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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선미 남편 고씨 살인사건과 살해이유, 범인 조씨

     

    송선미남편 살인사건이 발생해서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821일 오전 1150분 서초동의 한 변호사사무실에서 여배우 송선미의 남편 고우석씨가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고 하는 놀라운 소식이랍니다.

     

    당시 송선미남편 고우석씨는 변호사사무실에서 피의자 조씨와 만나서 말다툼을 벌이다가 조씨가 갑자기 휘두른 흉기에 찔려서 쓰러졌고,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지만 사망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사고를 당해 남편을 잃은 여배우 송선미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중견연기자이지요.

     

    송선미는 1996년 슈퍼모델 선발대회에서 당당히 2등으로 당선되어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던 172cm의 큰키에 늘씬한 몸매를 갖고있는 팔등신 미녀로서, 많은 남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여배우랍니다.

     

    송선미는 이후 드라마 모델순풍산부인과에서 매력적인 이미지를 발산하면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서,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주면서 총망받는 연기자로 급부상했답니다.

     

     

    송선미는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두사부일체에도 출연해서 큰 주목을 받았으며, 2000년대 이후에도 하얀거탑’ ‘청담동앨리스등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우리나라의 중견연기자로 활발한 연기활동을 벌여왔답니다.

     

    또한 송선미는 현재 드라마 돌아온 복단지에 출연중일 정도로 연기자로서 큰활약을 펼치던 중이었는데,

    뜻밖의 남편 고씨의 살해사건이 발생하여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팬의 한사람으로서 너무도 애석한 마음이 들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821일 백주대낮에 그것도 변호사사무실 안에서, 송선미의 남편 고씨는 무슨 이유로 상대방 조씨로부터 그토록 끔찍한 살해를 당하고 만 것일까요?

     

    송선미의 남편 고씨를 흉기로 살해한 피의자 조씨는 살해를 저지른 후에도, 달아나지 않고 그대로 변호사사무실에 머물러있다가 출동한 경찰에 체포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출동한 경찰이 곧바로 피의자 조씨를 체포할 수 있었고, 그 후 조씨는 경찰조사를 받고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찰조사에서, 피의자 조씨는 송선미의 남편을 살해한 이유는 고씨가 약속한 돈을 주지않았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고 하는데요.

     

    송선미남편의 외할아버지는 수백억대의 재력가라고 합니다.  고씨의 외할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일본에 건너가 자수성가해서 큰 돈을 벌었으며, 

    일본에 4성급호텔을 갖고 있으며, 한국에도 대규모의 부동산을 여러채 갖고 있는 부동산재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송선미남편 고씨의 외할아버지의 재산상속에 있어서, 여러자식들간에 커다란 분쟁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송선미의 남편 고씨는 외할아버지의 재산상속과 관련된 소송을 진행중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씨측의 소송의 상대방(외사촌)측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갖고있던 조씨가 송선미의 남편 고씨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는 대가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피의자 조씨의 주장에 의하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송선미의 남편 고씨가 약속했던 돈 2억원을 주지않고서, 훨씬 작은 1천만원의 돈을 주었다고 하며,

    이에 대해 앙심을 품은 조씨가 고씨를 만난 자리에서 갖고간 흉기로 찔러서 살해했다고 합니다.

     

    이같은 내용은 피의자 조씨가 체포된 서초경찰서에서 진술한 내용이랍니다.

     

      송선미측의 반박 내용

     

    그런데 822일 송선미측에서 조씨의 진술에 반박하는 내용의 보도문을 발표했는데요.

    송선미측 주장에 따르면, 송선미의 남편 고씨는 피의자 조씨와 단 세차례밖에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그리고 남편 고씨는 조씨에게 거액의 돈을 주기로 약속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송선미의 남편 고씨는 외할아버지의 유산상속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단지 송선미의 남편 고씨는 외할아버지의 재산이 소송의 상대방에게 불법적으로 이전되어서, 불법이전된 그 재산을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주기 위한 소송을 돕고 있는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씨의 외할아버지는 현재 99세로 살아계시다고 하며, 외할아버지의 친손자측에서 판단능력이 흐려진 외할아버지의 의사에 반하여 편법으로 재산을 자신의 명의로 이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외할아버지의 아들과 딸들간에 재산환수와 관련된 소송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것이며, 외손자였던 송선미의 남편 고씨도 한쪽 당사자의 소송과정을 도와주고 있었던 상황이었답니다.

     

     

    그런데 송선미측의 주장에 따르면, 원래 소송상대방(외삼촌)의 지인이었던 조씨가 먼저 남편 고씨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중요한 정보를 갖고있다고 말하며, 만날 것을 제의했다고 합니다.

     

    이렇게해서 송선미의 남편 고씨와 피의자 조씨가 만나게 되었는데, 고씨는 조씨를 사흘전에 처음 만났으며, 단 세 번밖에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조씨에게 남편 고씨가 거액의 돈을 주기로 약속한다는 것이 가당치 않은 일이락 주장하고 있답니다.

     

    , 송선미의 주장에 따르면, 남편 고씨가 피의자 조씨에게 거액의 돈을 준다고 약속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피의자 조씨의 주장과 송선미측의 주장이 서로 다르게 나오고 있답니다.

     

     

    만약 송선미측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피의자 조씨가 송선미의 남편 고씨를 살해할만한 이유나 동기를 전혀 찾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백주 대낮에 변호사사무실까지 칼을 소지한 채 찾아가서, 협상 상대방을 흉기로 끔찍하게 살해했다면,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나 동기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피의자 조씨는 미리 흉기를 몸에 소지한 체로 변호사사무실로 찾아갔기 때문에, 조씨는 고씨를 만나기 전부터 그를 살해할 의도를 갖고있었다고 보여집니다.즉 우발적인 살인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된 고의적인 살인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사전에 살인을 계획한 사람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고씨를 살해할 수 있었을까요?

    송선미측에서는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피의자 조씨는 자신의 자백처럼 정말 고씨로부터 약속한 거액의 돈을 받지못해서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답니다.

     

    더욱이 피의자 조씨는 송선미의 남편 고씨를 살해한 후에도, 도망가지 않고 경찰이 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정말 매우 큰 의문점이 아닐 수 없답니다.

     

     

    보통 어떤 이유로든 살인을 저지른 자들은 곧바로 달아나는 것이 일반적이랍니다.

     

    그런데 조씨가 살해후에도 계속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는 것은, 고씨에 대한 살인행위가 조씨 스스로 정당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조씨가 고씨에 대한 그 원한관계나 앙심이 엄청나게 컸기 때문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답니다.

     

    경찰이 자신을 검거하러 올 때까지도 도망가지 않고, 계속 남아있을 정도로 아마도 조씨가 고씨에 대한 원한이 컸다든지, 아니면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느꼈던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답니다.

    , 조씨가 고씨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도 생각해볼 수 있답니다.

     

    또한 일각에서는 조씨의 살해행위가 청부살인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하는데요.

    피의자 조씨가 미리 흉기를 갖고갔다는 점과 조씨가 고씨의 급소에 단번에 정확하게 공격해서 살해했다는 점으로 보아서, 혹시 사전에 기획된 청부살인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답니다.

     

    그런데 피의자 조씨의 뒤를 조사해본 결과, 그는 조직폭력단원도 아니고 전과기록도 전혀 없다고 하네요.

    한번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이처럼 정확하고도 대담한 살인공격을 했다는 것도 의문점이며, 청부살해를 했다는 것도 의문스러울 뿐이랍니다.

     

     

    이번 송선미의 남편 고씨 살인사건은 여러가지 면에서 의문점이 많은 미스테리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답니다.

     

    송선미는 2006년도에 영화 미술감독이었던 남편 고씨를 만나, 1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답니다. 그런데 두사람은 결혼 후에 각자 바쁜 사회활동 때문에 오랫동안 자식을 갖지않고 살아오다가, 2015년도에 늦깎이 딸 하나를 낳아서, 알콩달콩 재미있게 잘 살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송선미와 남편 고씨는 우리연예계에서도 금슬좋기로 소문난 잉꼬부부였다고 합니다. 송선미는 한 방송에서 만약 자신이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지금의 남편과 다시 결혼할 것이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랍니다.

     

    올해 송선미의 나이는 44세이고 남편 고씨의 나이는 47세로, 아직 두사람 모두 젊고 한창 활동할 때인데. 이 무슨 청천벽력의 날벼락이랍니까?

     

    더욱이 뒤늦게 딸 하나를 낳고서 금슬좋게 잘 살던 송선미에게 이런 끔찍한 남편피살사건이 발생해서,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답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의혹스러운 부분이 많은 이번 고씨 살해사건을 경찰이 더욱 철저히 수사를 벌여서, 그 진상을 확실하게 규명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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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대 천재복서 무하마드 알리 VS 조 프레이저의 경기 동영상

       

      조 프레이저 전적 - 3732(27KO) 4

      무하마드 알리의 총 전적 - 6156(37KO) 5

       

      아웃복싱의 천재 대 인파이팅의 교과서가 세기적인 대결을 펼쳤다고 한다. 바로 무하마드 알리 대 조 프레이저의 경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70년대 당시 프로복싱 헤비급에서 최고의 테크니션이라고 평가를 받던 인기복서 무하마드 알리와 탱크처럼 몰아붙이는 인파이팅의 천재 조 프레이저가 헤비급 최강을 가리는 경기를 펼치면서, 프로복싱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다.

       

      1970년대 헤비급 프로복싱의 인기를 최고의 레벨로 올려놓았던 두 장본인이 바로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라고 할 수 있다.

       

      프로복싱 헤비급의 황금기인 1970년대에는 헤비급이 최고의 스포츠로서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시기였다. 

       

       

       

      70년대의 헤비급 프로복싱에는 강자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었는데, 조지 포먼, 켄 노턴, 조 프레이저, 론 라일 그리고 무하마드 알리 같은 최강의 선수들이 군웅할거를 하던 시대였다.

       

      70년도에 제일 먼저 스모킹 조라는 별명을 가진 조 프레이저가 지미 엘리스를 5KO로 꺾고, WBA WBC 헤비급통합챔피언에 오르면서 자신의 시대를 활짝 열어가고 있었다.

      조 프레이저는 마치 탱크처럼 저돌적으로 상대선수를 몰아부쳐서, 쉴세없이 좌우양훅 콤비네이션을 터뜨리는 전형적인 인파이팅 복서다.

       

      조 프레이저는 상대선수가 공격할 수 있는 사정거리를 전혀 주지않고, 그 선수의 가슴팍에 바짝 붙어서, 가공할만한 레프트훅과 라이트훅을 쉴세 없이 터뜨려서, 상대선수를 침몰시키는 그런 선수다.

       

       

      조 프레이저의 전성기시절, 조 프레이저의 인파이팅에 걸려든 선수는 조 프레이저의 사정거리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모두가 침몰하고야 말았다.

      새로운 세계헤비급챔피언을 뽑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지미 엘리스도 조 프레이저에게 저돌적인 인파이팅 공격을 맥을 못추다가, 5라운드만에 KO로 무너지고 말았다.

       

      19702월 새로운 세계헤비급챔피언에 오른 조 프레이저는 자신의 인파이팅공격에 모든 선수들이 쓰러져버리자,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는 챔피언이었고, 그 당시 조 프레이저의 전적이 무패에다가 292926KO승을 보더라도, 조 프레이저는 무하마드 알리 외에는 그 누구도 상대가 될 수 없는 넘사벽 챔피언감이었다.

       

      많은 복싱전문가들은 조 프레이저의 장기롱런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조 프레이저와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로 전챔피언 무하마드 알리를 꼽았다.

       

       

      아시다시피, 무하마드 알리는 1964년 소니 리스튼을 KO시키고 세계 헤비급챔피언에 올라 9차방어전까지 성공했던 뛰어난 챔피언이었지만, 병역기피로 인해 챔피언타이틀을 박탈당했기에, 이제는 무관의 제왕이 되어서 다시 링에 복귀하여 새로운 기회를 엿보던 시기였다.

       

      가장 막강한 새로운 세계헤비급챔피언 조 프레이저와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전 세계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의 대결은 그 당시에는 최고의 흥행카드였고, 최고의 명승부였다.

      지금의 엔서니 조슈아 대 디온테이 와일더의 경기보다도 더 큰 이슈감이었다고 한다.

       

      무하마드 알리는 60년대 중반 막강한 챔피언인 소니 리스튼을 7TKO로 누르고 세계헤비급챔피언에 올랐으며, 전챔피언 소니 리스튼과의 재대결에서 1라운드에 KO승으로 이긴

      후에,

      플로이드 페터슨 등 막강한 도전자들과 타이틀전을 벌여서 총 9차방어까지 성공했는데, 무하마드 알리의 9차례 방어중 KO방어가 7차례나 됐다.

       

       

      60년대 세계챔피언으로서 9차 방어까지 성공했을 정도로 그에 대적할 만한 상대가 없었던 시절이 무하마드 알리의 최고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하마드 알리는 병역기피로 챔피언타이틀을 박탈당했고, 알리가 박탈당한 헤비급타이틀은 토너먼트를 거쳐서 최종승자인 조 프레이저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무하마드 알리는 60~70년대 뿐만아니라 20세기에 있어서 최고의 테크닉을 갖춘 최고의 복서라는 찬사를 받는 선수다.

       

      무하마드 알리는 전성기시절 빠른 푸드웍과 빠른 워빙, 빠른 펀치 등 3박자를 갖추고서 상대선수를 치고빠지는 아웃복싱에 능했으며, 헤비급역사상 가장 빠른 스피드와  테크니컬한 타격기술을 갖춘 완벽한 선수로 평가를 받고 있다.

       

      무하마드 알리는 총  세번이나 세계헤비급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무하마드 알리가 얼마나 빠른가 하면, 전성기시절인 60년대 후반 도전자 브라이언 런던을 상대로 타이틀전을 펼칠 때에, 3초에 11번의 펀치를 구사하는 신기(神技)를 발휘해서, 전세계의 복싱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최고의 테크닉을 보유한 무하마드 알리의 경기는 단순한 복싱경기가 아니라, 예술 그 자체였다. 그만큼 그의 경기는 아름다웠고 흥미로왔으며, 60~70년대 당시 최고의 흥행카드였다.

         

      70년대 전반 최고의 라이벌관계였던 무하마드 알리와 조 프레이저는 총 3차례나 대결을 펼쳤다.

       

      7138일 메드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무하마드 알리 대 조 프레이저의 1차전경기는 알리가 조 프레이저에게 판정패를 당했다.

      당시 세계헤비급챔피언이었던 조 프레이저가 무서울 게 없었던 시절인데, 그에게 도전한 무하마드 알리는 15라운드에 한차례 다운을 당하면서 아깝게도 판정패를 당했다.

       

      1차전경기에서 조 프레이저의 레프트훅을 턱에 맞고 다운당하는 무하마드 알리

       

      15라운드에 조 프레이저의 막강한 레프트훅 한방을 턱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무하마드 알리는 조 프레이저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이 한번의 다운으로 점수를 빼앗겨서 판정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프레이저가 챔피언타이틀을 조지 포먼에게 빼앗긴 후인 74128일 열린 2차전경기에서는, 반대로 무하마드 알리가 프레이저에게 판정승을 거두어낸다.

       

      그리고 유명한 3차전경기는 무하마드 알리가 세계헤비급챔피언이 된 후인 1975101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는데, 두선수 모두 최선을 다해 경기를 치렀는데, 무하마드 알리가 조 프레이저를 14TKO승으로 꺾고 헤비급챔피언 타이틀을 방어해냈다.

       

      무하마드 알리는 197410월 조지 포먼을 8KO로 꺾고 세계헤비급챔피언이 된데 이어, 1차방어전에서 숙적 조 프레이저를 꺾음으로써, 이후 장기 롱런가도를 이룰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70년대 당시 아웃복싱의 정수를 보여줬던 무하마드 알리 대 인파이팅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조 프레이저의 경기는 70년대 최고의 명경기로 꼽히는 경기이다.

      결국 최고의 라이벌인 조 프레이저를 꺾은 무하마드 알리는 그 후 자신의 챔피언타이틀을 78년도까지 안정적으로 방어해낼 수 있게 된다.

       

      그럼 70년대 화려한 아웃복싱과 뛰어난 테크닉을 선보여주었던 무하마드 알리 대 조 프레이저의 3차전경기를 감상해보도록 하자!

       

       

      무하마드 알리 VS 조 프레이저의 3차전 하이라이트경기 동영상 (1975101일 필리핀 마닐라)

       

       

       

       

       

       

       

       

       

       

      무하마드 알리 VS 조 프레이저의 3차전 전체 경기 동영상 (1시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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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최강의 헤비급챔피언 에반더 홀리필드 대 레녹스 루이스의 경기, 전적

         

        레녹스 루이스 전적 - 4441(32KO) 21

        에반더 홀리필드 총전적 - 5744(29ko) 1021무효

         

        WBC헤비급챔피언 레녹스 루이스와 IBF WBA해비급 챔피언 에반더 홀리필드간의 통합타이틀전은 90년대 최고의 명경기로 꼽히고 있다.

         

        199990년대 세계헤비급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레녹스 루이스와 에반더 홀리필드가 세계헤비급 통합타이틀전을 놓고 두번씩이나 경기를 치렀다.

           

        IBF WBA해비급 챔피언 에반더 홀리필드와 WBC헤비급챔피언 레녹스 루이스의 공통점은 두선수가 모두 핵펀치의 소유자 마이크 타이슨을 꺾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홀리필드의 키는 188.5cm 이고, 레녹스 루이스는 196cm로 신장과 리치에서는 루이스가 더 유리하지만, 홀리필드는 강자들과 많이 싸운 경력면에서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레녹스 루이스는 토니 터커를 판정승으로 제압하고 WBC헤비급챔피언에 올라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강펀치와 테크닉을 모두 보유한 챔피언이며,

        에반더 홀리필드는 제임스 더글러스를 KO로 꺾고 WBA헤비급챔피언에 올랐으며, 그후 리딕 보우, 조지 포먼, 레리 홈즈 같은 강자들을 제압하고 타이틀을 지켜낸 입지전적의 챔피언이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세계 최강의 강펀치를 보유했던 무시무시한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을 두선수가 모두 KO로 물리쳤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을 정도로 두선수 모두 세계헤비급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고,

        결국 홀리필드와 레녹스 루이스는 진정한 세계헤비급 최강자를 가리기 위한 경기를 펼쳐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99년도에 세계헤비급 통합타이틀을 놓고서 홀리필드와 루이스는 두 번의 경기를 펼쳤는데, 1차전은 홀리필드와 루이스가 무승부를 기록했고, 2차전 경기에서는 레녹스 루이스가 홀리필드에게 근소하게 판정승을 거두었다.

         

        게시글 맨하단의 동영상은 홀리필드와 레녹스 루이스간의 1차전 경기 동영상이다.

         

         

        1999314일 미국 메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두선수간의 세계헤비급통합챔피언 자리를 놓고, 홀리필드와 레녹스 루이스가 정말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90년대 당시 최고의 기량을 갖고 있었던 두선수 에반더 홀리필드와 레녹스 루이스가 세계최강의 자리를 놓고 혼신의 힘을 다해서 싸웠고, 막상막하의 승부를 펼쳤다.

         

        홀리필드는 강력한 좌우콤비 블로우를 터뜨렸고, 루이스는 날카로운 좌우스트레이트를 꽂아넣는 등 두선수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치열한 경기를 펼쳤었다.

           

         

        3라운드에 홀리필드가 강력한 좌우훅 콤비네이션을 레녹스 루이스의 안면에 터뜨려서, 루이스를 잠시 뒤뚱거리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당시 강펀치와 테크닉 모두를 보유하고 있는 레녹스 루이스는 5회전에 강력한 어퍼컷과 스트레이트를 홀리필드의 안면에 적중시킴으로써, 홀리필드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6회전에는 에반더 홀리필드가 또다시 좌우훅 콤비블로우를 터뜨려서, 레녹스 루이스의 안면에 돌아가게 만들 정도로 큰 충격을 주었지만, 7라운드에는 레녹스 루이스의 라이트훅과 레프트어퍼컷의 콤비블로우를 연속으로 터뜨려서, 홀리필드에게 큰 충격을 주면서 우세한 공격을 펼쳤다.

         

        이처럼 세계헤비급 정상급 선수였던 두선수는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서로 백중지세의 팽팽한 접전을 펼쳤으며, 정말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막상막하의 경기를 펼쳤다.

           

         

        막상막하의 거의 대등한 경기를 펼쳤던 홀리필드와 레녹스 루이스는 7회전부터 루이스의 크린히트가 더 많이 적중되면서, 저울추가 서서히 루이스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으며, 홀리필드의 왼쪽눈 아래부분이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맷집이 좋은 홀리필드를 KO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레녹스 루이스는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중반전부터 원거리에서 잽과 스트레이트를 툭툭 던지면서 포인트위주의 경기운영을 해나갔으며, 점점 점수면에서 홀리필드를 리드해나가고 있었다.

         

        8회전 이후 경기 후반전에도, 간간이 홀리필드의 강력한 좌우훅이 날아들었지만, 키와 리치면에서 훨씬 더 유리한, 아웃파이팅을 펼치는 레녹스 루이스는 홀리필드의 펀치들을 피해 다니면서, 홀리필드의 힘을 빼놓고 자신의 스트레이트펀치로 점수를 따나가고 있었다.

         

         

        스피드에서 더 빠르고 아웃복싱에 능한 레녹스 루이스가 12회전까지 히트앤드 어웨이전법으로 치고빠지는 전술을 구사했고, 홀리필드는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강력한 좌우훅 콤비블로우를 터뜨리면서 루이스를 압박했다.

         

        홀리필드나 루이스 두선수 모두 강펀치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12라운드 내내 다운 한번 없었던 것은, 두선수가 모두 방어기술이 좋고 테크닉이 좋기 때문이라 하겠다.

         

        전체적으로 에반더 홀리필드와 레녹스 루이스의 경기는 막상막하의 경기를 펼쳤지만, 레녹스 루이스가 포인트를 착실히 따내는 야무진 아웃복싱으로 근소하게 점수에서 앞섰다고 느껴졌지만, 판정결과는 홀리필드와 루이스의 무승부로 끝이 나고 말았다.

           

        크린히트를 더 많이 적중시킨 레녹스 루이스가 근소하게 점수에서 앞섰다고는 하지만, 홀리필드의 간간히 던진 강펀치가 여러번 루이스의 턱을 돌아가게 만들었기 때문에, 심판진에서 두선수간 무승부로 채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993월에 벌어진 두선수간의 1차전 경기는 어느 누구도 압도적으로 상대선수를 능가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승부로 판정이 난 것이다.

         

        그렇지만 이로부터 8개월후인 9911월에 벌어진 홀리필드와 루이스간의 2차전경기에선 루이스가 크린히트를 더 많이 적중시키면서 3-0 판정승을 거두고 WBA, WBC, IBF 통합챔피언에 오르게 됐다.

         

        2차전에서 에반더 홀리필드를 제압하고 헤비급통합 챔피언에 오른 레녹스 루이스는 2000년대 전반까지 최강의 세계헤비급챔피언으로서 독주체제를 강화해나간다.

         

        홀리필드와 루이스의 경기는 70년대의 무하마드 알리와 프레이저의 라이벌전처럼 멋지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 명경기였다.

         

        이 경기 직전까지 홀리필드의 전적은 3625KO3패이고, 루이스의 전적은 3427KO1패를 기록했다.

         

         

        홀리필드는 나이 50줄에 접어들 때까지 프로복싱을 계속해서, 대단한 저력을 보여주었다. 에반더 홀리필드는 2010년도에 세계복싱연맹(WBF) 헤비급챔피언 프랑소아 보타에게 도전해 놀라운 저력을 발휘하여 보타를 10회전에 TKO시키고, 또다시 WBF 헤비급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레녹스 루이스는 2004년 2월에 자신의 헤비급타이틀을 보유한 채로 은퇴를 하여 자신의 명예를 지켰다. 

         

        반면 에반더 홀리필드는 2000년대 이후에도 복싱을 계속했으며, 불굴의 의지로 또다시 세계챔피언에 도전해서, 49세의 나이에 당당히 WBF헤비급챔피언에 오른 것이다.

         

        나이 50줄에도 복싱을 포기하기 않고, 끝까지 도전해가는 홀리필드의 불굴의 정신에 무한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레녹스 루이스 대 에반더 홀리필드의 1차전 하이라이트 경기 동영상 (14)

         

         

         

         

         

         

         

         

        레녹스 루이스 대 에반더 홀리필드의 1차전 전체 경기 동영상 (1시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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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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