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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종반정과 중종의 비련의 왕비 신씨의 슬픈사랑

     

    연산군 재위 12년인 1506년경, 연산군의 광기어린 폭정으로 무고한 신하들과 선비들이 살육당하고, 백성들의 생활이 도탄에 빠지자,

    중추부지사인 박원종과 전이조참판인 성희안, 신윤무 등이 군사들을 규합해서, 중종반정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 결과, 연산군은 폐위되어 유배당했고,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중종)이 새로운 왕으로 추대되었는데, 이를 중종반정이라고 한다.

     

    중종반정은 광기어린 폭정과 탄압정치를 일삼았던 희대의 폭군 연산군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새로운 선한임금 중종을 옹립함으로써, 조선역사의 물줄기를 크게 바꾸었던 중요한 사건이다.

     

    연산군이 신하들에 의해서 폐위된 이유는 왕으로 재임하는 12년 동안엄청난 폭정과 악행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연산군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를 일으켜서 수많은 무고한 대신들과 선비들을 학살했고, 수많은 도서들의 폐기와 경연폐지, 성밖 30리의 민가철거 등 선비들와 백성들을 탄압하고, 국가의 근본윤리를 뒤집어버리는 패륜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또한 연산군은 성균관을 오락의 장소로 바꿔놓았으며, 사대부부녀자들을 농락했고, 온갖 사치스러운 주색잡기와 방탕한 생활로 국가재정을 위기에 몰아넣기도 했다.

     

    연산군은 기생들을 궁궐로 불러들여 온갖 주색잡기를 일삼았으며, 채청사를 각지방에 보내어 전국의 미녀들을 끌어모으는 등 향락생활에 몰두하면서 정사를 외면했다고 한다.

     

    연산군의 폭압적 정치로 대신들과 백성들이 계속 핍박을 받게 되자, 훈구세력인 박원종과 성희안, 신윤무등이 훈련원군사들을 규합해 반정을 일으켰으며, 연산군을 폐위시키는 중종반정이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


     

    중종반정으로 새로운 조선의 11대 임금으로 옹립된 진성대군(중종), 성종의 계비였던 대비윤씨의 아들이자 연산군의 이복동생이다.

      

    반정이 일어났을 당시에, 반정세력들은 곧바로 연산군의 측근세력있었던 임사홍, 신수근, 장녹수등을 처형했다. 그리고 폐위된 연산군은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는데, 강화도로 유배를 간 연산군은 2달 만에 원인 모를 병에 걸려서 사망하고 만다.

    그런데 연산군이 박원종등 반정세력에 의해서, 독살당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그런데 연산군의 처남으로서 연산군을 보필했던 최측근세력인 익창부원군 신수근은 반정이 일어난 즉시 처형당했는데, 문제는 새로운 임금으로 추대된 진성대군(중종)의 부인 신씨가 바로 신수근의 딸이라고 하는 점이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이 새로운 조선의 왕으로 등극하게 되자, 진성대군의 부인인 신씨도 당연히 왕비로 등극하게 된다.

    그런데 신씨는 조선의 왕비로 등극한지 7일만에 왕비에서 폐위되고, 사가로 쫒겨나는 불운을 겪고 만다.

     

    진성대군(중종)의 부인 신씨가 왕비에서 쫒겨나게 된 이유는, 신씨의 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의 최측근세력이었고, 그는 이미 역적으로 몰려 처형을 당했기 때문이다.

     


    반정세력들의 입장에서는 역적의 딸인 신씨를 국모로 모실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더욱이 신씨가 왕비가 되면, 언제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했던 원수를 찾아내어, 피의 보복을 하게되는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중종반정 성공이후,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던 자는 반정세력의 우두머리격인 박원종이었는데, 박원종은 진성대군(중종)에게 압력을 가해서, 그의 부인인 신씨를 왕비의 자리에서 폐위시키고, 사가로 유폐시키고 만다.

     

    이로써 신씨(단경왕후)는 조선역사상 가장 짧은 7일 동안만 왕비의 자리를 유지했던 가장 불행한 왕비로 기록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신씨가 페위된 다음날, 중종은 반정의 핵심세력인 박원종의 조카인 장경왕후와 새롭게 혼례식을 올리면서 새로운 왕비가 탄생하게 된다.


     

     

    중종과 폐비 신씨의 애절한 사랑과 이별이야기, 빨간 치마바위 이야기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게된 진성대군(중종)은 연산군이 재위하던 시절에, 연산군의 폭압정치와 탄압통치에도 최대한 몸을 낮추고 조심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재위시절 연산군은 자신의 정책에 조금이라도 반대하거나, 자신에게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는 대신들은 가차없이 죽이는 등 대대적인 피의 숙청을 저질렀었다.

    연산군이 일으킨 갑자사화 때에만 해도, 무려 122명이나 되는 무고한 사람들이 연산군에 의해 처형을 당했다고 한다.

     

     

    이렇게 포악한 연산군의 탄압과 횡포가 서슬 퍼렇던 시절에, 진성대군(중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몸을 최대한 낮추라고 조언하고 보필했던 부인 신씨의 충고와 조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연산군의 폭정시절에는 연산군의 변덕스러운 마음 때문에, 무고한 대신이나 선비들이 졸지에 역적으로 몰려서, 숙청당하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부인 신씨의 충고와 기지로 진성대군(중종)은 몸을 낮추고 최대한 조신하게 행동함으로써, 숙청을 당하지 않고 몸을 보호할 수 있었다.

     

    성종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진성대군(중종)과 익창부원군 신수근의 딸인 폐비 신씨는 각각 12살과 13살의 어린 나이에 혼례를 치렀다.

     

    지금의 초등학생나이인 어린 나이에 두사람은 혼인식을 치렀으니까, 진성대군(중종)에게 부인 신씨는 첫사랑이 되는 셈이며,

    이렇게 어린 나이에 부부가 된 두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진한 우정을 키워나갔고, 성인이 된 후에 두사람의 애정은 매우 두터웠다고 하며 금슬이 좋았다고 한다.

     

    1506년 진성대군과 신씨의 나이가 각각 19살과 20살 되었을 때에, 연산군에 반대한 반정세력들에 의해서, 반정쿠테타가 일어났고, 반정군 군사들이 진성대군의 집앞으로 몰려들었다.

     

     

    군사들이 집을 에워싸고 포위하자, 진성대군(중종)은 군사들이 자신을 해하려고 온 줄로 오해하고, 자살을 시도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차고 똑똑했던 부인 신씨는 겁먹은 진성대군의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출동한 군사들의 말머리가 우리를 향해있으면, 우리를 해하려고 온 군사가 맞지만, 군사들의 꼬리가 우리를 향해 있다면, 그것을 오히려 공자를 호위하려 온 것이기 때문에, 자살여부는 그때 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출동한 군사들을 보고 무조건 겁만 먹고, 자살하려는 진성대군(중종)의 팔을 제지하면서, 설득했던 부인 신씨의 재치와 충고로, 진성대군의 자살을 막았다고 한다.

     

    두사람이 대문을 열고서 군사들을 살펴보니까, 군사들의 말꼬리가 대문으로 향해있었고, 말머리는 대궐쪽으로 향해 있었다.

    , 진성대군의 집앞에 모여들었던 군사들은 진성대군을 호위해서 대궐로 모시기 위해서, 출동했던 군사들이었던 것이다.

     

    1506918일날, 박원종과 성희안 등을 중심으로 한 연산군 반대세력들이 군사를 동원해서 반정쿠테타를 일으켰고,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중종)을 새로운 임금으로 옹립했다.

     

    그리고 반정세력의 옹립으로 조선의 제11대 임금으로 등극한 진성대군(중종)은 궁궐로 입궁해서, 근정전의 용상위에 올랐다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진성대군의 부인 신씨는 그 다음날에 궁궐에 입궁할 수 있었다.

     

     

    진성대군이 조선의 11대 왕으로 등극하였으니, 자연히 부인 신씨도 왕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박원종과 성희안 등 반정 공신세력들이 중종의 부인 신씨가 왕비가 되는 것을 매우 탐탐치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바로 중종의 부인 신씨가 연산대군의 처남이자 최측근인 신수근의 딸이었기 때문이며, 이것은 신씨가 역적의 딸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미 연산군의 폐위를 극렬하게 반대했던 신수근을 죽였던 박원종은 자신들이 죽인 신수근의 딸 신씨가 왕비에 오르면, 나중에 큰 피의 보복이 일어날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박원종 등 반정 공신들은 중종의 부인 신씨가 왕비가 될 수 없다고 그녀의 폐위를 결렬하게 주장했다고 하며, 반정 공신들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랐던 중종은 신씨의 폐위를 반대했지만, 결국 실권이 없었던 중종은 자신의 뜻을 펼칠 수가 없었고, 반정공신들의 주장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진성대군(중종)이 조선의 왕이 되었지만, 그 부인 신씨는 왕비가 된 지 7일만에 폐위되었고, 궁궐에서 쫒겨나서 사가로 유폐되고 말았다.

    남편은 한나라의 최고의 지존 임금이 되었건만, 왕의 조강지처였던 신씨 부인은 거꾸로 사가로 유폐되는 불운을 맞이했던 것이다.

     

    연려실기술과 야사의 기록에도 박원종 등 반정공신들은 젊었을 때부터 두사람은 애정이 두터웠지만, 부인의 아버지를 우리가 죽였으니, 그 딸(신씨)을 왕비로 둔다면, 나중에 우리에게 무슨 우환이 생길지 모른다고 말한 기록에서 보듯이,

    중종반정에 성공한 반정공신들이 신씨 부인으로 인한 후환을 크게 두려워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애정이 남달리 두터웠던 중종과 신씨부인은 19, 20살의 나이에 생이별을 할 수 밖에 없었으며, 신씨부인은 조선역사상 가장 불행한 왕가의 여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야사에는 부인 신씨가 자신으로 인해 중종이 반정공신들로부터 화를 입을까봐, 반정공신세력들의 폐비조치에 순순히 응해서 궁궐에 나갔다고 한다.

     

    어차피 역적의 딸이 되어버린 신씨는, 진성대군(중종)의 앞길에 커다란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고, 왕비의 자리에서 순순히 물러나서, 사가로 되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자신의 처리문제를 놓고 중종이 반정공신세력들과 대립각을 세운다면, 중종의 안위가 위태로워질 것을 우려한 신씨가 스스로 궁궐을 떠났다는 야사의 또다른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반정세력들의 도움으로 왕이 된 중종은, 반정공신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부인 신씨가 폐위되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인 한사람 지켜주지 못한 진성대군(중종)의 가슴을 얼마나 사무치게 괴로웠겠는가?

    또한 끔찍이 사랑했던 지아비(중종)과 생이별하고, 평생을 유폐되어 살아야했던 폐비 신씨의 마음은 얼마나 처참하게 찢어졌겠는가?

     

     

    폐비 신씨가 쫒겨나가 살았던 사가(私家)는 인왕산의 정상부근에 있었다고 하며, 이미 신씨의 부모형제들은 역적집안으로 죽임을 당하는 등 풍비박산나서, 신씨는 홀로 외롭게 사가에서 지냈다.

     

    신씨가 폐위되고 난 후, 중종은 부인 신씨를 오랫동안 잊지못하고 무척 그리워했었다고

    한다.

    야사의 기록에 의하면, 중종은 종종 혼이 나간 사람처럼,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고 하며, 수시로 궁궐마당으로 나가 인왕산쪽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중종이 새롭게 혼인한 장경왕후가 혼인 10년 만에 아들(인종)을 출산했는데, 출산의 후유증을 앓다가 그만 7일 만에 사망했다고 한다.

    왕비의 자리가 공석이 되고만 것이다. 왕비의 자리가 비게 되자, 담양부사 등 일부대신들은 폐위된 신씨를 왕비의 자리에 다시 복위시켜줄 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서슬이 퍼렇던 반정공신세력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서, 중종은 폐비 신씨를 복위시키지는 못했다. 중종은 여전히 반정공신들에게 휘둘리는 연약한 임금이었을

    뿐이며,

    중종은 폐비 신씨를 복귀시키지 못한 채, 또다른 여인과 혼인할 수밖에 없었다.

    폐비 신씨를 복위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사라져버린 셈이다.

     

     

    인왕산은 부인 신씨가 유폐되어있는 사가가 있는 곳이다. 중종은 새로운 왕비와 혼인생활을 하는 중에도, 종종 자신의 조강지처였던 신씨를 잊지못하고, 그녀가 살고있는 인왕산쪽을 바라보곤 했다고 한다.

     

    폐비 신씨도 또한 지아비인 중종을 하염없이 그리워했다고 한다. 폐비 신씨는 중종의 생일날이 되면, 생일상을 차려놓고 그 앞에 앉아서 중종의 안위를 기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폐비 신씨는 중종이 자신이 있는 인왕산쪽을 자주 바라본다는 소식을 들고 난 후에는, 자신이 즐겨입었던 붉은치마를 인왕산의 큰바위에 걸쳐두었다.

     

    폐비 신씨는 중종이 인왕산쪽을 자주 바라본다는 말을 듣고, 인왕산의 큰바위에 자신의 치마를 걸어서,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바위가 바로 인왕산의 치마바위이다. ‘치마바위는 실제로 사직동 인왕산부근에 있는 바위다.

     

    그리고 평생토록 폐비 신씨는 인왕산에 올라서, 궁궐을 내려다보면서, 남편을 한없이 그리워했다고 한다.

     

    그리고 1544, 중중은 57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들어눕게 되었고, 곧 임종이 머지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중종이 임종을 맞이하기 직전에, 한 여승이 중종의 처소를 방문했다고 한다. 여승의 차림으로 중종 앞에 나타난 여인은 바로 폐비 신씨였다.

     

    자신이 죽을 것을 직감했던 중종의 요청으로 폐비 신씨는 여승으로 분장하고서 중종 앞에 나타난 것이다.

     

     

    폐비 신씨가 궁궐을 나간 지, 무려 39년만에 중종과 신씨는 다시 재회한 것이다. 자신이 왕이 되고도 권력이 약해서, 부인을 지켜주지 못했던 중종은 자신의 임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조강지처인 신씨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중종편에도 중종은 옥체가 미령해서 여승을 불러서 기도하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조선왕조실록에는 소문에는 폐비 신씨를 보고싶어서, 여승으로 분장해 입궐케 했다고 한다는 기록도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중종은 자신이 임종하기 직전에 입궐시킨 여승은 폐비 신씨일 것으로 추정되며, 그녀를 남의 눈에 안 띄게 여승으로 분장시켜서 궁으로 불러들였던 것

    이다 

    자신이 끔찍이 사랑했던 단 하나의 사랑, 조강지처를 헤어진 지 39년 만에 그것도 임종 직전에야 다시 볼 수 있었던 중종과 폐비 신씨는 얼마나 가슴이 사무치도록 통한의 눈물을 흘렸겠는가?

     

       

    폐비 신씨는 우리나라 궁중 역사상 가장 애절하고 슬픈 왕가의 여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가지 구별한 것이 있는데, 페위된 연산군의 정비도 신씨인데, 연산군 정비 신씨는 중종 부인 신씨의 고모라고 한다.

     

    그러니까 신수근의 여동생은 연산군의 정비가 되었고, 신수근의 딸은 중종의 부인이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두명의 신씨 모두 왕비가 되었다가, 모두 폐위되는 불행을 겪었던 것이다

     

    폐비 신씨는 155771세의 나이로, 폐위된 지 51년 만에 자신의 사가에서 숨을 거뒀다고 한다. 남편 중종이 죽은 지 13년 만에 사망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폐비 신씨는 죽은 지 233년이 지난 영조 때에 단경왕후로 복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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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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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전설의 동물 장산범의 목격담, 한국판 괴물 사진

         

      우리나라에도 전설같은 괴생명체나 괴물이 존재한다고 한다.

      미국에는 빅풋이라는 괴생물체가 있고, 인도의 히말라야에는 설인라고 하는 괴생명체가 있으며,

      중남미에는 추파카브라라는 괴생물체가 있다고 하며, 영국에는 네시라는 괴생물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이에 못지않은 괴생물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떠돌아다니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목격담도 있어서 사람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전해지고 있는 괴생명체에 관한 괴담인데, 그냥 루머라고 흘려보내기가 곤란한 좀 더 실재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목격했던 목격자들이 많이 있는 요괴에 관한 이야기이다.

       

      부산 해운대의 장산에 사람을 홀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요사스러운 괴생명체가 존재한다고 한다이른바 한국판 요괴라고 할 수 있는 바로 이 괴생물체는 장산범이라고 하며다른 이름으로 와호’ 또는 개여시라고도 부른다.

       

       

      장산범은 부산 해운대 일대에서 여러 사람들에 의해 목격되었다고 하는 괴생명체로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장산범은 하얗고 긴털로 온몸이 덮여있으며,

      성질은 아주 사납고 포악해서 사람들을 홀릴 뿐만아니라, 드물게는 사람들을 잡아먹기도 한다고 한다.

       

      장산범은 온몸에 하얀색의 긴털로 뒤덮여있어서 혹시 들개가 아닌가 하고 의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몸에는 털이 수북하게 나있지만, 얼굴은 동물의 얼굴이 아니라고 하며, 그 비주얼이 사람 비슷하게 생겼지만, 매우 흉측하고 무섭게 생겼다고 한다.

        

      장산범은 부산 해운대구의 장산에 사는 범이라는 의미인데, 그렇다고 장산범이 호랑이라는 얘기는 아니며, 우리 조상들은 산속에 사는 육식동물들을 모두 통칭해서 이라고 불러

      왔다.

      과거에 우리나라의 산속에 많이 살았던 호랑이 뿐만아니라, 표범과 스라소니등의 고양이과 동물들도 모두 범이라고 불러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은 반드시 호랑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산속에 사는 육식을 하는 커다란 덩치를 가진 무서운 생물체를 뜻한다고 보면 된다.


         

      부산 해운대의 장산일대에서 자주 나타난다는 장산범은 온몸이 하얗고 긴 털로 덮여있는 생물체라고 하며, 호랑이 정도의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고, 두발로 설 수도 있지만, 주로 짐승처럼 네다리로 걸어다닌다고 한다.

        

      장산범의 특징은 아주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갖고 있다고 하며,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사람들을 홀린다고 한다.

       


      장산범은 주로 깊은 숲속을 헤메이는 사람들이나 어두운 산속의 밤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나타나서, 이상하고 괴이한 소리를 내면서, 사람을 홀린다고 한다.

       

      장산범은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리 또는 시냇물이 흘러가는 듯한 소리를 내어서 사람들을 꾀고 홀리는 습성이 있다고 알려졌는데, 이 장산범의 홀리는 소리를 듣고 따라갔던 사람이 실종되기도 했다고 한다. 

      장산범은 호랑이처럼 육식을 하는 생물체이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사람들을 해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굶주렸을 경우에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고 한다.

       

      장산범은 1990년대 초반부터 사람들의 목격담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 이후에도 부산 해운대지역에서 여러 사람들에 의해서 목격되었다는 목격담들이 많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장산(萇山)범 목격담

       

      장산범에 대한 여러사람들의 목격담들이 이미 90년대부터 최근까지 퍼져나오고 있다고

      한다.

      1992년도에 신문에 실린 내용인데, 부산 해운대구 장산에서 정씨등 군납품업자 4명이 숲속을 지나다가 호랑이 두 마리를 목격했다고 한다.

        

      정씨일행은 장산의 숲속을 지나다가, 수풀속에서 2m크기의 호랑이와 새끼호랑이를 함께 목격했다고 하며, 너무 놀란 나머지 그곳을 빠져나와서 경찰에 신고까지 했다고 한다.

       

      신고를 받고 해운대구의 무장경찰관들이 출동해서 장산일대를 샅샅이 수색을 했다고 하는데, 그 일대에서 호랑이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정체불명의 동물의 뼈와 털, 발자국등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목격담은 주민들의 실제 목격담인데, 시기는 1992년로서 이 당시에 호랑이는 이미 멸종된 상태이기 때문에, 정씨 일행이 목격했던 그 동물이 호랑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호랑이는 이미 일제시대인 1930년경에 일본총독부의 유해조수 소탕령이 내려져서 이미 모두 몰살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90년대에 해운대에서 뜬금없이 호랑이 두 마리가 다시 나타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이들 정씨 일행이 본 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뭔가 네발로 기어다니는 커다란 동물내지는 괴생물체인 것으로 보이며, 장산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1992년경 해운대의 장산일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얀털이 수북히 난 장산범을 목격했다는 소문들이 크게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6년도 새벽 3시경에 해운대구 장산에 등산하러 갔던 사람이 숲속에서 뭔가 하얀색의 긴털로 뒤덮여있는 괴생명체가 앉아있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 괴생명체의 모습은 호랑이도 아니고, 개의 모습도 아니고 여태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특이한 동물의 형태라고 하며, 하얗고 아름다운 긴털로 덮여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부산 해운대의 장산일대에서 많은사람들의 괴생물체 목격담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 특이한 괴생명체를 사람들은 장산범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장산범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증언은 31건이나 된다고 한다.

       


      2000년대에 할머니 두명이 함께 나물을 캐러, 해운대구의 장산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니들이 산중턱부분까지 올라갔는데, 무더운 여름철이라서 심한 갈증을 느낀 나머지 주변에 약숫물나 시내물이 있는지 찾고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산중턱 위에서 시냇물소리가 들려왔다고 하며, 일행은 목을 축이려고 그 시냇물소리가 난 언덕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언덕위에는 시냇물은 온데간데 없고, 하얗고 긴털로 뒤덮힌 괴상한 물체가 앉아있었다고 한다.

      그 시냇물소리는 그 하얀털로 뒤덮힌 털복숭이 괴생명체가 낸 소리였다고 한다. 혼비백산한 할머니들은 갖고갔던 호미를 내던지고 산아래로 뛰어내려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장산부근에 사는 주민들 사이에는, 이 장산범의 모습을 목격했다는 목격자들이 여러명 있었다고 한다.

         

      또한 1991년도 경남 양산군에서도 호랑이와 비슷한 동물을 목격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한다.

      91년도 경남 양산군 삼성리 후동마을 뒷산에서 김씨 부부가 덩치가 커다란 호랑이 한마리를 목격했다고 하며, 그 일대에서 호랑이의 발자국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경남 양산일대의 산속에서 여러명의 마을주민들이 호랑이 혹은 호랑이와 비슷한 동물을 목격했다는 목격담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호랑이가 멸종된 지 상당히 오래 되었는데, 갑자기 91년도에 호랑이목격담들이 여러건이나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이들 주민들이 본 것이 정말 호랑이였을까? 1930년대에 이미 완전 멸종된 호랑이가 어떻게 6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서 91년도 그것도 한반도의 남쪽 끝자락에서 다시 나타날 수 있겠는가?

       

      부산 해운대 장산과 경남 양산일대에서 주민들이 목격했던 대상은 호랑이는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

       

      호랑이를 목격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호랑이만큼 커다란 동물 또는 괴생물체를 보았을 것을 사료된다.

      해운대 장산에서, 일부 주민들이 목격했다고 하는 하얀깃털을 지닌 털복숭이 생물 장산범과 동일한 생물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된다.

       

      호랑이와 비슷하게 생긴 하얀 생물체가 경남 양산에서 나타났다가, 산맥줄기를 따라서 남하해서 부산 해운대로 이동한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결국 경남 양산에서 발견된 동물과 부산 해운대 장산에서 발견된 동물은 동일한 생물일 것으로 추정되며, 이 동물을 장산범으로 명명할 수 있다고 본다.

       

      사람들의 소문에 따르면, 장산범은 쇠긁는 소리나 시냇물소리를 내면서 사람을 홀린다고

      한다. 일제시대 때부터 살아왔던 옛날노인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장산범에 대한 소문은 옛날에도 많이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옛날 이야기에 따르면, 장산범은 깊은 숲속에서 시냇물소리를 내어 목마른 나그네들을 홀리고 끌어들여서,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장산범은 사람을 홀리는 요괴같은 괴생명체라는 소문이 옛날부터 널리 퍼져있었다고 한다.

       

      장산범은 최근의 이야기만은 아니며,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요괴의 일종이라고 하겠다.

       

       

      물론 장산범이 한국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생물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무언가 호랑이만한 크기의 하얀털복숭이 생물체가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왜냐하면 양산을 비롯해서 부산 해운대일대에서 이러한 괴생물체를 보았다고 하는 목격담들이 아주 많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목격자들만 해도 31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러한 괴생물체를 목격한 사람들이 신고까지 했고, 경찰까지 동원될 정도이면

      무언가 특이한 괴생물체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인 것같다.

      단지 그 생물체의 정체를 우리는 모를 뿐이다. 그리고 아직도 소문만 무성할 뿐, 잡지도 못한 상태이다.

       

      한반도 동남부 일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다고 하는 장산범의 정체는 관연 무엇일까?

      분명 호랑이는 아닐 것이고, 하얀색의 털복숭이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데,

      여태까지 발견되지 못한 제3의 동물은 아닐까? 아니면 여태까지 한번도 발견되지 않은 제2의 인류 내지는 빅풋 비슷한 생명체일까?

       

      목격자들은 많이 있지만, 아직도 정확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은 괴생물체가 바로 장산범인 것이다. 목격자들이 많이 있으니, 언젠가는 그 구체적인 실체가 밝혀질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중국이나 일본처럼 요괴같은 괴생명체가 하나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고 신기할 따름이다. 앞으로 더욱 구체적인 장산범의 실체가 밝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여름방학이나 휴가철에 부산 해운대의 장산으로 함께 떠나서, 산속에서 야영을 하면서 장산범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자신의 휴가까지 반납하면서, 장산범을 찾을 정도라고 하니, 장산범의 실체가 정말로 밝혀질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2017년 금년 전반기에 장산범을 소재로한 영화로 만들어져서, 상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염정아, 박혁권이 주연으로 출연한 괴기영화 장산범이 금년 중에 개봉된다고 하니, 어떤 무시무시한 이야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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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묵은 때 말끔하게 지워주는 완벽 만능세제 만들기, 제거방법

           

        수년 동안 한번도 세탁하지 않고 방치해두어서, 시커멓게 때가 잔뜩 낀 옷이나 방석, 카페트의 세탁문제로 고민하시는 주부님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수년간 방치해두어서 잔뜩 묵은 때와 얼룩이 낀 옷이나 카페트는 일반세탁기로 세탁하기가 쉽지가 않고, 설사 세탁기로 돌린다고 해도 수년간 묶은 때는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수년동안 묵은 때를 단 몇분만에 손쉽게 세척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서 세탁하기가 아주 곤란한 카펫을 말끔하게 세탁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바로 묵은때 완벽세제를 사용해서 세척한다면, 5년 이상 묶은 때나 얼룩도 완벽하게 세척할 수가 있다고 한다.

         

        과탄산소다 등 3가지 재료들만 있으면, 간단하게 묵은때 완벽세제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묵은때 완벽세제의 거품을 이용하면, 1분만에 아주 손쉽고도 완벽하게 묵은때가 잔뜩 묻은 카페트를 말끔하게 세척할 수 있다고 한다.

         

         

        카펫 세탁하는 방법

         

        1, 카펫을 바닥에 넓게 펼쳐놓고서, ‘완벽세제의 거품을 손으로 떠다가 카페트의 곳곳에 꼼꼼하게 발라준다.

         

         

        2, 카펫의 모든곳에 거품을 발라주고 난 후에,

        묵은때 완벽세제의 거품이 카펫표면에 골고루 침투할 수 있도록, 일반솔로 카펫의 이곡저곳을 문질러준다.

         

         

        3, 별도의 구두솔을 준비하고 그 구두솔로 거품을 발라준 카펫의 모든 부분을 꼼꼼하게 문질러준다.

        구두솔로 카펫을 문질러주면, 카펫에 달라붙어있던 머리카락이나 굵은먼지등이 구두솔에 붙어나오게 되며, 얼룩등도 지워진다고 한다.

         

        4, 맨마지막에 젖은수건으로 카펫의 표면을 전부 닦아준다. 젖은수건으로 닦으면 세제거품과 떼가 묻은 카펫을 헹궈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묵은때 완벽세제의 거품으로 세척한 카펫을 물로 헹궈주는 것이 아니고, 이 젖은수건으로 헹궈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젖은수건으로 헹궈주는 것이 힘들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물걸레청소기로 대체해도 상관없다고 한다.

           

        묵은때 완벽세제의 거품을 이용해서 한 5분 정도 닦아주니까, 1년 이상 덕지덕지 묻은 카페트의 더러운 때가 말끔하게 지워졌다.

         

         

        묵은때 완벽세제의 거품이 10만원을 벌게 해준 것이다. 카펫을 전문청소업체에 맡긴다면, 10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그러니까. ‘묵은때 완벽세제를 사용하면, 10만원을 버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묵은때 완벽세제만드는 방법

         

        그럼 흰옷의 5년 묶은 때와 카펫의 묵은 때를 말끔하게 제거해주었던 묵은 때 완벽세제만들기를 해볼 차례다.

           

        묵은때 완벽세제는 만드는 법도 아주 간단한데, 과탄산소다와 베이킹소다, 과산화수소의 세가지만 있으면 만들 수가 있다.

         

        1. 먼저 80도의 뜨거운 물을 커다란 대야에 넣는다.

         

         

        2. 이 물에다 과탄산소다 1컵과 베이킹소다 1컵을 넣어준다.

         

         

        3. 마지막으로 과산화수소 100ml을 부어주고, 재료들이 잘 섞이도록 잘 저어준다.

        주걱같은 것으로 잘 저어주면, 거품이 풍성하게 일어난다. 이렇게 풍성한 거품이 일어나면, ‘묵은때 완벽세제가 완성된다.

         

         

        묵은때 완벽세제를 만들 때에 주의할 점 하나가 있는데, 처음에 과탄산소다와 베이킹소다, 과산화수소를 먼저 섞어주고 난 후에, 뜨거운 물을 그 위에 부어서 섞어주게되면, 재료들의 융합으로 독소가 생겨난다고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뜨거운 물을 먼저 준비한 후에, 과탄산소다와 베이킹소다, 그리고 과산화수소를 나중에 넣어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독소의 방출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대야에다가 묵은 때 완벽세제를 만들어놓고서, 5년 묵은 베게커버를 한번 넣어보

        았다.

        5년 동안 한번도 빨지않아서, 하얀색이 누렇게 변해버린 베게커버를 완벽세제가 들어있는 대야에다 넣고서, 손으로 몇 번 비벼서 빨아준 후에, 다시 맑은 물에 넣어서 몇 번 헹궈주니까, 5년 동안 묵은 시커먼 때가 말끔하게 제거되었다고 한다.

         

         

        묵은때 완벽세제만 있으면, 옷이나 카페트, 모자, 방석 등 여러 가지 종류의 옷가지의 묵은 때를 말끔하게 세탁할 수 있다고 한다.

         

        과탄산소다와 과산화수소 안에는 산소방울이 들어있는데, 이 산소방울이 때와 결합해서 묵은 때를 제거해준다고 하며, 때제거 뿐만아니라 살균작용과 소독작용까지 함께 해준다고 한다.

        그러니 묵은때 완벽세제로 묵은 때 제거는 물론, 살균과 소독까지 한방에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카펫세척을 하고  난 후에, 세척한 카펫의 중성화작업을 별도로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묵은때 완벽세제'로 카펫을 세척하고 나면, 알칼리성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스프레이병에 물을 넣고서 거기에 구연산 한스푼을 넣고 섞어준 후, 그  스프레이를 카펫에다 골고루 뿌려주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구연산물을 뿌려준 후에 맑은 걸레로 습기를 닦아주면 된다.

        만일 구연산이 없다면, 대신 식초 한스푼을 물에 넣어서 섞어서 사용해도 된다고 한다.

         


        재료만 준비되어 있으면, '묵은때 완벽세제'를 만드는 방법이 너무도 간단하기 때문에, 누구든지 집에서 쉽게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여러분들도 오래된 얼룩이 덕지덕지 묻은 카펫이나 얼룩이 잔득 낀 옷 때문에 고민하지 마시고, ‘묵은때 완벽세제를 만들어서 묶은 때를 한방에 해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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