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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라이벌 니콜라 테슬러와 에디슨, 누가 천재과학자인가

     

    사람들은 니콜라 테슬러를 천재과학자라고 부르고 에디슨을 위대한 발명가라고 부릅니다. 

     

    금세기에 전기 전자 물리분야에 있어서, 최고의 과학자들 꼽자면, 두명의 미국인을 꼽을 수가 있는데, 한사람은 니콜라 테슬라이고 또다른 사람은 유명한 에디슨이랍니다.


    니콜라 테슬라와 에디슨 두사람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 지금 현대문명의 중요한 기반을 닦아놓은 뛰어난 과학자이자, 발명가들이죠.

    이 두사람의 탁월한 과학자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과학문명을 발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답니다.

     

    에디슨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전기와 전등을 처음으로 발명해서, 온세상을 밝은 세상으로 만들어놓은 장본인이지요.

    그에 반해 니콜라 테슬라는 라디오와 레이더, 무선통신장치를 처음 발명해서 천재과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던 인물입니다.

     

    에디슨과 테슬라는 서로 필적할 만큼 위대한 여러가지 발명품들을 만들어내면서 서로 경쟁적으로 큰 업적을 쌓아나갔답니다.

    에디슨은 1,500개나 되는 새로운 발명품들을 개발해내서 특허를 얻어놨다고 하며, 니콜라 테슬라의 특허발명품은 700가지 정도 된다고 합니다.

     

    에디슨은 전기회사를 설립하고 미국 전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사업을 벌여서 큰 명예도 얻고, 돈도 많이 벌었던 사업가로서도 유명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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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슬라와 에디슨은 서로 쌍벽을 이룰만큼 많은 발명품들을 개발해내었는데, 두사람 사이에 경쟁관계가 굉장히 치열했다고 합니다.

    2015년도에 노벨상후보로 테슬라와 에디슨이 함께 내정되었고, 두사람이 노벨물리상을 공동으로 수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에게 최고의 영예인 노벨물리상은 물리학자들이 평생 한번 받는 것을 소원으로 생각하는 대단히 명예로운 상이었는데, 두사람은 이상하게도 노벨상의 공동수상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두사람이 노벨상을 보이콧한 이유는 서로간의 치열한 라이벌의식과 신경전 때문이었답니다. 서로 라이벌관계였던 에디슨과 테슬라는 두사람 함께 공동수상하는 것을 심히 불쾌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결국 테슬라와 에디슨이 거부한 노벨상은 영국사람에게 돌아가게 된답니다.

    1884년경 에디슨은 백열전등을 발명하면서 큰 명성을 얻게되었고, 전기회사를 설립해 직접 운영해 나갑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전기기술자로 전기분야에 처음으로 입문한 상태였던 테슬라는 에디슨의 전기회사에 취직하게 된답니다.

     

    , 테슬라가 에디슨이 대표로 있는 전기회사에 사원으로 취직을 하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테슬라는 에디슨의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면서, 뛰어난 발명기술을 보유했던 에디슨으로부터 기술과 지식을 배우고 익히게 된답니다.

    이때만 해도 에디슨은 테슬라의 오너이자 대선배의 지위에 있었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테슬라는 신출내기 전기기술자였고, 에디슨은 최고의 발명가 소리를 듣던 때였기에. 테슬라는 에디슨으로부터 한 수 배우는 입장이었답니다.

     

    테슬라는 에디슨으로부터 전기기술을 배우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발명세계를 개발해나간답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에디슨의 전기회사는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답니다. 에디슨회사에서 공급한 전등이나 전기장치가 잦은 고장을 일으키고, 전기가 합선되어 화제가 일어나기도 했던 것이지요.

     

    발명왕이었던 에디슨도 이러한 문제를 당장 해결할 방안을 찾지못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신출내기 테슬라가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고, 에디슨은 만일 테슬라가 문제해결에 성공한다면, 5만 달러의 보너스를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테슬라는 전기장치 개발에 박차를 가하세 훨씬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정치장치를 개발해내었고, 발전기는 더욱 향상되었고, 전등의 고장이나 화제가 더이상 발생하지 않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테슬라가 에디슨의 골칫거리를 단번에 해결해주었는데, 에디슨은 약속한 보너스 5만달러를 지급하는 것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에디슨의 최대의 고민거리를 테슬라가 해결해주었는데, 에디슨이 약속한 돈 5만 달러를 주지않았고, 테슬라에게 농담으로 한 소리라고 발뺌했던 것이지요.

     

    큰 명예도 얻고 돈도 많이 벌었던 에디슨이 매우 비열하고 추잡한 짓을 했던 것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에디슨이 갑질의 횡포를 부린 것이랍니다.

     

    엄청난 기여를 하고도 이용만 당했다고 생각한 테슬라는 에디슨을 경멸하게 되었고, 그 후에도 두사람은 사사건건 대립하게 되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테슬라는 에디슨을 떠나게 된답니다.

     

    에디슨은 현대문명에 기여할 만한 위대한 발명품들을 많이 발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그는 엄청난 욕심장이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랍니다.

    에디슨은 과학자라기 보다는 탐욕스러운 사업가에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에디슨의 횡포와 전횡에 시달림을 많이 받고 그의 인격에 크게 실망한 니콜라 테슬라는 에디슨과 거리를 두고 자신망의 회사를 설립해서, 계속 전기와 전자부문에서 많은 발명들을 해나갑니다.

     

     

    그 당시 미국과 유럽은 에디슨이 발명한 직류스타일의 전기장치가 적용되어 전기가 공급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에디슨으로부터 독립한 니콜라 테슬라가 전혀 새로운 전기시스템을 개발해내는데, 그것은 교류형식의 전기공급시스템이었답니다.

     

    에디슨이 발명보급했던 직류시스템은 전기의 손실이 많아 발생해서 불과 수킬로미터밖에 공급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지요.


    그런데 테슬라가 새로이 발명한 교류시스템은 직류보다 훨씬 더 먼거리까지 전기를 공급할 수 있었고, 전기의 손실도 훨씬 적었다고 합니다.

    교류시스템은 다른 도시들에게도 전기공급이 가능했고, 더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었답니다.


    결국 훨씬 더 효율적인 테슬라의 교류시스템이 미국사장을 완전 장악하게 된답니다.

    이때부터 테슬라의 명성이 크게 높아지게 되었고, 언론과 매스컴은 니콜라 테슬라를 최고의 과학자, 천재 발명가라고 부르면서 찬사를 보냈답니다.

     

    이렇게 테슬라가 큰 성공을 거두자, 에디슨은 큰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구요

    애디슨은 테슬라를 경계하면서 언론사에 테슬라의 교류시스템을 비난하는 많은 편지들을 보내게 됩니다테슬라의 교류시스템은 앞으로 많은 사망자들 내게할 위험한 시스템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슬라의 명성은 더욱 높아져만 갔고, 미국과 유럽은 테슬라의 교류시스템이 장악해 나갑니다.

     

    이렇게 테슬라가 에디슨의 명성을 뛰어넘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었는데요.

     

     

    이렇게 테슬라에게 밀리게 된 에디슨은 그 후 새로운 연구발명에 전념하게 되었고, 1993년도에 사상 쵀초로 영사기를 발명해낸답니다.

     

    에디슨은 지금 우리가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드는 영상장치인 키네토스코프를 최초로 발명해내었답니다.

    또한 에디슨은 자신의 영사기로 바탕으로 영화제작소 블랙마리아를 설립해서, 수백편의 영화를 제작해낸답니다.

     

    이렇게 에디슨은 새로운 발명품들을 개발해서 또다시 명성을 높이면서, 자신의 라이벌인 테슬라를 고립시키는 공작을 벌여나갑니다.

    에디슨은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테슬라를 모함하고 비난하는 공작을 벌이면서, 테슬라의 연구개발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치열한 로비활동을 전개해나갔답니다.

     

    이렇게 에디슨의 치열한 방해공작으로 인해서, 테슬라는 자신이 새롭게 개발한 발명품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그대로 사장시키거나 보급시키지 못하게 되었답니다. 

     

    테슬라는 변압기와 교류유도전동기, 무선 전구, 라디오, 레이다, 테슬라코일 등 많은 발명품들을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테슬라는 세계의 여러지역에 자료와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장치 워든클리프타워도 개발하였고, 로켓트도 게발하였지만,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투자를 받지못해, 그의 위대한 발명품들이 활용도 못한 채 사장되었다고 합니다.

     

     

    에디슨은 최초로 백열전구을 발명하였지만, 테슬라는 벽열전구보다 업그레이된 형광등과 네온싸인을 발명했답니다.

     

    그 외에도 테슬라는 무선통신장치, 무선제어장치, 원격제어 어뢰와 인공번개, 살인광선(레이저무기), 전기자동차까지 발명했지만, 투자자들의 외면과 에디슨의 방해공작으로 그의 위대한 발명품들을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고 말았답니다.

     

    테슬라가 100년 전에 이미 발명했던 워든클리프타워나 살인광선, 전기자동차 등의 발명품들은 최첨단 전자장치로서 그 당시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발명품들이었고, 오늘날 새롭게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들이랍니다.

    테슬라는 시대를 100년 이상 앞서간 천재발명가였지만, 시대를 잘못 태어나서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지요.

     

    에디슨은 실용적인 발명품들을 많이 발명했는데, 그가 특허를 받은 발명품들은 1,500개나 된다고 하며, 당시 최고의 발명가라는 명예를 얻었답니다.

     

    반면 테슬라는 당시로는 굉장히 획기적인 최첨단 발명품들을 발명하고 개발했지만, 당시 보수적인 투자자들과 언론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서, 100년을 앞선 그의 위대한 발명품들은 거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고 말았답니다.

     

     

    에디슨은 최고의 발명가소리를 들으면서 84세의 나이에 명예롭게 사망했지만, 테슬라는 점점 대중들로부터 잊혀져가면서 만년을 외롭게 보내다가, 194387세의 나이에 사망하고 맙니다.

     

    일각에서는 필라델피아실험의 핵심요소인 순간이동 기술은 테슬라가 개발한 장치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습니다. 테슬라가 개발한 이 순간이동 기술은 너무도 획기적인 발명품이어서, 미국에서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다고 합니다.

     

    순간이동 기술(타임머신)이 중국이나 러시아등 경쟁국들에 유출되지 못하도록, 미국에서 테슬라가 발명한 이 기술을 비밀에 부치고있다고 합니다.

     

    100년전에 지금도 최첨단 장치라고 여겨지는 발명품들을 앞서서 개발해낸 테슬라라고 하면, 충분히 순간이동(타임머신) 장치를 만들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테슬라는 에디슨을 뛰어넘는 진정한 천재과학자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에디슨이 특허를 받았던 많은 발명품들 중에는, 테슬라가 에디슨회사에 있을 때 발명했던 것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테슬라가 에디슨회사에 근무하면서, 발명했던 많은 발명품들을 에디슨이 자가이름으로 특허를 내고 돈벌이를 해서, 이익을 독식했다고 합니다.

     

     

    테슬라가 발명한 것들을 에디슨이 자기가 발명한 것처럼, 자기이름으로 특허를 내고 돈벌이를 했다고 하는데, 그 이익의 일부를 저작권자인 테슬라에게 지급해야 하는데, 에디슨은 전혀 지급하지 않고 그 이익을 혼자서 독식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테슬라가 생전에 직접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서 주장했던 내용이랍니다.

     

    에디슨도 위대한 발명가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는 너무 돈만 밝히는 탐욕스러운 인물이랍니다. 반면 테슬라는 순수한 마음으로 많은 뛰어난 발명품들을 발명했던 진정한 발명가이자, 천재과학자라고 할 수 있답니다.

     

    테슬라가 100년전에 발명했던 첨단장치들을 그 시대의 대중들이 주목했더라면, 우리인류의 문명은 100년 이상 앞당겨졌을 겁니다.

    지금 큰 주목을 받고있는 전기자동차는 이미 테슬라가 100년 전에 발명했던 테슬라의 발명품입니다.

     

    그래서 전기자동차 회사의 이름이 테슬라인 것입니다.

     

    수익과 탐욕을 몰랐던 천재과학자 테슬라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사장되었다는 점이 너무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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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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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보물선 드미트리 돈스코이호’ 150조 보물 수장, 인양작업

       

      우리나라에도 보물선이 숨겨져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답니다. 장소는 울릉도 앞바다인데, 울릉도 앞바다 수심 300m 바다속에 러시아제 순양함이 보물을 싣은 채로 수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콜롬비아 앞바다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보물선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다른 나라도 아닌 우리나라에도 보물선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어서 무척 신선하고 흥미로운데요.

       

      그럼 울릉도 앞바다의 보물선이야기는 실재하는 이야기일까요?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울릉도 앞바다의 해저 깊은곳에 실제로 보물선이 가라앉아 있다고 합니다. , 보물선이야기는 뜬소문이 아니고 실존하는 팩트라고 합니다.

       

      울릉도 앞바다 속에 수장된 보물선은 바로 러시아소속의 군함 돈스코이호입니다. 이 러시아순양함 돈스코이호에는 엄청난 양의 금화와 금괴, 골동품, 귀중품들이 가득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럼 돈스코이호는 어떻게해서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하게 된 것일까요?

       

      러시아의 군함 돈스코이호는 길이 93m에 무게 6,200톤의 군함으로 1905년 일본과 러시아간의 러일전쟁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함과의 전쟁 중에 울릉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고 합니다.

       

       

      1905년 우리나라 동해상에서 두 강대국인 일본과 러시아간의 러일전쟁이 전격적으로 벌어졌답니다.

      조선에 대한 주도권과 영향력을 놓고 동북아의 두 강대국 사이에 전쟁이 벌여졌는데, 동해에서 벌어진 일본함대와 러시아함대간의 함대전쟁이 그것입니다.

       

      당시 일본전함들은 동해바다에 거점을 마련하고 대기하고 있다가, 쳐들어오는 러시아군함들을 향해서 일제히 함포사격을 가했으며, 일본전함들의 기습공격을 받은 러시아군함들을 하나둘씩 침몰되어 버렸답니다.

       

      일본전함들의 우수한 성능과 기습포격으로 40여척이나 되는 러시아전함들 대부분 폭격을 받고 침몰당했는데, 그 중에서 유일하게 드미트리 돈스코이호만이 일본사격망을 피해서 달아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러시아가 일본과의 해전에서 패배하게 되자, 돈스코이호는 블라디보스톡으로 퇴각하기 위해서 울릉도 앞바다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 울릉도 앞바다에서 또다시 일본함대의 포위망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일본함대에 포위된 돈스코이호는 울릉도 앞바다에서 스스로 자폭한 후에 배는 바다속으로 가라않게 된답니다.

      당시 돈스코이호에는 전쟁수행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군자금이 들어있었다고 하며, 배안에는 엄청난 양의 금화와 금괴, 골동품들이 많이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울릉도 앞바다에 가라앉아있는 돈스코이호에는 무려 150조의 보물들이 들어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정말 엄청난 양의 보물이 아닐 수 없답니다.

       

      이렇게 돈스코이호에 엄청난 양의 금화와 금괴가 들어있다고 알려지자, 오래전부터 여러차례에 걸쳐서 돈스코이호에 대한 탐사와 인양이 시도되었다고 합니다.

       

      1916년도에 일본이 먼저 울릉도 앞바다 속에 있는 돈스코이호에 대한 인양을 시도했는데, 그당시는 기술적으로 낙후된 상태라서, 인양작업이 실패로 끝났고 합니다.

       

      그리고 1981년 우리나라의 도진실업이 두 번째로 인양작업을 실시했는데, 역시 실패하고 말았답니다.

       

       

      1998년 동아건설이 의욕적으로 돈스코이호 인양작업을 시도했는데, 결국 수년에 걸친 인양작업이 성공하지 못하고, 동아건설은 파산하고 말았답니다.

       

      이렇게 세차례에 걸친 인양작업이 모두 실패했지만, 최근에 또다른 회사가 네 번째로 돈스코이호 인양작업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2015년 신일광채그룹이 또다시 돈스코이호 인양작업을 개시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전설이 난무한 돈스코이호는 실제로 울릉도 바다속에 있는 걸까요? 또한 돈스코이호 안에는 정말 150조에 해당하는 금괴와 금화들이 들어있는 걸까요?

       

      10여년 전에 한국해양연구원과 동아건설은 울릉도 앞바다에서 실제로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선체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10여년전에 울릉도 앞바다에 대해 탐사를 실시했는데, 바다속 300m 깊이의 해저에 옛 러시아제로 추정되는 선채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동아건설이 부도사태 때문에 자금사정이 악화되어서, 더 이상 인양작업을 추진하지 못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정말 영화같은 장면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것인데요. 정말로 울릉도 앞바다에는 러시아순양함으로 추정되는 선채가 발견된 것이랍니다.

       

      10년전 동아건설측이 울릉도 해저부분에 침몰되어 있는 선채와 그 파편들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은 자료들이 오늘날에도 전해지고 있답니다.

      전문가에 따르면 그 영상화면속에 나온 대포가 1905년 당시 러시아에서 사용되던 함포가 맞다고 합니다. 그리고 절단된 러시아제 돛대도 함께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울릉도 앞바다 해역에는 러시아군함 외에는 그 어떤 외국전함이 침몰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해역속에서 발견된 파편들은 러시아 돈스코이호가 맞다고 합니다.

       

        울릉도 해저속 돈스코이호의 잔해들

       

      그렇다면, 울릉도 앞바다 깊은해역속에 러시아 돈스코이호가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 돈스코이호에 정말 엄청난 금액의 보물들이 들어있는 것은 사실일까요?

       

      1905년도 러일해전 당시에 동해에서 일본전함들의 함포공격을 받고서 다른 러시아군함들은 모두 파괴되어버렸지만, 유일하게 돈스코이호만 파괴되지 않고 울릉도 방면으로 도망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울릉도 지역에서 또다시 일본함대들에게 포위를 당했던 돈스코이호는 일본함대에 나포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러시아선원들이 내린 상태에서 스스로 돈스코이호를 폭파시켜 버렸다고 합니다.

       

      , 일본에게 배를 빼앗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러시아군인들이 스스로 돈스코이호를 폭파시켜서 수장시켜버렸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러시아수병들이 자신들의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 돈스코이호를 폭파시켰던 이유는 돈스코이호에 엄청난 금괴와 금화 등 값나가는 보물들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런 값진 보물들을 적국인 일본에 빼앗기는 게 싫었던 러시아는 스스로 자신들의 배를 자폭시켰다고 합니다.

       

      러시아인들이 스스로 자폭시킨 돈스코이호에 보물이 있다는 소문이 일본인들로부터 퍼져나오게 되었고, 1916년 일본인들이 침몰된 돈스코이호에 대한 발굴인양을 시도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1932년 미국의 뉴욕타임즈지에도 울릉도 앞바다에 엄청난 보물이 담긴 돈스코이호가 수장되어 있다는 보도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러시아의 기록에 따르면, 1905년 당시 러시아의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명령에 따라서, 전쟁에 쓰일 군자금을 돈스코이호에 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자금을 잔뜩 실은 돈스코이호는 일본과의 전쟁수행을 위해서 조선 동해상으로 이동해왔으며, 돈스코이호가 동해 해저속으로 침몰되자, 러시아선원들이 울릉도로 피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울릉도로 피신을 했던 러시아선원들은 울릉도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구조될 수 있었는데, 그당시 러시아선원들은 자신들을 구조한 댓가로 베에 있는 금화를 꺼내어 주민들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당시 러시아선원들이 돈스코이호에서 꺼내왔던 금화를 동주전자에 담아서 울릉도주민에게 주었다고 하며, 그 때 러시아선원이 주었던 동주전자가 지금도 남아있는데, 울릉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선원이 울릉도주민이 도와준데 대한 답례로 동주전자에다 금화를 가득 담아 주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돈스코이호에는 엄청난 양의 금화와 금괴가 담겨있었다고 합니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군함 40대가 동해앞바다로 진출해왔는데, 40대의 러시아군함들에 대한 연료와 식량등 군수물자를 대주던 배가 바로 돈스코이호였다고 하며,

      40대의 전함들에 대한 수개월의 전쟁기간 동안 필요한 연료와 식량, 군수품을 사는데 필요한 자금이 돈스코이호에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돈스코이호는 러일전쟁 당시 군수품조달선의 역할을 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돈스코이호에는 막대한 금액의 보물들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러시아기록에는 돈스코이호가 러시아의 마지막황제 니콜라이 2세의 군자금 보관선이라는 기록이 나오고 있으며, 정통한 해양전문가의 견해에 따르면, 이 돈스코이호에 150조에 해당하는 보물들이 실려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록과 설들이 사실이라면, 정말 돈스코이호는 보물선이 맞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설들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돈스코이호를 발굴해야만 알 수 있답니다.

      렇지만 1905년 당시 돈스코이호를 타고서 울릉도로 피신온 러시아선원들이 울릉도주민에게 금화를 선물로 준 것은 사실이랍니다. 이것은 울릉군지라는 기록물에 실제로 기록된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러시아선원들은 돈스코이호에 필요한 연료(선탁)와 식량을 구입하기 위해서 다량의 금화와 금괴를 싣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울릉도 앞바다 해저 300m 지점에 돈스코이호가 수장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랍니다.

      또한 그 돈스코이호에 150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다량의 금화와 금괴가 실려있는 것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답니다.

       

      현재 울릉도 앞바다에서는 신일광채그룹이라는 회사가 돈스코이호에 대한 인양작업을 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일 신일광채 그룹에서 돈스코이호의 인양에 성공한다면, 거기서 얻게되는 보물의 50%는 국가에 기부하고, 나머지 50%를 본인들이 갖게된다고 합니다.

      신일광체그룹은 자신들의 수익금의 50%를 일자리창출사업에 쓰도록 국가에 헌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현행법에서는 골동품이나 매장품을 발굴인양한 경우에는 30%는 국가에 납부해야하고, 나머지 70%는 그 발굴자가 갖도록 되어있답니다.

       

      또한 신일광채그룹은 돈스코이호 인양작업의 전과정을 모두 전국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실시간으로 돈스코이호 인양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해서, 모든 국민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한다고 합니다.

       

      또한 신일광채그룹의 돈스코이호 인양작업에 일반인들도 참여할 기회를 준다고 합니다. 일반인들이라도 해양탐사나 잠수, 발굴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열정이 있는 사람들은 돈스코이호 인양작업에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신일광채그룹은 돈스코이호 인양작업에 일반인들이 참여하도록 문호를 개방한 것인데요. 자신들이 그 이익을 독점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돈스코이호 인양작업에 참여한 일반인들도 만일 돈스코이호의 인양에 성공하고 실제로 보물을 건져올린다면, 그 이익금의 1/N을 얻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적지않은 보물사냥꾼들이 이소식을 듣고 울릉도 앞바다로 보물사냥을 떠날 것으로 예상이 된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보물이 실려있다는 돈스코이호는 울릉도 앞바다의 300~400m 해저에 가라앉아있다는 점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전문장비 없이 혼자서는 결코 돈스코이호 인양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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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영화 김광석 죽음, 자살이 아닌 타살의혹, 부인 서해순 사진, 딸 김서연

         

        90년대를 풍미했던 국민가수 김광석은 사망한 지 2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노래들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

         

        사랑했지만’ ‘이등병의 편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랑이라는 이유로등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애절하고 아름다운 발라드를 불러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전설적인 발라드가수 김광석!

         

        그런데 사망한지 22이나 지난 김광석이 현재 또다시 대중들로부터 큰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답니다.

         

        금년 8월에 개봉된 이상호가 연출한 다큐멘타리영화 김광석에서 김광석의 타살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며, 김광석이 사망한 이유가 타살이라는 의혹이 점점 커져가고 있답니다.

         

         

        김광석의 사망이유, 자살? 타살?

         

        90년대에 대한민국의 대중가수로 큰 인기를 끌었던 김광석이 돌연 사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광석은 가수로서 한창 인기를 끌었던 9616일 한창 왕성하게 활동해야할 31세의 젊은나이에 의문의 죽음을 당했답니다.

         

         

        당시 경찰이 밝힌 사망원인은 자살이랍니다. 그런데 당시 한창 큰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전성가도를 달리던 인기가수 김광석이 자살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김광석의 자살은 많은 의혹을 불러일으켰답니다.

         

        당시 일각에서는 김광석이 타살되었다는 루머가 나돌았으며, 일부에서는 김광석의 부인에 의해서 타살되었다는 루머도 나돌았답니다.

         

        김광석의 타살의혹이 생기는 이유는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김광석이 너무도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에 대한 대중들의 슬픔과 미련도 작용했지만,

        김광석이 한창 대중가수로 큰 인기를 끌면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상황에서, 자살할 이유나 명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랍니다.

         

        김광석이 사망할 당시 그의 나이는 31세에 불과했답니다그럼, 김광석이 사망할 당시의 상황으로 되돌아가 보도록 하지요!

         

         

          김광석은 199616일에 마포구 서교동의 원음빌딩 4층 자택에서 31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요. 김광석이 사망하기 바로 전날밤에 그는 아내와 함께 술을 마시고 난후,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광석은 다음날 새벽 430분경에 거실계단에서 전기줄로 목멘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김광석 부인의 설명에 의하면, 김광석이 자살한 이유는 우울증김광석의 여자친구 문제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자살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김광석이 사망한 이후, 김광석의 죽음에 대해, ‘여자문제 때문이다또는 타살됐다’ ‘아내가 죽였다등 여러가지 추측들이 난무하게 됩니다.

         

        이렇게 김광석의 죽음과 관련해 여러 가지 추측과 루머가 나돌았던 이유는 너무 젊은시절에 그의 죽은 이유가 너무도 석연치않기 때문이랍니다. 다시말해 김광석이 자살할 만한 뚜렷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상호기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김광석 죽음 당시 부인 서해순의 태도에 매우 의문스러운 점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김광석 죽음과 관련해서 부인 서해순은 김광석이 죽기 전에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복잡한 여자문제가 있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김광석의 우울증은 사실이 아니며, 김광석에게 여자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나라, 오히려 부인 서해순이 남자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광석이 사망하기 전날밤 그의 집에는 부인 서해순 외에도 서해순의 친오빠가 함께 있었다고 하며, 그는 강력범죄 전과 13범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호기자가 수십년간 치밀하게 조사해온 결과, 부인이 김광석의 죽음에 대해서 거짓된 진술을 했다는 점이 발견되었으며, 타살의 가능성이 제기되었다고 했답니다.

         

        부인 서해순의 진술 김광석이 평소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강조했는데요. 김광석의 시신에서 우울증약 성분이 하나도 검출되지 않았고,

        김광석의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평소에 전혀 우울증 증세도 없었고, 우울증약을 복용한 정황도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김광석이 죽기 전에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부인의 주장은 거짓말임이 드러났답니다.

         

         

        또한 김광석이 사망했던 그 날 새벽까지 그는 팬미팅을 하고 있었던 것이 확인되었답니다.

        뿐만아니라 김광석은 사망한 바로 그날에 친구에게 내년에 멋진 공연을 함께 해보자고 말했다고 합니다.

         

        자살할 사람이 자살하기 직전까지 팬미팅을 즐기고, 내년도 음악계획까지 말하는 등 왕성한 음악활동을 벌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길 수밖에 없답니다.

        또한 김광석은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았답니다. 김광석은 평소에 매모를 꼼꼼하게 잘하는 사람인데 말이지요.

         

        죽기직전까지 내년도의 공연계획까지 말했던 김광석이 곧바로 자살했다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답니다.

        김광석의 자살을 주장하는 사람은 오직 단한사람, 그가 죽기전까지 함께 있었던 부인 서해순 밖에 없답니다.

         

        김광석 주변의 대부분의 지인들은 김광석의 타살의혹을 주장하는데, 오직 김광석 부인 한사람만이 그의 자살을 강력히 주장하는 상황이랍니다.

         

        이렇게 김광석의 죽음은 의혹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김광석의 죽음에 관해서 많은 루머들이 나돌고 있으며, 그가 죽은 지 2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김광석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중이랍니다.

         

         

        1996년 김광석사건을 실제로 담당했던 담당검사도 김광석의 타살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답니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자살로 처리되었다고 합니다.

         

        그 검사는 지금도 개인적으로는 김광석이 타살되었다는 확신을 갖고있다고 합니다. 다만 증거가 없다는 게 문제랍니다.

         

        또한 96년도에 김광석사망을 직접 취재했던 이상호기자는 당시 김광석 주변지인들의 수많은 증언들과 유력한 정황증거들을 많이 확보해놓고 있다고 합니다.

         

        김광석 부인의 증언이 거짓말탐지기 검사에서 거짓말로 나왔다고 하며, 김광석이 사망하기 직전에, 부인과 이혼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김광석이 죽기 직전 몇시간 전까지 함께 있었던 사람은 바로 부인 서해순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녀의 진술에만 의존해서 김광석이 자살했다고 언론에서 보도했답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정황증거와 김광석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광석은 자살보다는 타살되었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합니다.

         

        김광석의 재산은 100억월 훨씬 넘는다고 합니다. 김광석의 서교동 홍대입구 건물은 40억을 호가하며, 저작권수익등 김광석의 재산은 10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도합 140억원에 이르는 김광석의 재산을 향유할 사람은 김광석과 그의 부인 등 가족겠지요,

         

        그런데 주변지인들에 따르면, 김광석이 사망하기 직전에 김광석은 부인 서해순에게 이혼을 통보했다고 합니다.

        김광석이 부인에게 이혼을 요구한 이유는 바로 부인 서해순의 외도 즉, 복잡한 남자관계 때문이라고 하네요.

         

        , 부인 서해순의 주장대로 김광석이 바람을 피운 것이 아니라, 부인 서해순이 외갓남자와 여행을 다녀온 사실이 밝혀져서, 김광석이 부인의 외도를 이유로 이혼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김광석 부인이 함께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김광석의 동창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인 서해순은 김광석과 이혼을 할 경우, 김광석의 100억이 넘는 재산을 놓칠 위기에 처할 수가 있지요.

        김광석이 이혼을 요구하고 난 후, 그는 곧바로 의문스러운 죽음을 당하고 만 것이랍니다. 그리고 부인 서해순은 줄기차게 김광석의 자살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답니다.

         

         

         

        원래 사랑하는 남편이 죽었을 경우에는, 부인은 경찰에 남편의 사망원인을 밝혀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도리랍니다.

        그런데 김광석의 부인은 김광석이 죽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듯이 김광석의 자살을 강력하게 주장했답니다.

         

        죽기 직전에, 김광석이 부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는 점과 김광석이 이혼요구한 직후 사망했다는 점 등을 미루어보면, 김광석 죽음에 부인이 결부되었다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답니다.

         

        김광석의 딸 김서연 2007년도에 의문스러운 죽음, 사망원인

         

        그런데 김광석의 부인에 관해서 또다른 의혹점이 발생했답니다.

        김광석은 자신의 앨범 중 가장 인기가 높았던 제 3집앨범과 4집앨범 등 두 개의 앨범에 대한 저작권수익을 생전에 자신의 부모님의 소유로 이전시켜 놓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김광석이 부인 서해순을 믿지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광석부인은 전에 결혼했던 경력이 있었다고 하며, 놀랍게도 전남편과 사이에 자식까지 낳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인은 자신의 과거 혼인사실을 숨기고, 김광석과 결혼했다고 합니다.

         

        과거 부인 서해순의 결혼사실을 나중에 알게된 김광석이 부인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결국 이혼이 성사되지 못하게 되자, 부인을 불신했던 김광석은 자신의 2개의 앨범 저작권수익의 소유권을 자신의 부모님 앞으로 이전시켰다고 합니다.

         

         

        결국 서해순은 결혼전부터 문제가 많았던 사람이었으며, 김광석의 돈과 유명세를 보고 사기결혼을 한 것이랍니다.

         

        그런데 김광석이 죽고난 후, 2008년도에 김광석 부인과 김광석 부모님사이에 2개의 앨범 저작권수익에 관련된 법적 다툼이 있었고, 재판결과 부모님이 소유하고 있던 2개의 앨범 저작권수익은 김광석의 딸 서연이에게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부터 김광석의 2개의 앨범 저작권수익은 딸 서연이의 소유가 된 것이지요. 김광석의 딸은 발달장애자이어서, 그 재산권을 엄마인 서해순이 법정대리를 맞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난 후 김광석의 딸은 계속해서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주변사람들은 김광석 딸이 어디있는지 자주 물어왔다고 하며, 김광석의 부인은 외동딸 서연이가 미국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딸이 미국에서 잘 지낸다는 김광석부인의 말은 거짓말임이 드러났답니다. 김광석의 딸 김서연은 미국에 있는게 아니라, 2007년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 김광석부인은 딸 서연이 죽은 사실을 계속해서 숨겨왔고, 살아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해왔답니다.

         

        김광석부인은 딸 서연이 죽은 사실을 왜 숨겨왔으며, 무슨 이유로 살아있다고 거짓말을 했을까요? 이세상에 자기딸이 죽었는데, 살아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부모는 절대로 없습니다.

         

        김광석사망사건을 22년째 취재해온 이상호기자

         

        김광석부인이 이런 행동은 매우 비정상적인 행동이며, 뭔가 냄새가 나지않습니까?

         

        딸 서연이가 죽으면, 딸에게 이전된 2개의 앨범 저작권수익이 모두 부인에게로 돌아가게 된답니다. 2개의 앨범 저작권수익은 김광석앨범 중에 가장 큰 수익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수익이 나는 두개의 앨범저작권수익이 딸의 소유로 되어있는데, 딸이 죽는다면 그 많은 저작권수익은 누구에게로 돌아갔까요?

        김광석 딸이 죽음으로서 가장 큰 이득을 볼 사람이 누구일까요? 뻔한 뻔자 아닙니까?

         

        그래서 김광석의 외동딸 서연이의 죽음과 관련해서도 큰 의혹점이 발생하고 있답니다.

         

        김광석의 외동딸 서연이는 200716세의 나이로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하는데, 서연이의 죽음도 의혹투성이랍니다.

         

        외동딸 서연이의 죽음에 대해서, 김광석 부인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도 의혹이 아닐 수 없으며, 서연이의 죽음에 그녀가 관련되었다는 루머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40억짜리 저택과 100억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던 김광석도 죽었고, 두 개의 앨범저작권수익의 소유권을 가졌던 외동딸도 죽었으니, 이 모든 재산을 독차지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김광석의 부인이 아닐까요?

         

        바로 돈! ! 돈 때문이 아닐까요? 김광석과 김광석의 딸이 의문스럽게 죽은 이유가 ~

         

         

        김광석이 만일 타살로 죽었다고 한다면, 그 타살이유는 김광석의 100억원이 넘는 돈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 있으며, 그 범인은 김광석이 죽었을 때에, 그 많은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과 관련이 높다고 할 수 있답니다.

         

        이상호기자가 수십년간 취재해온 근거자료들을 바탕으로 만든 다큐멘타리영화 김광석을 보면, 김광석의 죽음에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이 관련되었다는 의혹이 생기게 된답니다.

        또한 부인 서해순은 김광석과 결혼 전, 전남편과 사이에 태어난 9개월된 영아의 죽음에도 관련되었다는 의혹이 있답니다.

         

        김광석에 이어, 김광석의 외동딸까지 10년 전에 의문의 죽음을 맞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만큼, 경찰은 반드시 김광석부인 서해순에 대해서 재조사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은 김광석, 외동딸 김서연, 그리고 전남편사이의 영아 등 세명의 죽음에 관련되어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답니다.

        그런데도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여론의 질타를 받게될 것입니다.

         

        검찰과 경찰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김광석의 의문스러운 사망의 미스테리를 엄정한 수사를 통해서, 확실하게 밝혀주길 고대합니다.

         

        한편 김광석의 삶과 죽음에 관한 영화 김광석이 개봉된 이후, 김광석부인 서해순은 일체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잠적한 상태라고 하며, 미국으로 해외이주를 준비해온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고 합니다.

         

        김광석부인이 곧 해외로 출국할 것이 예상되는 만큼, 그녀가 출국하기 전에 경찰에서는 빨리 그녀에 대한 출국금지신청을 하고, 수사에 착수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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