소를 코모도왕도마뱀은 혼자서도 능수능란하게 사냥할 수 있는데, 그 비결이 바로 코모도왕도마뱀의 입속에 있는 치명적인 독 때문으로 밝혀졌다.

       

      아래 동영상은 거대한 코모도왕도마뱀은 아니고, 작은 체구의 코모도도마뱀과 킹코브라의 싸움장면이다.


       

      도마뱀의 왕인 코모도도마뱀과 뱀의 제왕인 킹코브라가 야생에서 서로 만났는데, 두 괴물들이 목숨을 걸고 혈전을 벌였다.

       

      코모도도마뱀과 킹코브라 모두 독을 갖고 있어서, 막상막하의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역시 싸움의 천재인 코모도도마뱀이 킹코브라를 간단히 제압했다.


      싸움에서 킹코브라가 자신의 주특기인 독물을 쏘았는데, 약삭빠른 코모도도마뱀이 눈꺼플을 닫아서, 눈으로 독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냈다.



      독물을 쏘는 것은 킹코브라의 주특기로서, 킹코브라는 독물을 수미터까지 쏠수 있는데, 이러한 공격법으로 아프리카의 사자도 킹코브라의 독물을 눈에 맞고, 사경을 해메거나 죽는 경우도 더러 발생하고 있다.

       

      킹코브라가 아무리 무서운 독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역시 치명적인 독을 입속에 감추고 있는 코모도도마뱀은 무시무시한 야생의 싸움꾼으로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이다.


       

      코모도도마뱀이 킹코브라의 독공격을 막아낸 다음, 톱니같은 이빨로 킹코브라의 몸통을 물어뜯어서 좌우로 돌리면서 내동댕이쳤다.

       

      코모도도마뱀의 치명적인 이빨공격과 독의 주입으로 몸통을 심하게 물렸던 킹코브라는 결국 코모도도마뱀의 먹이감으로 전락했다.


      사실 야생에서 코모도도마뱀은 코브라를 즐겨 사냥한다고 알려졌다킹코브라는 단지 코모도도마뱀의 한낱 먹이감에 지나지 않았다.

       

       

      코모도도마뱀 대 킹코브라의 싸움 동영상

       





      코모도왕도마뱀의 거대한 물소 사냥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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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에 당선과 연설 동영상, 이낙연 국무총리 임종석 비서실장 내정

         

        201759일 치러진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문재인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41.1%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요. 자유한국당의 홍준표후보는 2위를 기록했으며, 24%의 득표율을 얻었습니다.

         

        보수우파들의 바램대로 홍준표후보가 문재인을 넘어서거나,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답니다.

         

        이번에 치러진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이 41.1%2위인 홍준표후보의 24%의 득표율을 무려 17%차이로 따돌리고 압도적으로 1위를 한 것으로, 대선에서 1위와 2위와의 표차이가 가장 큰 표차이로 이겼다고 합니다.



        득표수를 보더라도 문재인 13,423,800표를 득표했는데 비해, 홍준표는 7,852,849표를 득표해서, 문재인후보가 홍준표후보를 무려 557만표 차이로 당선되는 쾌거를 이뤘답니다.

         

        18대 대선에서는 문재인후보가 박근혜후보에게 108만표 차이로 1위자리를 내주고 말았는데,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은 557만표 차이라는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면서, 19대통령에 당당히 당선된 것입니다.


         

        문재인당선인과 2위 홍준표후보와의 표차이 557만표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선거 사상 최대의 표차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17대 대선에서 이명박후보가 2위 정동영후보와의 표차이 531만표 차이가 최대 수치였는데,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이 새로운 신기록으로 갈아엎은 것이지요.

          

        후보

        득표율

        득표수

        문재인

        41.1%

        13,423,800

        홍준표

        24.0%

        7,852,849

        안철수

        21.4%

        6,998,342

        유승민

        6.8%

        2,208,771

        심상정

        6.2%

        2,017,458


         

        이번 대선에서 혹시나 문재인후보가 50%의 과반수 득표를 하지않을까 관심도 집중되었었는데, 그것은 지나친 욕심이었다고 봅니다. 

        2강 구도였다면, 문재인후보의 과반수 득표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5명의 유력한 후보자들이 겨루는 5강 구도에서, 당선자가 40%를 넘겼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였다고 평할 수 있지요.

         


        양강구도로 치러졌던 제18대 대선에서 1위 박근혜후보가 51%를 득표해서, 2위인 문재인후보의 득표율 48%와 고작 3% 밖에 나지않는 턱걸리득표로 간신히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이것과 비교하면 문재인후보와 홍준표후보의 17% 차이는 대단한 표차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과거 노무현전대통령과 2위와의 표차이는 고작 57만표 차이밖에 나지 않은 것과 비교해도 큰 성과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당선인의 전국 득표율을 살펴봐도 역시 성과가 상당히 좋습니다. 문재인당선인은 전국에서 경남과 경북, 대구의 세곳만 제외하고, 모든 지역에서 득표율 1위를 차지했답니다.

         

        전통적인 보수우파의 텃밭이었던 대구와 경북, 그리고 홍준표후보가 도지사로 있는 경남에서만 문재인당선인은 1위를 하지 못했을 뿐인데

        서울, 경기도, 인천, 강원도, 충북, 충남, 울산, 제주도 등 나머지 모든 지역에서 골고루 1위 득표를 하는 안정적인 성과를 거두었지요.


         

        사실 오래전부터, 문재인의 당선은 예상되었던 일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금년 310일 박근혜 전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되었을 때부터 문재인의 대세론이 급부상했으며, 그 후 2개월 동안 문재인은 지지율 1위를 지속시켜 왔었지요.

         

        잠깐 동안 국민의 당의 안철수후보가 문재인후보의 지지율과 동률을 이루기도 했었지만, 안철수후보의 지지율상승은 1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하락하고 말았지요.

         

        그리고 안철수후보는 새로운 보수우파의 희망으로 떠오른 홍준표후보에게 중도지지층과 보수지지층의 지지표를 상당수 빼앗기게 됨으로써

        반짝 타올랐던 안철수대세론을 이어가지 못하고, 대선 결과 3위로 추락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지요.

         

        아뭏튼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이 새로운 대통령에 당선되어서, 새로운 개혁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으니, 축하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의 19대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당선자는 과거처럼 인수위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선일 다음날인 510일 오전 810분부터 곧바로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답니다.

          

        그런데 비록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앞으로 해야할 일과 도전들이 산적히 쌓여있습니다.

        문재인대통령은 자신이 제창하는 민생안정과 개혁법안 제정등 국정수행을 해나가는 데에 있어서, 국민의당 등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대통령이 속한 더민주당의 의석수는 120석에 불과하답니다. 비록 더민주당이 지난 총선에서 제1당으로 올라섰지만

        국회의석수가 과반수에 못미치기 때문에 국회에서의 법안의결에 있어서, 다른 정당들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랍니다.

         

        문재인대통령은 당선자소감에서 다른 야당들과 함께 협력을 강화해나가겠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법률 하나 만드는데도 국회재적의원 과반수가 필요한데, 의석수가 부족한 여소야대의 상태라서, 더민주당으로서는 국민의당과의 연합이나 연대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랍니다.


         

        그래도 다른 야당에 비해서 정치적 노선이나 색깔이 가까운 국민의당과 정치적 연대를 결성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선과정에서 서로 날선 공방을 벌였지만, 이젠 선거가 다 끝난 후이므로, 문재인대통령이 안철수전대표를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국정의 협력과 동반자의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19대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이 앞으로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개혁을 차질없이 수행해나가기 위해서는, 법률안의 제정이나 개정이 필요하며, 더민주당의 의원 120석으로는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답니다.

        반드시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과의 국회에서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문재인대통령도 야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대화를 통해 국민대통합을 이루겠다고 밝힌 바가 있답니다.

          

        문재인대통령은 당선소감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분들도 섬기는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으며

        국민이 이기는 나라, 원칙이 바로 서는 나라를 만들겠으며, 국민만 보고 바른 길로 나아가겠다는 당선소감을 밝혔답니다.


         

        문재인대통령은 선거활동 당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하고, 자신은 광화문 종합청사로 나와 업무를 보겠다고 공언했는데요과연 이러한 자신의 약속을 잘 지킬지도 궁금하답니다.

          

        참고로 박근혜전대통령의 파면으로 인해 실시된 대통령선거로 당선된 문재인대통령의 임기는 얼마 동안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는데요.

          

        문재인대통령의 임기 기간은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인 2017510일부터 시작해서 5년 후인 202259일까지랍니다.

        문재인대통령도 여느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임기는 5년을 다 채우게 된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규정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문재인의 다음 대통령선거인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은 임기만료일 전 70일 이후 첫째수요일에 치르도록 되어있는데, 202232일날에 치러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대통령은 자신을 보좌해나갈 국무총리와 비서실장, 국정원장을 내정했다고 하는데, 국무총리에는 이낙연 전남지사를, 비서실장에는 임종석 전의원을, 그리고 국정원장에는 서훈 전 국정원차장을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낙연 전남지사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면, 곧바로 업무를 볼 수 있지만, 국무총리와 국정원장은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통과해야 하므로, 업무시작에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무총리에 내정된 이낙연 전남지사는 전남 영광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과거 동아일보 기자로 일해오다가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총 4선 의원으로 활동해온 인물입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전남도지사에 당선되어 도지사업무에 전념해왔으며, 통합새정부의 적임자로 평가되는 인물이랍니다.

         

        비서실장애 내정된 임종석 전의원은 전남 장흥출신으로 한양대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문재인 대선캠프 비서실장출신으로 활동해왔고

        과거 전대협의 3기 의장을 지냈던 86 민주화운동권 세대의 대표주자 중 한사람으로, 16대와17대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의원활동을 해왔습니다.

         

        국정원장에 내정된 서훈은 서울대 사범대출신으로 과거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의 3차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이화여대의 북한학과 초빙교수로 재임 중에 있습니다.

         

        서훈 교수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던 북한통이자 대북전문가랍니다. 앞으로 국정원장에 취임하게 되면, 대북한 정책수립이나 북한과의 협상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답니다.

        문재인대통령이 앞으로 대북한 관계에 있어서, 대화를 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소감 연설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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