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미스롯데 출신 여배우 서미경의 현재 근황과 법원출석, 나이

     

    롯데 신격호 총괄회장의 부인인 서미경이 20일날 피고인의 신분으로 법원에 출석했다고 한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세번째부인으로 알려진 서미경은 320일 배임탈세 혐의로 법원에 재판을 받기 위해 출석한 것이다.

     

    왕년의 글래머스타였던 서미경이 은퇴한 후에, 실로 35년 만에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인데, 중년인 지금도 서미경의 미모는 여전히 빛이 났다. 참고로 서미경 1959년생으로 현재 나이가 59세이다.

     

    서미경은 그동안 천억원 대에 이르는 탈세혐의와 배임혐의를 받고 검찰의 출두요구를 받았지만, 그녀가 일본에 체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검찰의 수사를 받지는 않았다.

     

    서미경은 일본에서 버티기작전으로 나왔다고 하는데검찰이 서미경의 국내에 있는 부동산 재산들을 모두 압류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하는데국내에 있는 서미경의 부동산재산의 총합이 무려 1,800억원 대에 이른다고 한다 

     

     

    서미경은 검찰의 출국요구에 계속 응하진 않고 있다가, 이번에 법원의 정식재판을 받기 위해 돌연 출국한 것인데, 많은 취재진들의 스포트라이터를 받게 됐다.

     

    서미경씨가 받고 있는 혐의는 279억원의 탈세혐의, 그리고 롯데시네마 내의 매점의 불법임대로 인해 770억원대의 부당이득에 관한 배임혐의이다 

    20일날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그 모습을 나타낸 서미경씨는 안경을 쓰고, 검은색정장을 입고 다부진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섰다.

      

    서미경은 신격호 총괄회장으로부터 롯데홀딩스 지분을 넘겨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300억에 가까운 증여양도세를 탈세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또한 롯데시네마 내의 매점을 불법 임대받고서 거액의 부당 이득을 챙긴 배임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서미경이 받고있는 탈세금액과 배임금액이 합치면, 1천억 원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라고 한다.

      현재 일본에 체류중인 서미경은 재판을 받기위해서, 하루 전날에 급거 귀국했다고 하는데, 당분간 재판을 위해 한국에 계속 머물 계획이라고 한다.

     

      이번에 탈세 및 배임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서미경이 과거 어떤 인물인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미경은 70년대 중후반 우리나라의 유명한 아이돌스타였다. 77년도에 서미경은 제1회 미스롯데 선발대회에 출전해서 대상을 획득했는데, 당시 그녀는 세련되고 서구적인 미모로 매스컴의 큰 조명을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그후 서미경은 다양한 CF모델로 활동하면서 대중들의 큰 관심을 끌었는데, 세련되고 아름다운 미모 덕분에, 여러편의 영화들과 많은 드라마에 출연해서 높은 대중적 인기를 끌었었다.

       

    서미경은 70년대에 청순미와 그래머스한 매력을 함께 지닌 청순글래머스타여서, 특히 젊은층으로부터 집중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연기력도 뛰어나서 1977년도엔 TBC 신인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서미경은 여러편의 청춘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젊은층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끌었다. 서미경은 많은 영화들에 주연으로 출연했는데, ‘청춘불시착같은 청춘영화에 출연했는가 하면, ‘여수 407같은 성인물에도 출연했고,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홍길동에도 출연해서, 주인공 홍길동의 신출귀몰한 연기를 펼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에 출연했다는 것은 서미경의 미모와 인기가 대단했었다는 반증이다. 이렇게 많은 영화들에 출연했던 당시의 서미경의 나이는 고작 십대 중반에서 20세 사이라고 한다.

    그 당시의 서미경의 인기는 지금의 수지정도의 높은 인기를 끌었으며, 미모는 수지보다 한수 위라고 할 수 있다.


     

    서미경은 다른 한국여배우와는 다르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서구적인 마스크를 지니고 있어서, 한국판 오드리 헵번이라고 불릴 정도로 찬사를 받았었다.

     

    서미경이 활동할 당시에, 우리나라 연예계에는 유지인, 정윤희, 장미희등 신트로이카가 큰 인기를 끌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그런데 당시의 서미경은 동양최고의 미인이라고 찬사를 받던 정윤희와 맞먹을 정도로 뛰어난 미모라고 극찬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 70년대 중후반 서미경은 미모에 있어서, 정윤희와 1, 2위를 다투었다고 한다.

    70년대 당시 서미경이 얼마나 예뻣는지는 게시글 하단에 올린 서미경 동영상을 보시면, 충분히 공감하실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연기자로서, CF모델로서 큰 활약을 펼쳐나가던 서미경은 돌연 1981년도에 일본유학을 떠난다는 말을 남기면서, 연예계에서 완전 은퇴하고 만다.

     

    그런데 그당시 서미경의 일본유학을 뒤에서 도와주는 스폰서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는데, 나중에 그 스폰서가 신격호 롯데회장인 것으로 밝혀져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83년도에 서미경은 당시 신격호 롯대회장의 딸 신유미를 낳았다고 소식이 들려왔는데, 당시 서미경은 신격호회장과 사실혼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당시 20대 초반인 서미경은 자신보다 무려 37세나 많은 신격호회장과 사실혼관계를 맺고있어서, 엄청난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딸을 낳았을 당시 서미경의 나이는 25, 신격호 나이는 62세로 엄청난 나이차를 극복하고 부부의 연을 맺은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가 없다.

     

    그후 서미경은 신격호 롯데회장의 끔찍한 총애를 받으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녀는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의 6.8%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것은 신씨 가문 중에서 가장 많은 지분이라고 한다.

     

    서미경은 신영자 3%, 신동주 1.6%, 신동빈 1.4%등 신격호 총괄회장의 딸과 아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서미경 모습 사진

     

    또한 신격호 롯데회장은 서미경이 운영하는 유원실업에게 매출이 가장 높은 롯데시네마의 서울과 경기도지역 매점운영권을 독점할 수 있도록 특혜를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신격호회장은 서미경에게 엄청난 부와 재산을 지급해주었는데, 신격호 롯데회장이 서미경을 얼마나 끔찍이 총애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렇게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서미경에게 주었던 특별한 애정이 이제는 오히려 그녀의 발목을 잡는 엄청난 장애물이 되고야 말았다.

     

    신 총괄회장이 서미경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과정에서 탈세했다는 것이 적발되어서, 서미경은 팔자에도 없는 형사피고인으로 법원에서 재판받는 신세가 되었으니 말이다. 

    참고로 서미경의 남편인 신격호 롯데총괄회장의 부인은 세명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법원에 출석하는 서미경 사진

     

    신격호 회장의 첫째부인인 노순화씨는 40년도에 신회장과 결혼해서 부부의 연을 맺어왔는데, 지병인 폐병으로 일찍 사망했다고 하며, 신회장은 52년도에 일본여성 시게미츠 하츠코와 재혼했다고 한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바로 두번째 일본부인 시게미츠 하츠코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서미경은 신격호 롯데총괄회장과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딸 신유미를 낳았으며, 사실상 그의 세번째 부인노릇을 하고 있는 중이다.

     

     

    70년대 서미경이 출연한 영화 목록들

     

    1973- 방년 18

    1974- 여고교사

    1974- 혼혈아 쥬리

    1975- 김두한 2

    1975- 졸업시험

    1976- 홍길동

    1976- 진짜 사나이

    1978- 상노

    1981- 대명

    이외에도 '동거인' '강력계' '천의 얼굴' '여수 407' '춘풍연풍''청춘불시착'등 다수의 영화들에 출연했다.

     

       

    서미경은 70년대 후반 활동할 당시에 서승희라는 예명을 사용해서 활동했었는데, 아래의 동영상은 그 당시 방송 ‘100분쇼에 출연한 서승희(서미경)노란 샤쓰를 입은 사나이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당시 풋풋하고 예쁜 서미경의 젊은 시절의 미모를 감상할 수 있는 희귀한 동영상이다.

      

     

    70년대 서미경 출연방송 동영상

     

     

     

     

     

     

     

     

     

     

     

     

     

    70년대 후반 당시 인기절정이었던 신트로이카인 유지인(좌측 첫번째), 정윤희(중앙)와 함께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 서미경(맨 우측)

     

     

     

     

     

     

     

     

     

     

    반응형
    Posted by 프린스.
    ,

    목차

      90년대 최강의 헤비급챔피언 레녹스 루이스 대 타이슨 경기, 헤비급명경기

       

      레녹스 루이스 전적 - 444132KO21무. 65년생

      마이크 타이슨 전적 - 585044ko 62무효. 66년생

       

      레녹스 루이스는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헤비급무대를 평정했던 영국 국적의 강력한 챔피언이다.

       

      60~70년대는 무하마드 알리가 세계헤비급을 주름잡았고 80년대는 타이슨이 석권했던 시기였으며, 이후 90년대 중반까지는 홀리필드가 헤비급을 장악한 시기였다면,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레녹스 루이스가 헤비급의 최강자로 우뚝 솟아올랐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60~70년대의 위대한 헤비급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처럼, 레녹스 루이스를 90년 이후의 최강의 헤비급챔피언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레녹스 루이스는 196cm의 장신에다 펀치가 강철처럼 강할 뿐만아니라, 무척이나 빨라서, 루이스가 집권할 당시에는 그에게 도전했던 무수한 강자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만 갔다.

         


      레녹스 루이스는 90년대 세계헤비급을 석권했던 위대한 챔피언 에반더 홀리필드를 이기고, 챔피언에 등극했던 당대에 아주 보기 드문 테크니션이었다.

         

      20세기 후반 세계헤비급의 강자였던 홀리필드뿐만 아니라, 마이크 타이슨마저 쓰러뜨린 레녹스 루이스를 그 시대의 최강의 챔피언으로 손꼽고 있다.

        

      레녹스 루이스는 강펀치와 스피드, 그리고 테크닉을 모두 골고루 갖춘 가장 안정적인 헤비급챔피언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90년대를 주름잡았던 세명의 강타자들 홀리필드, 타이슨, 비탈리 클리츠코 등이 모두 레녹스 루이스에게 무릎을 끌었을 정도로,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레녹스 루이스는 세계헤비급의 최강으로 군림했다.

       

      또한 전 WBA WBC 통합 헤비급챔피언 리딕 보우도 아마추어시절 루이스에게 TKO패당한 전력이 있고, 헤비급의 강타자 올리버 맥콜도 레녹스 루이스에게 KO당했었다. 그 외에도 헤비급의 또다른 강자 골로타, 프랭크 브루노, 레이 머서도 루이스의 강펀치를 견뎌내지 못하고 모두 무릎을 꿇었다.


         

      당대의 헤비급 강자들은 대부분 레녹스 루이스에게 패배했는데, 이제 마이크 타이슨만 남았던 것이다.

        

      마이크 타이슨은 86년도에 트레버 버빅을 꺾고 세계헤비급 통합챔피언에 올라서 전율의 강펀치를 휘두르면서, 4년동안 헤비급무대를 평정했던 전율의 강타자다. 타이슨이 세운 19연속 1KO승의 기록은 아직까지도 헤비급무대에서 깨어지지 않고 있는 전설이다.

       

      하지만 타이슨이 자기관리에 실패하고 마이클 더글러스에게 패배해서, 타이틀을 빼앗기는 이변이 발생했다.

      다시 재기했던 타이슨은 96년도에 에반더 홀리필드와 겨뤄서 패배함으로써 헤비급챔피언복귀에 실패한 후, 또다시 새로운 헤비급 통합챔피언인 레녹스 루이스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당대 헤비급무대에서 뿐만아니라, 역대 헤비급선수 중에서 가장 강력한 펀치를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받는 선수가 마이크 타이슨인데, 타이슨의 전적은 5044ko 6패로 KO율이 실로 엄청하다.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은 존재할 수 없는 법, 최고의 강타자 마이크 타이슨과 펀치와 스피드 모두를 골고루 갖춘 완벽한 챔피언 레녹스 루이스가 200268WBC IBF 헤비급 통합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세기적인 승부를 겨뤘다.


       

      마이크 타이슨이 2002년도에 헤비급챔피언 레녹스 루이스에게 전격 도전했는데, 결과는 타이슨의 TKO패로 끝났다.

       

      아무도 그 결과를 예상할 수 없었던 레녹스 루이스 대 마이크 타이슨의 경기에서 핵주먹마이크 타이슨이 8TKO로 무너짐으로써, 루이스는 당대 최강이라는 지위를 부여받게 됐고, 타이슨은 완전히 쇠락해갔다. 

       

       

      그당시 비록 타이슨이 챔피언왕좌를 잃어버렸지만, 많은 사람들은 타이슨을 오랫동안 무관의 최강자라고 여겨왔었는데, 타이슨이 레녹스 루이스를 만나 처참하게 KO패함으로써, 타이슨은 끝없이 추락하게 되었고, 타이슨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리고 레녹스 루이스는 생애 2번의 패배가 있는데,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두선수를 리턴매치에서 모두 KO로 설욕에 성공했기 때문에, 루이스는 결국 패배가 없는 선수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최고의 강타자인 마이크 타이슨을 TKO로 꺾었고,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준 두선수를 다시 싸워 쓰러뜨렸기 때문에, 그런 레녹스 루이스를 두고 당대 최강의 챔피언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고 본다.

       

       

      레녹스 루이스는 200427일 헤비급챔피언의 신분을 유지한 채, 복싱무대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야인으로 돌아간다.

      이로써 레녹스 루이스는 록키 마르시아노와 함께 현역 챔피언으로서 명예롭게 은퇴한 선수가 된다.

       

      레녹스 루이스는 1992년도에 WBC헤비급챔피언에 등극해서, 2003년도까지 11년 동안 안정적으로 챔피언타이틀을 유지해온 완벽한 챔피언이었다 

       

      루이스의 마지막경기는 200339살의 나이에 치러진 비탈리 클리츠코와의 경기인데, 레녹스 루이스는 거구의 강타자 비탈리 클리츠코를 6TKO로 꺾은 후에 명예롭게 은퇴하게 된다.

       

       

      헤비급의 제2의 전성기였던 92년도부터 2004년도까지 헤비급의 최강챔피언으로 군림한 레녹스 루이스는 2009년 복싱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가게 된다. 

       

      그럼 21세기초 최고의 명경기라고 불리웠던 마이크 타이슨 대 레녹스 루이스의 경기동영상을 다시 감상해보도록 하자!

       

       

      마이크 타이슨 VS 레녹스 루이스 헤비급타이틀전 전경기 동영상

       

       

       

       

       

       

      타이슨 대 루이스의 후반부 경기 동영상 (7, 8회전)  

       

       

       

       

       

       

       

       

       

       

       

       

       

       

       

       

       

       

      반응형
      Posted by 프린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