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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총통 히틀러는 죽지않았다, CIA기밀문서의 히틀러 생존설의 근거

     

    2차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수백만명의 유태인을 학살했던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패전 당시 죽지않고, 살아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답니다.

     

    이게 무슨 아닌밤 중에 홍두깨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2차세계대전의 원흉으로 1945년도에 자살했다고 알려진 독일총통 히틀러가 죽지않고 오랫동안 살아있었다고 하는 CIA 기밀문서가 전격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1027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코드명 CIMELODY-3'라는 보고서를 전격 공개했는데, 이 비밀보고서에는

    아돌프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할 당시인 45년도 3월에 자신의 지하벙커에서 죽지않고, 탈출했다는 내용이 밝혀졌답니다.

     

    CIA가 공개한 이 비밀보고서에 따르면, 히틀러는 그의 애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전쟁패배한 직후 남몰래 독일을 빠져나와 콜롬비아로 탈출했으며, 그후 아르헨티나로 건너가서 10년 넘게 오래동안 살았다고 합니다.

     

    이번 CIA가 공개한 비밀보고서의 히틀러 생존설 내용은 정말 놀랍고도 엄청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그동안 모든 세계인들은 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총통 히틀러가 자신의 지하벙커에서 자살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CIA의 기밀해제된 보고서에 따르면, 히틀러는 당시 자살한 것이 아니라, 해외로 몰래 탈출했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인류가 2차세계대전 종전 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70년간을 속아왔다는 것일까요? 우리 모두는 종전과 함께 당연히 히틀러가 죽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

     

    봉인해제된 이 CIA기밀문서에는 당시 히틀러의 친위대 대원의 증언이 담겨있는데, 그는 히틀러는 사망했다고 알려진 45년도보다 10년 뒤인 1955년도에도 콜롬비아에서 생존해 있었다고 증언했다고 합니다.

     

      아돌프가 생존해 있다는 내용의 CIA기밀 보고서 원본, 사진의 왼쪽사람이 히틀러다 

     

    아돌프 히틀러는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원흉으로서, 그는 2차세계대전 당시 6백만명에 이르는 무고한 유태인들을 학살했던 장본인이며, 그가 일으킨 세계대전으로 인해서 5천만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답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의 나치당을 이끌고 있던 강력한 야당지도자였는데, 1934년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자, 권력을 잡고 독일총통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독일총통으로 취임한 히틀러는 실업자 해소와 국가사회보장 정책 확대, 과거의 구습타파 등 개혁정책들을 추진하면서 독일의 최고지도자로서 입지를 굳건히 구축했고, 당시 독일국민들의 높은 인기와 지지를 얻어 된됩니다.

     

    강력한 리더쉽과 카리스마를 발휘한 아돌프 히틀러는 30년대 후반, 강력한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난 후, 39년도에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후, 유럽의 많은 나라들을 침략해들어 갑니다.

     

     

    독일총통 히틀러의 독일군대가 유럽의 많은 국가들을 점령해 나갔고, 심지어 소련의 영토까지 쳐들어갔는데, 이로서 그동안 전쟁을 관망하던 미국과 소련이 참전하면서 처음에는 승기를 잡았던 독일이 점점 전쟁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소련과의 전쟁에서 계속 패배했던 독일군은 수십만명의 병사들을 잃고 이제 독일 베를린에 있는 히틀러의 총통관저마저도 뒤따라온 소련군에 함락당할 위급한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전쟁에서 패배한 아돌프 히틀러는 베를린 총통관저의 지하벙커에서 애인 애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하게 됩니다.

    1945430일날, 총통관저 지하벙커에서 자신의 애인 애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린 후에, 청산가리캡슐을 삼킨 후 권총으로 두사람 모두 자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베를린을 먼저 함락한 소련군들이 제일 먼저 총통관저의 땅속을 파서 히틀러와 시신을 발굴했다고 하며, 그 시신을 소련으로 가져갔다고 합니다.

    당시 베를린을 점령했던 소련측은 히틀러가 자신의 지하벙커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고 발표했답니다.

     

    또한 히틀러는 자살하기 직전에, 자신의 부하에게 자신이 죽으면 곧바로 불에 태워서 화장하라고 지시했고, 실제로 죽은 히틀러의 몸은 불에 심하게 그을린 상태였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모든 사람들이 알고있는 히틀러의 죽음과 관련된 사실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알려진 히틀러의 자살이 실은 거짓이라고 하며, 그는 2차세계대전 이후에도 오랫동안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히틀러의 시신을 보았던 독일장교들은 히틀러가 불에 심하게 태워지고 구멍이 많아서 그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증언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실제로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히틀러시신은 히틀러가 아니라, 히틀러와 비슷한 체격을 가진 히틀러의 대역이었다고 하네요.

     

    히틀러는 자신의 지하벙커에서 자신의 대역을 내세웠고, 그 대역을 살해하고는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불에 태워버렸다고 하며, 자신은 에바 브라운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독일을 탈출해 스페인까지 날아갔다고 합니다.

     

    또한 히틀러는 자신의 탈출을 숨기기 위해서 자신이 타고온 비행기를 폭파시켜버리기까지 했고, 스페인에서 다시 잠수함으로 갈아타고는 아르헨티나의 마르델플라타로 도주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당시 히틀러는 애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도주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45430일 자살했다고 알려졌던 그 히틀러의 시신은 히틀러가 진짜로 자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대역을 살해하고는 자신의 자살로 위장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자신이 자살한 것으로 위장시키고는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 그 대역을 불에 태워버린 것이랍니다.

     

    항간에는 히틀러가 자신이 죽은 후에 자신의 시신이 적국의 박물관등에 전시되는 것을 두려워해서, 불에 태우라고 자시를 내렸다고 알려졌는데요.

    사실은 그런 게 아니라, 위장자살한 그 시신이 히틀러의 시신이 아니라는 것을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 대역의 시신을 불태운 것이라고 것이지요.

     

    그리고 소련에서 보관해온 히틀러의 유골을 직접 보고 조사를 벌였던 영국 역사가 제라드 윌리엄스는 그 시신은 결코 히틀러의 시신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 시신은 히틀러와 체격이 비슷한 40세의 러시아 여성의 시신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히틀러의 유골

     

    2009927일 러시아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유골을 공개한 적이 있었는데, 이 당시 미국의 코네티컷대학교의 고고학자이자 골격전문가인 닉 벨란토닌 교수가 그 히틀러의 유골에 접근해서 심도있게 분석하게 됩니다.

     

    러시아의 국가자료보관소에서 오랫동안 보관해왔던 히틀러의 유골을 전격 공개했고, 그 유골을 심도있게 조사했던 닉교수는 충격적인 주장을 펼쳤답니다.

     

    히틀러의 두개골을 진짜 히틀러의 두개골이 아니라, 40세 이하의 여성의 두개골이라고 합니다.

    닉 교수는 이 두개골을 절대로 남성의 두개골이 아니며, 여성의 두개골이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답니다.

     

    그 두개골의 두께는 남성의 것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매우 얇았고, 유골의 특징이나 형태도 남성의 것이 아니라 여성의 것이 분명하다고 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그 공개된 히틀러의 유골을 대상으로 과학자들이 DNA분석을 실시했는데, 히틀러의 친족들의 DNA와 대조한 결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보관해왔던 히틀러의 유골은 진짜 히틀러의 유골이 아니라는 점과, 40세 이하의 여성의 유골이는 것이 확인되었다는 것이지요. 히틀러는 사망할 당시 나이가 56세였답니다.

     

    그래서 한때는 히틀러가 콧수염을 붙이고 남장을 한 실제로는 여자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건 논리적으로 전혀 말도 안되고, 러시아에서 보관해왔던 그 히틀러의 유골은 히틀러의 대역의 유골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답니다.

     

    히틀러는 1955년도에는 콜롬비아에서 거주하고 있었고, 그 후 히틀러는 아르헨티나를 거쳐서 안데스산맥의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가서, 오랫동안 삶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주민에 의해 목격되었다고 하는 히틀러부부 사진

     

    아르헨티나에는 히틀러를 목격했다는 목격자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 사이에서 태어난 두 명의 딸들을 보았다는 증언도 있으며, 히틀러의 아들을 보았다는 목격담도 있다고 합니다.

     

    한 독일의 신문은 히틀러의 아들이 아르헨티나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보도한 적도 있답니다.

     

    또한 1956년 한 여인이 아르헨티나의 이날코의 대저택에서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의 가정부로 일했다는 증언도 있답니다.

     

    아르헨티나의 역사학자 아벨 바스티는 아르헨티나의 한 여성으로부터 이날코의 저택에서 한달간 가정부로 일하면서,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을 자주 보았다는 목격담과 증언을 확보했다고 하며, 그녀가 일했던 그 저택은 히틀러의 은신처였다고 합니다.

       

    히틀러는 이처럼 콜롬비아와 아르헨티나, 안데스산맥 등을 전전하면서, 패전 이후에도 17년 넘게 계속 살아갔는데, 그는 독일에서 총통으로 있을 때 유태인과 식민지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를 약탈했었는데,

    그 많은 금은보화를 갖고 가서 자신의 망명지에서 그것들을 팔아서 생활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하며, 부인과 함께 오랫동안 호화롭게 생활했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찍힌 히틀러 추정 사진

     

    그리고 히틀러는 안데스산맥의 기슭가에서 살아가다가, 1962213일까지 천수를 다 누린 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히틀러를 아르헨티나까지 데려다 준 비행기 조종사의 증언도 확보되어 있다고 하네요.

     

    이같이 히틀러가 1945년 전쟁 패전 당시에 죽지않고, 외국으로 탈출해서 오랫동안 살았다고 하는 히틀러의 주변의 부하들과 비행기조종사들의 증언들이 존재한다고 하니, 신빙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답니다.

     

    그동안 히틀러의 생존설은 계속해서 제기되어 왔으며, 히틀러의 죽음과 관련해서 많은 의혹설들이 퍼져나오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금년 10월달에 미국의 중앙정보국(CIA)가 전격 공개한 기밀문서에 놀랍게도 히틀러의 생존에 관한 보고서가 들어 있어서, 히틀러의 생존설에 무게감을 높여주고 있답니다.

     

     

    히틀러가 전쟁패배 이후에도 오랫동안 살아있었다고 증언하는 히틀러부하들의 증언내용이 실린 이 CIA보고서의 내용이 100% 맞는지는 좀 더 조사해보아야 하겠지만, 그동안 제기되어온 히틀러 생존설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사실이랍니다.

     

    그런데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 때에 죽지않고, 그 후에도 생존해 있었다고 가정해 본다면, 또다른 의문점이 든답니다.

     

    히틀러가 어떻게 해서 전쟁패배한 이후에도, 연합군에게 붙잡히지않고 에바 브라운과 함께 탈출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독일을 탈출 한 후에도 중남미지역에서 발각되지 않고 오랫동안 천수를 누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아돌프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의 승전국과 비밀거래를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답니다.

     

    1945년 초반기에 히틀러는 자신의 패전이 거의 확실시되어가자, 더 이상 전쟁상황을 돌이킬 수 없게 되는 상황에서, 히틀러는 승전국 소련이나 미국과 비밀리에 거래를 했고, 비밀협정을 맺었을 것입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과학기술 수준이나 무기개발 수준은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유명하답니다.

     

    그당시 독일은 세계최초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했었고, 최고성능의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원자폭탄의 개발도 거의 완료단계에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타임머신 개발, 비행접시 개발 등 그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고도의 최첨단 과학기술과 개발품들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해요.

     

     

    이중에서 타임머신은 완전 개발이 완료된 것은 아니라 시험하는 단계였다고 하지만, 비행접시 개발은 거의 완성직전까지 갔다고 하며, 원자폭탄 개발도 성사직전의 단계였다고 합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이 갖고있는 이런 최첨단 과학기술 개발품들의 설계도를 미국이나 소련에게 제공하고 그 댓가로 자신과 에바 브라운의 생명을 보장받는 내용의 비밀협정을 맺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진답니다.

     

    만일 히틀러가 이런 비밀협정을 맺지않고 자신이 개발한 최첨단 기술의 개발물들의 설계도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죽는다면, 미국과 소련으로서도 큰 손실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랍니다.

     

    2차세계대전 종료를 전후해서 미국이 세계최초로 원자폭탄을 개발한 것과, 2차세계대전 후에 로켓개발과 최첨단 미사일과 최첨단 무기들을 연속해서 개발해낸 것들이 혹시라도 히틀러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만은 없다고 보여진답니다.

     

    그러니까 1945년 당시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히틀러는 미국이나 소련에 특사를 파견해서 최첨단 개발품들의 설계도를 제공하고, 자신은 그대가로 에바 브라운과 함께 생명을 보장받는 내용의 빅딜을 하였고,

    리고 대외적인 명분을 얻기위해서 자신의 대역자를 살해해서 자신의 자살로 위장시킵니다.

     

     

    그리고 자신과 에바 브라운은 미국의 보호하에 독일을 무사히 탈출해서 아르헨티나로 숨어들어가서, 에바 브라운과 함께 가정을 꾸려서 천수를 누렸던 것이랍니다.

    미국이 보호없이는 히틀러가 에바 브라운과 함께 아르헨티나에서 발각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법이랍니다.

     

    물론 이같은 내용은 어디까지나 추정입니다. 그렇지만 히틀러가 생존했다는 내용의 미국 CIA의 기밀보고서까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추정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런 추정에 찬반 양론이 있을 수도 있지만, 히틀러가 전쟁패배 이후에도 1962년도까지 살아있었다고 하는 히틀러부하들의 증언내용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의 권위있는 국가의 정보기관 CIA가 거짓된 정보를 갖고있을 리가 없답니다.

     

    아뭏튼 45년도 독일패전과 함께 자살했다고 알려진 히틀러가 실제로는 자살위장을 한 채로, 몰래 안데스산맥으로 숨어들어가서 부인과 함께 천수를 누렸다고 하니, 정말 그의 질긴 생명력에 놀랍기만 합니다.

     

    2차세계대전을 일으키서 수천만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흉이 이렇게 천수를누릴 자격이 있을까요? 최첨단 과학기술의 힘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보여집니다.

     

    만약 미국이나 소련이 히틀러와 비밀거래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명문보다는 실리를 챙긴 셈이고, 그 대가로 2차세계대전 이후에 그들 국가들은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얻게 된 셈이랍니다.

    히틀러를 상대로 미국이나 소련은 손해보지 않은 장사를 한 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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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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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르단의 바위절벽도시 페트라와 눈부신 고대건축물들, 7대 불가사의

       

      요르단에는 바위산을 깎아서 만든 고대 절벽도시인 페트라가 존재한다.

       

      페트라는 고대시기에 요르단 남부의 척박한 땅 사막위에 지어진 고대도시의 유적지이다. ‘페트라가 유명해진 이유는 해발 1km의 산악지대에 바위를 깎아서 수많은 건축물을 짓고는 거대한 고대도시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요르단의 남쪽에 있는 사막지대에 바위산을 정교하게 깎아서 만든 절벽도시 페트라가 존재하는데, 이곳에는 바위절벽을 깎아서 신전이나 회당, 고분 등 무려 800여개가 넘는 건축물들을 만들어놓았는데,

      정말 보기에 너무도 멋지고 거대해서 보는 사람들에게 신비로움과 항홀경을 안겨다주고 있다.

         

      고대 절벽도시 페트라의 입구는 폭 3m의 좁은 헙로로 되어있고, 이 좁은 협로가 1,2km이상 계속 이어져있는데, 그 안에는 고대도시 페트라의 수백개가 넘은 고대 건축물들이 산재해 있다.

      런데 이 페트라의 모든 건축물들을 바위를 깎고 조각해서 만든 건축물들이라고 해서 놀라움을 주고있다.

       

      이 입구에 있는 좁은 협로를 따라서 1km 정도 계속 들어가면, 페트라의 대표적 건축물인 알카즈네가 있다.

       

       

      알카즈네는 바위절벽 위에 조각해서 만든 건축물로 마치 그리이스의 파르테논 신전처럼 멋지고 웅장한 자태를 하고 있는데,

      어 알카즈네도 바위절벽을 정교하게 조각해서 만들었다고 하며, 그 웅장하고 정교한 모습이 신비롭기 그지없으며, 마치 신이 빚어놓은 건축물처럼 아름답다.

         

      페트라의 일카즈네는 폭 30m에 높이가 43m인데, 바위산의 정면을 통째로 깎아서 만들었다고 하며, ‘알카즈네의 모습이 그리이스의 신전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페트라의 건축물들은 그리스로마의 문화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원전의 시대에 이렇게 높은 곳에 어떻게 올라가서 저렇게 정교하게 조각해서 만들 수가 있었는지가 정말 놀랍고 감탄스럽기만 하다.

       

       

      패트라는 사막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주변에 나무도 없고 철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43m나 되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이같은 신전모양을 조각할 수가 있었을까가 수수께끼이다.

       

      알카즈네건축물에는 석공이 버티고 서서 일할 수 있는 비데(버팀목)가 설치된 흔적도 전혀 없는데, 43m의 높은 곳에 올라가서 조각할 수 있었던 것은 페트라에 살았던 나바테아인들의 뛰어난 건축기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페트라의 거주민이었던 나바테아인들은 알카즈네를 조각할 때에, 맨 꼭대기위에서부터 깎아내려오는 조각공법을 이용했다고 한다.

       

      바위산 꼭대기에 올라가 일정한 길이로 깎아서, 그 깎아서 꺾인 바닥을 사람이 서있을 버팀목처럼 이용해서, 또 그 밑으로 깎아서 더 밑에 있는 절벽 버팀바닥을 만들면서 계속 아래로 깎아내려왔다고 한다.

       

        바위를 깎아 만든 알카즈네

       

      기원전 1세기경에 나바테아인들을 다른 나라사람들이 갖지못한 매우 뛰어난 선진건축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서, ‘알카즈네같은 우수한 고대건축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페트라의 알카즈네보물창고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과거에 주변의 원주민들이 이 알카즈네의 위쪽의 항아리 조각상 뒤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믿어서 이같은 이름이 붙여졌고,

      변의 백위인들이 보물을 찾기위해 이곳에서 도굴꾼들끼리 실제 치열한 전투를 벌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알카즈네 내부 모습으로 별다른 장식이나 조각이 없고 썰렁한 공간이다

       

      알카즈네의 겉모습은 멋지고 정교하지만, 알카즈네의 속으로 들어가면 별다른 장식없이 어두운 커다란 홀이 나오며, 그 홀과 연결된 커다란 방과 작은방 4개가 들어있다고 한다.

       

      그리이스 신전의 모습을 빼닮은 이 알카즈네는 나바테족의 왕의 무덤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나중에는 신전처럼 활용되었다고 한다.

       

      페트라에는 알카즈네말고도 또다른 유명한 알데이르건축물이 바위절벽을 깎아서 축조되어 있다.

      알데이르건축물도 바위절벽을 조각해서 만들었고, 그 웅장하고 정교한 모습이 로마나 그리이스의 고대건축물 못지않게 아름답다.

       

       

      높이 48m에 넓이 47m알데이르는 원래 나바테인들이 무덤의 용도로 사용했었는데, 후대에 기독교인들이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비잔틴시대부터는 수도원의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알데이르가 원래 수도원이라는 뜻이다.

       

      알데이르수도원은 페트라의 건축물들 중에 가장 크고 거대한 건축물이라고 하며, 높이 43m의 알카즈네보다도 더욱 규모가 크며, 페트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고 있다.

       

      그 외에도 페트라에는 수많은 건축물들이 남아있는데, 무덤과 사원, 물탱크와 수로, 목욕탕은 물론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도 페트라 안에 남아있다고 하는데, 무려 800개가 넘는 수많은 건축물들이 정교한 조각품처럼 조각되어 남아있다고 한다.

       

       

      페트라가 기원전의 시대에 얼마나 문화적으로 융성했던 도시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요르단의 사막 한복판에서 바위산들을 깎아 800개가 넘는 건축물들을 만들었던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인 기원전 1세기였다고 한다.

       

      지금처럼 과학적 기술적 발전의 혜택을 전혀 받지못했던 기원전 1세기에 이처럼 멋지고 웅장한 사원이나 각종 건축물들을 만들었다고 하니, 정말 페트라의 조각건축물들을 만든 제작자들의 높은 기술력에 감탄사로 절로 나오며, 놀랍기만 하다.

       

       

      이곳 페트라의 조각건축물들의 양식이 그리이스로마의 양식을 닮아있어서, 페트라를 만든 주인공이 로마인이나 그리스인들로 착각할 수 있지만, 이 페트라도시를 건설한 주인공은 나바테아인이라고 한다.

       

      나바테아인은 아랍 유목민들로서 기원전 6세기경부터 이 페트라지역에 정착해서 살았는데, 기원전 3세기경에 페트라를 중심지로 하는 고대왕국을 건국하였다.

       

      기원전 시대에 나바테아인들이 페트라에서 건설한 고대건축물들이 800개가 넘게 발견되었으며, 지금도 계속 발굴되고 있고, 계속해서 추가 건축물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계속 발굴해나가면 2천개가 넘는 유적지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나바테아인들이 이곳 페트라에 건설한 바위절벽을 깎아서 만든 정교하고 웅장한 절벽도시는 유네스토에 등재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신 세계 7대불가사의로 선정하기도 했다.

      페트라는 인구 25,000명의 나바테아인들로 구성된 도시였으며, 상업과 무역으로 큰 부를 축적해나갔던 고대 도시국가였다.

       

      특히 페트라는 이집트와 아라비아, 페니키아의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어서, 중개무역을 통해서 막대한 부를 쌓았고 한때 큰 번영을 누렸던 도시였다.

       

      페트라의 나바테아인들은 동양과 서양, 아랍을 잇는 중계무역으로 큰 번영을 누리게 됐는데, 중국과 인도의 비단과 향료를 아랍과 서양에 공급해주고, 서양과 아랍의 특산물을 중국과 인도로 공급해주는 중계무역을 통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래서 기원전 1세기경에 한 로마의 철학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민족은 바로 나바테아인들이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무역을 통해서 엄청난 부를 획득한 나바테아인들은 그 벌어들인 돈으로 페트라 계곡에다 천여개가 넘는 멋지고 웅장한 건축물들을 만들었고, 그래서 페트라 절벽도시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기원전 1세기에 절벽도시 페트라는 이미 극장과 목욕탕, 원형경기장, 그리고 상수도 시설까지 갖추고 있는 그 시대의 최첨단 도시였고, 주변도시들보다 문화적으로 훨씬 앞서나갔던 도시였다.

       

      페트라가 있던 바위산지 주변에는 나무도 전혀 없고, 물도 전혀 없는데, 이같은 불모지에 어떻게 2.5000명이 거주하는 최첨단 도시를 만들 수 있었는지가 의문거리가 아닐 수 없다.

       

      페트라는 나무나 식물이 거의 자라지 못하는 사막 한가운데의 불모지이기 때문에, 이런 불모지에서 사람이 집단으로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페트라주변에는 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데, 사람이 거주하려면 반드시 물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페트라의 나바테아인들은 어떻게 물을 조달할 수 있었을까?

      이 페트라지역으로부터 8km 떨어진 먼 곳에는 모세의 샘이라고 불리우는 샘물이 있다.

       

      그런데 8km는 너무도 멀어서 페트라의 나바테아인들이 식수나 용수로 이용하기가 곤란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절벽도시 페트라에 물을 끌어올 수 있는 기다란 수로가 발견되었고, 수로안에는 쇠파이트까지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기원전의 시기에 이미 나바테아인들은 모세의 샘물에서 8km나 되는 긴 수로를 연결해서 페트라지역까지 물을 끌어올 수 있었고, 이 물로서 나바테아인들의 식수로 이용할 수 있었다.

       

      미개한 시대였던 기원전 1세기에 수로와 쇠파이프를 연결해서 8km나 되는 먼곳으로부터 물을 끌어와서, 공급하였다고 하니, 페트라 주민들의 하이테크 기술력은 정말 현대의 기술에 뒤지지않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본다.

       

      성경의 구약성서의 출애굽기편에는 모세가 이 페트라를 통과해서 가나안땅으로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이곳 페트라는 매우 오래된 유서깊은 도시였다.

       

      기원전 3~1세기경에 크게 번영을 구가했던 페트라가 지금처럼 폐허로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페트라는 원래 고대 아랍인들이 살던 기원전 1400년경부터 도시로 형성되었고, 기원전 6세기부터는 나바테아들이 들어와서, 아시아, 아랍지역과 아프리카를 이어주는 중계무역으로 큰 부를 쌓으면서 번영을 누렸는데,

      기원전 106년경에 로마제국에 의해 침략을 당한 후에 로마에 복속되면서 페트라는 서서히 쇠락해갔다.

       

      그리고 기원후 6세기경에 이르러, 페트라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서 도시 전체가 지금처럼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요르단의 사막 위에 지어진 페트라 유적지는 협곡 속 고대 나바테아인이 건축한 거대한 고대도시 유적과 함께 로마가 건설한 건축유적 등 다양한 문화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고대도시 페트라는 마치 사막속에서 새로운 로마도시를 보는 것처럼, 규모가 엄청나게 크고 웅장한 고대도시로서, 바위절벽 위에 조각된 건축물의 웅장함과 정교한 건축기법이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지금은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할 도시로 이 절벽도시 페트라를 꼽고 있다.

        

      페트라는 로마시대를 거친 후에 아랍인, 십자군들이 한때 정복했었고, 현재는 베드인들이 페트라의 주변에 거주하고 있다.

       

      고대도시 페트라는 사막속에 핀 보석같은 도시라고 할 수 있고, 오늘날 수많은방문객들이 방문하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페트라가 유명해진 것은, 1989년도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최후의 성전의 마지막 촬영지로 활용되었기 때문인데, 존스부자가 협곡사이를 빠져나가면서 페트라의 알 카즈네성전이 배경으로 나오는데, 정말 멋지고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고로 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된 세계적인 명물은 요르단의 페트라 이외에도 중국의 만리장성, 페루의 맞추픽추, 이탈리아 콜로세움, 멕시코 치첸이트사, 브라질 거대 예수상, 인도 타지마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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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노래 자르기 방법, 골드웨이브 음악편집프로그램 사용법

         

        요즘 음악이나 노래를 편집해서 듣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음악 중 내가 듣고싶은 부분이 따로 있을 때, 음악의 특정부분만 잘라내고 싶을 때가 있지요.

         

        이럴 때 그 노래나 음악을 잘라낼 필요가 생기게 됩니다. 내가 필요한 음악의 특정부분을 자르기 할 때에,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 바로 골드웨이브라는 프로그램이랍니다.

         

        음악편집을 할 경우에 반드시 필요한 프로그램이 골드웨이브라는 프로그램인데, 골드웨이브가 음악을 편집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라고 합니다.

         

        사용하기가 쉽고 간편해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 골드웨이브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음악이나 노래를 편집함에 있어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 손쉽게 해낼 수 있다는 간편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골드웨이브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골드웨이브를 다운받을 수 있는 곳을 소개해드리지요. 음악편집프로그램 골드웨이브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곳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네이버자료실이랍니다.

         

        바로 아래의 링크로 들어가시면, ‘골드웨이브를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oftware.naver.com/software/summary.nhn?softwareId=MFS_100190

         

         

        위는 네이버의 소프트웨어 자료실이라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곳이랍니다. 그런데 이 네이버 자료실에서 다운받은 골드웨이브는 영문판이랍니다. 사실 영문판 골드웨이브도 그렇게 어렵지가 않답니다.

         

        메뉴나 기능이 영어로 되어 있지만, 몇가지 단어만 기억해두고, 몇 번 사용하다보면, 쉽게 사용할 수가 있답니다.

         

        골드웨이브는 음악을 이어붙이거나, 합성하거나, 자르기 하는 등의 전문적인 음악편집프로그램입니다.

         

         

        우리가 음악을 편집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 음악 이어붙이기, 합성하기, 자르기 인데, 바로 이러한 편집작업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지요.

         

         

        골드웨이브의 음악 자르기 방법

         

        그럼 본격적으로 음악 자르기 방법을 설명해드리겠어요!

         

         

        1 골드웨이브 프로그램을 열게되면, 이와같은 초기화면이 뜨게된답니다.

         

         

        2 먼저 내가 편집하길 원하는 음악파일을 불러와야겠지요.

        상단에 있는 메뉴중에서 ‘Open'을 클릭해서, 경로를 찾아서 자르기 원하는 음악파일을 불러옵니다.

        저는 러브스토리를 불러왔습니다.

         

         

        3 음악 러브스토리를 불러온 상태에서, 골드웨이브 왼쪽에 컨트롤박스가 있어요.

        이 컨트롤박스의 ‘play’버튼을 클릭해서 일단 음악을 들어봅니다.

         

         

         

        4 만약에 골드웨이브 화면에 컨트롤박스가 안 나타난다면, 골드웨이브 상단에 있는 ‘tool’메뉴를 클릭하고, 나타나는 하위메뉴에서 ‘control’을 클릭하면, 컨트롤박스가 왼편에 나타나게 됩니다.

         

         

        5 ‘play’버튼을 클릭해 음악을 들어보다가 내가 잘라내기 원하는 시작부분 바로 앞에서 일시정지버튼을 클릭합니다. 이 때 타이밍을 잘 맞추어야 하지요. 그 음악을 여러번 반복해서 들어보고, 정확한 자르기 시작점을 선택해야 합니다.

         

         

        6 일시정지한 상태에서 골드웨이브 상단메뉴의 ‘Edit’를 클릭하고, 나타나는 하위메뉴에서 ‘Maker’를 클릭하고 하위메뉴에서 ‘Drop Start’를 클릭합니다. ‘Drop Start’는 자르기 원하는 음악의 처음 시작되는 부분을 정해주는 것이랍니다.

         

         

        7 그리고 컨트롤박스의 ‘play’버튼을 다시 눌러서 음악을 계속 들어보면서, 자르고 싶은 끝부분이 되면, 다시 일시정지버튼을 클릭합니다.

        .

         

         

        8 이런 상태에서 골드웨이브 상단메뉴의 ‘Edit’를 클릭하고, 나타나는 하위메뉴에서 ‘Maker’를 클릭하고 하위메뉴에서 ‘Drop Finish’를 클릭합니다.

        그러면 내가 자르고 싶은 부분의 구간이 선택되어지고, 화면에 선택된 구간이 표시됩니다

         

         

        9 이렇게 음악에서 내가 잘라서 따로 생성하기 원하는 구간이 만들어졌으면, 이 잘라낸 구간을 새롭게 저장해야만 합니다.

        상단메뉴에서 ‘file’을 클릭하고 ‘Save Selection As’를 클릭해서 저장을 합니다.

         

         

        여기서 저장하는 것이 중요한데, ‘Save’‘Save As’로 저장하면, 잘라낸 부분이 저장이 안되니까, 반드시 ‘Save Selection As’로 저장해야 합니다.

         

        보통 음악파일은 파일형식이 mp3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저장할 때에 mp3로 저장해도 되지만, 골드웨이브에서는 mp3로 저장이 안되는 경우가 있답니다.

        만일 저장이 안될 때에는, 저장형식을 ogg로 바꿔서 저장하면 저장이 잘 되니까 ogg로 저장하세요!

         

        자 이제 내가 음악의 내가 원하는 특정부분을 잘라서 새롭게 다시 생성시켜놓았으니, 그 부분을 듣고 즐기는 일만 남았답니다.

         

        골드웨이브는 이처럼 음악을 자르기등 편집하는 것이 매우 편리해서 누구든지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음악편집에는 자르기말고도 음악붙이기기능도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기능인데요.

         

        음악이나 노래의 이어붙이기도 저의 블로그의 다른 게시글에 올려놓았답니다.

         

        아래 페이지에 음악 붙이기 설명이 들어있으니, 참조하세요!

        http://olibia.tistory.com/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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