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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버몬트주 베닝턴몬스터의 정체는 빅풋일까, 베닝턴트라이앵글 실종사건

     

    미국의 한 지역에서 계속해서 사람들이 사라지는 실종사건이 발생하고 있다고 해서 충격을 주고 있다.

    뚜렷한 원인도 없이, 멀쩡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사라지는 실종사건이 발생하고 있다고 하며, 무려 40명의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곳은 미국 버몬트주의 베닝턴이라는 곳이라고 한다. 1946년 버몬트주의 베닝턴지역에서 전혀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친구들과 함께 버몬트주에 있는 글래스턴베리산에서 등산중이던 한 여대생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한다.

    폴라 벤슨은 그 당시 친구들과 함께 글래스턴베리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폴라는 잠깐 캠핑장에 다녀온다는 말을 남기고 캠핑장에 되돌아간 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폴라가 사라진 후 친구들이 그 주변지역을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폴라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고 하며, 폴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폴라는 인근지역의 대학에 다니는 평범한 1학년 학생이었다고 한다.


     

    폴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은 베닝턴으로, 사방이 글래스턴베리산으로 뒤덮여있는 인적이 전혀 없는 까마득한 오지라고 한다.

    친구들은 폴라의 실종은 그지역 경찰서에 신고했고, 경찰들이 출동해서 헬기까지 동원해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지만, 끝내 사라진 폴라의 그 어떤 흔적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캠핑장에 잠깐 다녀오겠다며 돌아갔던 폴라는 도대체 어디로 살라져버린 것일까? 베닝턴에서 사라진 폴라는 그 후에도 영원히 그 시체조차 찾지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베닝턴지역에서 사람이 실종된 것은 폴라가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그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베닝턴에서 실종되는 사건들이 계속해서 발생했다고 한다.

     

    1887년 베닝턴의 글래스턴베리산에서 한 남성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존 하버라는 40세의 남성이 가슴에 총상을 입은 체로 글래스턴베리산 인근에서 숨져있었다고 한다.


     

    존 하버는 원래 엽총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의 총은 시신이 있던 곳으로부터 수십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존 하버는 가슴에 여러번 총격을 받은 상태로 숨져있었다고 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그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지만, 존 하버의 사망과 관련된 그 어떤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5년전에 살인범이었던 헨리 맥도웰이 감옥에서 탈출해서, 베닝턴 인근의 글래스턴베리산으로 숨어들어갔다고 한다.

     

    감옥에서 탈옥한 후, 글래스턴베리산의 깊숙한 숲속으로 숨어들어간 헨리 맥도웰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경찰이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지만, 그를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50년이 더 지난 1940년대부터 그 베닝턴지역에서 연속해서 실종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지역에 살고있던 8살의 소녀 폴 젭슨이 학교에서 돌아오던 중 갑자기 실종되어버렸다고 하며, 그지역에서 낚시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던 74세의 미디 리버가 원인도 없이 사라졌다고 하며,

    가족들과 함께 그지역으로 캠핑을 왔던 53세의 가정주부 프리다 랭커도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또한 그지역에 정찰을 나왔던 제임스 테드포드라는 군인도 원인도 없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베닝턴지역에서 실종된 사람들의 수는 모두 40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1946년도에 폴라의 실종사건이 또다시 발생하자,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고, 사람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한두명도 아니고, 4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베닝턴에서 연속해서 사라지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한두명이 사람들이 실종되었다고 하면, 그냥 운나쁘게 낙상 같은 일을 당했다고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4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연속적으로 사라져버렸다고 하면, 이것은 단순히 해프닝으로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본다.

     

    뭔가, 그 베닝턴지역에서는 사람들을 해치거나 납치하는 어떤 존재나 괴생명체가 살고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뭏튼 40명의 멀쩡했던 사람들이 실종되는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자, 사람들 사이에서 실종의 원인을 놓고서, 열띤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베닝턴의 실종사건을 대해서 여러 가지 가설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인데, 첫 번째 가설이 탈옥한 살인범 헨리 맥도웰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던 헨리 맥도웰은 그후 베닝턴 인근의 글래스턴베리산속으로 숨어들어갔으며, 경찰은 그를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베닝턴은 글래스턴베리산으로 둘러쌓여있는 지역이므로, 산속에서 은거중이던 살인범 헨리 맥도웰이 산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모두 살해했다고 하는 가설이다.

    헨리 맥도웰은 현상수배범이었기 때문에, 산속에서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을 모조리 살해했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데 이 가설은 엄청난 모순점이 있다고 본다. 산속에서 숨어살아야 하는 베닝턴이 이렇게 수십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인다고 하면, 경찰의 출동을 불러오게 되며, 자신의 본거지를 노출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산속에서 조용히 숨어살아야만 하는 헨리 맥도웰이 일부러 대규모 살인사건을 일으켜서, 경찰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의 가설로는 UFO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베닝턴지역과 글래스턴베리산은 예전부터 UFO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실제로 도날드 프릿이라는 사람이 베닝턴의 상공에서 밝은 빛을 내뿜는 선명한 UFO의 사진을 촬영했었다고 한다.

     

     

    이곳에 자주 출몰하는 UFO의 외계인들이 베닝턴이나 글래스턴베리산속에서 헤메이는 사람들을 몰래 납치해다가 생체실험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폴라등 실종된 사람들은 UFO에 납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세 번째가설로는 이곳 베닝턴지역에는 다른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인 웜홀이 존재한다고 하는 가설이다.

     

     

    한두명도 아니고 40여명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사라진 것은 단순한 사고라고 말하기 곤란하며, 이 베닝턴지역에는 다른 세계나 4차원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웜홀이나 다차원포털이 있어서, 실종된 사람들은 대부분 이 다차원 통로를 통해서 다른세계로 떠났다고 한다.

     

    사라진 40명의 사람들이 모두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는 점에서 아주 유력한 가설이라고 본다.

       

    네번째 가설로서 베닝턴지역에는 괴생명체가 살고 있으며, 베닝턴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이 실종된 것은 바로 괴생명체 때문이라고 하는 가설이다.

    민속학자인 조셉 시트로는 베닝턴지역에서 사람들이 실종된 원인은 모두 괴생명체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셉 시트로의 설명에 의하면, 19세기에도 이 베닝턴지역에서 사람들이 실종되는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어느날 마차가 이지역을 통과하던 중에 갑자기 마차가 들려지는 엄청난 진동을 느껴졌다고 한다.

     

    베닝턴지역의 좁은 숲속길을 달려가던 중에, 갑작스럽게 마차가 무엇엔가로부터 들려졌다가 떨어졌다고 한다. 충격에 깜짝 놀라서 마차밖으로 뛰어나온 사람들은 눈앞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목격한 것은 괴생명체라고 하며, 온몸이 온통 털로 뒤덮여있는 털복숭이 괴물이었다고 하며, 그 괴생명체는 곧바로 숲속으로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사람들의 목격담에 의하면, 그 괴생명체는 키가 3m나 되는 엄청난 거구였다고 하며, 온몸에는 털이 수북하게 덮여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차 주변에는 그 털복숭이 괴생명체가 남긴 거대한 발자국들이 여러개나 찍혀있었다고 한다.

     

    이 기록문서에는 그 괴생명체를 목격한 사람이 그린 그림이 함께 실려있다고 하며, 그 당시 사람들은 이 괴생명체를 베닝턴몬스터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셉 시트로는 이 19세기의 기록문서를 근거로 해서, 과거부터 깊은 숲속에서 살아왔던 베닝턴몬스터가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은 하나둘씩 납치해간 주범이라고 한다.

     

     

    19세기부터 최근까지 베닝턴지역에서 실종되었던 수십명의 사람들은 모두 베닝턴몬스터가 납치해갔거나,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3m의 큰키에 마차를 들어올릴 정도의 엄청난 괴력을 지녔던 베닝턴몬스터라면 충분히 수십명의 사람들을 제압하거나, 납치해 갈 수 있으며, ‘베닝턴몬스터외에는 달리 설명될 길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곳 베닝턴에서 사고가 발생했던 지점들은 연결해보면, 삼격형형태의 모양이 나온다고 하며, 사람들은 이 베닝턴의 삼각형모양을 버뮤다삼각지대(버뮤다트라이앵글)를 본따서, ‘베닝턴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렇게 베닝턴 실종사건은 베닝턴 트라이앵글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2003년 이곳 베닝턴지역에서 또다시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베닝턴 주변의 마을에 살고있던 주민 레이 뒤프렌느가 베닝턴 주변도로를 차를 몰고지나가다가, 갑자기 나타난 괴상한 물체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밤에 베닝턴의 한 도로위를 차를 몰고 지나갔던 레이는 도로 한복판에 정체모를 거대한 털복숭이 생명체가 나타나서 위협을 가했다고 하며, 갑자기 나타난 괴생명체 때문에, 레이는 큰 자동차사고가 날 뻔했다고 한다.

     

    그당시 레이 앞에 나타나서 위협을 가했던 것은 설인이나 빅풋과 비슷하게 생긴 털복숭이 생명체였다고 한다. 그 괴생명체는 레이에게 위협을 가하고는 곧바로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2003년 레이에게 나타나 위협적인 행동을 했던 그 생명체는 과거 40명의 사람들을 사라지게 만들었던 그 베닝턴 몬스터일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사람들이 타고있는 마차를 들어올릴 정도의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는 3m 키의 털복숭이 생명체는 과연 정체가 무엇일까?

    그리고 4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하나둘씩 사라지게 만들었던 주범은 괴생명체 베닝턴몬스터일까?

     

    베닝턴몬스터라고 불리우는 털복숭이 생명체는 오늘날 미국에서 종종 목격담이 흘러나오고 있는 빅풋과 매우 유사한 존재라고 보여진다.

    베닝턴몬스터를 목격했다고 하는 목격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키가 무척 크며, 온몸이 털로 뒤덮여있는 털복숭이 생명체라고 한다.

     

    이같은 털복숭이형 생명체는 과거에서 지금까지 미국 서부지역의 깊은 산림지대에서 종종 목격되는 빅풋과 매우 유사할 정도로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닝턴에서 40명의 사람들을 사라지게 만든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많은 목격자들의 목격에 의해서 베닝턴몬스터라고 불리우는 빅풋과 유사한 생명체와 관련이 높다고 보여진다.

     

    , 베닝턴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을 납치했거나, 사라지게 만든 장본인은 빅풋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목격자들의 목격담이 빅풋’의 모습과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빅풋

     

    빅풋은 미국의 록키산맥 등 주로 서부지역의 깊은 숲속에서 살고 있다고 추정되는 털복숭이형 괴생명체이다.

    빅풋(bigfoot)사스콰치라고도 불리우는데, 이것은 인디언들 말로 털이 많이 나있는 거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거대한 덩치의 덜복숭이 생물로, 반인반수의 생명체로 알려져 있다.

     

     

    빅풋은 목격자들의 목격담에 의하면, 키가 최소 2m에서 3m까지 엄청난 체구를 갖고있으며, 온몸이 온통 털로 뒤덮여있는 털복숭이형 존재인데, 반은 짐승이라고 할 수 있고,

    반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서 빅풋을 보통 반인반수의 생명체 또는 제2의 인류라고도 부르고 있다.

     

    빅풋은 1951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깊은 산속에서 거대한 발자국이 발견되면서, 빅풋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그 후 미국 서부지역의 깊은 산림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목격되었다고 한다.

    빅풋의 존재는 발자국과 사진, 그리고 영상등에 담겨서 지금까지 전해져내려오고 있는 중이다.

     

    빅풋은 미국의 서북부지방에서 주로 목격된다고 하며, 보통 빅풋은 사람들의 발길이 드믄 험준한 산림속에서 출몰한다고 한다.

    지난 50여년 동안 미국대륙에서만 털복숭이형 생명체인 빅풋이나 이와 유사한 괴생명체를 목격했다는 사람들의 목격담이 끊이질않고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목격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빅풋은 온몸에 온통 털로 뒤덮여 있는 털복숭이 생물이라고 하며, 사람처럼 두발로 걷는 직립보행을 한다고 하며, 덩치가 무척 커서 사람들에게 위협적으로 보인다고 한다.

     

     

    60~70년대 만해도 빅풋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300건이나 될 정도로 많았다고 하며, 빅풋의 목격담은 지금까지도 계속 끊이지않고 나오고 있다고 한다.

       

    1972년도에 이반 마커스가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림속에서 실제 빅풋의 모습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며, 그가 촬영한 빅풋의 사진이 널리 퍼지면서 빅풋신드롬이 일어나기도 했다.

     

    가장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2013년도에 미국 펜실베니아주의 킨주아국립공원에서 또다시 빅풋의 촬영에 성공했다고 하며, 그 사진이 널리 퍼져서 빅풋이 또다시 화제의 인물이 되기도 했다.

     

    201310월 존 스톤맨이 킨주아국립공원을 드라이브하다가, 숲속에서 걸어다니던 빅풋을 발견하고는 재빠르게 사진촬영에 성공했다고 한다.

    존 스톤맨이 찍은 사진에는 숲속에서 몸에 온통 검은털로 뒤덮힌 털복숭이 생명체가 보이는데, 전형적인 빅풋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처럼 빅풋에 관한 목격담과 사진, 발자국등이 너무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미국사람들은 대체로 빅풋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한다.

     

    빅풋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서 사람들이 없는 깊은 산림속에서 숨어서 산다고 하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다른 일각에서는 빅풋이 사람들에게 해코치를 하고 위해를 가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 중이다.

     

     

    빅풋의 사진이나 발자국화석은 많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빅풋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서, 빅풋의 존재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으로 갈려져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빅풋이나 예티 같은 털복숭이 생명체들은 수만년전에 현생 인류와의 경쟁에서 밀려났던 오래전의 기칸페피테쿠스라는 생명체가 인류에게 밀려나서, 깊은 산림속으로 들어가서 진화해온 결과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중이다. 

     

    '기칸테피테쿠스'라는 생명체의 유골이 실제로 발굴되었다고 하는데, '기칸테피테쿠스'는 키가 2.5m-3.5m로 엄청나게 크며 거대한 체구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덩치면에서나 형태면에서 '기칸테피테쿠스'가 현재의 빅풋이나 예티와 무척 흡사한 종이라고 할 수 있으며, 오늘날 많이 목격담이 나오고있는 빅풋이나 예티는 상상의 동물이 아니라, 고대의 '기칸테피테쿠스'가 진화해서 생겨난 후손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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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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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건강과 대장암 예방에 좋은 아로니아 마주스만드는 법, 안토시아닌 

         

      우리나라 사람들의 장건강이 매우 안좋은 수준이라고 한다. 불명예스럽게도 한국인의 대장암발병율이 세계 1위라고 하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조사대상자 1,000명 중 50% 정도가 변비나 과민성대장증후군, 설사 등 장질환을 겪고 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조사대상자들 중, 거의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변비나 설사 등의 장질환을 겪고 있다고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장질환을 겪고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질환은 변비라고 하며, 두 번째가 설사이고, 세 번째가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고 한다.

       

      오래전에는 채식을 많이 하던 한국인들의 식성이 육류위주의 식단으로 바뀌면서그리고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각종 가공식품들을 즐겨 먹게되면서한국인들의 장건강이 매우 안좋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두명 중에 한명(50%)이 장이 안좋거나장질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니이제 한국인들의 장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할 수 있다.

       

       

      변비나 설사, 과민성대장증후군 같은 장질환은 병원에서도 그 원인을 쉽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또한 한번 장질환에 걸리면 잘 치료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장질환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대장암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장기간 방치하면 생명까지도 앗아갈 수 있는 것이 대장암이다.

        

      정말 큰 충격인 것은 우리나라사람들의 대장암 발병율이 세계 1위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경우 인구 10만명 당 대장암에 걸린 사람 45명이라고 하는데, 아시아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대장암에 걸린 사람들이 10만명당 14명인 것과 비교하면 무척 높은 수치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육류위주의 식단, 그리고 공장에서 가공되어 나오는 수많은 가공식품들을 즐겨먹게 되면서, 한국인의 장건강이 심각한 수준으로 나빠지게된 것이다.


        

      아무리 병원치료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좋은 약을 먹는다고 해도,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장질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변비환자가 전국민의 10%나 된다고 하며, 한해 변비환자가 60만명씩 발생한다고 한다.

      변비라는 것은 대장의 연동운동이 너무 느려서, 수분이 부족해져서 변이 딱딱하게 굳어진 상태가 되어, 배변활동이 잘 안되는 것을 말한다.


       

      장이 제기능을 못하고 장의 건강이 안좋아지면, 변비, 설사,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발생하게 된다또한 장의 건강이 안좋아지면 면역력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아토피나 알레르기성 피부질환, 피부건선, 비염 같은 증상이 생기는 이유도 근본원인은 바로 장이 안좋기 때문에 생기게 된다고 한다우울증이 생기는 이유도 장이 안좋은 것이 원인인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처럼 장의 건강이 안좋으면, 몸의 전체의 면역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여러 가지 질병에 노출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장에는 우리몸의 면역세포의 80%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장의 건강이 나빠지면 면역기능도 함께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소장과 대장)의 건강이 나빠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근본원인은 장속의 유해균의 수가 유익균수보다 더 많아서, 유익균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의 점막을 보호하고 장의 연동운동을 도와주는 유익균이 줄어들게 되면, 장의 건강이 악화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장의 건강을 좋아지게 하기 위해서는, 장속의 유해물질(유익균)이 많아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속의 유익균수를 늘리게 만들기 위해서는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건강이 나빠지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복부냉증이라고 하는데, 이경우 배꼽주위의 체온이 정상치보다 2.5도 가량 낮아진다고 한다.

      복부가 차가워지는 것을 복부냉증이라고 하는데, 복부냉증이 심해지면, 내장의 기능이 떨어져서 소화와 흡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게 된다.

        

      장에서는 몸에 필요한 영양물질 들을 흡수해서 온몸으로 공급하는데, 복부냉증이 생기면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하지못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가지 질병들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남자의 경우, 복부냉증이 심해지게 되면, 복부비만이 생기게 되고, 전립선염과 남성의 성기능도 떨어지게 된다고 한다. 

      여성의 경우 복부냉증이 심해지면, 생리불순이나 자궁근종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자신이 복부냉증이 있는지 알아보는 자가진단법이 있다고 하는데, 자신의 손바닥을 복부에 대고, 손바닥에 비해 복부가 차다고 느껴진다면, 복부냉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복부가 냉해지면, 장의 건강이 나빠지게 되고, 변비나 아토피,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찾아오게되고, 그외에도 여러가지 질병에 걸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복부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처럼 건강을 나빠지게 만드는 복부냉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복부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한데복부냉증이 심한 사람은 평소에 복부에 핫팩을 부착하고 생활하는 것도 좋다고 한다.

       

      따뜻한 열이 나오는 핫팩을 복부에 차고 있으면, 복부주위에 있는 대동맥이나 대정맥의 혈관이 따뜻해지고, 그 따뜻한 피가 몸전체로 돌기 때문에, 몸 전체의 기온도 함께 올라가게 된다고 한다.

      복부냉증이 심하거나, 장질환이 심한 사람은 평소에 복부에 핫팩을 차고 있는 것이 장건강을 위해서 좋다고 한다.

       

       

      장건강을 좋게 하는 방법

       

      자신에게 장 질환이 있는지 없는지를 진단할 수 있는 자가진단법이 있는데, 아래 사항중에서 2~3가지에 해당한다면, 장건강이 나빠졌다고 의심해봐야 한다.

       

        

      1 찬음식이나 찬물을 먹으면 설사를 한다.

      2 배에 가스가 자주 차고, 트림을 자주 한다.

      3 배변을 해도 시원하지가 않고, 잔변감이 있다.

      4,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난다.

      5, 스트레스를 받으면, 배가 아프고 대변을 보고싶어진다.

       

      위에서 5번을 제외하고, 1번에서 4번까지에서 2개에 해당한다면, 장건강이 나빠다고 할 수 있으며, 장의 질환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5번의 경우는 전형적인 과민성대장증후군에 해당하므로, 이런 사람들은 병원에서 장의 건강을 체크해보고, 장의 건강을 좋아지게 할 수 있는 식이요법을 실시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장건강을 좋게하고, 황금변을 볼 수 있는 방법

       

      변비나 설사과민성대장증후군을 해소시킬 수 있는 장건법이 있다고 한다


      1 골든타임을 지킬 것

      2 자주 풍선을 불 것

      3 잠을 잘 때에 왼편으로 몸을 제끼고, 두다리를 약간 구부리고 잘 것

      4 손을 배 가까이에 둘 것

       

      위의 네가지의 사항을 잘 지키기만 해도 장의 건강이 좋아지고, 변비를 해소할 수 있다고 한다.

       

      1. 아침 5~7시 사이나 또는 자신이 아침에 기상하는 시간에, 대변을 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장의 건강에 좋다고 한다. 아침에 기상할 때가 장이 가장 활성화되는 때이므로, 이 시간에 장을 규칙적으로 보면 배변기능이 좋아진다고 한다.

       

      2. 대변을 볼 때에 복부의 힘이 좋아야 대변이 더 잘 나온다고 한다. 이것을 복압이라고 하는데, 평소에 복압을 키워주는 운동을 하는 것도 장의 건강을 위해서 좋다고 한다.

       

      복압을 키워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풍선불기라고 한다.

      풍선을 불 때에 자신도 모르게 복부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므로 평소에 풍선을 자주 불어주어서 복압을 강화시켜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3. 잠잘 때에 똑바로 누워서 자는 것보다는 옆으로 왼쪽으로 몸을 돌리고 자는 것이 장건강에 좋다고 한다.

       


      잠 잘때에 왼편으로 몸을 돌리고, 두다리를 약간 구부리고 자면, 위장과 대장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장의 노폐물을 더 용이하게 배출시킬 수 있고, 장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위산의 역류를 막아주기 때문에, 역류성식도염을 예방할 수 있고, 위장기능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4. 평소에 소파에 앉아있을 때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에는, 양손을 비벼서 따뜻해지게 만든다음, 두손을 배위에 두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장건강을 위해 좋다.

       

      양손을 비벼서 열을 내고, 따뜻해진 양손을 배위에 두면, 복부가 따뜻해져서 장의 운동이 더욱 활발해지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따뜻해진 손이 찜질효과를 주므로, 복부운동을 상승시켜서, 소화력 증진과 변비해소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특히 좌측 아랫배 부분을 손으로 마사지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좌측 아랫배를 손으로 약하게 시작해서 점차 강하게 마사지하는 것이 경직된 장을 활성화시켜주게 된다고 한다.

       

       

      장 건강에 좋은 음식 - 아로니아의 효능

       

      서양에서 초크베리라고도 불리우는 아로니아는 장 건강에 아주 좋은 열매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아로니아불로매라고 부르는데, 이 열매를 먹으면 늙지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불로초와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만큼 중국에서는 아로니아열매를 건강과 복락을 위해서 좋은 열매라고 보았던 것이다.

       

      유럽에서는 아로니아를 왕족들이 먹을 수 있는 과일이라고 해서, ‘킹스베리라고 불렀다고 한다이처럼 아로니아는 동양과 서양 모두에게서 건강증진을 위해서 매우 좋은 식품으로 취급해왔다고 한다.

       

      아로니아열매는 보라색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안토시아닌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아로니아에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하게 들어있다고 한다.


      안토시아닌은 우리몸에서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활성산소를 억제해주는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노화방지에 도움을 주고, 피로회복에 좋고, 눈건강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위염이나 장염 등 염증이 원인이 되어서 질병이 발생하게 되는데, 우리몸 곳곳에서 쌓이고 쌓인 염증은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아로니아에 들어있는 안토시아닌은 몸속의 염증을 제거해주는 데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한다.

       

      포도나 블루베리에도 안토시아닌이 들어있는데, 포도에는 안토시아닌이 8mg/100g이 들어있고, 블루베리에는 안토시아닌이 160mg이 들어있지만, 아로니아에는 안토시아닌이 훨씬 더 많은 630mg/100g이나 들어있다고 한다.

       

      아로니아에 들어있는 안토시아닌을 추출해서, 대장암세포속에 넣었는데, 하루가 지난 후에 대장암세포의 70%가 사멸했다고 한다.

       

      미국의 의학연구소에서 실시한 연구에서, 기존에 알려진 100가지의 항산화물질 중에서, 아로니아가 가장 큰 항산화효과를 갖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한 아로니아에는 바나나보다 6배나 더 많은 식이섬유가 들어있다고 한다.

       

      따라서 아로니아를 많이 섭취하게 되면, 장속의 유익균들의 수를 크게 증가시켜서, 배변활동을 원활하게 만들어주고 장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 식이섬유가 많이 들어있는 아로니아는 변비를 해소해주고, 장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준다고 한다. 

       

      아로니아는 좀 씁쓸하고 떫어서 열매를 그냥 먹는 것보다는 분말로 만들어서 먹는것이 좋다고 한다.

       

       

      아로니아분말을 마와 섞어서 아로니아 마 주스를 만들어 먹으면, 소화흡수율을 더욱 높일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아로니아에도 식이섬유가 많이 들어있지만, 마에도 식이섬유가 많이 들어있어서, 두식품을 같이 섭취하면, 장을 좋게하는 데에 시너지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마에 많이 함유되어있는 뮤신은 위와 장의 점막을 보호해주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외장장애를 앓고있거나, 위건강이 안좋은 사람에게 아주 좋다고 한다.

       

       

      ▶ ‘아로니아 마주스만드는 방법

       

      재료 - 아로니아분말 티 3스푼, 90g, 우유 2컵과 꿀 2 티스푼

       

       

      1, 아로니아분말을 티스푼으로 세스푼과, 잘게 썰은 마 90g을 함께 믹서기에 넣는다.

       

       

      2, 또 이 믹서기에 우유 2컵과 꿀 2 티스푼을 넣어서, 함께 갈아주면 된다.

       

       

      그냥 먹으면 떫은 아로니아를 우유와 꿀을 함께 섞어서 먹으면, 쓰고 신맛도 없애고 식감도 좋아진다.

       

         

      아로니아 섭취시 주의사항, 부작용

       

      아로니아가루를 먹게되면, 소화분비액이 많이 증가하게 되므로, 평소에 위산이 많거나, 속쓰림이 심한 사람은 식후에 먹는 것이 좋다.

      아로니아에 들어있는 탄닌성분은 철분흡수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빈혈환자들은 아로니아 과다섭취는 삼가는 것이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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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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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고종의 비, 중국최초의 여황제 측천무후의 악행과 남총

         

        중국역사상 가장 잔혹한 황실역사를 만든 주인공이자, 희대의 악녀로 악명이 높은 여인이 바로 측천무후다.

        측천무후는 중국역사상 최초로 여황제에 올랐던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그 잔악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했던 악녀라고 할 수 있다.

         

        여태후, 서태후와 함께 중국의 3대악녀 중 한사람으로 알려진 측천무후의 잔인성을 세여자 중 최고라고 할 만큼, 정말 대단한 잔악스러움을 지닌 여황제였다.

         

        여태후와 서태후도 희대의 악행을 많이 범했는데도 자기 자식만큼은 죽이지는 않았지만, 오직 측천무후만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과 딸을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그 결과 당나라 최고의 권력인 여황제의 자리에 올라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중국의 3대악녀 중 최고의 악녀로 손꼽히는 측천무후이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생을 안정시켰다는 나름대로의 업적도 갖고 있는 상반된 두가지의 얼굴도 갖고있는 그녀다.

         

         

        중국역사상 가장 잔악하고 음탕한 요부라는 평가와 함께, 민생을 보살펴서 나라를 반석위에 올려놓았던 여걸이라는 두가지 평가를 함께 받고있는 측천무후는 두얼굴을 지닌 악녀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측천무후는 황위를 찬탈해서 여황제로 등극하고 난 후에, 수많은 남총을 끌여들여서 무안우치의 향락을 즐겼으며, 자신의 하룻밤 쾌락을 위해서 많은 젊은남자들을 희생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천일야사' 방송에서도 측천무후의 잔혹스러운 일대기를 소개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알면 알수록 경악과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희대의 요부 측천무후가 어떤 여성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측천무후의 원래 이름은 무조인데, 무조는 63614살의 나이로 궁궐에 입궁해서 당나라 태종의 시기에 궁녀가 되어 일했다고 한다.

        어느날 당태종이 자신이 다루지 못하는 성질이 거친 말을 어떻게 길들일지를 묻자, 당돌하게도 앞으로 나선 무조(측천무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궁녀의 신분으로서 당돌하게도 당태종 앞에 나선 무조(측천무후)는 자신에게 쇠채찍, 쇠망치, 비수 세가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거친말을 길들일 수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무조(측천무후)는 말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쇠채찍으로 때려서 말을 듣게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쇠망치로 때리고,

        그래도 말을 안듣는다면 더 이상 쓸모가 없는 말이니, 비수로 찔러 죽여버리는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측천무후 초상화

         

        이렇게 명쾌하게 답변한 무조(측천무후)를 보고, 당태종은 크게 만족해하면서, 그녀를 후궁으로 삼고자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늘의 별자리를 살펴서 나라의 운세를 점치는 태사령이 무조(측천무후)를 본 결과, 그녀에게서 역상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을 감지했다고 한다.

         

        태사령은 당나라황제 태종에게 무조(측천무후)를 후궁으로 삼을 경우에는, 장차 무씨에 의해서 역모가 일어나서 후손들이 큰해를 당하고, 황실의 대가 끊어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말을 들은 당태종은 그이후로 한번도 무조와 동침하지 않았다고 하며, 그녀에게 황실의 서가를 관리하는 직책을 주어서 일하게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미모가 뛰어나게 아름다웠던 무조(측천무후)는 자신의 매혹적인 용모를 내세워서, 태종 뿐만아니라 고종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허지만 무조는 끝내 태종의 성은을 입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엄청나게 강했던 무조(측천무후)는 온갖 간교와 권모술수를 다 부려서, 정적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황후의 자리뿐만 아니라, 여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대단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권력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온갖 간교를 다 부렸다고 한다.

         

        무조(측천무후)는 당태종에게는 성은을 입지는 못했지만, 그 아들 고종으로부터 성은을 입었고, 후궁에서 황후자리까지 올라섰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아들을 죽이고 여황제에 오름으로써, 태종의 직계후손들의 씨를 말렸던 것이다.

         

        그 당시 당태종에게 말한 태사령의 예측은 나중에 그대로 적중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당태종이 고구려정벌에 실패한 후에 큰 병을 얻어서 병석에 눕게되자, 무조(측천무후)는 태종의 병간호를 담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태종의 병문안을 왔던 고종은 무조(측천무후)의 아름다운 용모에 홀딱 반했다고 한다.

         

         

        자신의 빼어난 미모로 미래의 황제가 될 황태자(고종)를 완전히 홀린 무조(측천무후)는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자신의 운명이 완전히 되바뀌게 된다.

         

        태종이 죽고 난 후에, 태종을 모시던 후궁이나 궁녀들은 모두 출가해서 비구니가 되어야 하는 것이 그당시의 법도이었기 때문에, 황실의 법도에 따라 무조(측천무후)도 어쩔 수 없이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무조(측천무후)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던 고종은 수시로 미행을 나가서, 절에 은거하던 무조(측천무후)를 만나 사통을 나눴다고 한다.

         

        무조의 미색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절에서 비구니로 지내던 그녀를 황제가 몰래 찾아와서 사통까지 나누었을까?

        고종의 이같은 밀행은 나중에 자신의 아들들을 희생시키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될 것을 그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몇 년 동안 비구니로 지내던 무조(측천무후)가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고종의 정비인 왕황후는 고종의 총애를 독차지하고 있는 소숙비 때문에, 독수공방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궁궐에서 고종을 사이에 두고, 정비인 왕황후와 소숙비 사이에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왕황후는 소숙비를 견제를 하기 위해서, 고종이 마음에 두고있는 무조를 전격 궁궐로 불러들이게 된다. 황실의 법도에 따라서 숨어서 무조(측천무후)를 만나야만 했던 고종은 뛸 듯이 기뻐했던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것이 나중에 자신의 후손들이 끊어지는 엄청난 재앙이 되어 돌아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들을 낳지못했던 왕황후는 소숙비의 아들이 장차 황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무조(측천무후)를 궁궐로 불러들였던 것이다.

         

         

        그리고 궁궐로 복귀한 무조(측천무후)는 소의의 첩지를 받고, 예상대로 고종의 총애를 독차지하며, 고종과 소숙비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우연찮게도 황후의 도움을 받고 비구니신세를 면하고, 다시 궁궐로 돌아올 수 있었던 무조(측천무후)는 고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야망이 워낙 컸던 무조(측천무후)는 결코 후궁으로만 만족할 수 없었다. 권모술수에 능했던 그녀는 자신의 연적인 왕황후와 소숙비를 제거하기 위해서, 새로운 계책을 만들어낸다.

         

        무조(측천무후)는 고종의 성은을 입어서 딸(안정공주)을 하나 낳았는데, 그녀가 원했던 자식은 딸이 아닌 왕자였다고 한다. 자신이 왕자를 낳고 그 왕자를 황태자로 만들어야만, 자신이 황후가 되어서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되는 것이다.

         

        딸을 낳은 것에 실망한 무조(측천무후)는 자신의 딸을 희생시켜서, 두 연적들을 제거하고자 하는 새로운 계책을 만들게 된다.

         

        무조(측천무후)는 아무도 몰래 자신의 딸의 목을 졸라서 숨을 끊어놓았고, 딸이 죽어있는 처소로 왕황우와 소숙비를 불러들였다고 한다.

         

        무조(측천무후)의 초대를 받고서 그녀의 처소를 찾았던 왕황우와 소숙비는 그 방안에 안정공주가 죽어있는 것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두 여자에게는 비극의 시작에 불과했다.

         

         

        곧바로 무조(측천무후)는 자신의 처소로 고종을 불러들였고, 죽어있는 딸(안정공주)를 안고있던 왕황후와 소숙비는 꼼짝없이 딸의 살해범으로 의심받게 된 것이다.

        측천무후가 파놓은 함정에 왕황후와 소숙비는 빠져들었던 것인데, 측천무후는 왕황후와 소숙비를 딸의 살해범으로 몰아서, 결국 두사람을 처형당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자신의 어린 딸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두 연적을 모두 제거해버린 것이다.

        측천무후가 얼마나 잔악스러운지, 그리고 얼마나 권력욕심이 강한지를 알려주는 단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측천무후의 만행은 이것이 끝이 아니며, 앞으로 더욱 많은 악행들이 그녀들 기다리고 있었다.

         

        황후와 고종의 총애를 받던 소숙비까지 모두 제거하는 데 성공한 측천무후는 그 후 여러명의 왕자들과 딸을 출산했고, 자신의 아들을 황태자로 만들고 나서, 자신은 황후의 자리에 올라서게 된다.

        무황후(측천무후)는 고종과의 사이에서 42녀를 낳았으며, 자신의 첫째아들을 황태자로 만들었다.

         

        그런데 황후의 자리에 올라섰던 측천무후는 황후의 권력에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권력의 맛을 옆에서 지켜봤던 그녀는 황후 그이상의 권력을 원했던 것이다.

         

        무황후(측천무후)는 고종이 정사를 펼치는 시기에도, 정사에 관여하길 좋아했다고 한다. 고종이 멀쩡하게도 살아있는데도, 무황후(측천무후)는 사사건건 정사에 관여해서 전횡을 일삼았다고 한다.

         

         

        정치적 야심이 워낙 컸던 무황후(측천무후)가 필요 이상으로 정치에 개입하게 되자, 고종과 무황후(측천무후)사이에 기싸움까지 벌어졌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후 고종의 몸이 점점 쇠약해져갔고, 마침내 고종이 원인모를 병으로 병석에 눕게 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무황후(측천무후)는 고종을 대신해 섭정에 나섰다고 한다.

        드디어 정사를 잡게된 무황후(측천무후)는 자신의 권력행사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고종의 외숙부인 승상 장손무기를 숙청해버리고, 그 집안을 풍비박산냈다고 한다.

         

        병을 앓고 있는 고종은 방속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고, 무황후(측천무후)는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않고 정사를 독단해 나갔다고 한다.

        황제 대신 용상에 앉아서 정사를 독단해나갔던 무황후(측천무후)는 권력에 완전히 심취해져갔고, 더욱 기고만장해져서, 고종에게 황위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라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이제 나이도 먹고 병약해졌으니, 황태자인 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뒷방으로 물러나라는 요구였다. 비구니였던 자신을 총애해주고, 황후의 자리에까지 올려준 고종에게 해서는 안될 요구를 측천무후는 거리낌 없이 했던 것이다.

         

         

        황후가 된 후에 주변사람들에게 엄청난 위세를 부리고, 기고만장해진 무황후(측천무후)의 만행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아픈 고종을 대신해서 정사를 돌봤던 무황후(측천무후)는 최고권력의 맛에 완전히 빠져버렸던 것이고, 자신이 맛본 최고의 권력을 아들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부터 무황후(측천무후)는 황후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여황제가 될 야심을 품었던 것 같다.

         

        자신이 권력의 최고정점에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길 바랬던 것이다.

        남편인 고종은 이미 병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자신의 최고권력에 방해가 될만한 인물은 아들인 황자들 뿐이었다.

         

        무황후(측천무후)는 황태자로 책봉된 자신의 첫째아들부터 먼저 제거했다. 측천무후의 첫째아들인 이홍은 황태자로 책봉되자 마자, 의문의 독살을 당했다고 한다. 무황후(측천무후)의 첫째아들의 황태자책봉식이 있던 날, 누군가가 독을 넣은 음식을 먹고서, 곧바로 숨졌다고 한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후, 무황후(측천무후)의 둘째아들인 이현은 두번째로 황태자로 책봉되었는데, 어머니 무황후(측천무후)는 자신의 아들인 황태자를 심하게 견제했다고 한다.

         

        둘째아들이자 황태자인 이현이 매우 영특했기 때문에, 이렇게 똑똑한 아들이 황제가 되면, 자신의 권력행사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했던 무황후(측천무후)

        둘째아들에게 여색을 너무 밝혀 황제재목이 아니라는 말도 안되는 죄목을 붙여서, 그를 먼 곳으로 유배를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무황후(측천무후)는 유배지로 쫒겨난 둘째아들에게 사신을 보내서, 목을 메서 자살하도록 교사했으며, 결국 무황후의 둘째아들은 목을 메어 자살했다고 한다.

         

         

        자신이 최고의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친아들을 두명씩이나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패륜을 저질렀던 무황후(측천무후)는 사람의 탈을 쓴 악마나 다름 없었다.

        아무리 권력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이렇게 천륜을 저버리고 친아들마저 죽일 수가 있을까,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두아들이 죽은 후, 무황후(측천무후)는 셋째아들인 이현을 황태자로 삼았는데, 683년 고종이 사망하고 난 후에 황제의 재위를 물려받은 이현을 3개월만에 폐위시켜버리고, 자신의 말을 잘듣는 넷째아들 이단(예종)을 다시 새로운 황제로 책봉하게 된다.

         

        측천무후는 자신에게 가장 고분고분하고 말을 잘듣는 막내아들을 세로운 황제로 만들었고, 자신은 황제보다 더 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자신의 넷째아들을 허수아비황제로 전락시키고, 자신이 국가의 모든 실권을 장악한 측천무후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전권을 행사해나갔고,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만한 대신들은 역모죄를 뒤짚어 씌워서, 가차없이 처단해버렸다고 한다.

         

        주변에 자기에게 도전할 만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버리고 난 후, 690년에 측천무후는 허수아비황제였던 이단(예종)을 황제에서 폐위시켜버리고, 67세의 나이에 스스로 여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측천무후가 자신의 아들들을 모두 폐위시키고, 스스로 여황제가 되어서 새롭게 세운 나라는 주나라라고 한다.

         

         

        측천무후가 이렇게 전횡을 일삼는 동안에, 그녀의 통치에 반발하는 반란도 몇건 일어났지만, 이상하게도 하늘의 뜻이 그녀에게 있었던지, 측천무후는 반란군들을 손쉽게 토벌해버렸다고 한다.

         

        서경업의 반란과 이원가의 반란을 모조리 제압하고 난 후, 측천무후는 더 이상 방해세력이 없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통치자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

         

        측천무후는 권력욕심도 강했지만, 쾌락이나 남색을 무척이나 밝혔다고 한다.

        67세의 나이에 여황제로 등극한 측천무후는 늦은 나이에도 자신의 쾌락적 본능을 여지없이 드러냈었다고 하는데, 중국 전역에서 수많은 남성들을 끌여들여서 향락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측천무후는 여황제가 되고 난 후에, 중국의 전역에서 젊고 잘생긴 남총들을 수천명을 모집해서 궁궐로 끌여들었으며, 밤마다 남총들을 바꿔가면서 광란의 밤을 즐겼다고 한다.

         

        측천무후는 궁궐안 깊숙한 곳에 공학부라는 은밀한 내실을 만들었고, 이 공학부에 잘생기고 건강한 남총들을 머물게 하면서, 매일밤마다 남총들과 동침했다고 한다.

         

         

        중국 황실여성 중에서 둘째가라고 하면 섭섭할 정도로 음탕하고 호색한이었던 측천무후는 60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젊은 남총들을 불러들여 매일같이 쾌락을 즐겼다고 하는데, 만일 남총들이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에는 가차없이 목숨이 날아갔다고 한다.

         

        남총으로 뽑혔던 젊은 사내들은 공학부에 머물면서 낮에는 궁궐에서 잡일이나 심부름을 하면서 측천무후의 시중을 들었고, 밤이 되면 그녀의 잠자리상대가 되었다고 한다.

         

        당나라의 역사서 구당서의 기록을 보면, 측천무후가 남총으로 뽑았던 젊은남성들의 수가 무려 3,000명이나 된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측천무후는 중국역사상 가장 화려한 남성편력을 지녔던 여성이자, 가장 음탕한 황실여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측전무후는 여색을 가장 많이 밝혔다고 평가되는 진시황제보다도 더 많은 수의 남자후궁들을 두었다고 할 수 있는데, 70이 넘은 나이에도 젊은 남총들을 매일같이 상대했다고 하니, 정말 음탕하기 짝이 없는 천하의 요부라고 할 수 있다.

         

        측천무후는 만년에도 젊은 남총들에게 사로잡혀서, 정사를 돌보지 않게 되자, 쿠테타가 일어났으며, 측천무후의 셋째아들이었던 중종이 쿠테타를 주도했다고 한다.

         

        측천무후는 자신이 폐위시켰던 아들로부터 역공을 받아서, 결국 여황제의 자리에서 폐위되고 만다.

        705년경에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측천무후는 15년동안 여황제로서 군림한 후에, 자신의 아들에 의해서, 폐위당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어떻게 보면 사필귀정이라고 할 수 있다.

         

        측천무후는 자신의 권력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무려 93명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한다. 희생된 사람 중에 대신들이 36명이고 왕족은 34명이며, 또한 놀랍게도 자신의 직계가족만 23명이나 된다고 한다.

         

        측천무후에게는 두가지 상반된 평가가 함께 내려지고 있는데, 하나는 국권을 튼튼히 지키고, 민생을 잘 돌보았던 여장부라는 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에 눈이 어두워서 자식까지 살해하고, 향락과 사치스러운 생활을 일삼았던 희대의 악녀라는 평가가 그것이다.

         

         

        측천무후가 인재를 고르게 등용해서 민생을 잘 돌보았던 공적은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가 권력욕심에 사로잡혀서 자식들까지 희생시키고 방탕한 생활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업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측천무후가 범한 인륜에 위배되는 잔악행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좋은 결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수단과 방법이 좋아야지만 그 결과가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측천무후는 누가 뭐라고 해도, 중국황실을 어지럽히고 살생을 일삼았던 희대의 살인마라고 하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측천무후는 여황제로서 폐위된 705년도의 12월달에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하는데, 생전에 그녀는 자신의 묘비에 아무 글자도 새기지 말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실제로 측천무후의 묘비에는 아무런 글자도 새겨져있지 않다고 한다.

         

        측천무후는 왜 죽으면서 자신의 비석에 글자를 쓰지못하게 했던 것일가?

        혹시 측천무후가 죽는 순간에, 자신의 과거의 악행들이 떠올랐고, 죽는 순간만큼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래서 자신의 비석에 글자를 새기지 말라고 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판단해 본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는 죽는 순간에는, 가장 선한 양심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최고의 권력을 탐했던 측천무후도 죽는 순간에는, 아마 자신의 권력욕심 때문에, 희생당했던 자식들의 얼굴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측천무후의 묘비에는 아무런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았다고 한다

         

        하늘도 떼어놓지 못하는 것이 부모자식간의 정인데, 권력에 대한 탐욕 때문에, 자신의 자식들을 희생시킨 측천무후도 죽을 때 만큼은 인간의 양심을 되찾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측천무후는 인간으로서 가장 잔악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고의 권력에 눈이 어두워서,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린 측천무후는 희대의 악녀이자, 사이코패스일 뿐이라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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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프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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